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0화 (120/167)

2016 K리그 클래식. 파이널 (1)

2016년 11월 02일

“야아- 축하한다! 국가대표! 기사도 떴더먼!”

선발된 지 사흘이 지나서야 축하해주는 태준이의 이 말에, 나는 살짝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 임마, 병 주고 약 주냐?”

***

<2016 K리그 클래식 37Round>

[경기 종료]

전남 메탈즈 2 : 2 FC 서울

[골]

전남 메탈즈 : 박동기(38) 유고비치(67)

FC 서울 : 박용우(10), 윤일록(28)

***

“하하, 그래도 져줄 수는 없잖아, 이 녀석아. 그거 승부조작이다? 곧 싸워야 할 적팀끼리 전화하는 것도 좀 에바고.”

“···시벌 그럼 전북한테 오대떡 당하지나 말던가.”

너희들 덕분에 우리 초비상 걸렸거든?

그러나 태준이는 눈도 끔뻑하지 않았다.

“하하, 우리도 솔직히 이기고 싶었지, 근데 그놈들이 너무 강한 걸 어떻게 해.”

“그럼 우리는 약하다는 거냐?”

“약한 건 아니지만 솔직히 전북에 비하면 약하잖아.”

“······”

젠장, 반박하고 싶은데 반박을 못 하겠다.

그리고 그 순간, 동기 형님도 와서 한 마디 하셨다.

“그래, 전남 안 온 죄다 임마. 꼬우면 전남으로 왔어야지. 우리 버리고 서울로 가냐? 연봉도 서울이 더 적게 제안했는데 갔다며.”

“······”

아이씨 진짜 저건 또 어떻게 아신 거야.

“그래 임마 우리 놔두고 국대 간 죄다 이 녀석아. 솔직히 동기 선배님도 그렇고 너 나가면서 크로스 이전처럼 안온다고 얼마나 그리워했-”

“샤랍.”

“옙.”

그렇게 단 한 마디로 태준이의 입을 다물게 만든 동기 형님은

“하여튼 준혁아, 뒤늦게나마 국대 축하한다.”

짧막하고, 담담하게 나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악수에는, 오늘의 경기 결과에도 불구하고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동기 형님이 비록 전남으로 가서 주춤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시즌 12골 11도움으로 K리그 클래식 공격포인트 1위를 아직도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는데도.

슈틸리케는 아직도 4골 1도움의 정현이만을 뽑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도 아니고. 역할이 겹치고, 명백하게 더 잘하는데도.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한다는 건···. 정말 슬프고, 비참한 일이다. 상상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그런데 속이 타들어갈 선배가 저렇게 담담한 표정으로 먼저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는 건···

정말,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짓이니까.

물론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야, 준혁아, 여기 봐봐, 너 뉴스도 떴더라.”

태준이 녀석은 조금 시끄럽게 떠들었다.

<무명의 신데렐라, 2부리그 방출에서부터 2년만에 국가대표까지.>

<28살에 첫 국가대표에 뽑힌 대기만성형 선수 이준혁. 그는 누구인가?>

“이제 나름 너 스타 되는 거 아니냐?”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라. 임마.”

그래. 내가 국가대표가 된 건 그동안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기자들이 급하게 내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어느 정도는 이슈가 되긴 했지만.

“벌써 다 묻혔잖아.”

단 이틀만에 스포츠 기자들은, 다른 뉴스로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2016 한국시리즈 우승팀, 두산 베어스.>

<단 한번의 리드도 내주지 않았다··· 너무나도 강력한 두산, 압도당한 NC>

<두산 베어스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KBO 한국시리즈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스포츠가 절정의 막을 내린 이 상황에서 고작 나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물론 일반적이라면 내 기사가 조금 더 오래 갈 수도 있었겠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가 아무리 인기가 많다고 해도, 이 시대에 최고 시청률이 옛날 인기드라마처럼 나오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보다 더 화제가 될 리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11월에 국가대표가 상대하는 팀들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그렇게까지 대단한 팀들이 아니니라는 점이었다.

캐나다, 우즈베키스탄

전 셰계의 축제이자 국민들의 관심이 모조리 쏠리는 월드컵에 근 몇 년간 구경도 못 한 이 두 팀과의 대결에 어찌 일반적인 팬들이 관심을 가지겠는가. 중국이나 일본처럼 감정이 있는 팀도 아니고 말이다.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은 국대 경기 꾸준히 본 분들이면 약팀은 아니라는 인식이 있겠지만. 캐나다는 진짜 그렇게 강한 편도 아니지.’

게다가 지난 평가전이 스페인과 체코라는 역대급으로 화려한 팀들과의 경기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번 경기는··· 솔직히 관심이 훨씬 덜할 수밖에.

“오, 진짜 그러네. 평소보다 훨씬 댓글도 적다.”

“어떻게 달렸는데?”

“봐봐.”

-이준혁? 웬 듣보? 누구임?

↳또 또 ㅅㅂ ㅈ같이 K리그 안 보는 새끼들이 꼭 이런 거 물어보지

↳수준도 낮은 K리그를 왜 봄?

↳그럼 런던올림픽 때 김창수는 유럽 선수였냐 ㅂㅅ아

“······”

음, 언제나 똑같은 싸움이구만. 아주 익숙하다 못해 긴장이 날아갈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리고.

“이거 니 댓글 아니냐?”

-움찔.

“···무슨 소리야?”

“아니, 삭제하기가 옆에 달려 있어서 말이지.”

“······”

하하. 우리 태준이, 아주 귀여운 짓을 했구나.

-짜악!

“아악!”

“야 임마, 그래도 듣보는 너무한 거 아니냐!”

아무래도 오늘 내가 널 두루치기로 만들어-

“아 씨! 부러워서 그랬다! 나는 커하 찍어도 국대 언급도 못 되는데!”

“······”

-주는 건, 넘어가야겠구나.

하긴, 태준이 쪽도 나름 스트레스일 거다. 분명 우리 89년생 중에서 가장 앞서가던 친구였고, 가장 기대받던 선수였다가 드디어 빛을 보고 있었지만.

커리어 하이를 찍고도 쟁쟁한 선수들이 넘쳐나는 2선 공격수라서 국가대표 이야기가 전혀 못 나오고 있었으니. 스트레스를 안 받고 있었을 리가 없었던 거다.

“에라이 시발, 넌 내가 밥 안사준다. 나중에 한 끼 사라.”

이 정도로 봐주마, 짜식아. 그리고 그 한 끼는 투쁠 한우가 되어야 할 것이야.

“오케이, 아챔 나가면 내가 한 끼가 뭐냐, 열 끼도 사 주마. 임마.”

응?

“뭔 소리야? 너희 아챔 못 나가지 않아? 너희 지금 6위잖아. 여기에서 순위 올려봐야 5위고.”

“야, 우리도 아챔 갈 수도 있거든? 서울이 FA컵 먹으면?”

“그건 또 뭔 소리야.”

K리그에 주어지는 아챔 티켓은 4장, 리그 3위까지 주고 나머지 한 장은 FA컵 우승팀한테 주는 건데 5위가 어떻게 아챔에 진출-

아.

“···그렇네, 우리가 우승하고 5위 하면 니네가 나갈 수도 있구나?”

“그래, 올해 리그, 겁나 꼬였다. 아직 하나도 결정된 게 없어.”

-*-*-*-

“예,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는 처음으로 인사드리죠? 여러분 안녕하세요!”

-ㅎㅇㅇ

-ㅎㅇㅇ

-? 뭔가요. 어제 오픈풋볼 방송해놓고 또 왠 유튜브 라방임?

“아, 그 때는 너무 조나탄 선수 이야기랑 국가대표 이야기만 해서 오늘 추가적으로 방송을 켰습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도 끝났으니 K리그 유입 조금이라도 더 당겨봐야죠.”

-아 ㅋㅋ 그렇구만

-국축에 들어오는 뉴비가 있긴 할까요 형?

“그렇게 힘빠지는 말 하지 말고 쨔샤! 그래도 노력을 해야지 노오력을!”

그렇게 잠시 방송 직후의 어수선함을 정리한 후,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한 후 한 말은.

“올해가 참, 역대급 시즌입니다.”

“그렇죠, 역대급 시즌이에요.”

으레 모든 스포츠 방송인들이 하는 말로 시작되었고.

-아 맨날 역대급 시즌이래 ㅋㅋ

-행님 다른 멘트 없습니까.

첫 방송임에도 라이브 방송을 찾아 들어온 찐팬들은 이미 고이고 고였기에 그런 말을 보고 가만히 있질 못했다. ‘아 이번 시즌 역대급이네요!; 하는 멘트는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식상했으니 말이다.

“아니 들어봐봐. 제가 괜히 역대급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이제 단 1경기만 남아 있는데 아직도 뭐 확정된게 딱 하나밖에 없잖아! 여기 하위 스플릿 그룹 순위 보세요!”

“마지막 라운드만을 남겨놓고 있는데. 지금 확정된 건 이브랜드가 꼴지인 것, 오직 이거 하나뿐입니다! 나머지는 아직 하나도 순위 확정이 안 됐어요!”

“솔직히 그 이브랜드도 마틴 레니 감독을 더 일찍 자르고 주민구 선수가 조금만 더 일찍 살아났었으면 잔류할 수도 있었죠. 이브랜드 팬들은 진짜 아쉬우실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위 스플릿에 속한 팀들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5일에 열리는 마지막 라운드 대진표가.

인천 vs 이브랜드

포항 vs 성남

수원 vs 광주

이렇게 짜져 있었는데. 덕분에 아주 절묘하게도 딱 한 팀만 빼고 모두 강등이 가능했다.

“수원만 빼고, 다 강등이 가능한 상황이에요.”

8위인 포항도, 만일 성남에게 패배하게 되면 경우의 수에 따라서는 광주와 인천이 비기기만 해도 바로 11위로 떨어지면서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루는 신세가 되어 버릴 수 있었다.

“그야말로 혼돈의 하위 스플릿입니다. 시즌 전에 이 순위표를 보여주면 솔직히 전 믿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수원과 포항, 성남 이 세 팀이 동시에 이렇게까지 떨어지리라고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이 팀들 중 한 팀만 몰락한 것도 아니고 동시에 말이죠!”

-아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구낰ㅋㅋㅋ ㅅㅂ 작년 2,3,5위가 어떻게 저렇게까지 되는 걸 예상하냐곸ㅋㅋ

-생각해 보니 쟤네 우승도 겁나 많이하지 않았어?

“예, 좋은 말씀 해주신 분 있네요. 저 세 팀의 K리그 우승 횟수만 더해도 16개입니다! 상위 스플릿 팀들 리그 우승횟수 다 더해도 12갠데 말이죠! 컵까지 더하면 더 차이나고요!”

-왘ㅋㅋㅋ

-아니 ㅅㅂ 이렇게 말하니깐 더 빵터지넼ㅋㅋㅋ

-ㅅㅂ 웃지마 개ㅅㄲ들아 존나 빡치니까.

-혹시 개랑이니?

-아닌데. 까치임.

-성남이라고? 못 믿겠는데. 그럼 쎄오종신 외쳐봐.

“아, 채팅창에서 정보 공유가 아니라 싸움 유발할 수 있는 대화는 좀 자제해주세요. 그럼 이제 상위 스플릿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쪽도 치열해요.”

“이게 원래대로라면 그냥 단순하게 서울 전북 제주가 아챔 노나먹고 끝나게 될 텐데, 서울이 결승에 진출하고 상주가 4위 먹으면서 일이 좀 묘하게 됐습니다. 리그 5위가 아챔에 나갈 수도 있게 됐어요.”

-오 ㅅㅂ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상무는 아챔 못나가니까.

-아 그래?

-ㅇㅇ 군경팀은 아챔 못나감, 아예 규정에 있음.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건 저도 확실치는 않은데. 아챔 규정에 의해서 전북이 내년 아챔 참가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

-아 ㄹㅇ임?

“예, 그렇습니다. 심판 매수와 관련하여 어떤 규정이 있다고 하네요.”

-오 잘 됐네

-그래 ㅅㅂ 저런 징계라도 더 처먹어라.

“다만 이건 확실치는 않아서, 최종 라운드에서 전남과 울산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 아주 죽도록 달라붙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전주성에서 열리는 이 경기. 이 경기에서 K리그 우승자가 누군지가 갈리게 되죠.”

***

11/06일 일요일, 15: 00

전주 월드컵경기장.

전북 현태 vs FC 서울.

***

“정말, 이번 K리그는 모든 게 이번 주말, 5일과 6일의 마지막 경기에서 결정날 겁니다. 만일 야구도 끝나고 좀 심심하다! 싶으신 분들은, 이 김에 한번 경기장에 와 보세요.”

“인기 없다고 하는 K리그가 얼마나 많은 팬들이 모이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리그인지를 온 몸으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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