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6/167)

어디로 가야 하오 (3)

2017년 1월 10일.

“연결 됐나요?”

“예, 잘 들립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짝.

어젯 밤. 전화를 걸었을 때,

-영어로는 긴 통화는 힘들 테니, 지금은 짧게 끝내고 우리 쪽에서 통역사를 준비할 테니 스카이프로 통화하지.

이러더니, 진짜로 한국어 통역사를 준비해 저 쪽에서 인터넷으로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아아, 흠흠, 잘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그래, 이렇게 얼굴 보며 스카이프로 하니 편하군.]

참 요즘 처음 알게 되는 거 많다. 이 스카이픈가 뭔가 하는 거 컴퓨터 사면 맨날 기본으로 깔려있어서 삭제하느라 귀찮았는데. 이게 국제전화에 자주 쓰이는 건 줄은 몰랐네.

‘외국인이랑 영상통화 무료에 음성통화하는 게 번역도 살짝이나마 나오다니.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뭐 물론 완벽하지 않으니 통역사를 둔 거지만.

[자, 그럼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인사하겠네. 벨기에 주필러 리그 스탕다르 리에주(Standard Liège)의 감독, 야닉 페레라(Yannick Ferrera) 네.]

“반갑습니다. 이준혁입니다.”

다시 봐도 느끼는 거지만, 나이 진짜 어리네. 한 30대쯤 되어보인다.

그렇게 내가 저 감독의 얼굴을 쳐다보던 중, 감독은 대뜸 나한테 질문을 던졌다.

[자네는 자네가 어느 정도 클럽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예?”

[말 그대로네, 이적시장도 꽤 지났으니 자네도 알 것 아닌가. 시장의 평가가 어떤지.]

“······”

글쎄, 벤피카를 말하기엔··· 거기는 서로 이용한 느낌에 더 가깝고.

오퍼가 오는 팀들을 살펴보자면.

‘루키 리그 중하위권 팀의 주전, 혹은 5대 리그 팀의 백업선수.’

그 정도 느낌이었다.

[최소한 4대 빅 리그의 빅 클럽이 자네를 영입하겠다고 달려들진 않았지?]

“···예. 맞습니다.”

[그래, 그리고 지금 자네의 나이는 27세지.]

그렇게 말하더니, 리에주의 감독은.

-짝짝짝.

갑자기 박수를 쳤다.

“뭡니까?”

[음, 일단 경의를 표하고 싶은 바이네.]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나는 아시아를 조금 알아, 여기는 선수 영입에 제한이 사실상 없는 만큼, 수많은 나라를 살펴보거든. 헌데 아시아권 선수들은 오퍼를 날려도 대부분 이 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네.]

[유럽의 문을 두드릴 만한 수준의 아시아권 선수라면, 그냥 그 나라에 남거나, 중국으로 가거나, 중동으로 가는 게 더 이득이라고 말하면서 말일세.]

뭐, 그거야 당연한 거다.

솔직히, 소올직히 나조차도 유럽 가는 게 금전적으로 이득이긴 한데, 그렇게 큰 이득은 아니다. 연봉은 조금 더 쎄긴 하지만 타향살이 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예외도 많은데요.”

[아, 물론 예외는 있지. 나도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아, 일본의 어린 아시아계 유망주들 몇몇이 자국 리그에서의 손길을 뿌리치고 여기에 오는 경우가 꽤 많으니까.]

그래, 그렇다니까.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이네. 아시아계 선수들은 보통 자네처럼 선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는 나이에 유럽에 도전하진 않아. 돈을 자국 리그에서 남는 것보다 못 버니까.]

“······”

이건 반박하기 힘드네.

[그럼에도 지금 이 유럽에 도전하는 이유는 뭔가? 단 하나뿐이겠지. 은퇴하기 전에, 최대한 높은 무대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그 마음가짐. 그 열정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네.]

-짝짝짝.

“···그래서, 본론은 뭐죠?”

[아, 말이 길어졌나? 미안하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네가 남은 선수 생활 동안 가장 높은 무대를 바라보고 싶다면 우리 팀이 최고일 거라고 말하는 걸세.]

하.

“챔피언스 리그를 나갈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지, 어제 자네의 에이전트에게 들었네, 지금까지 프랑스, 포르투갈, 독일, 러시아 네 리그에서 오퍼를 받았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어디 팀한테까지 오퍼를 받았는지는 말 안 하셨군.

[그들 중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지난 5년간 단 한 번이라도 따낸 팀이 있었나? 벤피카 빼고.]

‘···마르세유가 있긴 한데.’

거긴 그래도 2012/13에 한 번 나갔으니 아직 5년 넘진 않았다.

하지만.

[그리고 설령 오퍼가 왔다고 해도, 그 리그의 챔스에 진출하는 팀들 중 자네를 ‘정말로’ 원하는 구단은 있었나? 자네가 Plan A라고 말해주는 구단 말일세.]

“······”

이어지는 이 말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프랑크푸르트는 유럽 대항전과는 살짝 거리가 있는 팀이고.

마르세유는 아예 나 말고도 다른 풀백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자네가 Plan A일세. 물론 Plan B도 있긴 하지만. 자네가 우리의 최선이야.]

“······”

그 말에,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한 가지를 지적했다.

“그렇긴 한데, 당신들도 이번 시즌 엄청 좋은 성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리에주는, 벨기에에서 역대 우승 4위에 위치한 클럽이고. 07-08, 08-09 시즌 연속으로 우승을 하기도 한 만큼 약팀은 아니지만···

이번 시즌은 조금 힘이 달리는지, 승점차가 1위와 9점밖에 안 난다곤 해도 8위였다.

“게다가 벨기에는 챔스 티켓이 2장밖에 안 되고, 그 한장은···”

[맞네, 안더레흐트 게 될 확률이 높긴 하지.]

그래, 대부분의 루키 리그가 그렇듯이. 벨기에 주필러 리그에도 안더레흐트라는 절대 강자가 있다. 설기현 선수가 뛰었던 그 안더레흐트 말이다.

그리고 그 팀의 우승 횟수는? 당연히 1위고. 2위인 클뤼프 브뤼허와 2배 정도로 날 정도로 압도적이다.

“그래서 당신들이 제가 간다고 해서 벨기에 리그에서 챔스 한 장을 차지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감독이 씩 웃으며 인정했다.

[맞아, 우리는 안더레흐트처럼 항상 우승이 목표라고 말할 수 있는 클럽은 아니지. 그렇다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매번 따내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이 벨기에 리그의 특성상, ‘그’ 안더레흐트라고 하더라도 챔피언스 리그를 확신할 수 있는 팀은 아니야. 자네도 우리 리그의 구조를 알고 있을 텐데?]

“···...”

그래, 저 말이 틀리진 않다.

벨기에는, 리그의 절대강자 안더레흐트라고 할지라도 한 2번 챔스 티켓을 따면, 1번은 유로파로, 그러니까 3위 이하로 떨어진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벨기에 특유의 리그 진행 방식 덕분이었는데. 대부분의 축구 리그와 다르게 벨기에는 정규리그 30경기에다 10경기의 플레이오프 리그를 치르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나라 옛날 K리그나 프로야구처럼 플레이오프 제도가 있다.

다만, 우리나라 야구처럼 정규리그의 성적을 아주 무시하는 그런 건 아니고, 정규리그에서 얻은 30경기의 승점을 반토막낸 다음 그 승점을 가지고 플레이오프 리그를 치르게 된다.

그러니까. 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벨기에 프로리그는 학교 수련회나 운동회 같은 리그다. 초반에 좀 못하더라도, 막판 플레이오프에서 잘 하면 뒤집을 수도 있는 그런 리그.

[그러니, 이번 겨울 이적시장이 아주 중요하지. 구단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큰 이적예산을 보태주셨고. 우리는 충분히 역전해낼 자신이 있네.]

그 말과 함께, 감독은 씩 웃었다.

[자네와, 또 자네와 같은 국적을 가진 한 명이 더 온다면 말이야.]

“······!”

지금 그 소리는?

“다른 한국 선수를 영입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아마 막 곧 기사가 뜰 텐데, 확인해보게.]

그 말을 듣고는 나는 급히 네이버를 켜봤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져 있었다.

<권창운, 벨기에 스탕다르 리에주로 이적 확정··· 계약기간 3년 6개월, 이적료는 160만 유로. 추후 200만 유로까지 늘어날 수도 있어···>

“······”

이거 뭐야. 권창운 그 친구를 영입했다고?

[멍청한 구단 하나가 무상임대나 요청하고 있던 덕분에, 설득하기가 쉬웠지.]

“···네?”

아니 시발 그게 말이야 빙구야. 무상임대를 요청했다고?

“그게 사실입니까?”

[내가 왜 굳이 이런 거짓말을 하겠나. 자네도 그 나라 국가대표니 알려면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

와 시발. 뭐 그런 양아치 구단이 다 있냐.

[자, 이제 우리 팀의 가장 큰 문제인 오른쪽 윙어 문제가 사라졌고, 단 하나가 남아있군.]

“······”

[왼쪽 풀백. 왼쪽 풀백이 우리는 필요하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저 자가 말하는 왼쪽 풀백은··· 나겠지.

“······”

여기에서, 솔직히 바로 OK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 구단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구단보다도 나를 원한다는 게. 절절하게 느껴졌으니까.

감독이 직접 통화를 요청했고.

나와 장기간 통화를 하기 위해 통역사까지 요청했으며.

무엇보다- 축구 외적으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반감시켜줄 동료까지 있다.

해외로 이적할 때, 가장 큰 적은 축구 실력이 아니라 외로움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건 정말이지 컸다. 정말 컸다.

내 유럽 진출이 실패할 확률이 급격히 줄어든다.

하지만-

“······”

그와 동시에 망설여졌다.

나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여기가 내 마지막 클럽이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런데 분데스리가나 리그앙이라는 더 상위 리그를 두고 이 곳을 선택했을 때.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리고, 감독도 그런 나의 기색을 눈치챘는지 천천히 말을 계속 이어갔다.

[물론 당장 답을 달라는 건 아닐세, 자네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 클럽이 자네의 처음이자 마지막 유럽 도전이 될 테니 신중해질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마지막이니만큼 솔직히.. 여기보다야 독일이나 프랑스, 포르투갈 같은 곳들이 더 수준이 높으니 그 곳들에서 뛰고 싶을 테고 말이야.]

하지만-

[하지만, 단언컨데 그 무엇도 챔피언스 리그, 그 별들의 전쟁에 비할 수 없을 걸세.]

“······”

[그럼, 좋은 소식이 있길 기다리겠네.]

-툭.

-*-*-*-

2017년 1월 11일.

-리에주에서 정식으로 오퍼가 왔습니다. 이준혁 선수.

***

계약사항

계약 기간 : 2017.01.20~2020.06.30

계약금 : € 33,000

에이전시 계약금 € 25,000

급료 : 주급 € 4,800

부대 조항

출전 보너스 : € 1,800

미출전 보너스 : € 1,600

교체 보너스 : € 1,100

무실점 보너스 : € 3,000

올해의 팀 보너스 : € 55,000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시 : € 65,000

.

.

.

***

“···미쳤네.”

이 정도면, 협상이 필요없는 정말 좋은 오퍼다.

보장금액만 3억 2천원이 넘어가고, 출전 보너스와 미출전 보너스는 사실상 기본옵션이니까 사실상 내 연봉은?

4억을 넘긴다는 소리다. 유럽에 진출하고도 연봉이 훨씬 올라갔다.

‘게다가, 미출전 보너스와 출전 보너스가 거의 비슷하네.’

저 정도로 비슷하다는 건? 정말로 날 완벽하게 주전으로 쓰고 싶다는 의사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에 나간다면.

그 경기에서 한 번이라도 뛴다면.

나에게 있어서 정말 더 이상 여한이 없을 최고의 자리다.

‘···수락하는 게 맞아. 맞다고.’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자꾸만, 자꾸만 뭔가가 마음 속에서 걸렸다.

“······”

왤까. 왜 이러는 거지.

“에이전트님.”

-예, 말씀하시죠.

“유럽행 비행기, 가장 싸게 끊는 방법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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