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67)

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4)

오프사이드 트랩.

프로팀이라면 필수적으로 익히고, 라인을 페널티박스보다 훨씬 위까지 끌어올리는 강팀이라면 더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호흡만 잘 맞으면 공격수들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들어버릴 수가 있는, 수비수들의 강력한 무기.

하지만.

‘그걸 바로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작년 봄, 내가 풀백으로 전환한 후 수비수 훈련 세션에 들어가고 난 이후에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게 바로 이 오프사이드 트랩 아니었던가.

그나마 내가 공격을 보고 뽑은 풀백이어서 오프사이드 트랩 능력을 엄청 까다롭게 보진 않았기에 개막전부터 명단에 들 수 있었던 거였지, 수비형 풀백이었다면···

‘그냥 반 년 정도는 썩었을 수도 있었겠지.’

뭐, 그래도 저 녀석은 아예 처음부터 전문 수비수였으니 오프사이드 트랩 자체는 나보다는 훨씬 익숙하겠지만. 글쎄.

시즌 중반에 영입되어서 바로 선수들간의 호흡이 중요한 오프사이드 트랩을. 4개월도 안 되는 시간 내에 능숙하게 쓸 수 있다?

뭐 가능할 수도 있다. 저기 있는 두 명의 센터백이 모조리 축구 지능이 아주 뛰어나거나 둘 중 한 명이 선수의 위치를 잡아주고 명령해주는 커맨드(command)형 수비수라면.

하지만. 지금 저 김민제 저 어린 친구와 짝을 이루고 있는 조성환.

저 선수는 전형적인 파이터(fighter). 아니 말이 좋아 파이터지, 그라운드의 미친개다. 요한 선배님이 선녀처럼 보일 정도의, UFC에서 재능을 꽃피우지 못해 참 안타깝게 여겨질만한 K리그 최고의 더티 플레이어.

평생을 축구 지능이 뛰어나 위치를 지정해주고 이동하는 선수라기보단, 자신의 신체를 최대한 이용하고 상대의 플레이를 위축되게 만드는 방식으로 이 프로에서 살아남은.

일대 일 마크에 많이 능력이 치중되어 있는 플레이어다.

다만.

-야!···려와! 라인 ···춰!

‘프로 짬밥을 먹을 만치 먹은 만큼 수비진 조율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하지.’

애초에 아무리 공부에 관심없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영어만 쓰는 사람들 주위에 떨어뜨려 놓으면 어떻게든 생활영어라도 배우긴 하니까 높으신 분들이 그렇게 돈을 쳐발라가며 자식들을 유학 보내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프로 짬밥을 먹을 만치 먹은 저 82년생, 06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준주전 이상으로 살아넘은 저 선수가 조율 능력이 아예 없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선수인 이상 선호하는 스타일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어.’

나조차도 솔직히 이젠 좌측 풀백이라서 패스할 사람을 찾기 위해선 한 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면 되는데. 아직 미드필더일 때의 습관이 남아 있어서 공 받기 전에 습관처럼 왼쪽까지 고개를 둘러보지 않던가. 그런 것처럼 사람의 습관이란 건 잘 안 바뀐다.

하물며- 비록 더티 플레이라는 완벽하게 떳떳하지는 못할 방식으로 프로 생활을 하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전북이라는 K리그 최고의 클럽에서 준주전까지 먹은 저 선수가.

과연 2006년에서부터 10년 가까이 이 프로에서 저런 방식으로 생존해온 자신의 근본적인 스타일을 쉽게 버리려고 들까? 한때 중동 리그가지 가면서 꽤나 넉넉히 벌어들인. 꽤나 성공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프로가?

글쎄. 간혹 가다가 그런 경우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아, 조성환 선수, 태클! 공을 빼앗습니다! 전북의 공격!]

-삐이익!

[아, 데얀! 얼굴을 움켜쥐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화면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조성환 선수가 데얀 선수의 볼을 빼앗고 달려나가는 과정에서 팔꿈치를 사용했네요.]

[파울이 선언됩니다. 카드는 주어지지 않는군요.]

저 변함없는 모습을 보면 최소한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물론 네놈들이 라인을 올려서 공격해온다는 가정하에 가장 효과가 좋은 짓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 생각해 보자.

깡패 J에게 항상 얻어터지던 S가, 갑자기 미쳤는지 각 잡고 덤벼들기 시작해서 의외로 팽팽하게 맞짱뜨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이 S라는 놈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는 기색을 보인다면 J라는 깡패는 어떻게 행동할까?

당연히 달려든다.

-저 녀석, 힘 빠졌구나.

-니놈이 그럼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무승부만 해도 되니까 작정하고 볼을 돌릴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

[전반 39분]

전북 : 서울

0 : 0

***

글쎄. 한 10분이 살짝 안 되는 시간동안 한 번쯤은 제대로 공격해보자- 하는 생각이 전혀 안 들리가 있을까? 너희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아, 서울, 조금 웅크리기 시작합니다! 전반전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안전하게 가겠다는 걸까요?]

항상 당하던 대로의 서울 진형 속에서?

라인, 올려 봐. 이 녀석들아.

-*-*-*-

[이제성, 다시 신형민 선수에게, 신형민 선수, 박원재 선수에게 다시 공을 넘깁니다.]

-삐이익!

[아, 추가시간 3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레오나르도 선수에게 패스하지만- 다시 김보겸 선수에게 공이 갑니다.]

그렇게 추가시간이 되었는데도 전북이 좀처럼 앞으로 패스를 찔러주지 못하고 U자로 패스를 돌리기만 하자, 사람들은 의아함을 느꼈다.

전북의 팬들은.

-아니 뭐 무승부만 해도 우승이니까 나쁜 건 아니지만, 왜 평소처럼 시원하게 골 넣는 게 아니라 공을 계속 돌리고 있지?

서울의 팬들은.

-아니 씨발 뭐하는거야 빨리 공격해! 무승부면 우승 못한다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그래서 캐스터 역시 해설자에게 질문을 던졌으나.

[음, 이거 신기하네요, 서울이 수비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왜 그런 걸까요?]

[글쎄요, 사실 이건 최용주 감독의 성향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최용주 감독은 전형적인 우파 감독이거든요.]

더 큰 의문에 처해 버렸다.

[우파 감독이라고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요즘 감수한 축구 서적에서 나오던 표현이어서 그런지 입에 달라붙어 버렸군요. 별 거 아닙니다. 그냥 실리주의적 감독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아뇨, 괜찮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죠.]

아무리 결승전이라고 해도 슬슬 지루하게 후방에서 볼을 돌리는 이 상황이 슬슬 고까웠던 캐스터에겐 마이크를 채울 가능성이 보이는 괜찮은 소재거리를 놓칠 생각 따윈 없었다.

[아, 그럼 캐스터님이 말씀해주시니···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캐스터의 표정을 눈치챈 해설자는, 간략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축구 전술 역사를 조금 파고드신 분이라면 아실지도 모를,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의 첫 우승 감독인 메노티 감독이 한 말이 있습니다.]

-축구에는 좌익 축구와 우익 축구가 있다.

[이 중 좌익 축구를 추구하는 감독은 과르디올라 감독이나 벵거 감독을 생각하고, 우익 축구는 시메오네 감독, 혹은 무리뉴 감독을 떠올리시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그 예시에, 캐스터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아, 좌익 축구는 소위 아름다운 축구를 좋아하는 감독들이고, 우익 축구는 어떻게든 승리하면 장땡이라고 말하는 감독들이군요?]

[예, 정확합니다.]

그리고 그 말은.

[아까 하신 말씀은 그럼, 최용주 감독이 승리주의자 감독이라고 하신 말씀이었군요?]

[예, 그렇습니다. 사실 최용주 감독은 2012년 이후부터 항상 그랬습니다.]

2012년에는 FC 서울의 팀 컬러에 큰 손을 내지 않으며 욕을 먹었지만. 결국 리그 우승.

2013년 로테이션 안 돌린다고 욕을 먹었지만 결국 AFC 챔피언스 리그 결승까지 진출하며 AFC 올해의 감독상 수상.

2014년에는 38경기에서 42골만을 집어넣는. 평균 1.1골의 안 좋은 의미로 미쳐버린 공격진을 가지고도 어떻게든 리그 3위.

그는,어찌 되었든 어떤 방식으로든 승리를 따내는 능력만큼은 정말이지 무서운 감독이었다.

[그런 최용주 감독이 아무 생각 없이 저럴 리는 없을 겁니다. 분명 노림수가 있긴 할 겁니다.]

[지금도 무지성으로 그냥 텐백 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전방의 두 공격수라던가, 주세종 선수는 수비보단 계속 전방에서 움직이면서 언제든 역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그런데도 그 전북이 쉽사리 공략하지 못하고 계속 U자로 볼을 돌려가며 공을 돌리기만 하고 있죠. 쉽사리 공략할 틈이 나오질 않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말은,

[서울은, 지금 한 방을 노리고 있는 겁니다. 저 고요한 전황을 깨부술 크나큰 망치 한 방을요. 그 망치가 누가 될 지가 궁금하군요.]

-*-*-*-

[김신욱- 볼을 받습니다!]

[전북 좋은 기회!]

-뻥.

오케이. 됐다.

저 자세로 저 각도로 득점은 안 나온다. 분명 골키퍼가 잡아줄 거야.

‘그러니까. 달린다.’

“오스형!”

[아, 유현 선수, 손으로 잡습니다!]

그 말만 짧게 외친 후, 나는 달렸다.

내 온 힘을 쥐어짜내서 달렸다.

[오스마르, 공을 잡습니다!]

내가 지금껏 봐 온 선수들 중에서, 가장 빌드-업적인 측면에서 완벽한. 외국인 선수이기에 소통의 부재가 일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FC 서울이라는 강팀에서 실력으로 주장이란 자리를 따낸.

저 센터백이 내가 저 형을 부르는 의미를 눈치 못 챌 리는.

[오스마르, 공을 잡습니다!]

[그리고 바로 앞으로 볼을 길게 차냅니다! 클리어링으로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걸까요?]

없으니까.

나는 달려가면서 누구에게 볼을 줄 지만 생각하면 되는 거다.

‘자, 전방에 있는 선수가 세종이, 데얀, 아드리아노.’

세종이는, 일단 최악의 선택은 아니겠지만 최고는 아니다. 김민제가 달라붙을 수 있는 위치야. 일단 보류.

그럼 데얀은? 데얀은 위치는 정말 잘 잡았다. 정말 잘 잡았는데··· 연계를 한 번은 더 해야 할 것 같은 위치다.

[어? 오스마르, 단순한 클리어링이 아니었습니다! 이준혁! 이준혁 선수가 어느새 저기까지 가 있었습니다!]

[아니, 저 선수 언제 저기까지 달려간 거죠? 분명 페널티박스 안에 있었는데!]

-퉁.

그건 치명적이다. 저 김민제란 녀석은, 아주 잠깐의 틈이라도 주면 달라붙을 스피드가 있는 놈이다.

물론 데얀도 아직 나이를 먹었음에도 초단기 스프린트만큼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저 김민제란 놈은, 스피드도 월등하다. 데얀을 담당하다가 내가 크로스를 날렸을 때 아드리아누를 바로 마킹하러 갈 정도의 스피드를 보면.

저 선수는, 완벽하다.

차원이 다르다.

-퉁

[이준혁, 볼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단 한 순간이라도 지체해선 안 된다.

그러니, 바로 찬다.

-뻥!

[이준혁! 다이렉트 크로스!]

자, 망설여라. 망설이라고.

단 1초라도, 아니 0.1초라도 망설여라.

[아드리아노! 달립니다!]

[오프사이드가 아닙니다! 아니에요!]

활동 반경이 겹치는 구역이지만, 오히려 조성환 쪽에 가까워서.

네가 커버하기엔 살짝 이상해 보이는 그 곳이니까!

[아, 조성환! 놓쳤습니다!]

됐다.

[아드리아노, 아드리아노-!]

-삑! 삑! 삐이익-!

[골! 골골골! 서울이 전반 마지막에, 골을 터뜨립니다!]

[최용주 감독의 망치는 이준혁 선수였습니다!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뒤쳐나가고 바로 다이렉트 크로스! 역습의 교과서였어요!]

-서울의 아~드리~아노↘ 서울의 아~드리~아노↗

“이야-아!”

[전주성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서울이 선제골을 가져갑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38Round>

[전반 종료]

전북 현태 0 : 1 FC 서울

[골]

FC 서울 : 아드리아노(45)

전북 현태 :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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