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67)

국가대표 (2)

2016년 11월 08일

-2016 현태오일뱅크 K리그 대상, 베스트 일레븐, 골키퍼 부문, 축하드립니다. 전북현태 권, 태 순.

“축하합니다! 선배님!”

“축하드려요 형!”

그러나, 형님은 그런 거 관심없다는 듯이 누워서 멍한 표정으로 티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얌마, 시끄럽다. 좀 쉬자. 오후 훈련 전에 좀 쉬는 타이밍인데 호들갑 그만 떨어.”

“아니, 그래도 3년 연속 수상이잖아요, 좀 기뻐하라고 형!”

“반대로 생각해라, 3년 연속으로 수상이잖냐. 슬슬 별 생각이 없어진다고. 난 너희들이 같이 보자고 해서 온 거야.”

그리고 그런 선배님의 태도에, 나는 살짝 머리에 뭔가를 부딪힌 느낌을 받았다.

‘···K리그의 압도적인 원탑쯤 되면 다들 저러나?’

솔직히, 나는 내가 공격포인트에서 압도적이어서 수상이 유력하다곤 해도 못 받을까 봐 떨려 죽겠는데 말이지.

그렇지만 막상 수상 소감을 나타내는 시상식을 보니.

-순태 녀석이 국대에 뽑혀서 제가 대리수상하게 되었는데, 받게 되면 3년 연속 받았다는 사실에 너무 기쁘다고 전해달라고-

미리 장문의 글을 좔좔 대리수상 받아줄 골키퍼 코치님께 전달해 놓으셨는지 아주 달변이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수상 소감을 길게 부탁해 놓으셨어요?”

“그럼, 저기에서 아 이제 너무 많이 받아서 별 감흥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랴?”

어··· 하긴 그렇긴 하네?

“뭐,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진심이기도 해. 이번 시즌이 전북 마지막 시즌일 가능성도 있어서 말이지, 후배 보러 오는 거 아니었으면 오늘 저녁에나 왔을껄.”

“예?”

그 순간, 나도 놀랐고, 주변에 있던 다른 팀원들도 전부 놀랐다.

“어디로요?”

“일본 쪽에서 오퍼가 좀 오더라. 1억엔짜리로. 그래서 고민 중이야.”

“······”

그 순간, 나는 입을 떡 벌렸다. 1억엔이라면 11억이고. 세전이라고 해도 저 금액이면 K리그에선 솔직히 연봉 2, 3위를 다툴 수 있는데.

J리그는 보통 세후 연봉이다. 즉, 세금 떼기 전 금액으로 발표하는 K리그 기준으로 환산하면. 사실상 18억? 그 정도라고 봐야 한다.

‘미친··· 진짜 세상이 넓다. 넓어.’

하지만 벌어진 입을 다물기도 전에.

“오, 나쁘진 않네?”

“아, 형님은 중동에서 세금도 안 떼고 30억 넘게 받았으면서 뭔 소리 하시는 거예요. ”

또 다시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이 튀어나왔다.

“야, 그야 나는 센터백이니까 그랬지, 그리고 중동은 임금체불 은근 많아.”

“거짓말치지 말아요, 딴 데는 몰라도 형님이 뛰던 알 힐랄은 임금체불 없잖아요. 연수야. 너 얼마 받는다고 했지?”

“20억이요.”

“오오, 쎈데? 당연히 세후지?”

“당연하죠. 하하.”

10억, 20억, 30억.

전부, 내가 상상해볼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연봉들.

“그 연봉 가지고 뭐하려고?”

“글쎄요? 일단 올해 받은 연봉으로는 서울에 아파트 하나 더 사려고요.”

“오오, 쎈데? 연수야, 나도 하나 추천해줘라.”

“옙, 형님.”

그리고, 내가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그런 이야기.

그래서일까.

-2016 K리그 대상 수비수 후보, FC서울 이준혁, 전북 현태 박원재, 제주 유나이티드 정훈···

“어, 이제 우리 후배 나오는구나. 자, 미리 축하해주자.”

“형, 아직 쟤 확정 아니에요.”

“사실상 확정이지 임마, 경기 수가 좀 딸리긴 해도 서울 우승에 풀백 부문에선 공격포인트 1등이잖아.”

-2016 현태오일뱅크 K리그 대상,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 부문 수상자는! FC 서울의 이준혁 선수, FC 서울의 오스마르-

“어이, 축하한다! 우리 후배님!”

“축하한다. 짜샤. 대리수상은 누구냐?”

“···어, 요한 선배님한테 부탁드렸는데요.”

내가 바라던 상을 받았음에도.

-이티드의 요니치 선수, FC 서울의 고광민 선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상자에게는 트로피와 함께 상금 300만원이 주어집니다.

“오! 광민이가 받았네? 하긴 요한이는 올해 한 번 부상당하기도 했고 중미도 너무 많이 뛰어서 좀 그렇긴 했다.”

“하여튼 축하한다. 녀석아. 개인수상 하나 받았네. 국대도 오고, 이제 연봉 두둑이 받을 일만 남았구나. 상금으로 뭐 할 거야?”

뭔가 기분은 복잡했다.

“···아, 그냥 노트북이나 하나좋은 걸로 맞추려고요, 하하.”

뭔가. 뭔가 .

내가 정말로 바라던 상을 받았음에도.

“자, 자, 그럼 이제 다음 미드필더 부문 봐 보자. 우리 제성이가 받았는지도 봐야지!”

내가 그토록 바라던 국가대표에 왔음에도, 기분이 복잡했다.

-*-*-*-

사실, 뭐 일본, 중국이나 중동이 다른 곳에 비해 연봉 많이 준다는 걸 몰랐던 건 아니다. 당장 영건이는 40억 넘게 벌고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에 와서 저 선배님들이, 후배들이 하는 말을 듣자 조금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홍정오.

나와 나이가 같은, 아우크스부르크로 13/14시즌에 이적하면서 역대 두 번째로 유럽에 진출한 센터백으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센터백이 될 거라고 기대받고 있었던 선수.

이 친구는 첫 시즌과 두 번째 시즌까지는 명백히 백업에 불과한 선수였지만, 지난 15/16 시즌 드디어 리그 23경기를 소화하며 팀 내 2순위 센터백까지 올라오게 되었고. 덕분에 국내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우리나라도 드디어 유럽에서 잘 뛰고 있는 센터백 하나 나온다는 생각에 말이다.

하지만. 이번 여름. 이 친구는 중국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욕을 먹었다.

왜 국가대표가 중국으로 가냐고. 이제야 독일 분데스리가라는 명실상부한 빅리그에서 어렵게 주전을 먹었는데 도대체 왜 중국으로 가서 실력을 깎아먹냐고.

선수가 야망이 없다고, 자신의 이득만 생각한다고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 나도 솔직히 그 소식을 듣고 유럽에서 주전을 먹었는데 굳이? 라는 생각을 했고 말이다.

그렇지만 내막을 들어보니 그럴 만 했다- 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긴 했는데.

‘6억과 24억··· 하, 진짜 비교가 안 되네.’

게다가 내가 에이전트에게 들은 바로는 독일의 연봉 발표는 일반적으로 세전이고, 중국은 세후다. 독일은 세금 대충 절반쯤 떼간다고 들었으니 연봉 반토막나는 것까지 계산하면?

3억과 24억. 연봉이 8배나 차이난다. 이 정도면 솔직히 중국 가는 게, 비난받을 일까진 아니다. 인생이 뒤바뀌는 건데.

“에휴. 부럽긴 하네··· 24억이라···”

24억.

내가 지금부터 평생 유럽에서 돈을 모아도 저 금액보다 더 벌기는 불가능일 거다.

일단 유럽에 가면 연봉은 잘 해야 현상 유지고, 좀 깎일 각오도 해야 한다.

그럼 잘 뛰어서 다음 계약을 노린다면? 잘 풀리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벌 수 있겟지만. 나는 풀백이다. 돈 더럽게 못 받는 풀백.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리어 좋던 이영표 선수가 내가 알기로 알 힐랄로 백만 유로, 그 당시 기준으로 한 17억 받고 중동으로 간 걸 보면?

나는, 평생 저 금액은 못 번다.

‘에라이 씨. 요즘 잘 나가서 연봉도 많이 받고 자부심 좀 가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팩트리어트 미사일 저렇게 팍팍 넣어주네. 쳇.’

그리고 무엇보다.

조금. 아니 좀 많이-

하아-

“···실망이네.”

“왜?”

으왁!

“어, 어어, 누구-”

“나다 나. 뭐 그렇게 놀라?”

“어어어,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와아, 젠장, 차두리 선배님이시다.

“여기엔 무슨 일이냐? 한숨 소리도 그렇고. 너 담배 피워?”

“예? 그건 또 무슨 소리···세요?”

“사람이 잘 안 와서 몇몇 애들이 숨어서 피우는 명당자리였지. 코칭스태프분들이 가끔 여기에서 피우기도 했고.”

···어, 그렇구나. 하하. 젠장.

참외밭에서 신발끈 고쳐매는 짓 하고 있었네. 망할.

“근데 냄새는 안 나네? 지금 피우려고?”

“···저 안 핍니다. 전 크루이프가 아니라서요.”

“하긴, 넌 그 때도 그럴 놈처럼 보이진 않았지.”

그 말과 함께, 안심하는 순간.

“근데 그럼 실망이네- 는 뭐야?”

2연타가 들어왔다.

“···아닙니다. 그냥 해 본 말이었어요.”

“그건 내가 선수시절 때 종종 하던 말이랑 비슷한데? 참고로 내 ‘그냥’ 은 뭔가 불만은 있지만 입은 닫고 있겠다는 뜻이었다.”

“······”

왜 이리, 나는 내 마음을 숨기질 못하는 걸까.

축구할 때는 나름 잘 숨기는데.

“뭔 일인지 말해 봐라. 아직 나 A급 자격증도 없어서 지원 스태프밖에 안 되거든. 선수들이랑 코칭스태프 이어주는 역할이라도 해야지.”

“······”

원래대로라면, 숨기는 게 맞겠지만.

“그냥, 제가 생각했던 국가대표랑 너무 달라서요.”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그 누구보다 존경하던. 02 멤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 봤다.

“솔직히, 저는 쉬는 시간에 다들 전술 이야기라던가, 경기력에 대한 고민이라던가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근데 그런거 하나 없이 다들 연봉 이야기, 돈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실망이었어요.”

그래, 그게 너무 실망스러웠다.

“그게 왜 실망스러워? 프로라면 돈을 밝힐 수도 있는 거지.”

“아니, 저도 뭐 돈 중요한 거 모르는 사람은 아닙니다.”

돈?

돈. 그래 중요하지. 중요해. 프로는 결국 돈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로. 우리같이 10년 일해서 나머지 50년을 살아야 하는 운동선수들에게 돈은, 연봉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더군다나 나처럼 이제 슬슬 노장이라고 생각되는 나이까지 얼마 남지 않은 선수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치만, 여긴 국가대표잖아요.”

내가 바라던 국대가, 이런 모습이었던가?

연봉 이야기나 하면서 그냥 누가 더 많이 벌었는지 자랑하고 그러는.

인생 이야기나 떠들고 다니던 그런 모습이었나?

아니, 그건 아니다.

내가 꿈꾸던 국가대표는.

그리고 우리를 응원하는 팬분들이 바라는 국가대표란, 그런 자리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투지에 불타고 정말 목숨을 걸고 싸움으로서. 월드컵이라는 모두가 선망하고 주목하는 그 자리에 나라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리고- 진출했다면, 단 1승이라도 더 거두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향샹심과 투쟁심이 넘쳐나는 그런 곳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내 말에. 두리 선배님은 조금 웃더니.

“너,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구나?”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작년에 만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냥 괜찮은 풀백 정도였는데 벌써 여기까지 올라온 이유가 있네.”

“······”

“앞으로도 그런 생각, 계속해줘라. 너 같은 애가 많아질수록 국대는 강해질 테니까.”

그리고는, 그 말과 함께.

“너는 오후부터는 나랑 같이 훈련하자.”

“예? 그래도 돼요? 팀 전술에 맞춰서 훈련-”

“그럴 필요 없어. 슈틸리케 그 인간은 풀백 움직임에 대해 하나도 몰라.”

“······”

아니 그래도 감독인데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거야?

“그래서 날 부른 것도 있거든. 풀백 움직임 가르치라고.”

“······”

“어쩔래?”

어쩌긴 뭘 어째.

“당장 축구화 챙기겠습니다.”

대한민국 넘버 원이었던 라이트백에게 배울 기회다. 무조건 달라붙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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