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3)
“일단 이것부터 시작하자. 너의 가장 큰 단점이 뭐라고 생각하냐?”
나의 가장 큰 단점?
그거야, 아주 쉽다.
“키죠.”
그래, 솔직히 내 가장 큰 단점이자. 절대로 고칠 수 없는 단점. 그리고 내가 선수생명이 그렇게까지 길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단점이 바로 키, 신장이다.
물론 갓- 메시라던지, 마라도나라던지 하는 예외가 있긴 하지만.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해서 키는 ‘다른 장점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문제지 ‘전혀 단점이 아니다’ 의 문제는 절대 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래, 어느 정도 맍는 말이지. 그럼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서 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냐? 이것도 하나만.”
하나···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저는 크로스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장점은, 뭐 스피드라던지 하는 것도 있긴 하다.
하지만 스피드는 이게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게 아니라서 유럽에 가서도 ‘준수한’ 수준까진 보장 되는 건 확실해도, 지금처럼 ‘엄청나게’ 빠른 스피드라기엔 조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고.
유럽에 가서도 당장 뛰어나다고 할 만한 건, 롱 패스. 크로스다. 측면에서 측면으로 날려보내도 꽤 괜찮은 정확도로 우리 팀에게 선사해줄 수 있는 이 크로스.
이런 건, 유럽에서도 할 수 있는 놈들이 흔치 않으니까.
“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뭐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야.”
“예?”
그럼 뭐지?
“정확히는, 그 두 개는 내가 훈련을 통해서 단점을 줄여주거나 아니면 내가 장점을 극대화시켜주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내가 네 키를 늘려주거나, 아니면 크로스를 더 잘 올려주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기도 하고. 오히려 크로스는 니가 더 잘 알 텐데.”
아. 그렇구만.
‘그럼 뭘 가르쳐 주시려나. 좁은 공간에서의 선택? 세트피스? 이왕이면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 지 같은 거를 가르쳐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려던 찰나. 두리 형님은 웬 종이를 하나 꺼내오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서울에서 자료 받아왔다. 너 버티컬 점프 63cm 찍혀있던데.”
“······?”
···잠깐, 설마?
“그래, 내가 너한테 가르쳐주고 싶은 건, 공중볼 경합이다.”
-*-*-*-
Vertical Jump. 수직 높이 뛰기이자 제자리 높이 뛰기.
그리고 사실상의 점프력 테스트.
그리고 63cm라는 버티컬 점프 능력은, 꽤나 높은 능력이긴 하다. 상무에서 웨이트 메이트였던 대상이한테 전역 전에 들은 바로는 우리나라 프로농구에서도 버티컬 점프 50 중반인 가드들이 수두룩하다고 했었으니까.
“이걸 보면, 네 공중볼 경합 능력은 충분히 올라갈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봐.”
그렇게 선배님이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제가 공중볼 경합에 약한 편인 건 동일하지 않나요?”
나는 아직도 조금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 점프 능력이 나쁜 게 아니라는 건 나도 알고 있고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체대 입시 때 무조건 측정하는 게 제자리 높이뛰긴데 그걸 안 재본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그런데도 내가 공중볼 경합보다는 세컨 볼을 노리는 쪽으로 가고, 사람들이 크게 나에게 공중볼을 따내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건 결국 공중볼의 요소에서 가장 절대적인 건 키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키 170cm에 점프 기록 90cm로 총합 260cm까지 커버가 가능한 선수 A.
키 190cm에 점프 기록 65cm로 총합 255cm까지 커버가 가능한 선수 B.
이 둘 중, 코칭스태프들은 어떤 선수를 더 선호할까?
정답은 세상은 넓으니 A를 원하는 극소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B선수다.
그 이유는 B가 훨씬 나이를 덜 탄다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데.
A라는 선수가 230cm의 높이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60cm를 뛰어올라야 하기에 저 볼을 건드리려면 꽤나 긴 체공시간을 거쳐야 하지만. B라는 선수는 40cm만 뛰어오르면 되기에 저 공을 훨씬 더 빠르게 건드릴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공중볼은 B가 훨씬 더 잘 따낸다.
즉, 공중볼은 닥치고 키 큰 게 1번이고, 점프력은 2번이다.
‘게다가 내 점프력이 엄청나게 좋은 편까지는 또 아니니까.’
그래, 내 점프력이 나쁜 건 아니다. 평균 이상이다. 하지만 프로에서 ‘평균 이상’ 이라는 건 특출나지는 않다는 소리다.
‘특출나다고 말하려면 솔직히 만점인 80은 아니어도, 70cm는 넘겨야지.’
그리고 그게 나의 ‘단점’ 인 키와 합쳐져서. 솔직히 말해서 난 공중볼은 버려 왔다. 난 공중에서 선수를 압도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아니지, 키가 작다고 해도 공중볼에 뛰어난 선수는 있었잖아? 호마리우라던가, 팀 케이힐이라던가. 최근엔 팔카오가 그렇게 큰 키는 아니어도 머리로 골 잘만 넣고 있고.”
···그건 그렇긴 하네, 호마리우는 메시보다도 작은 키로 헤딩 잘만 하고 다녔고, 팀 케이힐과 팔카오는 작은 키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180은 안 돼서 큰 키라고 부르긴 어려운 선수들이긴 하니.
“그리고 K리그로는··· 너 수원 팬이라고 들었는데, 맞아?”
“예, 맞습니다.”
“그래, 그럼 이상호 그 친구도 있잖아. 요즘은 측면으로 밀려나면서 좀 줄어들긴 했지만, 옛날에 아버지께서 감독하실 땐 키 작은데도 헤딩으로 골 꽤 넣고 다녔던 그 친구.”
그 말까지 들으니, 나는 항복했다. 이상호. 염주장님한테야 안 되지만, 그래도 나름 수원 블루버드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선수 중 하나.
그 선배가 173cm임에도 불구하고 헤딩으로 쏠쏠하게 골을 넣어주는 모습을 몇 번이나 현장에서 봐 왔기에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묘하게 마킹을 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가 않아서 그 선배는 유니폼 마킹을 안 했지만 말이지.’
왠지 그 선배를 마킹하면 훗날 유니폼을 불태우거나 다시는 입지 못할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럼, 제 공중 볼 능력을 향상시켜주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결국 키가 작다고 해서 공중볼에 약한 건 아니야, 물론 비례관계에 있다는 건 도저히 부정할 수 없지만, 네 가장 큰 장점과 합쳐지면 어느 정도는 충분히 커버 가능할 거라고 본다.”
“그게 뭔데요?”
그러자, 차두리 선배는 톡톡 머리를 두드리셨다.
“머리. 넌 머리가 좋아. 특히 판단이 남들보다 한 발짝씩 빠르더라. 나랑 FA컵에서 싸울 때도 그랬고, 그저께 전북하고 경기할 때도 그랬지.”
어··· FA컵이야 그냥 대충 임시방편으로 틀어막은 거였고. 전북하고 경기할 때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거지?
“특히나 전북하고 경기할 때, 네가 어시스트해준 첫 번째 득점은 네가 공격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빠르고 넓게 필드를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완벽했어.”
아, 골키퍼가 막을 거라고 믿고 바로 달리기 시작한 그 때 말씀하시는 거구나.
“그러니까 지금부터 너는 캐나다전까지 닥치고 공중볼을 받는 훈련 세션 위주로 진행한다.”
네? 결론이 왜 그렇게 나오십니까?
“네 판단력이 좋은데도 공중볼 경합할 때 경합이나 방해도 그리 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중 볼 경합을 한 경험 자체가 굉장히 부족해서인 게 가장 크다는 게 내 결론이거든.”
어··· 그렇다는 건.
“그냥 공중볼을 많이 보고 많이 연습하는 거, 그걸로 된다고요?”
“그래, 솔직히 다른 것들은 그 정도로 빠르게 판단하는 놈이 공중볼만 그렇게 판단이 안된다는 게 이상한 거야. 솔직히 그 머리면 최소한 위치 정도는 잡고 버티는 게 가능할 텐데.”
그것만으로도 된다··· 라. 하하. 내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바로 공중볼이었는데, 그냥 경험 하나면 오케이라고?
솔직히, 너무 형편 좋은 말이라서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손해 볼 건 하나도 없는 것도 사실이야.’
플레이 스타일을 바꿔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한번 연습 자체를 늘리는 거지 않은가.
“뭐, 물론 이걸 한다고 해서 네가 공격수한테서 공중볼을 엄청 잘 따내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너랑 마주치는 공격수가 공중볼을 못 따게 하는 데는 엄청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선수를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냐.
“예, 알겠습니다. 시작하죠.”
-*-*-*-
“Das gibt’s doch nicht!”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십니다.”
하.
“알아서 하라고 해라. 그럼.”
-꽝!
그 말과 함께 방문을 박차고 나가버린 신 코치는, 갑자기 살짝 울화가 치밀었다.
“휴- 아예 지휘권을 아시안컵 때처럼 나한테 주는 것도 아니고, 지 멋대로 하려고 하는구먼. 하.”
그랬다.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 슈틸리케는 아시안컵 준우승이라는 업적이 있기에 지난 10월 이란전 전까진 그래도 지켜보자는 여론이 많았지만.
실상은 그 아시안컵도 신태영의 업적이었다. 하도 거지같은 비디오 미팅과 전술 때문에 더 이상 참지 못한 선수들이 항명했고, 그 결과 자신이 수석코치로서 실질적으로 팀을 이끌어나면서 만든 결과였다.
“젠장, 내가 올림픽 때문에 한 번 빠지고 나니 이렇게까지 팀이 망가져 있었을 줄이야.”
리우 올림픽 때문에 잠시 대표팀에 신경을 못 쓰던 사이에, 국가대표는 굉장히 많이 망가져 있었다.
물론, 축구에서 전술만 잘 짠다면 명장인 건 아니다. 전술을 잘 짜지 못하더라도 팀의 선수들을 휘어잡을 카리스마와 인덕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독으로서의 1인분은 할 수 있다.
막말로 저번 15/16시즌의 첼시만 봐도 안다. 무리뉴라는 현대 축구에서 전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이 있을 때 첼시는 강등권이었지만, 현대 축구의 흐름에서 밀려났다고 평가받는 히딩크 감독이 오자 오히려 어느 정도 성적이 복구되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저 감독은 그것도 아니었다.
“입이라도 털지 말 것이지, 쯧, 흥빈이를 소리아 같은 놈이랑 비교하냐.”
바로 지난 10월, 이란전에서 우리는 소리아 같은 공격수가 없다고 불평을 터트리며 간접적으로 손흥빈을 돌려까지 않았던가.
그건, 솔직히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상대방 선수가 메시여도 그냥 그 선수를 칭찬해야지, 그런 선수가 없어서 졌다는 말은 그냥 맡은 팀에 대한 화풀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까.
“어휴- 진짜, 빨리 협회에서 저 노인네 짤라버렸으면 좋겠구만.”
“그런 말은 속으로만 하세요···코치님.”
“야, 두리야, 너 같으면 불평 안 하게 생겼냐. 너 불러들인 것도 그냥 경력이 없으니까 발언권이 약하다는 생각에 데려온 거 아니야.”
그 말에, 차두리는 살짝 쓴웃음을 지었지만.
“그래도, 온 보람이 있긴 해서, 나름 만족합니다.”
곧 꾸밈없는 미소를 지을 수가 있었다.
“아, 준혁이 그 친구? 요즘 달라붙어서 가르치고 있던데, 어때?”
“아주 좋네요. 축구를 대하는 태도도, 재능도, 칭찬밖에 못 하겠어요.”
“그래? 그럼 어느 정도까지 크려나? 너 정도까진 무리겠지?”
그리고 신 코치의 물음엔, 확언할 수 있었다.
“글쎄요, 저보다 훨씬 더 높이 올라갈 것 같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