정말로 원하는 것 (2)
2017년 01월 26일.
-텅.
“다 챙겼냐?”
“예, 다 챙겼습니다.”
그래, 이제 정말로 다 챙겼다.
“짐 참 별 거 없네.”
“하하, 되게 짧게 있었으니까요.”
서울에 있던 시간이 고작 3개월 정도밖에 안 되는데 어떻게 짐이 많겠습니까.
“하여튼, 짐 정리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요한이 형. 태현이 형도 제주로 가서 부탁드릴 사람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렇게 감사함을 표하자. 요한이 형은 으레 그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 덕분에 크로스가 좋아졌으니.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냐.”
“아닙니다. 형님, 형님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어요.”
농담이 아니라, 솔직히 저 형님의 안 걸리게 반칙하는 기술이라던가 손 장난들은 돈 주고도 못 배울 좋은 정보들이었으니 말이다.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유럽 가서도 잘 지내라.”
그렇게 말한 요한이 형님이 정말, 정말 새삼스럽게 악수를 건네와서.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보통 이럴 때는 찐한 포옹 아니에요?”
“야, 임마. 우리가 게이도 아니고 뭔 포옹이야. 그런 건 너네 아버지하고나 해.”
하, 그래. 이 형은 이래야지.
-턱.
“하긴, 앞으로 못 볼 사이도 아니고, 국가대표에서 자주 만날 테니까 포옹하면 더 어색하겠네요. 악수 좋네요. 악수로 끝내죠.”
“하, 됐어 임마. 내가 무슨 국대야, 국대는”
“왜요, 형도 가능성 있죠.”
솔직히 저 형이 이형 형님에 비해 부족했던 게 크로스랑 키였는데, 그 중 하나인 크로스가 쪽의 약점이 많이 해소되신 이상. 최소 국가대표 풀백 2옵션 수준까지는 충분히 가능하시다.
“오히려 당분간은 제가 더 국대 가기 힘들지 않겠어요? 가면 당분간은 백업일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요한 형님은 악수하다가 쓴웃음을 지으셨다.
“그걸 알면서 왜 프랑스로 가냐? 그냥 벨기에 가지.”
“하하, 그러게요.”
그렇게 몇 초간 잡았을까.
우리는 서로의 손을 떼면서, 한 마디씩을 건냈다.
“그럼 형님, 나중에 파주에서 봬요.”
“···에휴, 그래, 인마. 나도 꼭 가마.”
-부르릉.
“잘 지내라!”
“형님도요!”
그리고,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지난 몇 달간 신세진 렌트카 네비게이션에 인천국제공항 제 2터미널을 쳤다.
“비행기표에 2E라고 적혀있으니 제 2터미널 맞고··· 장기 주차장이겠지? 에이전시에서 하루 있다가 찾아갈 테니.”
그래. 나는.
<국가대표 풀백 이준혁, 마르세유로 이적. 이적료는 50만 유로로 추정···>
마르세유를 선택했다.
-*-*-*-
[···계약을 거절하겠다고?]
“예, 그렇게 됐습니다. Pardon.(죄송합니다.)”
그 말에, 리에주의 감독은 꽤나 당황한 얼굴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내가 여기에 직접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텐데.’
그러나.
[무엇이 우리가 부족했나? 연봉? 계약금? 자금적인 문제라면 우리는 아직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뇨,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기가 가장 좋은 조건입니다.”
그래, 마르세유는 리에주보다 계약금을 눈꼽만큼 더 주고, 출전수당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늘리긴 했지만. 주급은 그대로였고, 미출전 수당은 아예 삭제된 계약서를 제안했으니까.
프랑스라는 더 빅리그에서. 그리고 마르세유라는 프랑스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클럽이 벨기에 리그의 Top 3~4라고 할 수 있는 리에주의 제안과 비슷하다는 건?
상대적인 대우는 확실히 더 안 좋아졌고 절대적인 대우도 글쎄, 더 좋을 거라고 장담하진 못한다.
[···그러면, 외적인 이유라는 소리인데, 어째서인가? 자네의 성격상, 챔피언스 리그라는 무대에서 뛰는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을 텐데.]
“···예, 그 점이 확실히 저를 망설이게 만들기는 했습니다.”
그래, 리그앙에 간다면, 챔스를 가는 건 오히려 더 어려울수도 있다. 왜냐고?
솔직히, 앞으로의 리그앙은 AS 모나코와 파리 셍제르망. 이 둘이 당분간 계속 이 리그를 지배할 수밖에 없을 거다.
파리는 뭐, 그 맨시티의 만수르보다 더 부자인 카타르 국왕이 구단주로 들어오면서 오일 머니의 끝판왕이 되어버렸고.
AS 모나코는 박주영 선수가 있다가 강등당한 팀으로 더 유명하겠지만, 강등 이후 러시아 오일머니와 모나코라는 세금이 거의 없는 나라의 클럽이라는 것이 겹쳐지면서 이번 2016-17 시즌, 파리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으로 성장했다.
‘그 외에도 세상에서 가장 현명하게 구단을 운영한다고 극찬받았던, 리그앙 7년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기록을 세운 리옹도 있고.’
사실상 현재의 리그앙은 이 세 팀 중 한 팀이 몰락하길 기다렸다가 나머지 한 자리를 릴, 니스, 스타드 렌과 같은 클럽과 경쟁해야만 하기에.
어찌 보면, 챔스에 나가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그런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더군요.”
[무언가?]
그 질문에, 나는 질문으로 대답했다.
“제가 항상 경기를 뛸 때마다 세어보는 게 있습니다. 뭔지 아십니까?”
당연히 대답을 기대하고 물어본 말은 아니었고, 그래서 바로 말해줬다.
“경기장에 찾아온, 팬들 숫자입니다.”
그래, 난 항상 경기장에 올 때마다 얼마나 많은 분들이 왔는지를 셌다.
우리가 뛰는 모습을 보러 돈과 시간을 써 가며 경기장에 찾아온 그들이.
90분이라는 시간 동안, 웃고, 울고, 욕도 하면서 응원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나도 행복했기에.
그래서- 항상 숫자를 셌다.
그 분들이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면, 저 함성이, 저 목소리가 더욱 커질 테고, 그건 더 기쁘고 즐거운 일이 될 테니까.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까지 뛴 경기 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경기를 꼽으라면, 저번 전북과 서울의 마지막 경기였다.
질 확률이 훨씬, 훨씬 더 높았음에도 이번엔 다를 거라는 믿음 하나만으로. 주말을 다 버려갈 각오를 하면서까지 대규모로 몰려와 우리를 응원해준 그들이 보답받는 모습이.
그들이 웃고, 우는 모습을 보고 느낀 행복과 고마움이··· 정말 컸다.
‘물론 K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는 것도 한 몫하겠지만···’
장담하건데, 그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그 기쁨은 반의 반 토막 났을 거다.
그러니까. 내가 리에주의 오퍼를 거절하는 이유는.
“그거 하나입니다. 리에주는, 저에게 오퍼가 온 구단들 중에서 가장 팬들이 적더군요. 오직 그 때문입니다.”
나의 마지막 전성기 동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팀 중에선.
가장 열정적인 팬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것.
오직 그 욕심 하나뿐이다.
그냥, 그거 하나뿐이다.
그 말을 들은 감독은, 멍하니 있더니.
[···.하!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미친듯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하핫! 이거, 미치겠군. 그랬구만! 우리 팀은 아무리 사람들 많아 봤자 3만 명도 못 채우지! 경기장이 작아서 말이야!]
그렇게 리에주의 감독은 실성한 듯이 웃더니.
[하하- 그럼 분데스로 가는 건가?]
“······”
[대답을 못 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니군? 그럼 마르세유 인가보군.]
“······!”
단박에 내가 어디 갈지를 알아챘다.
‘어떻게 알아챈 거지?’
딱 두 번의 질문만에 말이지.
[하하, 우리보다 관중이 많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클럽은 분데스리가의 클럽들을 제외하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거든.]
아. 하긴··· 평관 2만 3천은 분데스에서 몇몇 클럽도 못 찍는 수치긴 하지.
[그런데, 마르세유라면 후회할 수도 있을 텐데?]
“···..?”
[지금 내가 알기로는 거기가 영입하고자 하는 레프트백이 하나 더 있거든. 자네도 알만한, 옛날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던 레프트백을 말이야.]
“······!”
···잠깐. 뭐라고?
[그럼에도, 마르세유에 가고 싶은 건가?]
-*-*-*-
“네, 네, 이제 비행기 출발해요.”
“아니에요, 아버지. 아버지 지금이 가장 바쁠 때인 거 제가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몸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탁.
그렇게 전화를 끊자, 내가 어릴 적 가장 좋아하던 노래가 들려나왔다.
-그래, 그리 쉽지는 않겠지.
디지몬 버터플라이.
내 어릴 적 추억의 노래.
-나를 허락해줄 세상이란
-손쉽게 다가오는 편하고도 감미로운~ 공간이 아냐
“푸하하. 이거 딱 맞네.”
그래, 절대 쉬운 길은 아니다. 내가 앞으로 뛰게 될 리그는 리그앙(Ligue 1.)
비록 세계 최상위의 4개 리그에 비해 수준이 떨어진다고는 해도, 그래도 5대 리그라는 명칭으로 묶일 수는 있는.
전북 정도 되는 팀이 하위권을 깔아줄 만한 그런 리그에서 뛰는 거니까 말이다.
‘그리고, 주전 경쟁도 엄청 심할 테지.’
어젯 밤. 뉴스가 떴다.
<[오피셜] 에브라, 유벤투스 떠나 마르세유 이적.>
피트리스 에브라(Patrice Evra)
지금까지 상대해왔던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들과의 싸움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원래 마르세유의 주전으로 뛰고 있던 선수뿐만이 아니라. 박지성의 친구로도 잘 알려진. 그 전설적인 선수와도 경쟁해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날아오를 거야
-작은 날갯짓에 꿈을 담아
‘···이미 결정했어.’
그래, 나는 이미 결정했다.
아마도, 나는 여기가 끝이다. 아마 나의 20대는 여기에서 끝날 테니까.
그리고 30대의 풀백이 더 상위 리그로, 더 빅클럽에 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이다.
‘서른 두 살이면 슬슬 은퇴하는 선수들이 생길 정도로 풀백은 수명이 짧으니까.’
그러니- 최고의 리그에서 뛰지 못할 거라면.
최소한. 최고의 팬들과 함께.
최고로 열정적이고. 축구에 죽고 살기에.
리그 평균 관중이 4만이 넘는, 그 클럽의 팬들의 함성을 등 뒤에 업고.
단 한 번이라도 뛰어본다면.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뛰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봐아, Oh- My- Love~”
***
INTERNATIONAL TRANSFER CERTIFICATES
(국제 이적동의서)
계약 주체
1) FC Seoul
2) Olympique de Marseille
계약 대상
이준혁(Lee-Jun-Hyuk), 1989.11.12, Replublic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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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료
€ 500,000 (약 6억 34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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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 계약사항
계약 기간 : 2017.01.20~2019.06.30
선수 계약금 : € 34,000(약 4311만 원)
에이전시 계약금 € 25,000(약 3170만 원)
급료 : 주급 € 4,800(연봉 약 3억 1700만 원)
부대 조항
출전 보너스 : € 5,000(약 634만 원)
교체 미출전 수당 : € 1,200(약 156만 원)
무실점 보너스 : € 4,000(약 507만 원)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시 : € 80,000 (약 1억 144만 원)
올해의 팀 보너스 : € 450,000 (약 5억 7060만 원)
득점 보너스 : € 18,000(약 2282만 원)
어시스트 보너스 : € 10,000(약 1268만 원)
위의 모든 조항은 Ligue 1, Coupe de France, Coupe de la Ligue, UEFA Champions League, UEFA Europa League의 경기에 한정되며. 모든 급료는 Gross(세전) 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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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ymique de Marseille √ @ OM_Officiel · 2017.01.27
@Jun est Olympien
Welcome JunHyuk!
환영합니다! 준혁!
#GregoryEstOlymp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