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29/167)

국가대표 (4)

내가 생각하기론, 축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세 가지다.

훈련. 전술. 관리

선수별로 적절한 훈련을 제시함으로서 선수들의 역량을 증가시키고. 확인함으로서. 알맞은 전술을 학습시킴으로서 경기를 착실히 준비한 다음.

승리했다면, 다음에도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패배했다면, 다음엔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해 .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상황에 적절하게 선수들을 자극하면서, 선수들이 향상심을 잃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그 외에도 상부에게서 예산 타내오는 거라던지, 선수들이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준다던지 등등도 있긴 하지만··· 그건 솔직히 감독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

하여튼 간에. 어쨌든 ‘정상적인 방식을 통해 뽑힌’ 감독이라면 보통 이 세가지 능력을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고양은 정석적인 방식으로 감독이 뽑히진 않았으니까 예외로 치고.

그런데 지금. 나는 내 상식이 부숴지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훈련? 솔직히 그냥 모든 선수들이 일괄적으로 평범한 훈련만 했다. 두리 선배님 아니었으면 나도 그냥 이번에 주구장창 기본 훈련만 해야 했을 거다.

그리고, 관리?

‘한국에는 소리아 같은 선수가 없어서 졌다.’

이런 말을 하는사람이 관리를 잘 하는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저 소리안가 뭐시깽인가 하는 선수가 카타르에서 센츄리 클럽(A매치 100회 이상을 뛴 선수)에 드는 만큼 나름의 저력은 있는 선수가 분명했지만.

분데스리가에서 3시즌 연속으로 10골을 넘게 집어넣은 선수가 있는데 그런 선수가 없어서 졌다고? 에라이 썅.

‘그래도 통역사가 번역을 개 떡같이 해서 생긴 오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Atención!”

“주목하시랍니다.”

지금 저 꼬라지를 보면, 오해가 아니라 진심이었던 것 같다.

저거, 좀 발음이 뭔가, 뭔가 옛날에 독일인 심판이 하던 말투랑 너무 다르고 오히려 그 프랑스 스카우터랑 비슷한 발음이라서 두리 형한테 물어봤더니, 세상에. 스페인어란다.

통역 때문에 곤욕을 겪을 뻔 했다면, 굳이 저렇게 하고 있을까?

‘아니겠지, 시발. 그냥 선수들하고 의사소통 하고 싶지 않다는 표현이겠지’

저 인간이 한국어 잘 하는 건 바라지도 않았지만. 소통을 중시한다면 최소한 영어는 써야 했다.

아니, 그냥 독일어만 써도 나쁘지 않았을 거다.

당장 여기에 있는 국가대표 선수들 중, 상당수가 독일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선수니 통역같은 거 없이도 많은 선수들에게 자신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할 수 있고.

특히나, 이번에 새로 합류한 두리 선배님이 독일어를 웬만한 통역 뺨따구를 때릴 정도로. 아니 그냥 완벽한 현지인 수준의 독일어 구사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냥 독일어 쓰면 된다.

근데도 굳이 스페인어 고집한다. 이 이유가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하고 대화하기 싫다는 것밖에는 답이 안 나온다.

아, 그래, 그래도 전술이라도 좋다면 이해가 가능하다.

-바이에른 뮌헨! 트레블! 트레블입니다!

-위대한 팀!

“quiero jugar este juego.”

“감독님은, 보시는 바와 같이 바이에른 뮌헨과도 같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아, 그래, 그래요? 그래, 뮌헨 좋지. 엉, 좋아.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니까.

자, 그래서 이제 어떻게 뮌헨처럼 하길 원하는 건데.

“Entonces, en el juego de hoy···”

“그러니까, 오늘 경기에서 공격적인 부분은 점유율을 통해 큰 폭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풀어나가야 할 것이고, 수비에서는 아시안컵의 견고한 수비가 다시 나오길 기대하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럼, 비디오 미팅은 이것으로 종료입니다.”

이게 끝이였다.

‘하아- 이건 아니지. 세부적인 전술 설명을 하나도 안 했잖아.’

축구에서 물론 저런 거시적인, 그러니까 큰 그림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건 축구에 좀 관심 있는 기자들이나 어린아이들도 할 수 있는 거고.

팀을 맡은 감독이라면 세부 전술이 필수적으로 나와야만 한다.

아주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자면, 상대 공격수가 공격왔을 때 1차 전담마크는 누구인지, 2차 마크는 누구인지. 그리고 그 친구가 포지션을 살짝 이탈하면 아예 개인 마크처럼 따라붙을지, 아니면 그냥 공간만 마크하는 식으로 바꿀지.

그리고 공격이 볼을 잡을 때 선수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침투할지, 약속된 움직임 같은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냥 영상 하나 틀어놓고 저거 보고 저렇게 따라해라. 라고 하는게 말이나 되는 건가? 우리가 무슨 11명 다 크루이프냐? 한 번 영상 쭉 보고 전술적 움직임 전부 다 이해하게?

“그럼 이제 선수분들은 돌아가셔서-”

아니, 이건 아니다. 좀 뭐라고 해야겠어.

“저기-”

그렇게 순간적으로 참지 못하고 뭔가 포문을 열려고 했지만.

“음, 이준혁 선수? 무슨 일이시죠?”

“···파주에 처음이라서 그런데, 경기 시작 전에 집합시간이 바뀌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아, 그건 기존과 변동이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예.”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럼, 모두 푹 주무시고 내일 경기 잘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비록 성장했다고는 해도.

국가대표에서는 신입사원에 불과했으니까.

‘···하, 망할.’

국가대표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데는, 단 사흘이면 충분했다.

‘···내일,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

2016년 11월 11일.

‘이기긴 하겠네.’

[고오오오올-! 이정현, 이정현 선수의 멋진 골입니다!]

[아주 완벽했습니다! 전반 24분만에, 다득점으로 앞서나가는 대한민국! 아주 완벽합니다!]

솔직히, 내가 보기에 우리들의 경기력이 좋은 건 아니었다.

일단 저 캐나다 선수들이 우리들에게 압박을 전혀 하질 않았다.

[아, 이준혁 선수, 또 하프라인을 넘어서면서 오버래핑입니다!]

[이야- 이 선수, 원래 드리블 잘 안 보여주는 선순데, 아주 놀랍습니다! 이런 면모도 있었군요?]

[말씀드리는 순간, 에이드 선수 달라붙습니다!]

‘하프라인 넘었는데, 이제야 압박하러 가냐?’

솔직히, 현대 축구에서 가장 중시하는 게 뭔가. 압박이다. 압박.

조금 상스럽게 표현하자면, 상대방이 편안하게 볼 가지고 있는 꼴을 최대한 덜 보게 하는 것이 현대 축구의 알파요 오메가란 거다.

상대가 편하게 공을 찰 수 있다면, 실수가 줄어들고. 상대방이 실수가 줄어든다는 소리는 골 넣을 확률이 올라간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그 압박은 할 수만 있다면 위쪽에서 하는 게 맞다. 상대방의 ‘실수’ 는 상대편 골대 근처에서 나타나야, 골 넣기가 쉬워지니까.

그런데, 상대편 진형까지 다 온 여기에서야 압박온다는 소리는 뭐겠냐.

‘저 선수들이, 그럴 체력이 안 된다는 거겠지.’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공격할 때마다.

[이준혁 선수, 크로스-!]

[이정현, 잡아냈습니다!]

[가나요? 가나요? 멀티골 가나요? 이정현, 슛-!]

[아, 골키퍼가 막아냅니다! 하지만 좋은 시도였어요! 유효 슈팅이었습니다!]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버리는 걸 보면, 정말···

‘진-짜 못한다. 진짜 못해.’

···뭐, 약할 거라고는 예상했다. 캐나다는 축구에 있어서는 약팀이니까.

어느 정도냐면, 캐나다의 피파 랭킹 최고 기록이 96년의 40위다. 지금은 110위고, 지금 우리나라가 위기다 위기다 하는데도 44위라는 것을 생각하면?

애초에, 캐나다는 우리가 박살내야 하는 존재라는 거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주전 선수를 다 빼버렸으니.’

그랬다.

캐나다는 이번 경기 명단 19명 중에서, 8명이 24세 이하의 선수고 7명이 A매치 경험 4경기 이하였다. 이게 뭔 말일까? 월드컵 최종 예선도 통과하지 못한 이상. 그냥 팀 점검을 하겠다- 에 가까울 거다.

‘그나마 적 팀 명단에서 에이스라고 하던 사일 라린인가 뭔가 하는 선수도 안 나온 거 봐선. 완전 연습이네.’

반면, 우리는 흥빈이가 안 나온다는 걸 제외하면 거의 총력전이고 말이다.

선수의 클래스들이. 차이가 난다.

그러니.

패스가 한 발짝 늦어도.

드리블을 질질 끌어도

수비 진형이 엉망이어도.

이길 수 있었다.

아니, 이기는 걸 넘어서.

[이준혁 선수, 이정현 선수가 떨어뜨린 공을- 어? 어? 골-! 골입니다! 골이에요!]

골까지 넣었다.

“우와아아-! 형님, 축하드립니다! 데뷔전에 골이죠?”

“···어, 그래.”

“아까 크로스도 그렇고, 진짜 상무에 있을 때보다 형 엄청 좋아졌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 이준혁 선수!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풀백인데도 데뷔전 골! 데뷔전 골입니다! 31명만이 가지고 있었던 데뷔전 데뷔골을 넣은 국가대표에 당당히 이름을 써넣습니다!]

-쟤 뭐임? 재 처음 보는데 잘하네?

-독일에서 뛰는 선수 K리그 선수로 채웠다길래 불안했는데, 안-심.

[아, 그리고 지금 들려온 소식인데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준혁 선수.]

[뭐죠? 뭔가요?]

[바로, 최고령 데뷔전 데뷔골입니다!]

-?

-??

-뭔 소리야 저건 또.

[아, 지금 말씀하시는 게, 저 31, 아니 이제는 32명이 된 저 선수들 중에서 이준혁 선수가 최고로 나이가 많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기존의 기록은 왕선재 선수가 1984년 10월 13일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파키스탄을 상대로 득점한 25세 211일의 기록이지만. 오늘 이준혁 선수가 득점함으로서, 26세 364일로 경신···?]

그리고 넘어가려던 해설진은, 잠시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니 364일이 무슨 뜻이겠는가.

-?????

-저 선수 내일 생일임?

-와 ㅆㅂㅋㅋㅋㅋ 타이밍 절묘하넼ㅋㅋ 하루만 일찍 태어나짘ㅋㅋ

[아, 364일이라는 건, 내일이 이준혁 선수의 생일이라는 건가요?]

[예, 정말이지 겹경사가 따로 없네요! 난생 첫 국가대표에, 데뷔골에, 생일까지! 행운이 연속으로 찾아오고 있습니다! 저 선수!]

***

<2016.11.11일 A매치>

[경기 종료]

대한민국 4 : 0 캐나다

[골]

대한민국 : 김보겸(9), 이정현(24), 이준혁(33), 이제성(45)

캐나다 : (없음)

***

-찰칵, 찰칵.

“이준혁 선수! 첫 데뷔에서 바로 골을 넣으셨는데,기분이 어떠십니까!”

“이준혁 선수! 최고령 데뷔전 데뷔골을 1년 넘게 경신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준혁 선수!”

“이준혁 선수!”

와아 어지럽다. 어지러워.

데뷔골 넣었다고 기자들이 아주 징하게 달라붙는구나.

“자자, 이준혁 선수는 감독님하고 대화를 나누어야 하니, 이만 물러나 주세요.”

“잠시만요! 하나만-!”

“안 됩니다!”

그렇게 소란을 제치고 감독이 부르는 자리에 갔더니.

[훌륭하네, 역시 내 안목은 틀리지 않았군.]

“라고 하십니다. 감독님이.”

그 말에,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나 불러준 건 신태영 코치님인 거 알고 있을 텐데도 저딴 소리가 나와?’

정치인 화법이냐?

[오늘 우리의 경기는 완벽했어, 나는 자네를 앞으로 주전 풀백으로 쓸 거야. 앓던 이가 빠진 것만 같군. 앞으로 잘 부탁하네. 다음 경기도 자넨 선발이야.]

“라고 하시네요.”

···뭐, 그래도 감독이 저래 준다면야 나쁠 건 없긴 하고. 오히려 이득이긴 하지만···

“···그럼, 우즈베키스탄전 준비는 뭡니까?”

[그거? 그냥 자네가 크로스 올리고, 정현이 그 친구가 잘 떨어뜨리면 되지, 뭔 문제인가?]

“라고 하십니다.”

“······”

근데 암만 봐도 이건 아니었다.

저딴 사람 밑에 있어봤자, 내 성장에 도움이 안 될 게 뻔해 보였고.

[잘 몰랐으니 실수한 거겠지만, 앞으론 주의하게, 난 전술에 선수가 간섭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아.]

“라고 하십니다.”

“······”

나는 선수고. 저 인간은 감독이다.

선수가 감독에게 경기에 대해서만큼은.

축구에 대해서만큼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통로도 막아버리다니.

‘확실해졌네. 하하.’

저 인간은. 감독해선 안 될 인간이다.

그러니.

“글쎄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승리가 과연 축하할 일인가요? 오늘 저희가 이기긴 했지만, 내용은 형편없었는데 말이죠.”

들이받는다.

그래 시발.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거 쟀냐. 청년 FC 때도 그렇고, 대학교에서 선배놈들 들이받을 때도, 내가 이런 거 재면서 들이받았냐?

그냥. 아닌 건 아닌 거라고 생각하고 저질렀지.

“······! 저기, 이거 번역해도 되나요?”

“예, 통역관님, 그대로 통역해주세요. 그리고 더 할 말 있으니 이것도요.”

그래, 국대든 뭐든. 아닌 건 아닌 거다.

아니, 국대니까 더 아닌 건 아닌 거다.

“일단, 후반전 전술에 대해서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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