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5화 (115/167)

환호 (2)

사실, 나는 원정팬이 더 많은 데에 훨씬 익숙하다.

일단 내 첫 프로구단이었던 고양.

이 팀은 정말 인기 없는 팀이었다. 홈에서 관중 수 평균 1000명을 넘기지 못하는 관중 동원력이 압도적인 꼴찌 중의 꼴찌. 1000명을 넘기는 때라고는 개막전 딱 한 번 뿐인 비 인기팀.

‘보통은 한 오백명이나 왔나? 많이 오면 칠백명이었고.’

그리고 보통 그 중 절반이 원정팬이었다.

그래서, 우리를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에겐 항상 감사하지만, 솔직히 가끔씩은 슬프기도 했다. 홈에서조차 원정팬들에게 밀린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아니 그냥 성적 안좋아서 인기 안 좋았던 거 아냐? 결국 프로는 실력인데.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의 성적이 막 전북처럼 K리그 씹어먹고 그랬으면 그래도 평균 관중 몇백명 수준은 아니고, 몇천명까지는 늘릴 수 있었겠지.

그러나 솔직히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그렇다고 해서 막 인기팀이 되지는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적인 예로, 아버지가 뛰었던 팀인 태평양 돌핀스. 그리고 그 팀의 후예인 현태 유니콘스.

90년대 후반에서 00년대 초반에 야구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들 중에서 이 팀을 약한 팀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KBO리그 단일시즌 최다 승률의 팀을 만들면서 KBO리그 역대 최강팀으로 기록을 남기는 데 성공했고, 그 이후로도 우승을 추가하면서.

그 해태에게만 허용되던 ‘왕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을 정도로 최강의 실력을 자랑했던 강력했던 팀이었으니까.

그리고 K리그에 있어서는 현재는 시민구단이 되어버리고 과거의 영광을 많이 잃어버렸지만. 내가 축구를 가장 열심히 보던 00년대 초반에 리그 3연패라는 미친 업적을 세우면서. 한때 명백한 K리그의 최강자였던 성남.

이 두 팀은, 성적 면에서는 전혀 비판받을 게 없는 팀들이었고 좋은 선수가 보이면 정말이지 돈을 마구 쏟아부은. KBO리그의 뉴욕 양키스였고, K리그의 레알 마드리드였다.

하지만, 두 팀은 인기가 없었다.

현태는 최전성기를 맞이하던 00년대 초반 KBO에서 명백하게 관중수가 최하위권이었고. 성남은 그보단 나았지만 끝내 리그 내 대표적인 비인기팀이라는 오명을 벗질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아무리 봐도 이것밖에 답이 없다. 연고지 이전.

두 팀 모두 연고지 이전을 한 번도 아니고 짧은 시간에 두번씩이나 한 팀들이라는 이 점이 그들의 인기를 늘리지 못하는 데 정말로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고양은 그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이 팀은 창단할 때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창단해놓고 다음 해에 경기도 김포로 이동하고, 거기에서 또 안산으로 연고지를 바꾸고 정착하는가 싶더니만.

내가 입단할 때와 동시에 고양으로 이전한 팀이다. 이러면 정말 성적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팬이 많이 생길래야 생길수가 없다.

‘진짜 그런데도 우리를 응원해주신 팬분들이 정말 생불이신 거지···’

그리고 내 두 번째 프로팀이라고 할 수 있었던 상주 상무는? 선수들이 해마다 물갈이되서 팬들이 정을 붙이기가 정말이지 너무 힘든 팀이기에.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팬이 늘어나는 데 한계가 명백했다.

그렇게, 난 홈 경기를 해도 홈 팀의 팬분들보다 원정 팬들이 더 많은 경우를 숱하게 봐 오면서 뛰었기에. 가끔씩은 궁금했다.

-홈 팀 경기장을 가득 채운 팬분들한테 응원을 받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물론 우릴 응원해주신 팬분들에겐 정말로 항상 감사하고, 그분들에겐 언제나 더 잘 뛰지 못해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솔직히 선수로서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홈구장을 가득 채운 우리 팀의 팬들에게 환호성을 받으면서 뛴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말이다.

아예 모르면 그래도 좀 덜 궁금하기라도 할 텐데 수원 응원할 때 관중 입장에서라도 어렴풋이 홈 어드벤티지가 뭔지를 느껴봤으니 더더욱.

그리고 지금.

-고오오오올-! 아드리아노 선수의 멋진 골입니다!

비록 가득 채웠다기엔 상암이 너무 넓어서 좀 부족하긴 하지만.

-서울의 아~드리~아노↘ 서울의 아~드리~아노↗ 라라라~라 라라~랄~라 아드리아노~

어느 정도는 답이 나온 듯 했다.

정말로 난잡했고.

정말로 시끄럽고.

-랄라라라 랄라라라 라~라라 헤이!

-랄라라라 랄라라라 라↗~라라! 헤이!

또, 정말로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진짜 홈 경기구나.’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고작 공놀이에 불과한 이 경기의 작은 플레이 하나하나에 신나게 고함지르고.

-여러분! 오늘의 승리는, 누구?!

-서울!

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치고.

이 어찌보면 당연한 것들이, 나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아, 이준혁 선수, 돌파 시도합니다!]

-와아아아아!

너무나도 즐거웠다.

정말, 축구 선수를 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김태환 그 친구가 오늘 안 나와 있으니 더 좋네.’

더티한 플레이를 내가 익혀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벼락치기에 불과하다. 진정한 본 투 더티플레이어와 비교하면 처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김승준, 달려나옵니다.]

그리고, 왠지는 모르겠지만 김인성을 빼고 김승준, 이 어린 친구를 넣었는데.

[아, 이준혁 선수, 스피드 승부!]

[김승준 선수도 느리지 않은데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니가 아무리 빨라도 말이지.

[아! 이준혁 선수에게 조금 밀리는 분위긴데요!]

[저 선수, 가끔 크로스가 주특기라서 까먹을 때가 있는데, 스피드가 엄청나요!]

나나 인성이 그 친구만큼 빠르진 않잖아. 게다가 아직 넌 프로 2년차에 불과하지?

[아, 결국 몸싸움하다가 승준 선수, 넘어집니다!]

[파울인가요? 아니군요! 계속 진행됩니다!]

김태환 그 친구라면 몰라도, 너랑 비교했을 때는 내가 훨씬 손기술도 더티플레이도 더 낫다.

‘자, 이제 측면에서 한 놈은 뚫었다. 다음은 어떻게 할까? 한번 돌파해···’

아니다. 지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오늘 우리 팀의 포메이션은 쓰리백이 아니라 포 백이다.

그리고 포 백일 때 측면의 주인공은, 포지션이 다이아몬드 4-4-2가 아닌 이상 측면 수비수가 아니라 측면 공격수. 즉 윙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뻥.

비록 데뷔 이후 작년과 올해 슬럼프를 겪으며 잊혀지고 있지만.

한때는 92라인에서 손흥빈 다음으로 평가받은 천재 윙어도 있었다.

[아! 윤일록! 기가 막힌 쇄도입니다! 윤일록! 윤일로옥!]

[아 윤일록! 슈팅-이 아니라, 주세종에게! 왼발-!]

- 삑! 삑! 삐이익-!

[골! 골입니다아-!]

- 오오오~ 오오오~ 주세종 알레!

‘그러니 무리할 필요 없지.’

비록 여기로 들어올 때 주연을 하고 싶다는 목적이 있긴 했고, 아직도 쓰리백에서 뛰고 싶은 마음은 조금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팀의 승리고. 팀의 우승이다.

[아, 만일 이대로 경기가 끝난다면 서울이 전북의 자리를 빼앗을수도 있습니다! 지금 경기가 10분밖에 안 남았는데. 지금 전북이 제주한테 1대 2로 지고 있거든요!]

[아아, 지난 아시안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참패 이후로 사실상 우승 경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리그에선 아니네요! FC 서울, 막판 스퍼트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술 다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전북이라는 팀에게 기존의 쓰리백이 먹히지 않는 것을 확인한 지금 포백으로 살짝씩 전환하여 지금 리그에서 두 경기 연속 승리를 하고 있는데, 굳이 쓰리백을 쓸까?

글쎄, 내가 감독이라고 해도 그러진 않을 거다. 묻혀져 있던 재능을 다시 발굴하여 잘 풀리고 있다는 것만 봐도 그렇고.

무엇보다.

-오~ 오오~ 오오↗~ 오오↘~

저 승리의 기운이 확실해지자 신나서 모두가 어깨동무하고 힘차게 노래를 불러대는 1만 명의 팬들을 보니.

내가 주목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대한 불만.

그런 감정따윈, 전혀 들지 않았다.

공격 포인트를 쌓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일록이 나이스 패스! 세종이 너도 잘 뛰어들었어!”

누군가를 칭찬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언젠가는 이런 팬들의 함성을 당연하게 여기고, 이 정도로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나 자신이 발견되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최소한 지금은 저 팬들만 봐도, 너무나 만족스럽고 감사한 마음에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삑! 삑! 삐이익-!

[경기 종료됩니다! 서울이 한 달만에 돌아온 상암에서! 울산을 격파합니다!]

[그리고 전북은 2대 2! 드디어 K리그의 절대 1강이던 전북이 따라잡혔습니다!]

-랄 랄 라라~!

[접입가경으로 이어지는 리그 순위입니다! 과연 서울이 5년만에 다시 리그 우승컵을 가져올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군요! 그럼 지금까지 tbs였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34Round>

[경기 종료]

FC 서울 2 : 0 울산 현대

[골]

FC 서울 : 아드리아노 (65) 주세종(80)

울산 현태 : (없음)

***

2016년 10월 24일

-짝짝.

“자, 다들 주목해라. 주목!”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주- 자까지 튀어나왔다가 입을 다물었다.

‘음, 아직도 군대 물이 덜 빠졌구나. 젠장.’

제대한 지가 벌써 한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군대 때가 다 안 벗겨지다니. 이건 정말이지 큰일이다.

‘아무래도 군대 물 좀 빼기 위해서 뭔가 특별한 짓이라도 해야겠네. 군복 태우기 행사라도 할까? 아니면 오랜만에 사우나 가서 목욕재계라도 말끔히?’

이런 식으로 딴생각에 빠리려던 도중.

“울산전에서 우리는 승리하고 승점이 동률이 되긴 했지만, 아직도 전북은 1위고, 우리는 2위다.”

“······”

감독님이 말씀하신 저 말씀은, 나를 다시 차분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비록 제주가 힘을 내 무승부를 기록해주긴 했고.

덕분에 승점이 동률이 되긴 했지만. 우리는 아직 2위였다.

2016년 K리그 기준으로 승점 다음으로 순위를 정하는 요소인.

“득점, 득점이 우리는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지.”

득점에서 전북은 62득점, 우리는 60득점으로 아직 득점에서 전북이 우위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득실점으로 가면, 조금 더 암울해졌다. 2 차이에 불과한 득점 차에 비해 전북은 +23, 서울은 +17로 5점 차이가 나니까 말이다.

‘딱 작년 대구랑 상무 같구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이번엔 내가 있는 팀이 대구같이 득실에서 밀리는 쪽이었달까.

“결국 우리는 남은 경기에서 승리를 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다득점을 노리기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승할 확률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진다.”

그 순간, 다들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 앞으로의 경기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번 시즌, 우리가 가장 다득점에 성공했고, 가장 완벽했다고 말할 만한 경기는 무엇이었지?”

그 순간, 요한 선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시즌 초반에 상주 상무한테 4대 0으로 이겼을 때입니다.”

“그래, 그 경기지.”

젠장, 굳이 그렇게 꼭 말하셔야 겠습니까.

뭐 그 때 상무가 탈탈 털린 건 맞지만···

“그 때, 우리는 상주를 4대 0으로 박살내는 데 성공했지. 중앙의 두터움을 통해서. 정면에서 박살냈다.”

“비록 지금은 진오가 없어서 완벽하게 같이 해낼 수는 없겠지만, 다행히 태현이가 돌아왔고, 상무는 지금 이빨 빠진 호랑이 수준으로 약해졌지.”

-탁, 탁.

“그러니 다음 상주 상무와의 경기는, 쓰리백으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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