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167)

그들의 평가 (1)

“우선 이적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명확하게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이준혁 선수가 바라는 팀은, 어떤 팀입니까?”

음···

“정확히 어떤 말씀이시죠?”

“아, 죄송합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이준혁 선수가 원하는 주급이라던가, 팀의 수준의 하한선을 말하는 겁니다.”

아, 그런 소리군.

“···글쎄요, 쉽게 판단하진 못하겠습니다.”

나는,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말 어디 리그로 가는 게 최선이다- 라고 평가하기가 애매한 선수다.

대부분의 해외진출자가 그러듯이 꾸준히 3년 이상 K리그에서 성장 및 증명을 해오다가 유럽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포지션 변경 이후로 지난 2년간 밑바닥에서부터 쭉쭉 우상향 그래프를 찍어오며 성장해온 선수니까.

어느 리그가 경쟁을 통해 나의 실력을 발전하게 만들 수 있는 적당한 리그인지.

어디가 나의 실력보다 훨씬 높은 리그인지가 나 스스로도 판단이 잘 안 선다.

그래서 고민이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이니만큼 최대한 빅 리그의 빅 클럽을 선택해도, 중소형 규모의, 소위 루키 리그에서 1년 반 정도를 뛰고 18-19 여름 이적시장 때 빅 리그에서 뛰는 것을 노려보는 것.

어느 쪽도 솔직히 나쁘지 않아 보이니까.

‘내가 두 살만 어렸더라도 망설임 없이 후자를 선택했을 테지만, 지금 나는 나이가 나이라는 것도 있고.’

이제 내 나이는 27세로 보통 한풀 꺾인다고 말하는 30세까지 단 3년 남았다. 즉, 이번 계약이 내가 전성기일 때 맺는 처음이자 마지막 계약일 가능성이 아주, 아주아주 높다.

그러니.

“일단, 리그 규정에 의하여 제가 출전이 힘든, 그러니까 정확히는 아시아 국적의 선수가 출전이 굉장히 힘든 리그들부터 제외하고 싶습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것부터 정해두자.

‘외국인 규정이 너무 빡빡한 리그일 경우엔, 그 자체가 무거운 족쇄가 되어 버리니까.’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프로야구에서나 프로축구에서 적당히 리그 평균보다 살짝 윗급의, 그러니까 한 리그 상위 40% 성적을 내는 외국인 선수가 있다. 이 선수는 다음 시즌에 어떻게 될까? 리그 평균보단 나으니까 재계약할까?

아니, 십중팔구는 무조건 잘린다. 이번 시즌은 어찌어찌 버틸지 몰라도 다음 시즌에는 가차 없이 갈아치워진다.

고작 3명만을 뽑을 수 있는 그 자리에 사람들은 ‘리그를 지배할만한’ 선수를 원하지, ‘리그 평균’의 선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시선에서 보면 변방 리그에서 올라온 선수, 아마 우리나라로 치면 베트남에서 축구하다가 K리그로 온 케이스에 가까울 거다.

당연히 처음부터 경쟁도 없이 주전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고, 특히나 시즌 중반에 영입되었으면 더더욱 힘들다.

‘그러니 리그 규정으로 인하여 내가 피해 보는 일이라도 최대한 줄여야지.’

···없애는 건, 불가능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그럼··· 스페인 팀들은 제외되겠군요.”

“예, 스페인 쪽은 제외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스페인의 축구리그 라리가. 그 리그는, 1군에 non-EU, 그러니까 비유럽인 선수 숫자가 3명으로 제한되니까 말이다.

-어 이상한데? 내가 알기론 남미나 아프리카 선수 엄청 뛰던데?

이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코토누 협정국가라고 해서 non- EU 취급 안하는 중남부 아프리카 국가 선수거나, 남미 선수는 스페인에서 한 5년 정도 거주하다 보니 스페인 시민권 주면서 EU 선수가 된 케이스다.

‘바르셀로나로 축구 감독 게임 돌리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지···’

그래서 보통 스페인 클럽들은 그 비유럽인 쿼터 3명을 언어가 같고, 나중에 데리고 있다 보면 스페인 국적을 따게 되는 남미 쪽 선수들로 꽉꽉 채운다. 괜히 아시아 국적이나 북미권 선수가 라리가에 전멸하다시피 한 게 아니다.

‘뭐, 축구적으로 정말 팀의 에이스가 될 자질이 있어 보이거나, 마케팅으로 수익을 왕창 뽑아먹을 수 있는 선수라면 모르겠지만’

나는 그 둘 다 아니니, 당연히 패스.

“뭐, 그리고 EPL은 당연히 제외인 건 아시죠?”

“예, 압니다.”

EPL은 외국인 선수 룰은 굉장히 자유롭지만 이제야 막 국대에 뽑히고 유럽리그 실적도 없으며 이적료도 싼 내가 워크퍼밋(취업 허가 비자)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이것도 당연히 패스.

“으음··· 그러면 이탈리아 세리에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거긴 룰이 어떻게 되나요?”

거긴 우리나라 선수가 많이 가본 적도 없을뿐더러, 내가 그 축구 게임을 딱 바르셀로나 10시즌만 하고 그만둔 탓에 나머지는 잘 모른단 말이지.

“한 해에 비유럽 선수 영입이 2명으로 제한된다는 거 말고는 딱히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제한이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 뭐야, 인종차별로 유명한 리그가 오히려 외국인 선수에 대한 규정이 엄청 널널하네?

“그럼 됐습니다. 오퍼 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온다면 진지하게 받는 쪽으로 해 주시죠.”

물론 세리에는 빅 리그 중에서도 인종차별이 무지막지하게 심하기로 유명한 리그긴 하지만···

‘나는 지금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지. 불러만 준다면 오케이다.’

게다가 한 해에 두 명만을 영입할 수 있는데 날 원한다는 건, 그 팀이 날 꽤 진지하게 원한다는 소리일 테니까 오퍼가 온다면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한다.

“불러만 준다면, 어디든 가신다는 생각이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러시아, 포르투갈 등등, 이런 리그들도 전부 포함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루키 리그들을 알아볼 차례군요.”

그 말과 함께, 에이전트는 조금 충격적인 말을 내뱉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일단은 루키 리그에선 에레디비시, 그러니까 네덜란드 쪽은 제외하겠습니다.”

“예?”

네덜란드를 제외하다니?

“네덜란드만큼 우리나라 선수에 대해 배척이 없는 나라도 없을 텐데요, 네덜란드를 제외할 필요가 있나요?”

네덜란드는,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있어 최고의 루키 리그다. 당장 80년대 시절에 이미 우리나라 허정무 선수가 진출했던 리그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의 02 멤버 중에서 좀 날렸다 싶은 선수들.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송종국, 김남일, 이천수 같은 선수들이 뛰기도 한. 나름 우리나라 선수들이 꽤나 선호하는 리그란 말이다.

무엇보다.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거긴 외국인 선수 규정도 없다고 알고 있는데. 왜 굳이 그곳을 제외하는 거죠?”

에레디비시는, 리그 규정상 외국인 선수의 보유에 제한이 없다! 내가 자국인 선수와 오로지 실력만으로 경쟁이 가능하다는 거다.

그런데 이런 리그를 제외하다니?

“다들 그렇게 알고 계시더군요. 예, 맞습니다. 규정상 네덜란드 리그는 외국인 선수의 출전에 제한이 없죠. 하지만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뭐죠?”

“바로, 비유럽 선수들에게는 높은 최저연봉을 걸어 놨다는 거죠.”

“······?”

잠깐. 최저연봉 제도는 보통 좋은 거··· 아닌가?

“최저연봉이라고 말을 했지만, 그 금액이 거의 40만 유로입니다. 네덜란드 리그는 비유럽 선수의 경우 연봉이 보장 연봉으로만 세전 40만 유로를 넘겨야 해요.”

그 말을 듣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보장 연봉 40만 유로라면, 한화로는 보장 연봉 5억이 넘어간다. 그 소리는?

“사실상, 우리나라에선 국가대표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뛰어오던 선수가 아닌 이상 공격수만 네덜란드에서 뛰는 게 가능하단 소리군요.”

“예, 그렇습니다.”

하아- 젠장. 그렇군, 하긴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하긴 하겠다. 그런 제한도 없고서야 네덜란드 리그가 자국 선수를 그렇게 중용할 리가 없지.

“그럼 이제 루키 리그의 하한선을 정할 때가 된 듯한데. 기준을 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순간, 고민했다.

내가 과연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가.

어느 정도까지,

“···그 전에 일단 이것부터 알고 싶습니다. K리그를 유럽 리그에 비교한다면 어느 정도인가요?”

“흠··· 이건 사견이 꽤 많이 들어간 의견 일 수밖에 없는데, 괜찮습니까?”

“괜찮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나름대로 저보다는 근거를 가지고 하신 말이니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러자, 에이전트는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좋습니다. 저희 내부에서는 K리그의 수준을 분데스리가 2부리그에서 리그앙 2부. 그 어딘가라고 보는 쪽입니다. K리그가 외국인 선수를 분데스리가 2에서 데려오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군요.”

후. 예상은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구나.

“그럼 유럽의 1부리그에 한정지어서 비교하면요?”

“1부리그와는 비교하기 힘듭니다.”

···? 2부랑은 잘만 비교하면서 왜? 공식적인 UEFA 리그 랭킹도 있으니 1부리그랑 비교하기 더 쉽지 않나?

“유럽 중소리그의 경우, 한두팀이 우승을 독식하는 리그가 많아서 경기력을 비교하기가 힘들거든요.”

“아.”

그렇군, 하긴 리그의 수준을 따질 때는, 중위권 팀의 경쟁력을 가지고 평가해야지 우승권 몇몇 팀만 보고 평가하기엔 어폐가 있긴 하다.

“그래도 정 비교하자면··· 역시 평균 연봉으로 비교하는 게 가장 깔끔하긴 하죠. 그리스나 덴마크 수준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동유럽 기준으로는 폴란드나 크로아티아와 비교하면 적당하고요.”

“···그렇군요.”

하긴 나랑 레프트백 베스트 11을 다투던 정훈 선수도 크로아티아 리그 출신이지. 거기에서 잘하던 선수가 K리그에서도 잘 한다는 소리니까 딱 적당하다.

‘그렇다면··· UEFA 리그 랭킹으로 따질 경우 대충 한 15~17위 남짓이라는 거겠지.’

이렇게 보면 K리그가 수준이 또 엄청 낮은 거는 아니네.

‘휴우- 좋아, 굳이 유럽까지 가서 더 밑에 리그에서 뛸 필요는 없겠지.’

결정했다.

“결정했습니다. 루키 리그의 경우, UEFA 랭킹 15위권에 들고 유로파컵 진출권을 노리는 팀들과 협상해 주시고. 빅 리그일 경우엔 어떤 팀이든 상관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2부 리그라고 해도, 분데스리가 2부리그일 경우엔 진지하게 오퍼를 받을 의향이 있습니다. 그 쪽도 가능성을 닫지 말아주세요.”

그러자, 지금까지 계속 침착하던 에이전트는 살짝 눈을 크게 떴다.

“···진심이신가요?”

“예. 진심입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조금 더 높은 레벨의 축구를 경험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비록 독일 2부라면 유럽 대항전은 나가지 못하더라도. 리그 컵 대회에서 1부리그 팀을 만날 수 있을 테니.

최고의 리그에 있는 선수들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정도는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주급은-”

“반으로 깎아도 됩니다.”

“···네? 진심이십니까?”

“물론입니다.”

뭐, 조금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유럽으로 가겠다고 한 이상, 돈을 챙긴다는 건 사실상 포기한 거니까.

“정확히는 1억 2천 선까지 허용-”

응?

“저기, 에이전트님?”

“······”

“유택영 씨?”

“아, 아아, 죄송합니다. 조금 놀라서 말이죠. 하하.”

그리고 에이전트는 그 말과 함께.

“이건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조금 놀랄 말을 내뱉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이준혁 선수, 지금 이준혁 선수는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갈 필요는 없어요. 마르세유에서 오퍼를 받았다는 사실을 잘 이용하면 약간이긴 하지만 주급을 올릴 가능성도 보이거든요.”

“···아, 그런가요?”

그 마르세유 스카우터, 그 명함 준 이후로 이제까지 한 번도 연락을 안 줘서 살짝 불안했는데. 이용이 가능하다고?

“예, 이준혁 선수에게 제안을 건넸다던 그 마르세유 스카우터가, 알아보니 꽤 이름이 알려진 스카우터더군요. 덕분에 상황이 그렇게까지 불리하진 않습니다.”

-탁.

“그러니, 너무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이준혁 선수, 이런 상황에서 에이전트가 선수의 주급을 깎이게 놔둔다는 건, 치욕에 가깝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뭔가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사무적으로 할 말만 하던 그 에이전트가 아닌 것 같은데.

“자, 그럼 기준도 세워졌으니, 저는 이제부터 바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이준혁 선수를 열심히 홍보하고 다녀보겠습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뭐 나쁜 건 아닌 것 같으니 됐지 뭐.

부디 잘 좀 부탁드립니다.

-*-*-*-

-하하, 정말로 그랬다고?

“예, 그렇습니다.”

-이야, 김 코치님이 말씀하셨던 그대로 정말로 요즘 보기 드문 축구선수구만, 저렇게 축구에만 진심인 친구는 이제 천연기념물 수준인데 말이지.

그렇다. 더 이상 축구 선수들은, 순수하지 않다. 단 한푼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영악하게 규정의 룰을 우회하는 법을 저지르는 데 서슴지 않고.

어릴 때부터 SNS로 자신의 팬덤을 만들고 관리하며 광고를 잡거나 연예인들과의 미팅을 잡기 위해 분주하게 뛴다.

유택영 에이전트는, 그게 싫었다.

담당하는 축구선수들이 축구를 더 잘 해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고. 잿밥에만 관심이 더 많으니. 이 일을 하면서 느꼈던 즐거움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 조금 의욕이 생기냐?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생겼네.

“···아직 모르겠다니까요.”

-그만두고 싶다고 찡찡대던 녀석이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부터가 의욕 생겼다는 거지.

“······”

할 말이 없어졌지만, 여기에서 입을 다무는 순간 패배를 뜻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유택영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보단, 이번 서울이랑 수원이랑 FA컵 결승전 있는 거 아시죠?”

-알지, 근데 그건 왜?

“거기에서 유럽 스카우터들이 뭐 하고 있는지나 좀 보러 가세요.”

-? 야, 나 사장이야! 직원이 사장한테 업무 명령이냐?

“아, 그래요? 그럼 가 주시죠.”

-···똑같잖아!

하아-

“형님, 형님이니까 말씀드리는 거죠. 형님이 아니고선 그 경기에서 일반인인 척하면서 그놈들 슬쩍슬쩍 뭔 말 하는지 연기 못 할 테니까요.”

슈퍼매치.

서울과 수원이라는 K리그를 대표하는 두 빅 클럽의 대결이니 분명히, 유럽의 스카우터들이 이준혁 그 친구를 보는 게 아니더라도 몰려올 수밖에 없다.

선수 평가에 대한 정보가 흘러넘치는 바다라는 거다.

그리고- 그런 바닷속에서 쏙쏙 원하는 정보를 뽑아먹기엔, 이미 몇 번이고 선수들을 유럽으로 이적시켰던 대한민국 최고의 에이전트가 딱이지 않겠는가.

“거기에서 그 친구가 유럽 친구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는지, 형님이 좀 봐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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