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바라던 것 (1)
2016년 10월 28일
“우와와.”
신기하다.
‘되게 신기하네.’
뭔가 막 신기하다 진짜.
갑자기 이 노래가 떠오르는구만.
“철-없 을적 내기 억 속 에- 비-행기 타고 가-요~”
음, 노래 좋고, 역시 추억의 노래야.
“야, 촌놈같이 굴지 마, 공항 처음 오냐?”
“예.”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살짝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너 고등학생 때 백록기 안 나가봤어?”
“당연히 그 때는 배 타고 갔죠.”
학생들이 돈이 어디있냐. 한 푼이라도 아껴야지. 아무리 대한민국 부모님들이 아들의 앞날에 관심이 많다고 해도
-우리 애가 배 말고 비행기 타면 조금 더 잘할 수도 있어요~ 다만 회비가 두배 듭니다!
하는 말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학부모가 얼마나 많을까? 하물며 수학여행처럼 개인적으로 달랑 짐을 챙겨가는 게 아니라 훈련용 화물까지 챙겨가야 하는데 말이다.
“···음, 그렇구나.”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배님은 어릴 때 비행기 타고 다니셨나 보네요?”
“당연하지, 난 중학교 때부터 FC 서울 선수였다고.”
아 맞다. 이 형님은 서울에서 군대 면제받게 만들려고 이청룡 선수처럼 중학교 중퇴하고 입단시켰지?
“그럼 기내식도 먹어봤어요?”
“···먹어보긴 했지, 근데 그러는 거 보면 너 기내식 먹어보려고?”
“당연하죠!”
그 순간, 가만히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듣고 있던 태현 형님이 한 마디를 툭 던지셨다.
“준혁아, 미안한데 오늘 우리는 기내식 없다.”
뭐라고?
“왜 기내식이 없는 건데요?”
“그야 고작 1시간짜리 비행인데 뭔 기내식이야. 이젠 기차 열차 카트도 사람들이 뭘 안 사먹는 시대라고.”
···생각해 보니 그렇구나. 하하. 요즘은 그러고 보니 기차에서도 바나나우유에 계란 같은 걸 먹는 사람들이 슬슬 줄어들고 있지? 젠장. 영화나 그런 데에서 나오는 멋진 기내식같은 건 환상이었다는 건가.
“그래서 다들 이렇게 뭐 하나씩 집어먹는 거였나요?”
“그렇지. 다들 지금 초콜릿이나 바나나 하나씩 집어먹는 게 그런 이유에서다. 앞으로 한 최소 2시간은 입이 심심하거든. 점심식사 늦어지기도 하고.”
···음, 역시 군대에서도 그렇고,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한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하하. 젠장.
“너 그러고 보니 짐은 어떻게 챙겼냐? 좀 준비했어? 이번 원정은 1박 2일로 안 끝난다?”
“예이, 그거야 알죠.”
대한민국 K리그에서 대부분의 원정경기는 1박 2일로 끝난다.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원정 경기 전날 호텔이나 모텔에 버스타고 도착해서 짐 풀고 주변에 미리 대여한 경기장에서 훈련 후에 취침.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산책으로 몸 풀고 경기 전 최종 미팅같은 거 한 다음에 경기 치르고, 야구선수라면 거기에서 보통 3연전을 치루기에 호텔에서 3일을 머무르지만 그게 아니라면 보통 빠르게 홈으로 복귀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이유는 하나뿐이다.
원정 경기는 돈, 돈, 돈이 훨씬 더 많이 드니까.
먹고, 자고, 훈련하는 게 모조리 다 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러니 경기가 끝나고 조금만 서두르면 하루 방값을 아끼는 것은 물론이요. 아침에 클럽하우스에서 더 양질의 식사를 더 싸게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는데 한 30명의 방값을 하루 더 ‘쓸데없이’ 지불한다? 절대 하지 않을 짓이다.
다만, 그래도 예외는 있는데
“제주도 원정에 전남 원정이잖아요. 4박 5일짜린데 당연히 꽤 넉넉하게 준비했죠.”
원정이 겹치거나, 제주도로 갈 때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제주도 원정에 전남 원정까지 겹쳤는데 그 간격도 3일밖에 안 되는 상태. 그러니 홈 복귀 며칠정도 안 하기로 하고 아예 제주도 - 전남으로 동선을 짜기로 한 거였다.
“넌 뭐뭐 챙기냐?”
“뭐, 남들 챙기는 것처럼 챙겼죠.”
유니폼, 훈련복, 양말, 축구화 양말, 목배게, 이어폰, 속옷이랑 기타 옷기자 5개씩. 그리고 진통제나 철분제 같은 약이랑 아이패드.
“꽤나 가볍게 챙겼네. 마그네슘 보충제는 넌 아직 안 먹냐? 그리고 리커버리 스타킹은?”
“예, 다행히 근육 경련은 아직 많이 안 일어나서요. 그냥 견과류 먹는 정도로 땡칩니다. 그리고 리커버리 스타킹은 또 뭐에요?”
“비행기 타면 필수품인데, 몰라?”
“···저 비행기 처음 탄다니까요.”
당연히 비행기 필수품 같은 게 뭔지 알 리가 있나!
“너 무좀 없지?”
“넵.”
“그럼 내 꺼 한번 빌려주마, 도착하면 바로 빨아서 가져다줘라.”
“···어, 예. 감사합니다”
···이 선배님, 이제 보니 은근 잘 챙겨주시네, 혹시 츤-
-딱.
“아오, 왜요.”
“뭔가 굉장히 불쾌한 생각을 하는 눈치였거든.”
“······”
···와 귀신이네, 역시 대한민국 최고의 더티 플레이어가 되려면 저런 눈치도 있어야 하는 건가?
“그건 그렇고, 핸드폰 그만 봐라. 핸드폰 거의 안 보던 놈이 뭐 갑자기 핸드폰바라기가 됐어?”
“아, 잠깐만요, 기사 조금만 더 보고요.”
그렇게 수다떨다 보니.
-자자! 다들 모여라! 탑승 시간이다!
어느덧 탑승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아, 시간 됐다. 너 비행기는 신발 벗고 타야하는 거 알지?”
“죄송하지만 그건 안 속습니다. 형님.”
어디서 그런 쌍팔년도 개그를 치시고 있어. 저기 사람들만 봐도 다 신발 신고 들어가는데.
“아 안 속네. 비행기 탄다고 아주 신나하길래 속을 줄 알았더니.”
형님, 그렇다고 거기에 속을 정도로 제가 멍청하진 않습니다.
“뭐, 그렇다고 너무 신나할 필요는 없어. 너도 나중에 저거 신나게 탈 테니까.”
“그런가요?”
그리고 그 말에, 요한 선배님도 맞장구치셨다.
“그래, 니가 유럽 가지 않더라도 아챔 나가면 탈 거고. 유럽 가면 독일이나 프랑스는 땅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넓으니까.”
“어느 정도길래요?”
“서울에서 부산보다 훨씬 멀리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원정 경기 때마다 전세기 탄다고 하더라. 국대 친구들 피셜이다.”
그 말을 듣자.
“······”
그 말을 듣자. 나는 살짝 얼굴이 찡그려질 뻔 했지만.
“그런가요?”
그냥 넘어갔다. 요한 선배님이 의도가 있어서 날 긁었을 리는 없었으니까.
‘같은 신세시니까 말이지.’
-*-*-*-
전 세계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에게 있어서. 국가대표란 대단한 명예다. 일단 자신이 그 국가에서 최고라고 칭할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내가 곧 국가를 대표한다는 사실에,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게 느껴질 정도로 그야말로 엄청난 ‘뽕’ 이 차오른다고 한다.
‘뭐 이건 나도 들은 이야기라서 잘은 모르는 이야기지만.’
그리고 이 국가대표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과 협박과 사랑과 비난을 받는 대한민국 최고의 국가대표팀이 바로 축구 대표팀이고.
모든 - 아니 가끔씩 불평하는 미친놈도 있으니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국가대표라는 꿈을 꾸고,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기를 꿈꾼다.
당연히, 나는 대부분의 선수들에 속했다.
나는 2002년 월드컵을 두 눈 뜨고 똑똑히 본 세대인만큼. 내가 축구선수로서의 꿈을 꾸게 만든 사람들이,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전부 그 국가대표팀의 선수들이었으니까.
어느 정도냐고?
유럽에서 활약하고 국가대표로 뛰지 못하는 것과 K리그에서 뛰면서 국가대표로서 활약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한다면 난 전혀 망설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거다.
나에게 국가대표란, 정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었다.
그렇지만.
<축구협회, 슈틸리케 소통 문제 없어··· 슈틸리케 경질 없다.>
“에휴- 하는 꼬라지 보면 이번에도 글렀네, 씨발.”
나는, 지금 계속 그 무대에 뽑히지 못하고 있었다.
“저 개씨발같은 감독새끼. 진짜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울리 슈틸리케 장연수 계속 풀백으로 쓸 것임을 천명··· ‘믿고 봐달라.’>
“믿긴 뭘 믿어 시발놈아.”
물론 저기는 우측 풀백이니 내가 뛸 리는 없겠지만, 저기 우측 풀백에서 물러난 선수들을 또 좌측 풀백에 끼워넣고 있으니 문제였다.
“풀백은 무슨 짬 처리반이 아니라고.”
소속팀에서도 센터백으로 잘만 뛰고 있는 선수 가지고 뭔 지랄질인 건데. 물론 잘하기라도 하면 말을 안 하겠는데, 그렇게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슈틸리케호의 최대 약점. ‘풀백’>
<장연수의 풀백 기용, 과연 성공적이었는가?>
<국가대표팀에서 외면받고 있는 선수들.>
이 꼬라지다.
“에휴- 진짜. 답답- 하다. 답답- 해.”
휴우-
그냥 한숨밖에 안 나오네.
“도대체 내가 뭐가 부족한 거지.”
저 인간이 한 말이 있다.
-소속팀에서 제대로 뛰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
그래놓고, 저 인간은 아직도 기존의 레프트백 박준호, 김진우 두 선수가 모두 소속팀에서 잘 뛰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계속 국가대표로 선출했고.
K리그에서 잘 뛰고 있더라도 자신이 작년까지 한 번도 안 뽑아본 선수들은 전혀 뽑지를 않았다.
이걸 보면, 이 감독은 선수들을 제대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기존에 국가대표에 뽑혔던 선수들이 다시 폼을 회복하기만을 오매불망 바라는 사람이란 소리였다.
‘···그나마 고광민 선배님이 저번에 한 번 뽑히긴 했지만 그것도 이형 형님이 부상당해서 간신히 뽑힌 거였고.’
그걸 생각하면···
“에라이 썅.”
머리만 어지러워지네. 나가자. 나가서 좀 걷고.
이 생각 잊고 깔끔하게 잠들자. 외출복이 어디 있냐···
-삑, 삐리릭.
“준혁아.”
“응? 아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감독님이 너보고 좀 보잔다.”
-*-*-*-
“준혁이 자네, 요즘 핸드폰을 보는 빈도가 늘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나?”
와.
‘이런 것까지 통제 들어가냐? 뭔 군대같은- 아니, 통제는 아니고 그냥 물어보는 건가?’
하긴 나 같아도 핸드폰 거의 거들떠도 안 보다가 갑자기 요즘 핸드폰을 계속 붙잡고 있으면 뭔 일 있는지 의심하긴 하겠다.
“별 거 아닙니다. 경기에는 지장 없을 겁니다.”
그래, 그렇다고 이런 문제를 경기장 안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다. 그러지 않는 것이 프로로서 올바른 자세니까.
그러나, 최용주 감독님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핸드폰으로 매일같이 슈틸리케에 관한 글을 보고 있다고 들었는데?”
“······”
이건 어떻게 아신 거지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알고 싶은 거야. 감독으로서 선수들의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도 하나의 할 일이니 말이지.”
그리고 이어진 이 말에, 나는 조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예, 솔직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합니다.”
나는 지금 K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풀백이다.
빈 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렇다.
비록 경기 출전 수가 좀 적어서 평가가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나는 올해 정말이지 ‘폭망’ 한 경기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잘 나갔고.
경기수는 적은 편인데도 공격 포인트가 꽤나 좋은 편이었으니까.
설령 서울이 우승하지 못한다고 해도, 올해 K리그 베스트 11에 내가 들어갈 확률은··· 꽤 높게 평가될 정도로.
나는, 지금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선배님들도, 감독님들도 내가 이 김에 유럽 나갈꺼라고 생각하고 계셨고.
그런데도, 국가대표를 나가지 못한다는 것은···
조금, 조금 많이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국가대표를 나가고는 싶고?”
“그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간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해 뛰고 싶습니다.”
그 순간.
“그게 고민이라면 다행이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
감독님이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말씀을 던지셨다.
“서, 설마 슈틸리케 감독님과-”
“전화번호가 있긴 한데, 그 인간한테 연락하진 않을 거야. 슈틸리케 그 인간은 K리그를 무시를 넘어 멸시하는 사람이라서, 솔직히 나와는 사이가 좋지 않거든.”
“······”
그럼, 누구한테?
“다만, 내가 아는 선배님이 나에게 연락을 해 왔지. 자네 뽑아보고 싶다고.”
그 말과 함께, 감독님은 나에게 명함을 주셨는데.
그 명함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신태영
“지금이라면 아직 이 형님 아직 깨어있을텐데. 전화해 보는 게 어떻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