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67)

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2)

2016년 11월 05일.

[올려줬습니다, 헤딩-!]

[박스 바깥쪽에서 헤딩 경합, 걷어냅니다!]

-삑! 삑! 삐이익-!

[그리고 그대로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울렸습니다! 포항이 성남을 꺾고 자력으로 잔류에 성공합니다!]

“와, 시발.”

어이가 없네. 그럼 성남 11위야?

“전반기까지만 해도 아챔 경쟁을 하던 팀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티아고 빠진 게 너무 컸나?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강등당할 전력은 아니었는데.

“핸드폰으로 뭐 보냐?”

“아, 성남 경기 보고 있었습니다.”

“아 그래? 걔네 졌지?”

어라.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찍은 거지, 저번에 만났을 때도 다들 맛탱이가 가 있더라고. 그래서 솔직히 쟤네들이 포항 이길거란 생각이 하나도 안 들었다.”

그렇게 말한 선배님은, 나한테 옷을 하나 던져주셨다.

“어, 뭡니까 선배?”

“뭐긴 뭐야, 우승하면 입을 티셔츠지. 입어 보고 사이즈 안 맞으면 바꾸러 가.”

***

Champions

  16

FC Seoul

***

“······”

“응? 표정 뭐야. 너는 이런 거 미리 준비 해본 적 없었어?”

“···예.”

내가 우승해본 건 지금까지 딱 두 번이다. 대학교 때 우승, 그리고 작년 FA컵 우승.

그리고 두 번의 우승에서 미리 준비했던 우승 기념품? 티셔츠? 그런 건 없었다. 그런 걸 주도적으로 맡아서 하는 프런트 직원들이 없거나, 대여섯명 뿐인데 그런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일’ 같은 일을 미리미리 할 리가 있나.

그리고 무엇보다.

“···뭔가 이런 거 준비했다가 우승 못하면 개쪽이지 않아요?”

이런 건 우승한 다음에야 자랑스럽게 만들어서 한정판으로 팔고 뭐 XX의 자랑 누구누구! 이런 걸개도 걸고 그러는 거 아닌가?

“물론 개쪽이긴 하지. 솔직히 준우승하면 이거 다 쓰레기통에 버리든가 태워버리든가 할 껄.”

그렇죠, 그런데 왜-

“작년엔 너 때문에 버려야 했고.”

“······”

···음,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래도 준비하는 게 맞아. 우승한 그 순간, 그걸 해내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은데.”

···그런가, 난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우승컵 드는 그 순간만으로도 정말이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어버릴 정도로 기뻤었는데 말이지.

“그리고 이 정도면 솔직히 많이 준비한 것도 아니야.”

“이게 덜 준비한 거예요?”

내가 본 것만 해도 구단 티셔츠에 우승 걸개에, 잔뜩 준비했더구먼.

“그렇지, 4년 전에 리그 우승하던 때는 승점 격차가 꽤 나서 다들 우승을 반쯤 확신하고 있었고, 홈에서 우승 확정지어서 엄청 화려했거든.”

아, 그렇군. 원정이라서 버스에 넣어서 준비할 수 있는 물품까지만 준비한다 이거지?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얼마나 지금까지 유사 프로구단들에서 뛰어왔는지를 알게 되긴 한다. 상주 상무 때는 좀 특별한 일이라고 해봤자 그 어설픈 태양의 후예 패러디 영상뿐이었는데

여기는 항상 카메라가 있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있었고. 이런 것도 준비하고 있었으니.

‘그러니 팬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건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궁금했다.

“형님, 그럼 내일 몇 명이나 올까요?”

과연 우리의 적, 전북을 응원해주는 연두색 물결은 얼마나 많을지.

또, 그에 맞서 일요일 하루를 모두 갈아넣을 각오 하시고 버스나 기차를 타고 와서 우리를 응원해줄 검붉은 색깔은 얼마나 채워질지.

그게 참 궁금했다.

“글쎄, 그건 나도 잘 감이 안 온다.”

“그래요?”

“그래, 나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거든, 마지막 경기로 한 해 농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결정하게 되는 건.”

“······”

하긴, 이건 어찌 보면 첼시랑 맨유가 EPL 마지막 라운드에서 우승 걸고 한 판 붙는 느낌이잖아. 이런 경험을 누가 자주 해 보겠냐.

‘뭐, 사실상의 결승전이니까 전주긴 해도 2만은 오겠지?’

그리고 우리 팀 쪽은 얼마나 올까. 과연.

-*-*-*-

- 오오~ 알레~ (전북!) 오오~ 알레~ (현태!) 오오↗~ 알레알레 전북~FC 승~리의 깃발 아래 우~린 하나가 되어 바~람을 헤치면서 싸~워 나간다아~

와우.

‘어, 엄청나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온 건, 난생 진짜 처음 본다.

‘FA컵 결승 때도 2만 5천인가 오고 끝났는데. 지금 이건···’

딱 봐도 그 때보다 훨씬 많다. 3만? 그 정도는 훨씬 넘는다. 이 4만석이 넘는 전주 월드컵 경기장이 저기 원정팬 2층 구석탱이를 빼고는 아주 꽉 찼다.

- 영~원한 승리자의 당당한 모습으로 녹색전사여 함께 전진하자~

- 오늘의! 승리자! 전북FC다!!

그리고, 그 엄청난 함성에.

-···! ···!

-···! ···!

입장하면서도 우리 쪽의 응원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물론, 우리 쪽 숫자도 적은 편은 아니었다.

[아, 저기 남쪽문에 서울 팬들도 꽤 많이 왔습니다.]

[예, 원정석으로 배정된 좌석 1층을 거의 다 채웠네요.]

그리고 그 정도면, 우리를 응원하러 와주신 팬분들이 대략 2천 명은 넘는다는 소리였다. 아니, 어쩌면 3천 명이 될지도 모른다.

주말을 온전히 버려가며 찾아온 팬들이, 학교 한 3개 전교생보다 더 많은 수준이었다는 거다.

하지만.

[오늘 총 관객 수가 33,707명이라고 합니다. 올해 K리그 최다 관중입니다!]

[아, 마지막 라운드에 우승팀끼리 겨루는, 축구팬들 입장에서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보니 이렇게나 많이 왔군요!]

[그렇죠, 올해 관중 수 2위도 전북과 서울의 리그 개막전이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우승 후보끼리의 대결이야말로 최고의 흥행 카드입니다.]

3만 대 3천.

-오오~ 알레~ (전북!) 오오~ 알레~ (현태!) 오오~↗ 알레알레 전북~에~프씨~

-···! ···!

도저히 함성 소리에 있어서 상대가 되질 않았다.

‘하, 이렇게 많으니 3천 명 함성까지 다 묻혀버리는구나.’

사실 일반적일 경우 저 정도나 되는 원정팬 목소리가 아예 묻히는 일 따윈 벌어지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1만 명 관중에 5백 명이 찾아와도 엄청 잘만 들린다.

대한민국의 경기장들은 대부분이 월드컵경기장이라 경기장에 팬들이 1만 명씩 찾아와도 절반도 못 채우기에 하울링이 전부 다 차지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통은 저 소리가 묻히는 일 따윈 없어야 하는데.

-···!

-···!

이렇게 묻힐 수도 있구나.

“······”

그게, 나를 그 무엇보다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치, 잘못하다간 저 연두색 물결에 사로잡힐 것만 같아서.

그 순간.

-짝짝

우리 뒤에서 아주 작은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자, 자, 다들 얼굴이 굳었구나. 킥오프 전에 잠깐 다들 모여라.”

“예!”

감독님이었다.

“다들 얼굴이 굳었구나, 이놈들, 겁나는 거냐?”

“···아닙니다!”

“반응이 늦는데? 겁나는 거지? 다 안다 이놈들아.”

“······”

그렇게 우리들을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드신 감독님은.

“사실, 나도 전북이 두렵다.”

굉장히 가벼운 말투로 무거운 한 마디를 툭 던지셨고,

“···어, 감독님?”

그 말씀에 나를 포함해서 모든 선배님들이 눈을 크게 떴다.

두렵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다니. 그건 스포츠에서 금기사항 아닌가.

게다가 ‘그’ 최용주 감독님이 저런 말씀을 하시다니.

그 누구보다 정신력 부분을 강조하고 또 FC서울이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신 감독님이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 모두들 놀랐던 거였다.

“왜? 놀랐나?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솔직히 우리가 올해 전북을 상대로 단 한 경기도 따내지 못했는데 두렵지 않은 놈이 미친놈 아니냐.”

“······”

그 말에, 선배님들이 조금 부끄러운 얼굴이 되었고, 나도 눈치를 보다가 살짝 고개를 푹 숙였다.

올 시즌 전북을 상대로 우리는 5번을 겨뤄서, 1무 4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기록중이었으니까.

“사람이란 게 오묘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더 두려워하게 되고, 또 더 의식하게 된다. 그러니, 지금은 인정할 때다. 우리가 도전자라는 것을.”

“전북, 저 놈들이 어수선한 일에 휘말리면서 승점 9점이 깎였음에도, 저들은 우리와 승점을 같게 유지하는 데 성공하면서. 이제 무승부만 해도 성남만이 가지고 있던 K리그 3연패라는 금자탑을 쌓을 수 있고.”

“그와 동시에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해내며 아시아 최강의 자리에 등극하고자 하는 팀이라는 것을.”

감독님의 그 담담한 말에, 우리는 그저 침묵했다. 올해 단 리그에서 1패만을 허용한, 리그 중반까지만 해도 무패 우승에 도전해가던 팀.

그게 전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더 두려운 게 있다.”

“저기 여기에 와 준 저 검붉은 유니폼을 입고 서울에서 전주까지 와준 3천 명의 팬들을 봐라. 저 분들이 어떤 각오로 왔을 것 같냐?”

그 순간 모두들 약간 의문에 찬 기색을 보였지만.

“푹 쉬고 싶은 주말 일요일에, 한 13만원은 되는 유니폼을 입고, 가장 싸게 구입해도 한 2만 5천원은 나오는 고속버스 왕복표를 끊어가면서 최소 6시간을 땅바닥에 버릴 각오를 하면서 서울에서 전주까지 찾아오고.”

“또 1시간 반 동안 저 비좁은 원정석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가며 불편해할 저분들이 무엇을 기대하고 너희들을 찾아 왔을 것 같냐고 물었다.”

이 말에, 우리는 감독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알 수가 있었다.

“질 수도 있지만, 혹시나 이번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가짐. 그거 하나뿐이다. 2013년, 2014년, 2015년. 세 번씩이나 기대를 배신했고.”

“또, 이번 시즌 계속해서 패배해와서 누가 보더라도 우리가 질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아시면서도. 결국 주말에 8시간이라는 시간을 날려가면서 괴로운 기억을 얻으실 확률이 훨씬, 훨씬 높은데도.”

“ 저렇게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서, 찾아오셨단 말이다.”

그 순간.

“······”

우리는 살짝 다른 침묵이 맴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나는 저 분들이 8시간을, 저 3천 명이나 되는 분들이 총 2만 4천이라는 거대한 시간을 땅바닥에 버리게 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두렵다.”

“······”

“그러니 다시 한 번 더 묻겠다. 두려운가?”

우리는.

“두렵습니다!”

“무엇이 두려운가!”

“저분들을 실망시킬까봐, 그것이 두렵습니다!”

프로로서,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우리에게 기대해주시는 저 분들을 웃으며 보내줘야 할 책임이 있었다.

“좋다! 그렇다면 모두 함께 외치고, 자리로 돌아간다! 하나, 둘, 셋. 서울!”

“서울!”

.

.

.

.

.

-삐이익-!

[2016년 K리그 챔피언을 결정하는 마지막 라운드! 전북과 서울의 경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짝짝 짝짝짝) 모두 일어나!

-(짝짝 짝짝짝) 크게 외쳐라!

우리 쪽의 목소리도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서울이 킥 오프 때마다 부르는 응원가. 사자후였다.

-(짝짝 짝짝짝) 서울이 왔다!

‘하, 다들 쥐어짜내서 고함치시는구나.’

그래, 이 먼 길을 와 주신 이 분들을 위해서라도.

-(짝짝 짝짝짝) 서울이 왔다! 전북 나와라!

우리는, 이기겠다.

이기고야 말겠다.

[아, 로페즈, 볼을 잡습니다!]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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