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4/167)

환호 (1)

그날 이후로, 우리들은 이런저런 노하우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은 타이밍 위주로 가르쳐드릴게요.”

“난 오늘은 드리블 손기술이다.”

물론 개인적인 노하우를 공유하는 거야 프로팀이라면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이건 좀 달랐다.

보통 선수들에게 있어서 이런 부류의 노하우 공유는 코치나 구단, 혹은 베테랑이 신인들에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게, 구단 입장에서야 연봉 싼 신인선수들이 잘해주면 좋고, 은퇴를 앞둔 베테랑들은 신인들 잘 가르친다는 작은 평가 하나하나가 나중에 선수 생활 그만두더라도 코치로서 생계를 이어나가게 되는 데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동료 선수들끼리는 생각보다 노하우 공유가 많이 이루어지지는 않는 편이다. 일단 이런 노하우 하나하나가 자신이 프로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서 밥줄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껏 가르쳐줬는데

-아 가르쳐준 대로 했는데 안 되잖아. 이거 잘못된 거 아니야?

이런 소리가 나오기라도 해봐라, 아주 그냥 죽빵 마렵다. 그래서 구단이나 베테랑도 그런 소리 대놓고 못 하는 신인들에게나 노하우를 가르치고 마는 거다.

어차피 해봤자 잘되면 자기 덕으로 돌리고. 안 되면 남 탓 할 게 뻔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좀 달랐다.

“···그러니까, 굳이 올리는 크로스에만 집착하지 말고요, 저는 측면에서 골대 가까이에 있는 수비수만 어떻게든 제쳐내고 공격수 앞쪽으로 볼 보내면 그게 좋은 크로스라고 생각합니다.”

“흠, 그래?”

“예, 경험상 그 정도만 성공해도 꽤 위협적인 크로스가 될 때가 많더라고요.”

각자 K리그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각자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퍼부으면서.

“···이렇게, 너를 따라오는 수비수가 있으면, 멈춘 다음 너한테 뒤따라오던 수비수 확 팔로 밀어버리고 안으로 파고들면 은근 쉽게 쓰러진다. 생각보다 달리던 속도가 있어서 쉽게 제쳐져.”

“······저기 이건 반칙 아닌가요?”

“심판에 따라 은근히 달라, 좀 거칠게 해도 봐주는 몇몇 심판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은 이 정도까지도 허용하는 경우도 있어.”

이런 식으로 하루도 쉴 새 없이, 주특기를 공유하는 정말 보기 드문 경우였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느껴졌다.

-삐이익!

“이준혁, 파울이다.”

“예, 죄송합니다.”

아이씨, 살짝 깊었나.

“그럼 다시 조끼 안 입은 팀 역습 공격 시작이다! 위치로!”

-삐익!

-뻥.

선배님한테 이런저런 기술을 배우고 난 이후로, 내 수비 스타일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까지는 손은 좀 덜 쓰고 몸빵으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손을 쓰기 시작했던 거였다. 예를 들어 이렇게 뒷공간이 뻥 뚫린 역습 상황을 가정할 때, 옛날이면 그냥 빠르게 복귀하는 것만 생각했겠지만.

“아, 진짜 너 그만 잡아! 임마! 옷 다 늘어난다!”

이제는 뒤에서 움켜쥐고, 조금씩 잡아당기는 등, 상대방의 유니폼을 아주 알뜰하게 사용했다.

-넌 스피드가 좋아서 잘 안 쓰는 것 같지만, 뒤 뚫렸을 때 옷 잡기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써라. 솔직히 말해서 페널티박스 안쪽이면 몰라도 그 밖이면 잡아서 넘어지지만 않으면 웬만하면 반칙 선언 안 되거든.

그리고 이런 옷 잡기를 통해 스피드 대결에서 조금이라도 더 여유가 생긴다면.

“좋아, 조끼 팀 수비 성공, 이번엔 조끼 입은 쪽 공격이다!”

뒷공간이 살짝 털린 상황에서도 수비에 성공할 확률이 엄청나게 높아지기 마련이다.

“이번엔 완벽하진 않은, 어느 정도는 대비가 되어있는 역습 상황이다! 다들 말해둔 위치로!”

그리고 이는 공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은 상대편의 접근을 막는 키핑용 정도로만 사용하던 팔을.

-Hey! Jun! Rush!

-뻥.

내 앞에 달라붙은 녀석을 몸싸움에서 젖혀버리는 용도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건 오히려 더 과감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수비수의 파울보다야, 공격수의 파울이 덜 치명적이니까.

‘일단 멈추고, 그리고 저 녀석이 멈추려고 하면, 옳지, 이렇게 슬며시 밀어내서-’

“우왁-!”

그리 힘 들이지 않고도 수비수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리기가 가능해지는구나. 하하. 이게 신의 드리블이 아니라 신의 손인가.

‘돌파에서 쓸 수 있는 옵션이 또 하나 늘었네. 좋아, 그럼 이제 중앙으로 가는 길이 비었으니 들어가서 슈팅까지 가보자고! 받아라!’

-뻥.

.

.

.

-삐이익!

“노골, 다시 처음부터다! 그리고 이준혁! 너무 과격하다! 요한이한테 배운 거 신나게 써먹으려고 드는 건 알겠는데, 미니게임이니까 너무 거칠게 손 쓰지 말고 적당히 해라.”

“···옙!”

젠장, 나 진짜 득점력은 없구나. 하하.

그냥 크로스나 날려야지.

-*-*-*-

[헤이, 요한, 준혁이랑 사귀어?]

“아니 씨발 오스형 뭔 소리 하는거야!”

[Sibal? 주장한테?]

“아아니, 이건 실수. 하여튼 아니야 형. 갑자기 그런 말 하지 마, 온몸에 소름 돋으니까.”

맞아요 주장님, 그런 거 아닙니다.

“예, 그냥 피드백하다 보니 붙어 다니게 된 겁니다.”

갑자기 갑분싸 BL물 찍지 마세요.

그러나, 우리 외국인 주장님은 아직도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안 친한데 그렇게 피드백할 수가 있어?]

“뭐, 오히려 좀 안 친하니까 더 쉽죠.”

솔직히 말해서 강점을 더더욱 살리는 코칭이라면 모를까 서로 잘 못 하는 것들에 대하여 서로 플레이를 봐주다 보면.

-아니, 선배님, 크로스 그렇게 올리는 게 아니라-

-아니, 얌마 손 그따위로 쓰면 당연히 파울이지, 그게 아니라-

아니, 그게 아니라~라는, 요즘 말로는 아니시에이팅이란 말로 불리는 이런 표현들을 굉장히 많이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다 보면 당연히 서로 짜증을 낼 수밖에 없기에 솔직히 서로 욕 처박아도 용서되는 찐친이 아니고선 서로의 지적이 더 힘들다.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피드백을 주고받기엔 우리 정도 사이가 딱 적당했다. 서로 좀 쓴소리를 뱉어도 금 갈 우정도 없었고, 그래도 향상심은 있기에 얻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뒤끝이 무시해도 될 정도로 작은 정도의 사이.

“그리고 요한 선배랑 저랑 비슷하잖아요.”

우리 둘 다 지금 당장 현재의 폼으로 봤을 때 K리그 및 한국에서 ‘생존’ 까지 걱정해야 할 위치는 아니기에 심적으로 우리의 노하우를 나눠줄 정도의 여유는 있지만.

둘 다 피지컬이 둘 다 딸리는 중앙 미드필더 겸 풀백이어서 세계라는 벽을 뛰어넘을지는 살짝 물음표를 붙이게 되는 그런 선수들이었으니까.

아마도 그래서 그렇게 친하지 않은데도 이런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가능한 거일 거-?

“개소리하고 있네, 넌 스피드라도 좋잖아. 키도 나보단 5cm는 더 크고. 그런 놈이 뭔 비슷하단 소리를 하고 있어.”

“······”

음, 역시 이 선배님. 적응이 안 된다. 안 돼. 정말이지 마음에 들려다가도 안 드는 선배님-

“아, 그러고 보니 너 저녁 약속 있냐?”

“없습니다. 선배님. 그런데 뭔 아침식사 시간에 벌써 저녁 이야기를-”

“좋아, 그럼 내일 저녁 울산전에서 잘 뛰라는 의미로 이번엔 내가 거기에서 고기 사 주마.”

은 아니고, 참 훌륭하신 선배님임이 틀림없다. 차기 주장감이시다.

[어 요한, 너희 같이 밥 먹으러 가? 그럼 나도 같이 좀 가자.]

“에이, 벼룩의 간을 빼먹어 오스형, 형이 더 많이 벌잖아.”

[아니, 내가 쏠게.]

“···그럼 나야 좋은데 그렇게까지 가고 싶어?”

그러게, 거기에 우리 가면 50만은 깨지는데.

[주장으로서 선수들이 사이좋게 지내는 데에 도움을 줘야 하는 법이니까.]

“본심은?”

[···가끔은 집도 집이지만 늦게 들어가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지.]

“···그래요 형. 갑시다.”

···도대체 결혼이 뭐길래 저러냐.

“두 분 다 신혼인 편 아니에요? 그런데도 그래요?”

그 말에, 선배님은 씩 웃으면서 말했다.

“야, 준혁아. 너 여친 사귄 적 있지?”

“···네.”

“여친이 집에 놀러와놓고 집에서 안 떠난다고 생각하면 그게 결혼이야.”

···어, 좋은거 아닌가?

“이제 밤 늦게 잠깐 롤도 하고 싶고 옷가지 아무데나 벗어놓고 다녀도 뭐라고 하지도 않던 나만의 공간에 간섭이 생긴다는 거지.”

···음, 안 좋은 거군.

[요한, 그건 약과야, 아이 낳으면 그때부터가 진짜야.]

“그래?”

[그래, 부디 낮에 자지 말고 밤에 자달라고를 빌게 돼. 잘못하다간 다 깨더라고.]

안되겠다. 이 유부남들이 이 저출산시대에 암울한 말이나 하고 있네. 빨리 끊고 다른 이야기로 주제 돌려야겠어. 지금 꺼낼만한 주제가-

아 맞다.

“형님.”

“응? 왜.”

“저 내일 첫 홈경긴데, 뭐 준비해야 할 거 있어요?”

“글쎄? 딱히 준비랄 게 있나? 그냥 집합시간 11시만 잘 지켜.”

그 순간, 오스마르 주장님이 끼어들었다.

[아, 하지만 이건 알아둬, 생각보다 엄청 시끄러울 꺼야.]

“에이, 울산하고 리그 경기가 시끄러워 봤자죠. 한 딱 1만 명 정도 오지 않겠어요?”

상주 상무 시절이라면 어림도 없는 숫자지만, 이곳은 FC 서울. K리그에서 평균관중 1만을 찍는 세 구단 중 하나다.

그리고 울산은 그 3강에서는 살짝 떨어지는 편이고, 서울에서 좀 멀다. 원정팬들이 오기엔 꽤나 힘든 구조다.

그러니 아마 딱 원정팬 거의 안 올 테고, 홈 팀으로 채우면 1만 아슬아슬하게 나오지 않겠어?

그렇게 말하자. 주장님과 요한 선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 그 이상일껄?]”

-*-*-*-

-짝짝짝

-이준혁!

-짝짝짝

-이준혁!

오우야. 미친.

“뭐 그렇게 놀라? 너 FA컵 때 3만 명 앞에서도 뛰어 봤으면서.”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그건 결승전이고, 이건 리그전이잖아요.

‘라이벌전도 아닌 평범하디 평범한 리그전에 뭐 이렇게 사람 많이 오냐.’

아니 뭐 광주 원정에서도 거의 우리 팀 팬이 더 많이 오신 걸 보고 꽤 올꺼라곤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신기한데.

[이게 내가 서울을 사랑하는 이유야. 내가 스페인에 있을 때만큼이나 여기 팬들의 열기는 뜨겁거든]

···그렇네. 그냥 평범한 리그 경기에 1만 명이 덜컥 넘게 오면 그럴 만 하지.

-모두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세요-!

오우 소리 봐라.

~FC서울의 승리를 (짝! 짝!)

-FC서울의 승리를 (짝! 짝!)

-FC서울 오늘 승리하리라- FC서울의 승리를!

장난이 아니네, 진짜.

“그리고 이 정도면 적은 편이야. 올해 우리 광주나 성남이랑 할 때 빼곤 보통은 만오천 언저리는 찍었다고, 수원이랑 할 때는 5만 명 찍을 뻔했고”

“···와우.”

수원은 요즘은 슈퍼매치여도 3만 명 못 넘는데. 최소한 관중수만큼은 올해 서울이 압도적 1등이구나.

“오, 뭐야, 너 설마 떠는 거냐?”

“아아뇨.”

떨리긴 한다. 상주 상무의 다섯 배는 되는 관중수 아닌가.

하지만.

“엄청 신나는데요. 홈 팀 응원이 밀릴 걱정 안 해도 되니까.”

그리고 그만큼 두근거린다.

이 많은 사람들이 이젠 내 편이라는 것이.

그러자, 요한 선배가 짧게 말씀하셨다.

“그럼 평소 하던 대로만 해라.”

-오 우리의 서울~ 오 우리의 서울~

“그러면 오늘, 차원이 다른 함성이 우리들을 위해 환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