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6/167)

친정팀 (1)

쓰리백.

2016년 현재, 꽤나 마이너한 이 전술은 사실 2002년에도 이미 시대에 조금 뒤쳐진 전술이었다.

당장 우리나라에 부임한 히딩크 감독님이 왔을 때조차도 세계 축구의 주 흐름은 포백이었고, 그래서 히딩크 감독님도 평가전에서 포백을 주구장창 실험하지 않았던가.

다만 모두가 기억하듯이. 히딩크 감독님은 결국 월드컵에선 쓰리 백을 사용하셨다.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주축 선수들이 포 백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 88년생 기준으로, 그러니까 04년도 기준으로 중학교를 나와본 선수들 기준으로는 아직까진 대한민국 축구부는 쓰리백이 대세였지, 포 백이 대세가 아니였다.

왜냐고? 일단 실점을 안 하는 데는 구식 쓰리 백이 더 쉬우니까!

포백을 사용한다는 건 지역 방어를 사용한다는 거고. 그렇다는 건 수비수들이 지역방어와 오프사이드 라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꽤나 힘들다.

반면 쓰리 백의 대명사로 불리는 3-5-2는 기본적으로 1대 1 대인방어를 지시하고 있는 만큼 훨씬 아무 생각 없이 수비를 해도 어느 정도 먹히고.

전술상, 스위퍼라는 최후방 수비수 하나 두고 있으면서 여차하면 측면의 윙어들을 센터백처럼 측면에 막아놔버리면 쓰리백이 아니라 5백이 되어서 수비에서 숫적 우위를 가져가기 쉽다.

그러니까 포백은.

-야, 너 공격수가 올 때는 이렇게 막고, 저놈이 올 때는 요렇게 막고, 저놈이 올라오면 이렇게 이동해.

이렇게 감독이 명령한다면, 쓰리백은.

-야, 너 저 새끼한테 딱 달라붙어 있어.

이거다. 둘 중 어느 게 선수들이 더 명령을 이해하기 쉽겠는가? 그것도 공부를 싫어하고 잘 할 마음도 없어서 축구부에 온 놈들도 써먹어야 하는 그리 질이 좋은 편까진 아닌 학교라면?

당연히, 후자의 말을 선수들은 훨씬 더 잘 알아먹는다.

그래서 여러 감독과 축구선수들이 목표로 하는 국가대표가 포백을 완벽하게 주 전술로 쓰기 전까진 다들 쓰리 백을 주 전술로 배웠고. 그 이후로도 저 점들이 합쳐져서 한 90년대생까진 쓰리백이 더 익숙한 사람들이 꽤나 많다.

그러니까.

-삐익!

“좋아. 세션 성공이다. 다음!”

“후하- 예!”

나 같은 좀 나이든 축구선수는, 쓰리백이 난생 처음 보는 구닥다리의 유물이 아니라는 거다.

‘고등학교 때 우리 주 전술이 쓰리백이었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네.’

물론 우리 시절에는 괜찮은 팀들은 모두 포백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포백이 한 단계 더 발전된 전술이라는 건 알았지만. 우리는 약팀이다 보니 쓰리백을 사용했다. 그 당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국대회 성적이었고 그래야만 대학을 갈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대학교 가서 한 1년 동안은 얼탔지, 젠장.’

그런데 그게 지금 와서는 도움이 되는 걸 보면 세상사 참 모르는 일이다.

물론 현대의 쓰리백과 옛날 구식 쓰리백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대표적으로.

-삐익!

“이준혁, 그게 아니다. 저기 다카하기가 측면으로 빠지면, 너는 오스마르 자리로 가야 한다! 네가 다카하기 자리를 커버할 필요는 없다!”

센터백이 과감하게 앞쪽까지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기에, 윙백이 완벽하게 직선적인 움직임만 가져가는 게 아니라. 중간에 중앙 수비수 자리까지 커버를 해야 하는 경우가 꽤나 많다는 것.

그리고

“유상훈! 좀 더 자주 나와라. 너도 최후방 수비수다!”

골키퍼가 공격을 시작할때만큼은 전개에 꽤나 적극적으로 가담한다는 것.

솔직히 이 두가지만으로도 헷갈리긴 했다.

내가 아는 쓰리백은 그냥 최후방 수비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가 나중에 공격수가 좌우 센터백 뚫고 들어오려고 하면 그걸 커버하면서 시간 끌고 있다가 어떻게든 상대방 골 못 넣게 하는 늪 축구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삐익!

“그게 아니다. 지금은 오른쪽에서 상대방이 들어왔으니 역습을 충전하는 느낌으로, 전방에 나가있어!”

쓰리백에서 윙백이 이것저것 다 해야 한다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소리는.

-삐익!

“이준혁, 지금은 좀 더 빠르게 앞으로 드리블해라! 직선적인 움직임을 가져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겁나게 윙백은 엿같이 뛰어다녀야 한다는 소리였다.

역시, 주연 한번 하려면 겁나게 힘들다 씨발.

그래도.

-삑!

“좋아! 방금 움직임은 좋았다! 다만 공격을 끝나고 조금 더 빠르게 돌아와라! 수비 전환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예!”

불평할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가 처음에 이 서울로 왔던 이유 중 하나인 주연의 자리를 맡을 수도 있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물론 저번 관중분들의 환호성을 보고 굉장히 만족스럽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애초에 더 좋은 자리가 보이는데 욕심내지 않는 것이야말로 이상한 짓 아니던가.

‘그리고 그 함성소리가 나를 위해서 울려퍼진다면? 그거야말로 가장 짜릿하겠지.’

다만 변수가 있다면.

-삐익!

“치우! 그게 아니지, 조금 더 빠르게! 움직여라!”

다음 경기까지 남은 시간은 단 5일.

내가 아무리 전술 이해도가 좋아도 기존의 왼쪽 사이드 포지션에 서던 김치우 선수나 고광민 선수를 제칠지는 미지수다.

‘후보까지는··· 들수 있을 것도 같은데 선발될지는 잘 모르겠네.’

물론 내가 기존 포백을 사용한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은, 꽤나 위력적이었고, 훈련장에서의 모습도 그리 많이 뒤쳐지는 편은 아니었기에 나름 저 선배들에 비해 우위를 가지는 면도 있었지만.

이번 전술의 컨셉은 2라운드 때의 3-5-2 전술. 그 때 전술을 그대로 수행하는 쪽으로 가는 쪽이었으니. 그렇다면 변화를 주지 않기 위해 김치우 선배님을 출전시킬 수도 있었다.

-삐이익-!

“고광민! 자꾸 중앙으로 가지 마라! 좀 더 직선적으로! 단순하게 움직여!”

지금 이렇게 세 명이나 돌아가면서 레프트백 자리에서 연습하고 있는걸 보면 감독님이 어느 쪽일지를 아직 못 정한 거일 수도 있겠고.

‘뭐, 뽑히면 좋겠지만···’

안 뽑혀도, 뭐 만족한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경기가 끝나고 3일만 지나면 부천과의 4강전 경기니까 무조건 로테 돌리겠지.’

나는 그 때 뛰면 된다.

안 뽑히면?

‘안 뽑히면 다음에 뽑히면 되는 거지 뭐.’

편하게 생각하자고. 편하게.

“그럼, 오늘 훈련은 끝이다. 다들 해산하고, 선발 명단 발표는 내일 아침 훈련 시작 직전에 발표한다! 이상 전달 끝!”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뽑히면 좋겠는데 말이지.

***

2016년 10월 22일.

-삐이익-!

-와아아아아!

“오케이. 한체대 쪽이 이겼다. 이준혁, 빨리 만원 내놔.”

“에라이. 젠장. 그래 내가 졌다. 여기 있다.”

-탁

“감사.”

이기면 2만원이었는데. 쩝, 아쉽구만.

그 순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어허, 어디서 구닌이 내기도박을 했다는 소리가 들렸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아 시끄러워요. 형.”

나랑 같이 지난 9월에 전역한, 태현 형님이었다.

“어허, 어디서 상병 찌끄레기가 말대꾸를 하는 거지? 온규 마이 컸다?”

“네, 재입대하시면 선임 취급 해드릴게요.”

“반사.”

와, 반사라니. 이제는 죽은 단어가 되어가는 저 아재 단어를 사용하시다니. 나이든 티 팍팍 내시네.

그렇지만.

“그래, 구닌 맞아? 머리도 이렇게 길고 말이야.”

나도 충실히 그 흐름에 합류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난 것이 뭔가. 바로 아직 전역 못한 군인 놀려먹기 아닌가.

“야, 그런 말 하지 마라. 너도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군인이었으면서.”

“응, 이제는 아님.”

경기 전 할일도 없는 상황에서 이 재미난 놀거리를 놓칠 수는 없지.

“너 아직 100일도 넘게 남았지? 주먹 눈에 대 봐.”

“아 씹, 그거 그만해라. 또 니 내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말하면 그게 니 앞날이라고 할 꺼지?”

“잘 알고있네.”

“새끼야, 그게 재미있냐?”

응, 최고야, 늘 새로워. 늘 짜릿해.

“그래, 안 되지, 안 돼, 군인 놈들이 무슨 도박이야 도박은, 이거 현장 검거 들어가야겠구만. 이리 내. 내가 좋은 곳에 써줄게.”

“아 저리가요, 형.”

그렇게 2대 1로 밀리자. 온규는 주제를 돌리려는 듯이 괜히 딴청을 피웠는데.

“야 근데, 저거 우리랑 경기하기 직전인데 저렇게 경기해도 돼? 그라운드 다 망가져있겠다.”

그 한 마디에 나도, 태현 선배님도 살짝 침몰되어 버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뭐, 어쩔 수 없잖아. 상암은.”

그래, 어쩔 수 없다. 상암은 일단 관리 주체가 FC서울이나 대한축구협회가 아니라 서울시설관리공단 쪽이라서 마음대로 개보수도 못하는데.

접근성은 또 서울이라 더럽게 좋아가지고 온갖 이런저런 행사를 꽤 많이 진행하다 보니 잔디가 개판일 수밖에.

“진짜 상암은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차라리 우리 잔디가 더 낫겠다.”

“동감이야. 차라리 인조잔디 좀 섞으면 좋겠어.”

“···온규야, 너 상무 경기장을 우리 잔디라고 하는구나? 아주 훌륭한 군인이네? 말뚝 박아라.”

“반사, 형이나 많이 하세요. 전 강원 팬이고, 강원 원클럽맨 될 겁니다. 이 놈하고는 다르게요.”

온규의 그 말에, 살짝 나는 울컥했다.

“얌마, 말이 좀 심하다?”

“응 어쩌라고, 개랑이 수원 제안 받고도 북패로 가다니, 이건 내 머리론 도저히 이해 안 가거든?”

···시발. 저 놈이 하필이면 강원 성골 중에 성골 유스라서 반박도 못 하겠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잖냐.”

“그래? 그럼 프로니까 이런 말도 할 수 있지? K리그 최고 명문팀은 FC 서울이다.”

“······”

“왜 대답을 못 하실까?”

젠장, 내 심장에 남아있는 푸른 피가 이 말만큼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버티는구만. 어떻게 한담, 어떻게 이걸 피해야-

“준혁이냐?”

“···어, 감독님?”

구원의 동앗줄이 내려왔다.

-*-*-*-

“오랜만이구나, 한 달 만이던가?”

“예, 그렇습니다.”

그 말이 끝나고 잠시 커피를 마신 감독님은, 짧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제출 명단 보니깐 쓰리백이던데 선발이더구나.”

“···예.”

“연습은 얼마나 많이 했느냐?”

“틈틈히 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1군이랑 쓰리백 합 맞춘 건 5일입니다.”

그 순간, 감독님은 쾌할하게 웃으셨고.

“···5일만에? 하하하. 용주 그놈이?”

“······”

“그 깐깐한 용주가 정말 네가 맘에 들었나보구나. 그 녀석 자기 기준에 안 맞으면 칼같이 잘라내는 놈인데.”

툭 한 마디를 추가로 던지셨다.

“오늘 경기, 나름 급하게 준비한 걸로 보여주는 거일 텐데 걱정되진 않느냐?”

걱정이라.

“글쎄요, 솔직히 이번에는 큰 걱정까진 안 했습니다.”

그보다는.

“그저 상주 상무를 때려잡을 생각만 가득했죠.”

“뭐? 하하,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그러자 이번엔 작게 웃음지은 감독님이.

“그래, 그래야지. 그러지 않았다면 오히려 실망했을 거다. 이곳은 프로의 세계니까. 이 쪽도 나름 많이 준비 했거든.”

그 말과 함께, 손을 내밀었다.

“어디 한 번 보여줘보거라. 오늘 좋은 경기 부탁한다.”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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