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167)

정말로 원하는 것 (1)

2017년 1월 22일,

-우걱, 우걱.

“좀 천천히 드세요, 이준혁 선수, 체합니다.”

“아, 예.”

아, 이 몇 시간 만의 제대로 된 음식이냐. 맛 좋다···

‘한 접시만 더···아냐, 됐다. 조절해야지’

일반적인 비시즌이라면 아직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되겠지만, 지금 나는 유럽 이적을 하려는 상황이니 여기에서 그쳐야 한다.

만일 내가 이적한다면, 바로 경기에 들어갈 수 있는 몸상태여야 하니까.

그러니까-

“한 접시만 더 시켜 주실 수 있을까요?”

딱 두 접시에서 끝내자.

“하하, 알겠습니다.” [여기, 1인분 더요.]

“감사합니다. 에이전트님, 덕분에 살았네요.”

그러자 에이전트님은 쓰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고.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준혁 선수, 혼자서 유럽에 오시는 건 별로 안 좋은 선택이라니까요.”

그 앞에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유럽으로 날아가겠다고 할 때 에이전트님이 왜 갑자기 그러느냐, 지금은 너무 바빠서 당분간은 혼자 다녀야 할 텐데 위험하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도 고집을 부린 건 나였으니까.

‘···아니, 근데 솔직히 좀 억울하다. 누가 예상했겠어. 여행한 지 나흘만에 소매치기 당할 거라고.’

그랬다. 1월 17일에 비행기표를 끊은 나는 유럽을 단 4일밖에 안 돌아다녔지만, 그 짧은 여정에서 소매치기당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려던 때, 누군가가 갑자기 내가 있는 쪽 창문을 마구 두들기면서 뭐라고뭐라고 하길래 좀 자세히 들으려고 시선이 쏠린 사이에.

어떤 놈이 확 내 가방을 들고 튀어버렸던 거다.

‘시발. 다시 생각해도 빡치네.’

아니 어떻게 한 2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렇게 쉽게 도둑질해가는 거지. 진짜.

하여튼 덕분에 유럽 여행 이틀만에 나는 카드랑 현금 다 잃어버리고 알거지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여권이랑 핸드폰, 비행기표는 안 잃어버리셔서 다행이네요.”

“예, 말씀하셨던 대로 복대 하나 사서 거기에다가 넣고 다닌 덕에 안 잃어버렸습니다.”

말려도 내가 들을 기세가 아니자, 에이전트님이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중 하나가 복대 차라는 말이셨다.

그 때는 촌스럽게 왜 그걸 차라는 건지 이해를 못 하면서도

‘뭐, 그래도 챙기라면 챙기라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냥 챙겼는데··· 역시, 경험자가 말하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구나.

“잘하셨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여권은 유럽에서 재발급받으려면 좀 까다롭거든요. 서류 다 갖추고 한국대사관으로 찾아가도 보통 이틀은 걸려요.”

···잠깐. 저런 걸 어떻게 저리 자세히 아시는 거지? 설마.

“에이전트님도 몇 번 당하셨나요?”

“예, 저는 로마에서 한 번, 파리에서 한 번, 네덜란드에서 두 번 당해봤습니다.”

“······”

네 번이라고?

“그 중에서 한 번은 가계약서가 그 서류가방에 있어서 전임하던 선수가 이적 못 할 뻔 한 적도 있었죠.”

“···.진짜요?”

“진짜입니다. 사본을 만들어두지 않았다면 이적이 물거품이 될 뻔했죠.”

하하하하. 미친.

“유럽에선 이런 소매치기가 흔한가요?”

“뭐, 절대적인 소매치기범 자체도 꽤 많은 편이긴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게 가장 큽니다. 유럽에서 돌아다니는 동양인이면 관광객이나 유학생일 가능성이 높아서 소매치기범들의 주 타겟이거든요.”

에이전트님의 그 말에, 나는 그냥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구나. 하하.’

솔직히, 나는 이제까지 유럽에 대해 어느 정도 환상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솔직히 나, 그러니까 한 80년대 후반 내지 90년대 초반, 나 또래들이 어릴 적에 본, 그러니까 90년대, 00년대 초반에 보는 유럽이라고 한다면, 뭔가 굉장히 멋져보이고, 우리보다 한 수 위라는 느낌의.

하여튼 그냥 대단한 느낌이 드는 나라들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의 어린 시절은 뭔가 미국이라던가 유럽이라던가 하는 말이 붙으면 항상 우리나라가 배워야 한다, 배워야 한다 그런 뉴스나 다큐를 꽤나 많이 보고 살았던 시절이다.

거기에다 뭐 GDP라던가 GNP라던가 이해는 잘 안 되지만 하여튼 경제학적으로 크면 좋다고는 하는 그런 것들은 숫자가 항상 유럽이 더 크면서, ‘세계사’ 하면 유럽 역사 배우고 그러니 더더욱.

“게다가 요즘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제가 축구 경기 보러 가는 게 목적이라고 하셔서 차마 말릴 수 없었지만, 최소한 보고 나서는 사람들 어디 모여있는 곳에 오래 모여있지 말라고 했죠?”

그 말에, 나는 쓰게 웃었다.

“예, 테러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셨죠.”

올해, 아니 이젠 2017년이니까 작년에 유럽은 셀 수 없이 많은 테러를 겪었다고 했다. 뮌헨에서 총기 난사가 벌어지기도 하고, 기차에서 도끼로 관광객 여러 명을 찍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고···

그리고, 고작 한 달 전 크리스마스 때에는 베를린에서 트럭이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돌진해 버리는 테러가 벌어지는 둥.

그야말로 유럽은 지금 온갖 곳이 사건사고로 터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 벨기에도 작년 봄에 공항에서 폭탄 한 번 터졌다고 하셨지. 진짜, 개판이 따로 없네.’

솔직히. 이쯤이면 유럽 전역에서 안전한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다. 아니 각 나라 수도마다 테러가 터지고 지랄인데 뭐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데가 어디 있겠냐.

그래도- 나는 아직은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

이 유럽이란 곳이 아무리 엿 같아도. 우리 축구선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크고 넓은 무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무대에서 싸우기 위해서.

“뮌헨 경기는 잘 보셨습니까?”

“···.엄청났습니다. 제가 저런 사람들이랑 겨룰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떨리더라고요.”

여기까지 온 거니까.

“그리고, 혹시 여기 티켓은···?”

“구했습니다. 다행히 취소표가 있더라고요.”

“오, 감사합니다. 무리한 부탁이었을 텐데.”

“예, 예, 무리했죠.”

“······?”

잠깐, 좀 말이 이상-

“일정을 짜시려면 좀 넓게 잡으셔야지. 20일에 프라이부르크에서 뮌헨 경기 보고, 밤에 또 슈투트가르트로 돌아와선 비행기 타고 리에주까지 날아오시는 이런 미친 일정을 짜시면 어떡합니까. 최소한 유럽 축구 경기 티켓은 한 달 전에 미리 예매해놔야 티켓팅이 그나마 여유로운데 거기에다 뮌헨 경기라니, 거의 여덟 배는 더 웃돈을 주고 사야 했- ”

“···죄송합니다.”

···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할 말이 없습니다.

“하, 비아고고에서 간신히 매물이 나왔으니 다행이였죠. 자, 여기 오늘 리에주 경기입니다. 물론 이것도 따로 비용 청구될 거예요.”

“옙.”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리고, 이제 슬슬 팀을 어디로 가게 될지는 결정하셔야 합니다.”

에이전트님은 현실을 말씀하셨다.

“···그렇군요.”

그래, 이제 오늘까지 포함해서, 이적시장은 단 열흘밖에 안 남았으니까.

이제는 슬슬 정말로 정해야 했다.

나에게 제안이 온 팀들 중에서 어느 팀을 선택할 것인지.

“그럼, 경기 끝나고 연락 주세요. 데리러 오겠습니다.”

“예, 그럼 수고하세요.”

그리고- 그 답은, 여기에 있겠지.

***

Standard Liège

Club Brugge

***

오늘 이 경기에.

-*-*-*-

-삑! 삑! 삐이익-!

-Oui-!(만세에에!)

-Putain Ouais!(씨발 좋았어!)

***

<2016-17 Juplier Pro League 22 Round>

[première mi-temps 43]

Standard Liège 1 : 1 Club Brugge

[Buts]

Standard Liège : Kwon(42)

Club Brugge : Jelle(22)

***

“워··· 잘하네.”

지금 펼쳐지는 이 둘의 경기에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K리그보단 확실히 한 수 위야.’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처음 챌린지에서 뛰다가 K리그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점이 그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기 템포가, K리그 상위 스플릿 팀들보다도 빨라.’

내가 K리그 클래식 팀들이 K리그 챌린지 팀들하고 가장 다르다고 느꼈던 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몸싸움에서 약하다든가, 기술 같은 게 아니였다.

몸싸움?

솔직히 말해서, 몸싸움은 오히려 우리가 더 거칠었다. 여기에서 떨어지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프로로서 먹고살기 힘들 거라는 간절함 덕분에 오히려 우리는 악으로 깡으로 더 거칠게 굴었으니까.

기술?

이건 조금 차이가 있긴 했지만, 많이 차이나는 정도는 아니였다. 그것만으론 챌린지와 클래식 팀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상위 리그와 하위 리그의 차이점을 가르는 요소는. 템포였다. 정확히는 공격-수비, 수비-공격의 전환 속도.

내가 전남, 성남하고 경기 할 때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꼈던 게 그거였으니까.

그리고 지금. 저들은 템포적인 면에서 K리그 결승전보다 더 치열했다.

뭐, 물론.

‘···분데스리가에 비교하면, 솔직히 떨어지긴 해.’

당연했다. 내가 독일에서 본 경기는 프라이부르크와 뮌헨. 분데스리가 중위권 클럽과 세계 최고의 구단 중 하나가 격돌하는 경기였으니까.

그래서인지 당연히 딱 봐도 우리나라 K리그랑 엄청 차이났고, 진 팀인 프라이부르크도 전북보다 한 수는 위라는 게 딱 티가 났지만.

이 두 팀은, K리그랑 비교하는 정도는 가능했다.

물론 K리그 하위권 팀하고 싸우면 두 팀 모두 K리그 팀들을 개박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은 있었는데.

만일 리에주가 전북이나 서울하고 한 10번 싸운다고 하면, 그래도 한 4번? 정도는 이길 수 있을 법한 미묘한 우위 정도라고 해야 하나? 딱 반 수 위 정도였다.

‘그러니 창운이가 저렇게 바로 골 넣은 거겠지.’

K리그에서 하던 대로 해도, 아직은 먹히니까. 아마 하던 대로만 해도 한 시즌 정도는 잘 할 수 있을 거다. 분석당하는 두 번째 시즌부터는 모르겠지만.

그걸 생각하면···

‘내가 리에주의 계약서를 보고 망설이고 있었던 이유가. 저건가? 벨기에 리그의 수준?’

그렇다면 이해할 만 했다.

나는 유망주도 아니고, 기껏 유럽까지 와서 K리그에 비해 엄청 수준이 높진 않은 곳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찍는다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굳이?

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지금. 뮌헨의 그 경기보다. 오히려 이 경기가 더··· 더 마음에 들고, 더 뛰고 싶어진다.’

왜지?

왤까?

분명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분데스리가의 그 경기를 보고 더 피가 끓었어야 했고, 뛰고 싶어야 한다.

이 경기에 비해서, 훨씬,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경기니까.

그도 그럴 게, 프라이부르크 대 뮌헨 경기이지 않았나. 분데스리가 팀간의 경기이자, 한 쪽은 뮌헨이라는 세계 최강의 팀 경기였으니까.

그런데.

수준이 더 낮은 리그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 왜 이 광경을 보고 내가 오히려 더 피가 끓고 있고.

오히려 여기에서 뛰고 싶었던 마음이 부족하게 느껴졌던 내가, 이 경기를 보고 여기에서 더 뛰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들고 있는 거지?

‘모르겠다. 모르겠다고. 리에주와 프라이부르크 두 경기의 차이점이 도대체 뭐야.’

-réconforter(힘내라)-!

-décomposer (부숴버려)-!

‘아, 시끄럽···’

아.

아.

아!

알겠다.

알았다고.

내가 여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리그의 수준, 수준 따위가 아니였다.

어차피, 제안 온 리그들은 어느 리그든 간에 K리그보단 확실하게 수준이 높은 리그들이었고.

수준이 최고가 아니라서 불만족스러워 했던 거라면, 벨기에라는 리그를 전혀 쳐다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오직 분데스리가에 가는 것만 생각했겠지.

그러니까.

내가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던 것은-

“에이전트님.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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