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67)

국가대표 (1)

2016년 11월 07일.

으어, 으어.

-탁.

“자. 됐습니다.”

휴우- 씁, 잠들 뻔했다.

“휴우- 언제나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뭐. 특히 이준혁 선수는 허벅지 근육이 정말 좋으셔서 저도 좀 즐겁습니다.”

···저기 선생님, 그거 좀 위험한 소리 아닌가요?

그러나, 물리치료사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말했다는 듯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이준혁 선수는 휴가도 없이 내일부터 바로 훈련 들어가시잖습니까. 근육이 잘 풀려져 있어야죠.”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탁.

그렇게 내가 마사지를 마치고 나오자, 의외의 인물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줬다.

“어, 끝났냐?”

“요한이 형? 형 이렇게 돌아다녀도 괜찮아요?”

어제 우승 이후 부상당해서 살짝 다리 절룩거리면서 우승의 기쁨을 즐겨야 했던 이 형이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거였다.

“엉, 그냥 인대 늘어난 정도란다. 반깁스만 하고 넉넉잡아도 3주짜리야.”

“오, 그건 다행이네요.”

어제부로 K리그 클래식, 정규 리그는 끝났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남은 일정이 있었는데.

“그래, 이러면 최소한 FA컵 1차전은 몰라도 2차전은 제대로 출전할 수 있어.”

FA컵, 서울이 2년 연속 준우승에서 탈락해버린 그 대회의 결승전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서울의 가장 큰 라이벌 수원과 맞붙어서 가져올 수 있는 대회에서 전력으로 뛸 수 있다는 건, 저 형한텐 의미가 참 클 테니.

“하하, 그래서 그렇게 부상당하고도 훤히 웃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그 말에 요한이 형은 조금 씩 웃더니,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너만 할까?”

“하하.”

하긴 그렇구나.

“태휘 형이랑 잘 갔다와라, 나갔다가 부상 당해서 FA컵 못 나간다고 하면 너 나한테 죽는다.”

“옙.”

그래, 나는 내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모이는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

파주 NFC에 간다.

-*-*-*-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이 생긴 건, 사실 그렇게 오래되지 않다.

당장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읽었던 박지성 선수의 자서전만 봐도,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했던 이야기가 나오는 등. 90년대까지만 해도 아직 축구 국가대표팀은 그냥 평범하게 남들이 훈련하는 곳에서 합숙하며 지냈다.

하지만, 02 월드컵을 준비하면서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같은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축구 국가대표팀 전용 훈련장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중 88년도에 설립된 프랑스의 클레르퐁텐(Clairefontaine) 을 본따서 만든 그 훈련장이, 파주 NFC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의 모든 축구 국가대표는, 여기에 모인다는 거다.

그리고 그 소리는 외국에 있어서 인터뷰할 기회가 별로 없는 좋은 선수들은?

-찰칵, 찰칵

-손흥빈 선수! 카타르전에서 발목을 다쳤다는 게 사실이십니까?

-발목 부상당했는데도 여기에 있는 이유는 다음 경기에 출전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발목이 낫는다면 9월처럼 다시 정상복귀하실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손흥빈 선수!

-손흥빈 선수!

미친 플래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거다.

‘와우. 엄청나네.’

하긴, 그럴 만하지. 저번 시즌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결국 아시아 선수 최초로 프리미어리그 이 달의 선수를 받은 저 선수야말로.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의 명실상부한 에이스이자. 주목받는 선수 아닌가.

“야, 뭐 그렇게 뻔히 보고 있냐?”

“아, 태휘 형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왔다. 근데 뭘 보고 있길래 안 들어가고 있-”

그 말과 함께, 내 앞을 본 태휘 형님은 쓰게 웃었다.

“기자들 많아서 그래?”

“예.”

뭐 다행히도 이제는 기자문화가 아주 약간이나마 성숙해졌는지 아님 그딴 짓하면 이젠 출입금지 된다는 걸 아는 건지 길을 꽁꽁 막고 인터뷰에 응하지 않으면 ‘넌 못 지나간다!’ 식으로 서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저렇게 카메라가 많이 들이밀어지는 곳으로 내 발로 가는 건 왠지 좀 거북하다고 해야 하나. 익숙하지가 않아서.

“하긴 넌 저렇게 많은 기자들 보는 건 처음이지?”

“예··· 솔직히요.”

우승 때는 그래도 좀 카메라가 많긴 했지만, 그거야 일단 기뻐서 날뛰는 게 더 우선이었고. 지금은 내 난생 가장 많은 카메라를 통과하는 게 왠지 그냥 뻘쭘하다.

“뭐, 그럼 같이 들어가자.”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게, 조용히 태휘 형님 뒤에서 묻혀서 캐리어를 끌고 들어가다 보니, 참 신기한 기분이었다.

-찰칵찰칵.

‘이렇게 들어가는 사진을 많이 찍어서 뭐에다 쓰는 거지?’

솔직히 말해서 이런 것까지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찍을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었다.

-이준혁 선수, 처음으로 국대에 뽑히셨는데,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이준혁 선수, 이번 시즌이 끝나고 바로 유럽에 가시려고 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디 정해진 팀은 있으십니까!

···그리고,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꽤나 많은 질문공세가 날아오고 있었다는 것도 좀 신기했다.

‘국가대표라는 게, 참 다르긴 다르구나. ’

물론 손흥빈 선수처럼 일거수일투족이 엄청나게 파헤쳐지는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내 이름도 모르던 사람들이 많던 것에 때에 비하면?

정말이지, 뽑히기 전까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관심이다.

-이준혁 선수!

-이준혁 선수!

뭐, 그렇다고 지금 저 기자들에게 하나하나 답변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저기에 붙들렸다가는 하이에나처럼 이것저것 달라붙을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이준혁 선수, 한 마디만, 한 마디만 해주십쇼!

무시하고, 지나가자.

“휴- 참 끈질기다. 저 기자님들, 자, 짐 풀고 바로 집합장소로 가자. 너 첫 소집이니 얘들이랑 통성명은 해야할 거 아니냐.”

“예.”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저께까진 적이었지만 앞으로 최소 일주일간은 그 누구보다도 끈끈한 한 팀이 되어야 할 선배들과 후배들이니.

‘뭣보다 나는 국가대표가 완전히 처음이니까. 더더욱 중요하지.’

보통 국가대표라고 하면, 꾸준히 연령대 대표팀에 뽑혀오면서 나이대가 비슷한 선수들끼리는 아는 편이지만. 나는 국가대표가 아예 처음이라서 그런지 처음 보는 얼굴들이 넘쳐났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처음 뵙겠습니다. 장연수라고 합니다.”

“그래, 안녕.”

“안녕하세요, 형. 일본에서 뛸 때 영건이 형한테 가끔 이야기 들었습니다. 한국영입니다.”

“그래, 둘 다 반갑다. 잘 부탁한다.”

어색하더라도,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넘쳐났기에 대부분이 반말을 까도 되는 선수들이었다는 거였다.

총 25명의 국가대표 선수 중, 7명만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으니 말이다.

‘새삼 그러고 보니, 내가 참 늦깍이 국가대표긴 하구나.’

30살 넘어서 들어온, 최고령 데뷔 랭킹에 뽑힐 정도로 늦게 뽑힌 건 아니지만. 그래도 보통 20대 초중반에 데뷔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생각하면 좀 늦은 편이라는 게 팍 느껴졌달까.

물론.

“안녕하세요! 선배님! 이준혁입니다!”

“어, 그래, 안 반갑다.”

“······?”

“야, 야, 그런 말 하지 마라. 우리 준혁이 눈동자 흔들린다. 우리 우승했다고 텃세냐?”

“아니 형님, 형 같으면 그저께 졌는데 반가울 리가 있습니까. 지금은 솔직히 형님도 안 반가울 지경이라고요.”

이렇게 만만치 않은 선배님들도 있었다.

‘하긴, 나 같아도 그저께 우승 빼앗긴 상황이었으면 기분 좋았을 리가 없지.’

그 말에, 태휘 선배는 멋쩍은 듯이 웃었고, 나도 그냥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뭐, 그래도 믿는 구석은 있었는데.

“그래서, 꼬와? 철순아? 꼬우면 니가 선배 해 임마.”

“······”

일단 같은 팀에서 뽑힌 태휘 선배님이 81년생으로 국가대표에서 현재 가장 선배님이란 거였고.

“야야, 철순아, 화 풀어 임마. 국대 오랜만에 온 놈이 뭐 그렇게 성질 날카로워?”

“아, 태순 형님은 억울하지도 않아요? 한 골 차이로 우승 실팬데.”

“그거야 속 쓰리지만, 그래도 후배사랑 나라사랑인 법이다. 우리 학교 후배 탄압하지 말고 태휘 형이나 까.”

국가대표 나이 넘버 2이신.

“이야, 우리 전주대에서 이제 국가대표 몇 명이나 나오는 거냐. 하하. 축하한다. 이준혁!”

“감사합니다. 선배님!”

권태순 선배님께서 바로 우리 대학교 선배님이시니 말이다.

“이야- 영건이만 왔으면 우리 전주대 출신으로만 국가대표 4명을 채울 수 있었을 텐데, 진-짜 아쉽다. 지철아! 여기 와라! 니도 우리 학교 축구부 나온 건 아니지만, 우리 학교잖아! 너 준혁이 알지?”

“예예, 알죠. 오랜만이다. 이준혁.”

“예, 오랜만입니다. 지철 형님.”

역시 혈연 다음은 학연이다. 만세!

“하아- 그래, 뭐, 우리는 통성명 할 필요도 없지? 하도 많이 마주쳤으니까.”

“예. 철순 형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은 필요없고, 정 잘 부탁하고 싶으면 빨리 서울 나가서 딴 데로 가라. 그럼 내가 참 널 좋아할 수 있을 텐데.”

···글쎄요, 저도 그러곤 싶은데, 그건 제가 선택하기엔 쉽지 않아서 말이죠.

“어허, 어디서 감히 우리 전력을 약화시키려고 들어, 이 녀석아, 전북은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 욕심 그만 내.”

“예이 예이.”

“어쭈, 이게 까불어?”

“아아, 선배님, 탭! 탭!”

그렇게 나이빨과 학연의 힘으로 대충 처음 보는 사람들임에도 나름 알음알음 지인의 지인 느낌으로 인사를 바쁘게 하고 다니자. 어색함은 많이 사라져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형님. 처음 뵙겠습니다. 손흥빈입니다.”

“···아, 안녕.”

“잘 부탁드려요.”

물론, 후배임에도 실력 때문인지 눈이 부셔서 내가 얼어붙는 선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슬슬 느낄 수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이들과, 같이 훈련하고. 같이 생활하며.

경기를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떠들던 사이에.

“자, 자, 다들 주목! 오랜만이다. 애들아.”

드디어, 코칭스태프들이 들어왔고, 그 중엔 싸워 본 적이 있던 선수도 있었다.

“코치님, 감독님은 안 오셨나요?”

“감독님은 오늘 저녁에 도착하셔서 내가 나왔다. 그리고 이 자리엔 내가 소개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자, 새 전력분석관, 나와라!”

“오랜만이다. 애들아.”

“오랜만입니다! 두리 형님!”

차두리.

그가 전력분석관으로 대표팀에 다시 합류한 거였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처음 보는 친구도 있으니, 한국말 되는 내가 나오는 게 더 낫지, 자, 이미 서로 인사는 했겠지만. 이준혁. 앞으로 나와라.”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고.

앞으로 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 다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국가대표팀에 뽑힌. 이준혁입니다.”

이 한 마디를 뱉을 수 있는 위치에 서기까지, 정말 길었다.

정말. 길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그리고- 이 자리에 들어온 이상.

“자자, 그럼 시간이 얼마 없으니, 바로 훈련에 들어간다. 30분 줄 테니, 다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바로 운동장에 모여라. 알겠나?”

훈련에서도, 무엇이든 간에.

최선을 다하여.

“옙!”

무조건, 무조건 11명 안에 들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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