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평가 (2)
2016년 11월 27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김치우- 땅볼 크로스!]
[주세종, 주세조오옹!]
-삐이이이익-!
[골-! 주세종의 멋진 동점골입니다아-!]
-탁.
“이런 망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전트 에쎈의 사장이자 대표, 김동욱은 수원월드컵경기장의 VIP 데스크석에 앉아서 불평을 터트렸다.
“대표님, 왜 그러고 계십니까. 혹시 치킨이-?”
“아니, 치킨이야 언제나 그렇듯 같은 맛이지, 내가 불평하는 건 그거네.”
그럼 왜 불만을 터트리느냐는 사원의 표정에, 김 대표는 친히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되면 오늘 이준혁 그 친구가 뛸 기세가 오늘은 전혀 안 보인다는 거지. 이러면 유럽 놈들이 어떻게 평가할지를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랬다. 오늘 열리는 FA컵 결승 1차전에서, 서울의 최용주 감독은 이준혁을 벤치로 돌렸다.
***
<2016 FA컵 결승전 1차전>
[후반 5분]
수원 블루버드 : 1 : 1 FC 서울
[골]
수원 블루버드 : 조나탄(15)
FC 서울 : 주세종(49)
***
이준혁이 떠나게 되면 사실상 쓰리백을 이전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포 백을 사용하며 김치우가 제 몫을 해 줄 수 있는지를 실험해 보고자 한 거였다.
[최용주 감독이 이준혁 선수 대신 김치우 선수를 기용했을 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김치우 선수가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그 의문에 답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렇죠! 김치우 선수가 이준혁 선수에게 밀렸던 건, 쓰리백이 주 전술이었기 때문이니까요, 포 백에서는 김치우 선수도 충분히 제 몫을 해줄 수 있습니다!]
‘허, 2년 연속으로 눈앞에서 놓친 컵 대회 결승전에서 저런 배짱을 부릴 줄은 몰랐는데.’
정말이지 저 감독, 배짱이 두둑하다. 그리고 빠르다.
결승전이 끝나고 옥석을 가려도 될 텐데, 벌써 어떤 선수를 영입하고 남길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뭐, 그래도 너무 실망하진 마시죠, 대표님. 저희의 일차적인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이 경기에 관심을 가진 팀들이 어디어디인지 같은 거 말입니다.”
“그래, 저기 외국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대략적으로 나오긴 했지.”
물론 외국인 사람들이 경기장에 찾아왔다는 것만으로 스카우트라는 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여행하러 오다가 축구 경기 한다는 소리 듣고 한번 찾아온 관광객이라던가, 외국인 선수들 가족이 경기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으니.
하지만. 사람들이 단체로 스카이라운지라는 200만원이라는 거금을 써야만 관람할 수 있는 곳에서 본다면? 그건 100% 스카우트일 수밖에 없다.
“네가 흡연장에서 들은 말은 어떤 말이었냐?”
“일본어랑 네덜란드어, 인도식 영어였습니다. 마지막은 아마 카타르에서 온 거겠죠. 대표님 쪽은?”
“프랑스어랑 독일어였다.”
그걸 감안하면, 여기에 온 유럽 사람들은 여섯 국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나 몇몇 친구들은 아마 수원의 저 친구를 보러 온 거겠죠?”
“아마 그럴 테지.”
[권창운, 슛-! 아, 빗나갑니다!]
권창운, 94년생으로 2016년 올해 22세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2015, 2016 2년 연속으로 K리그 베스트 11에 중앙 미드필더 부문으로 뽑히며, 3년 만의 K리그에서 유럽으로 직행하는 선수가 될 것이 유력하다고 평가받는 저 선수는, 연봉 5억을 넘게 태워가며 데려갈 가치가 충분하니 말이다.
‘뭐, 아니면 저 친구를 보러 온 것일 수도 있겠고.’
[아, 윤일록! 윤일로옥-!]
윤일록.
2014 시즌까지는 계속해서 승승장구를 해오던 선수였지만. 작년부터 최용주 감독이 윙어를 쓰지 않는 쓰리백을 써오면서 급격하게 활약이 줄고 방출 위기라는 소리까지 나왔었지만.
최용주 감독이 종종 포 백을 쓰고, 쓰리백을 쓸 때에도 중앙보다는 조금 더 측면에 가까운 하프스페이스 공간을 노리도록 하면서 시즌 후반기에 부활의 날갯짓을 펼치고 있는 선수.
‘물론 선수의 가치는 비교가 안 되긴 하지.’
권창운에 비하면 나이가 두 살이나 많은데다, 이제야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펼친 선수인데 스카우트들이 비슷한 평가를 한다면 그 스카우트는 당장 자리가 위태로울 것이다.
하지만 둘 중 누가 ‘유럽 진출이 더 쉬울까’ 라는 시선으로 본다면? 오히려 윤일록 저 선수가 훨씬, 훨씬 더 난이도가 낮다는 게 김동욱 대표의 생각이었다.
‘권창운이 저 친구는 군대가 아직 해결 안 됐으니까.’
그랬다. 윤일록은 14년도 아시안 게임으로 금메달로 인해 병역특례를 받았지만, 권창운은 아직 병역의 의무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
때문에 18년도에 열리는 아시안 게임으로 면제받지 못하거나 한다면 기껏 유럽에서 잘 뛰고 있다고 해도 선수 생활이 정말 꼬일 가능성이 높았다. 슬슬 손흥빈도 그 점이 지적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뭐, 거기에다 FA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솔직히 유럽 이적 자체는 윤일록이 더 손쉬울 수밖에 없지.'
5년 전 권창운과 포지션이 같고, 비슷하게 어릴 적부터 두각을 나타낸 경남의 공격형 미드필더 윤빛하람을 같은 K리그 클럽인 성남이 20억에 선수까지 주면서 데려왔었다.
그렇다면, 지금 수원이 얼마를 받아야 만족하겠는가?
솔직히, 아무리 수원이 대승적 차원으로 유럽으로 저 친구를 보내준다고 해도 25억,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게 김동욱 에이전트의 생각이었다.
'솔직히 중동이나 중국에 팔면 그 배는 받아먹으니.'
수원이 아무리 투자를 줄였다곤 하지만 아직도 K리그에서 평균 연봉 2위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돈이 급한 구단도 아니고, 그 때의 윤빛하람보다 훨씬 더 긴 시간동안 증명을 거친 선수가 권창운이니 말이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김동욱 에이전트는 오히려 윤일록에게 더 많은 구단이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다.
‘유럽 놈들은, 빌어먹을 정도로 짠돌이니까 말이야.’
김동욱 에이전트가 직업상 전 세계의 수많은 클럽들을 돌아다니다 보면서 느낀 것은, 솔직히 K리그 구단들이야말로 돈 문제에 있어서 가장 깨끗한 구단들이라는 거였다.
물론 최근 승강제를 실시하겠다고 재정적으로 건전하지도 못한 K리그 챌린지 몇몇 팀들이 몇 개 중구난방으로 세워지고, 성남, 인천이 선수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못했다고 소송이 걸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독욱 에이전트의 눈으로 보기엔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한 거였다. 구단에 돈이 있는데 안 주는 게 아니라, 진짜로 돈이 없어서 안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근데 유럽은? 돈 있어도 선수들 주급을 미루고 또 미루는 일이 아주 허다하다.
예를 들어, FIFA에 임금 체불을 3개월 이상 미루면 선수가 계약 해지를 요청할 수 있게 만들어놓으니까. 항상 2개월 내지 3개월이 아주 살짝 안되게 임금을 밀려서 지급한다.
그리고 그런 제도가 미비한 에이전트 수수료는?
떼먹으려고 하는 경우도 많고, 지급되더라도 약속된 기일보다 6개월 넘겨 지급되는 경우가 ‘정상’이다. 제 때 지급되는 경우가 열 번에 한두 번이나 될까 할 정도로 ‘비정상’이고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K리그 팀들과 일하다 보면 정말 편하다. 이번에 고양이라는 예외가 생기긴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유럽에 비하면 돈이 있는데 안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까.
‘그러니까 K리그를 경험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K리그가 다른 리그에 비해 연봉이 조금 더 적어도 우리나라에 와서 계속 뛰려고 하는 거지.’
그 정도로, 유럽 대부분의 구단들은 양아치이자, 블랙기업이다.
괜히 수많은 에이전트들이 이적시에 일본이나 중동, 중국을 추천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일본은 한국과 비슷하게 돈 문제가 꽤 깔끔하고, 중동이나 중국은 유럽과 별 다를 바가 없지만 돈을 더 많이 주니까.
그럼에도- 저 블랙기업들이, 이 축구라는 산업계의 정점에 선 회사들이란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때문에 저 불구덩이에 뛰어들고 싶어하는 선수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선수들이 정녕 그것을 원한다면, 최선을 다하여 선수들이 ‘덜’ 노예계약을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에이전트의 도리.
“선우야, 이거 달고 스태프인 척 위장해서 저 쪽 스카이라운지로 가 봐라. 나도 반대편으로 가마.”
-*-*-*-
[워우, 저 선수, 꽤 괜찮은데? 저 푸른색 유니폼을 입은 22번 선수··· 권, 창, 운? 아주 괜찮은데? 우리 저 친구는 영입 못 하나?]
[돈 없어, 이 친구야. 저 선수는 영입하려면 180만 유로(23억 4천만원) 정도는 써야 할 거야. 주급도 꽤 쎌 테고.]
[뭐? 남미 선수도 아니고 아시아 선수가 뭐 그리 비싸?]
[그야 5년 전에 이미 국내 리그끼리의 이적에서 그 정도는 되는 이적료가 나왔으니까.]
그 말을 듣자, 스카우터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의 구단이 겨울 이적시장에서 이적료로 허가한 금액은 200만 유로(약 26억원) 정도였으니, 저 친구는 그림의 떡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아, 이런, 저 선수. 잘만 하면 리그앙에서도 시즌 10골을 넣을 친구 같은데···]
[그건 너무 갔어, 이 친구야. 이 나라의 선수들이 유럽의 문을 꽤나 두드렸지만, 막상 와서 한 해에 10골을 넘게 넣은 선수는 6명밖에 안 된단 말일세.]
[아냐, 내 눈은 확실해, 저 선수는 부상만 안 당하면 10골은 넣을 선수야.]
[그렇게 말해도 우리는 저 친구를 영입할 돈은 없어.]
[···하, 아쉽구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스카우터는 담배를 꼬나물며 불틀 붙였다.
[어? 너 담배값 부담되서 담배 끊는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이 나라의 담배 가격을 보곤 참을 수가 없더라고]
[얼마길래?]
[우리나라의 반값도 안 돼.]
[···오우, 아주 싼데?]
[자네도 피울래?]
[아니, 됐어. 난 안 피우는 거 알잖나.]
[그래, 알겠네.]
그 말을 끝으로, 한 스카우터는 담배를 뻑뻑 피우기 시작했지만. 옆에 있던 스카우터는 금연자임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축구장에서 축구 보면서 맛 좋은 담배를 빨아주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큰 재미중 하나라는 것은 ‘상식’ 아닌가.
그렇게 담배를 피우며 경기를 계속 관람하던 스카우터는. 한 가지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봤다.
[혹시··· 무상임대 후 선택영입 시도하면 안 되나?]
[···넌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냐?]
무상임대에 선택임대라면
-아, 우리 공짜로 니네 선수 1년간 쓸게, 영입은? 그건 1년 써보고 생각해볼게! 맘에 안 들면 안 산다?
이런다는 소린데, 이건 완전 양아치 아닌가.
[아니, 들어 봐. 처음엔 무상임대 후 선택영입으로 100만 유로(13억원) 제시하고. 그 다음엔 그냥 150만 유로를 주고 사겠다고 하는 거야. 그럼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너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야?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왜? 아시아 선수들이라면, 우리나라 리그가 1순위 아냐? 솔직히 우리보다 더 외국인 선수 규정이 널널한 곳이 어디 있다고?]
[독일 있잖냐.]
[하지만 그곳은 수준이 여기에 비해 너무 높잖아. 그 쪽 친구들이 여기 선수들을 신뢰할까?]
그렇게 말싸움을 하던 사이.
-벌컥.
“Excuse me, sir, but this place is non-smoking.”
(죄송합니다만, 여기는 금연입니다.)
스카이라운지 스태프’처럼’ 보이는 사람이 들어와, 담배를 꺼달라고 요청해왔자 그들은 황당해하며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당신, 축구 경기장이 왜 금연이야?>
<한국은 경기장에서 담배 금지입니다. 유럽과는 달라요.>
그 말에, 담배를 피우던 스카우터는 어이가 없어졌다. 이 나라는 뭐 이리 담배를 금지시키는 공간이 많단 말인가.
<그럼 어디에서 피우면 되지?>
<흡연 구역이 있습니다. 그 쪽으로 가시면 돼요.>
<젠장, 알겠네.>
그 말을 끝으로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꺼버린 스카우터는, 나가면서 프랑스어로 말했고.
[하여튼, 우리가 원래 영입하려고 한 이준혁이란 선수 말고도 그 선수도 꼭 영입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영입할 수 있는 방법 좀 찾아보자고, 엉?]
[알겠네, 알겠어.]
[넘겨짚지 말고! 우리 리에주에 아주 좋은 영입이 될 게 확실하니까 말이야!]
그 순간, 스태프로 위장한 김동욱 대표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독일, 벨기에, 프랑스는 확정이군··’
방금 전 다른 곳에서는, 하노버라는 말이 들렸으니 말이다.
'이 정도라면, 나쁘지 않아. 아직 시작 단계인데도 이 정도라니.'
자, 그럼 과연 다음 2차전에는 또 몇이나 더 붙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