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133/167)

그들의 평가 (3)

2016년 12월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그만, 이제 더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그래? 어떻게 생각하는데?]

[탈락, 이 선수를 우리가 영입할 필요는 없어.]

분데스리가의 스카우터, 마티오는 그렇게 단언했다.

[왜?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영입대상으로 둔 다닐루란 그 친구보다야, 저 친구가 낫지 않아?]

[그래, 낫기야 하겠지. 그 친구보단 실전감각이 훨씬 좋은 상태일거고.]

[그래, 그렇지? 그러니까 영입 시도는 한 번 해보자니까?]

그러나 그런 동료의 말에, 마티오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똑같이 단점투성이야. 그 선수보다 더 나을 것도 없어.]

둘 다 빠르고, 공격적인 풀백이지만. 키 때문에 공중볼 처리가 미숙하며, 압박을 심하게 당하면 지워져 버릴 선수다. 자유계약이면 몰라도 이적료를 들여가며 영입해줄 선수는 아니란 거다.

[솔직히 킴보다 하위 호환이야. 우리가 영입할 이유가 전혀 안 보여.]

[왜? 솔직히 아직 부족한 점이야 많아 보이지만, 포지션 변경 2년만에 저렇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래,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지금 저 선수는 나이가 27이지 않나.]

[···하아, 너도 그 점을 지적하는군]

[당연하지.]

10년 전까지만, 아니 5년 전까지만 해도 운동선수들의 전성기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여겨졌다. 신체적인 능력과 축구를 하면서 생겨난 경험이 가장 조화를 이루는 나이가 그 정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에 의해서 운동선수들의 ‘신체적 전성기’ 는 21세를 전후로 꺾인다는 것이 밝혀졌고, 체스와 같은 두뇌 스포츠의 경우에도 선수들이 31세를 전후로 꺾인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축구와 같이 피지컬과 지능 두 개가 모두 조화되어야만 하는 스포츠에서 선수의 정점은 언제 찾아올까?

만 26세였다.

그걸 생각하면- 이미, 저 선수는 최고 정점은 지났고, 전성기의 후반부에 접어들었다는 거다.

[그래도 가르치는 맛이 있을 것 같은 선수인데.]

[이 친구야. 이미 정점이 지난 선수를 가르쳐서 뭐하게? 게다가 저 친구는 독일어도 모를 게 뻔한데? 잘 코칭이 가능하겠어?]

[···아아, 하긴 그 점도 있군, 좋네. 좋아. 포기하지.]

그 말과 함께, 영입을 주장하던 스카우터도 가위표를 쫙쫙 그었다.

[그래, 그러니 우리가 온 원래 목적에나 집중하자고. 저 쪽이 레프트백을 찾을 거라고 했지?]

[그렇지. 저 팀의 왼쪽 풀백이 이제 슬슬 노쇠화되어서 젊은 풀백을 찾고 있는 것 같던데.]

[좋아, 우리 킴을 고국으로 되돌려 줄 절호의 기회군? 어디 한번 제시해보자고.]

***

Scouting-Bericht

-비록 지금 K리그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꽤나 파괴적인 모습이지만. 이 리그는 분데스리가 2보다 수준이 낮은 리그임. 반드시 더 발전해야만 백업으로라도 써먹을 구석이 있을 텐데. 나이를 감안하면 그것도 어려워 보인다. 올해 챔피언스 리그를 노리는 우리 팀이 이적료를 주고 영입할 가치는 없는 선수.

***

-아, 이상호, 좋은 찬스! 앞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상호! 이상호오오-!

-뻐엉!

-아, 어느새 달려온 이준혁 선수가 걷어 차 버립니다!

-아아아! 수원 입장에선, 너무나도 안타까운 실수입니다! 서울을 만나기만 하면 날라 다녔던 이상호 선수가, 오늘따라 영 좋은 활약을 못 보여주고 있어요!

[우-후!]

[워후- 대단한데? 저 친구. 방금 30m 스프린트, 몇 초였어?]

[잠깐만··· 아, 나왔다. 완벽하진 않지만, 3.65에서 3.75 사이로 나와.]

그 순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스카이박스에 모인 스카우트들은 전부 감탄사를 터뜨렸다.

[와우- 그거, 멋진데?]

측면 선수의 신체능력 중 가장 우선시되는 능력은 바로 스피드.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보는 건 30m 스프린트다.

공격수나 센터백의 경우엔 10m 스프린트를 더 중요하게 보지만, 미드필더에 가까운 풀백은 보다 먼 거리를 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30m 기록이 3.65~3.75라면?

[이야, 저 친구 최소한 우리 팀에서 뛸 때까지는 나이가 문제되는 일은 없겠구만? 잘 하면 우리 팀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될 수도 있겠어.]

[그래,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느림보가 될 일은 절대 없겠지.]

유럽에서도, 팀 내 손꼽힐 만한 최상급 스피드다.

[저 친구, 중국의 킴처럼 바이아웃이 없어서 영입 못 하는 건 아니겠지?]

[하,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여기는 일본처럼 퍼주다시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적당한 금액만 맞으면 선수를 보내주는 친구들이니 말이야.]

[그건 다행이군.]

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단체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Scouting-Bericht

-나이로 인한 스피드 저하가 가장 걱정이었는데, 스프린트 기록을 보면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부상경력도 아주 깨끗한 편이라고 하니 최소한 우리와 계약하게 될 3년 정도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공중볼 부문은, 많은 의문이 들지만. teaching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된다. 포지션 변경을 하고 2년만에 저 위치까지 올라올 수 있는 선수는 별로 없다.

-비록 우리가 풀백이 당장 급한 것은 아니고, 지켜보고 있는 풀백이 있긴 하지만. 이적료 60만 유로(7억 8천만원) 아래로 해결이 가능하다면, 이 선수는 꽤나 탐나는 선수임이 확실하다.

***

[흐음- 자네들이 말한 선수가 저 선수인가?]

[예, 그렇습니다.]

[아주 수고했어, 저 선수가 우리의 해결책이 되어 줄 수도 있어 보이는군.]

-짝!

[Oui!]

[하하, 박수를 칠 때는 아직 아니지. 저 선수의 연봉은 어떻게 되나?]

[아마, 부대조항을 빼고 순수 연봉만을 말한다면··· 20만 유로(2억 6천만원) 이하일 겁니다.]

[주급이 4천 유로도 안 된다 이거지? 좋아, 더욱 만족스러워.]

그 말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수석 스카우터는 바로 명령을 내렸다.

[당장 영입 절차를 시작하도록 하지.]

[예, 이적료는 얼마부터 제시하고, 얼마까지 허용됩니까?]

[일단 40만 유로(5억 2천만원)를 제시하고, 그 이후부터 서서히 올려봐. 100만 유로(13억원)까지는 허가한다.]

그 순간, 두 스카우터들은 꽤나 놀랐다. 선수들을 자유계약으로 데려오거나 임대로 땜방하기 일쑤인 주필러 리그에서 저 금액이라면, 정말로 진심으로 저 선수를 원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오우, 꽤나 큼지막하게 쓰는군요, 괜찮습니까?]

[그래,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 구단주님이 1000만 유로까지 이적자금을 수혈해주셨네. 자금은 충분하니. 바로 리포트 쓰고 영입 절차에 들어가도록 하지.]

그리고, 천만 유로라니, 이 소리는?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권창운이란 친구도-?]

[그 선수도 리포트를 제출하게, 중앙은 몰라도, 주발이 왼발인만큼 우측 윙어로 쓰기에 충분히 좋아보이니.]

[예, 알겠습니다.]

***

rapport de reconnaissance

-이 선수를 보기 전까지 우리는 Köln의 Filip Mladenovic만을 영입 후보로 생각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 선수로도 충분하다. 몸값도 비싸고 주급도 비싸게 줘야하는 그 친구에 비하면 이 선수가 훨씬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퀼른의 그 친구에 비해 수비적인 부분에서 아쉽긴 하겠지만, 주필러 리그에서 저런 크로스를 날려줄 수 있는 선수는 극히 드물다.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저 크로스 하나만으로도 영입할 가치는 있다.

-멀티 포지셔닝 능력이 있는 것도 꽤나 큰 장점이다. 주전으로 쓸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중앙 미드필더에서 보조적으로 공을 돌려주는 옵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양인이기에 우리나라에 올 경우 적응에 실패할 확률이 좀 높긴 하겠지만, 그것은 다른 선수를 동시에 영입함으로서 실패 확률을 많이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국적의 선수가 있다는 것은 적응에 확실히 큰 도움이 되므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비록 지켜본 기록이 길지는 않지만, 저 선수는 영입할 가치가 아주 충분하다.

***

-쾅.

[그러니까, 그 선수는 안 됩니다!]

[말 조심하게 케빈! 그는 우리 프랑스 최고의 레프트백이었던 선수야!]

[Putain Fait chier bordel!(씨발, 지랄마!) 이미 35살이 넘은 노땅을 영입해서 주전으로 쓰겠다고? 어젯밤 마피아한테서 총 맞았냐!]

[Putain De Merde!(씨발, 좆까!) 그럼 아시아에서 실적이 한 시즌 남짓인 선수를 데려오는 건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불알 터져야만 정신 차릴래?]

그렇게 슬슬 이게 숫제 회의인지 도떼기 시장인지 모를 소리가 난무하자, 수석 스카우터 페랏은 결국 오늘도 또 고함을 질렀다.

[ferme ta gueule!(닥쳐!) 둘 다 욕은 그만하고 가만히 좀 앉아!]

이 놈들은 도대체 어째서 타협이란 걸 할 줄 모른단 말인가.

[케빈, 자네는 아직도 확신한다는 건가?]

[예, 저는 무조건적으로 확신합니다. 이 친구는 물건이에요. 내 목을 걸어도 좋아요, 페랏.]

그 고집불통의 말에, 수석 스카우터는 골치가 아파져왔다.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분명히 영입할 가치가 없는 선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 선수를 영입하고, 주전으로 쓰자고요? 페랏, 그건 아니에요. 시장적인 측면에서 봐도, 검증된 실력을 봐도 저것보단 제 의견이 훨씬 나아요. 맥코트 구단주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비록 이번 시즌에는 백업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유벤투스에서 뛰던 선수를 버리고 아시아 선수를 영입한다고요? 이건 돈 낭비에요.]

반대 의견이 너무 격렬했다.

그도 그럴 게, 비록 노장이라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유로 2016에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멤버로 뽑히는 데 성공하며 아직 건재함을 알리고, 총 국가대표 81경기를 뛰는 데 성공한 전설적인 레프트백을 두고 저 선수를 영입하자고 하다니.

누가 봐도 미친 짓이었다.

‘···문제는 저 녀석이 저렇게까지 확신하는 선수치고 터지지 않은 놈이 없었다는 거지.’

리포트만 봐도, 확신에 차 있었다.

***

rapport de reconnaissance

-당장 영입해야 할 선수.

-축구에 대한 태도가 아주 classique(클래식)한 친구로서, 솔직히 그 어디에 가져다놔도 적응할 친구이자, 멘탈적으로 많이 부족한 선수가 넘쳐나는 우리 팀에 큰 도움이 될 선수다.

-실력? 개인적으론 솔직히 말해서 중앙 미드필더로 써도 우리 팀에서 천재라며 치켜세워주는 Maxime López, 그 녀석보단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그는 풀백이 최고의 포지션이니.

-무조건, 무조건 영입해야 한다. 만일 반대하는 스카우터가 있다면? 그 스카우터는 필요없는 두 눈깔을 빼버려야 할 것이다.

***

그리고 이 친구가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건, 3900만 유로(약 5백억원)라는 막대한 이적료를 안겨준 그 친구 이후로 처음이었다는 사실.

이 사실이 수석 스카우터의 마음을 움직였다.

[···좋아. 케빈, 내가 구단주님께 요청해보도록 하지, 이적료에 주급까지 총합 150만 유로 정도면 충분한가?]

[예, 아주 충분합니다.]

페랏은, 카산드라의 말을 무시하다가 멸망해버린 트로이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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