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3)
[아, 전북! 위기입니다! 위기에요!]
[아드리아누! 아드리아누-! 김민제 걷어냅니다!]
[아, 서울, 정말 완벽했던 찬스를 놓쳐 버립니다! 전북 팬분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군요!]
-우와아아아-!
[김민제 저 선수가, 정말 전북 팬들에겐 복덩이와 같은 존재군요!]
[예, 정말 전북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아니 솔직히 찾아볼 수 없던 역대급 유망주입니다!]
김민제. 원래 내셔널리그 경주 한수원에서 뛰다가.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전북이 이적료를 지불해가며 유이하게 영입한 선수.
처음엔 모든 사람들이 의심했지만,
부천과의 충격적인 FA컵 패배 이후 본격적으로 기용되어. 이제는 모두가 믿고 보는.
차원이 다른.
어쩌면 차기 국가대표급으로, 아니 그 이상으로 크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드는 수비수.
[저 친구가 전북에 그나마 존재하던 티끌만한 약점을 지워버렸습니다.]
[그렇죠. 솔직히 약점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지만, 그래도 전북이 그나-마 약점이라고 할 만한 점을 꼽는다면 수비가 다득점을 허용하는 경기가 꽤 있었습니다.]
그랬다. 전북은 올해 저 선수의 영입 이전에도 리그 최소실점을 두고 다툴 정도로 강력한 수비를 자랑했지만, 하도 라인을 올리고 공격 축구를 하다 보니 가끔씩은 다득점을 허용하며 우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데, 저 선수가 오고나서부터 그런 게 사라졌습니다. 김민제 저 선수,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저 키에 저 스피드에 저 몸이라니. 피지컬이 반칙 수준입니다. 정말.]
발 빠르고 몸 좋은 선수가 나타나면서 뒷공간을 노리는 적들이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히 전북 팬들은 더욱 신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지막 약점까지 지워낸 그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기에.
허나.
[아, 이번엔 데얀입니다. 데얀- 슛-!]
[권태순! 막아냅니다!]
서울의 공격이 생각보다 꽤 자주 보이자. 전북 팬들은 아주 약간 불안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대부분 올해 큰 차이로 이기던 팀이, 갑자기 팽팽하게 경기를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서로 생각보다 득점이 안 나오고, 오히려 가끔씩은 서울이 저렇게 날카로운 반격을 보여줍니다. 아주 팽팽하네요.]
그리고. 그 모습에 캐스터도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며.
[솔직히 조금 예상 외입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분들이 전북의 우세를 예측했는데, 지금 보여지는 모습은 그런 느낌이 전혀 안 나옵니다. 왜 이럴까요?]
질문을 던졌고, 해설자는 신중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음- 사실 라이트한 팬분들은 왜 이렇게 되는지 잘 모르실 것 같긴 합니다. 포메이션만 보면 전북은 항상 하던 대로 나왔습니다. 서울도 항상 하던 대로 나왔고요.]
그 말대로였다. 전북은 항상 하던 대로 4-3-3을.
그리고 서울도 항상 하던 대로 3-5-2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지금 보여지는 경기력이 이전 경기들과 확연하게 다른 이유는, 세부적인 전술 측면에서는 서울이 꽤나 다르게 가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어떤 쪽에서 달라졌다고 봐야 할까요?]
[음- 그걸 말씀드리기 위해선, 먼저 서울이 왜 그동안 전북에게 그렇게까지 박살났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서울의 축구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이건 쉬웠다.
[쓰리백이라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00년대의 축구에서 강팀들 중에서 쓰리백을 쓰는 팀은 사실 정말 드물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포 백에 비해 측면이 약하기 때문이었죠.]
그 말에 경기를 전주까지 보러 가지는 않고, 지상파 방송으로 응원을 하고 있던 서울의 팬들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올해 서울이 위협적인 공격을 당할 때, 항상 문제는 측면 뒷공간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준혁이란 친구를 좀 오버페이를 해가면서까지 시즌 중반에 데려온 것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실 쓰리백이 그 당시에 멸종위기에 처했던 건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중앙까지도 포 백에 비하여 우세한 점이 없었다는 거죠.]
그 말을 듣자, 캐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예? 그게 가능한가요?]
축구 전술에서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면에서 우월한 전술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11명이라는 똑같은 인원을 같은 필드 위에 배치하기에 어떤 점이 강점이라면 어떤 점은 약점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히 폐급이기만 한 전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점이 약점이라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적으로 어떤 점은 강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측면을 포기해놓고 중앙까지도 별로라니?
[예, 그렇습니다. 현대 축구에서 대부분의 강팀들이 투 톱이 아닌 원 톱을 사용했었기 때문이었죠.]
그랬다. 2013-14 시즌 AT 마드리드의 시메오네 감독, 그리고 2015-16시즌 레스터 시티의 라니에리 감독, 이 둘이 4-4-2를 다시 부활시키기 이전까지는 리그를 우승하거나 우승 경쟁을 다투었던 팀이라면.
거의 대부분이 원 톱.
중앙 최전방에 단 한 명의 스트라이커만을 쓰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리고 중앙에 단 한 명의 공격수만 존재한다면, 중앙에 수비수를 3명 두는 쓰리백 전술은 수비에 너무 과투자를 하게 되는 겁니다.]
두 명의 중앙 공격수를 막기 위하여 세 명의 수비수를 두는 것은 적절한 투자다.
공격수 두 명에 각각 한 명씩의 수비수를 붙여두고, 남아있는 수비수 한 명한테 추가적으로 그 둘 중 한 명이 공을 잡았을 때 달려들라고 하면. 대부분의 상황에서 2대 1이란 숫자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게 되니까.
하지만 한 명의 공격수를 막기 위하여 수비수가 3명이나 있는 상황은? 그 선수 한 명이 메시라면 모를까. 99.9% 너무 과한 투자다.
그리고, 여기에 축구에서 분배할 수 있는 인원은 11명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겹치면? 수비에 대한 과한 투자가 바로 다른 지역에서의 약점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래서 쓰리백은 딱 하나의 장점만 남게 되었었습니다. 수비가 강하다는 것 하나 뿐이죠.]
그리하여 쓰리백은, 일부 중위권 내지 약팀들의 전술이 되어 버렸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 서울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렇다기엔 너무 강력해 보입니다. 득점력도 전북에 비해 나쁜 거지 리그 3위였잖아요?]
[예, 그 점이 바로 변화한 쓰리백을 상징합니다. 바로 딱 마침 좋은 예시가 나올 것 같네요.]
그 순간. 오스마르는 볼을 끌고 앞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자, 보세요, 센터백이 저렇게까지 올라갑니다.]
[이렇게, 중앙 수비수들이 중앙 지역까지 올라가면서 미드필더 싸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비수가 중원 싸움에 가담하기 시작한 거죠.]
그랬다. 이게 최근의 쓰리백이 옛날식 쓰리백과 가장 다른 점이었다.
[저렇게 하면 이제 쓰리백은 명확한 강점이 생깁니다. 상대팀과의 중원 싸움을 숫자적으로 압도할 수가 있게 된다는 강점이 말이죠.]
이렇게 하면 중앙 지역에 배치된 선수들의 숫자가 4명이기에, 대부분의 4백 전술들이 중앙 지역에 미드필더를 3명을 두는 것에 대하여 적당한 숫자 우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콘테 감독이 이탈리아에서 새롭게 정의하고, 현재 첼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현대적인 쓰리백입니다.]
그러나, 결국 약점은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측면의 약점은···]
[예, 여전하죠. 이걸 커버하기 위해서 센터백이 측면으로도 빠지면서 윙백이 나갔을 때 빈 자리를 채우기도 하지만··· 지금 오스마르 선수는 그것까지 수행하기엔 발이 조금 느립니다.]
그러니 결론은 간단했다.
[결국, 이겁니다. 전북이 먼저 서울의 약한 측면을 뚫고 골을 집어넣느냐]
아니면-
[서울이 전북을 중원에서 깨부수고 박살내는 데 성공하느냐의 싸움으로 흘러갈 것 같습니다.]
-*-*-*-
하, 젠장.
-뻥!
[이준혁- 크로스-!]
이번엔 제발 좀 뚫려라! 제발!
[아! 김민제! 또 볼을 따냅니다!]
[이 친구, 정말 복덩이에요 복덩이!]
시발.
‘진짜 저 놈 미친놈이네.’
작년 경주 한수원하고 FA컵 싸움 했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어떻게 중앙에서 싸움을 이겨내도, 측면에서 파고든 이후에 크로스를 날려도 저렇게 다 따내냐, 다 커버하고. 진짜 미친놈이 따로 없다. 없어.’
하지만- 지금은 길게 욕할 시간따윈 없었다.
“Hey-! 오스마르! 내려가!”
“···Jun!”
뭐라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손짓 보니 너도 내려오라는 소리겠지? 그런데 이미 내려가고 있어!
[아! 전북! 바로 역습을 취합니다!]
[그렇죠! 저렇게 공격을 막아낸 다음엔 바로 역습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득점 방법이죠!]
지금 저 나쁜 연두색 아조씨들이 우리 측면 뒷공간을 유린하려고 하기 전에, 빨리 돌아가서 예쁘게 5백 대형을 만들어야 하니까!
[신형민이 이제성에게- 이제성- 잠시 멈춥니다!]
[아, 이런, 서울이 벌써 5백 진형을 만들었군요! 이거 너무 빠른데요?]
[이제성, 오른쪽으로 다시 짧게 패스합니다! 역습 실패 후 볼을 다시 돌리는 전북입니다!]
-와아아-!
[아, 공수전환이 정말 빠릅니다! 서울, 마지막의 마지막에, 완성된 3백이란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휴우, 됐다. 이걸로 또 가장 위험한 페이즈, 아니 상황은 넘겼네.’
다만 이렇게 되면, 문제가 있긴 한데. 우리가 ‘주도적’ 으로 볼을 되찾아올 수는 없다는 거다. 미드필더에서 볼을 전개할 때는 몰라도, 지금 이렇게 수비적인 상황일 때는 다시 3백으로 돌아오니까.
그리고 그러면.
[아, 전북이 볼을 뒤에서 돌리기 시작합니다!]
저 놈들이 저렇게 공을 뒤로 돌리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물론 평소라면 그게 문제될 게 크게 없다. 전북 원정에서 무승부면 좋은 기록이니까.
하지만.
[영리하네요, 굳이 이기려고 들 필요도 없으니 무승부만 하면 된다! 이런 거죠!]
지금은, 우승하기 위해서 저 놈들을 이겨야 하는 타이밍.
이렇게 저 놈들이 시간을 끌면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물론 아직 전반전이 끝나가는 상황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혀 좋은 흐름은 아니다.
시간은, 우리의 편이 아니다.
이 흐름을 깨기 위해서는 골, 골이 필요-
“이준혁!”
어, 어라.
“이준혁! 들리나!”
“예! 잘 들립니다!!”
제가 안 들릴 리가 없잖습니까. 감독님.
아무리 관중이 많다고 해도 제가 지금 있는 자리가 벤치랑 가장 가까울 수밖에 없는 자린데.
‘근데, 갑자기 감독님이 무슨 일이시래. 뭔 명령 내릴 거 있으신가?’
그 순간.
-버텨라! 버티고 버텨서 단 한 방을 노려라! 단 한 방을! 네 크로스면 가능하다!
주어가 빠진 말이었지만,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예! 감독님!”
만들어 진 지 4개월도 안 된 수비진이라면, 무조건 겪게 되는 일.
“오스형! 라인 내려! 라인 내리라고 말해! Line Down! Boss 명령!”
“Okay!”
4백이라면 무조건 연습하지만, 그 정도로 합 맞춰서는 무조건 실수가 나오게 되는 작전.
오프사이드 트랩.
우리는 저놈들의 엉성한 오프사이드를 노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