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2)
사실, 뭐 내가 이제까지 질투의 시선을 아예 받지 못했다- 고 한다면, 그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고등학생 절반 이상이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올라갈 때 좌절하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생들 또 절반 가량이 졸업하고 실업선수도 되지 못하여 축구를 그만두게 되는 이런 현실에서.
나름 내셔널리그 팀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이었고, K리그 챌린지에서 제대로 프로로 뛸 수 있었던 내가 그런 시선을 한 번도 못 받았을 리가 있나.
그렇지만, 저 선배님한테서 저런 말이 나올줄은 생각도 못 했다.
‘솔직히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고요한.
무려 중학교 시절부터 싹수가 있다며, 군 문제도 해결할 겸 과감하게 중학교 중퇴를 시켜버리고 FC 서울에서 홈스쿨링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며 애지중지 키워낸.
그리고, 그 결과 K리그의 강팀에서 K리그 통산 200경기를 넘게 뛴, 아마 다른 팀으로 휙 떠나가지 않는 이상 FC서울 최초이자 최고의 원 클럽 맨이 될 확률이 가장 높아보이는.
K리그와 FC서울의 리빙 레전드를 향해 달려가고 있고.
A매치 국가대표팀에도 지금까지 11경기나 출전하면서, 나름대로의 기록 남긴 선수.
그런 선수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믿기가 힘든 게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왔네, 빨리 옷 입어라.”
“예.”
그런 말을 한 이후로도, 별로 달라진 것도 없이 날 가르쳐주시니 더더욱 그 날 하신 말이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어제 말한 대로, 오늘은 슬라이딩 태클 할 때 쓸 수 있는 꼼수 위주로 가르쳐줄 거다. 여벌 옷 준비했지?”
“예.”
“좋아. 그럼 가자.”
물론 틱틱대던 목소리가 많이 줄어들고 이젠 그냥 서로 드문드문 필요할 말은 하는 사무적인 느낌으로 바뀐 것을 보면 분명 진심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진심이면 영 믿을 수가 있어야지.’
솔직히 질투하는 대상을 상대로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가르쳐주는 그런 선배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런 건 정말 보기 드물다.
그래서, 그냥 대충 가르쳐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촤아악.
“자, 슬라이딩 태클은 이렇게 하는 거다. 손을 이렇게 아래로 길게 뻗으면서. 한번 해봐.”
-촤아악.
“그래, 잘 따라하네. 슬라이딩 태클을 할 때는 팔을 그렇게 해야 한다. 애기처럼 얼굴 보호하려고 들지 말고 그렇게 아래로 쫙 뻗어서 상대방이 널 뛰어넘으려 들 때 언제든지 종아리를 손으로 지그시 눌러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돼.”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아주 잘 가르쳐주셨다.
“물론 너무 대놓고 하면 카드 받을 수도 있으니까. 익숙해지면 니가 태클 들어갈 때만 살짝 눌러주고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얼굴 쪽으로 접어주는 게 좋다. 자, 다시.”
이렇게 내가 모르던 사실에서부터.
-뻥
“억?”
“자, 빼앗겼다. 왼쪽 어깨에 감각이 오니까 순간적으로 왼쪽에서 밀고 오려는 줄 알았지?”
“예··· 그런데 오른쪽으로 돌아나오셨네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왼손으로 니 어깨 살짝 잡은 거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이 가지는 습관들을 이용한 페이크까지 포함해서. 어디 가서 제대로 배우기가 아주 힘든 귀중한.
“뭐, 이런 속임수도 있다. 축구는 발로 하는 스포츠라고 하지만, 솔직히 팔로도 꽤 많은 것을 할 수가 있어. 항상 손을 내버려두지 말고 어떻게 사용할지를 생각해둬.”
정말 하나하나가 실전에서 위력적이고 바로 쓸 수 있는 노하우들을 가르침받고 있었다.
-삐리리빅! 삐비비빅! 삐비비빅!
“아, 이제 시간 끝났네.”
“어, 벌써요?”
솔직히 아침 1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자 이제 끝, 그럼 아침밥 먹고 훈련장에서 다시 보자.”
“예, 들어가십쇼.”
그래서, 대놓고 질투한다고 말한 그 말을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잘못 말한 건가? 아니, 그건 아닐꺼야. 목소리는 만에 하나 내가 잘못 들었을지 몰라도, 그때 그 표정은 정말이지 진심이었어.’
그게 연기면 아카데미상 대상급 연기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축구선수로 따지면 마치 자기가 반칙해놓고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심판들을 깜빡 속일 수 있는 마성의 연기자여야 한-
‘···잠깐, 저 선배님 그런 연기자가 맞긴 한데?’
새삼스렇게 깨달은 그 생각에 잠시 혼란스럽게 머리를 휘저으며 아침밥을 먹으러 간 사이에.
“어, 준혁이냐?”
어느새 이제 2년 가까이 듣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태현 형님?”
전역하고 내가 서울에 오자 가장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상주 상무 동기. 태현 형님이었다.
“형님이 이 시간에 왠일이에요?”
“어,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김에 여기에서 아침밥 먹으려고 왔지 뭐. 오늘 메뉴 뭐냐?”
“돼지갈비찜에 만두요. 국은 미역국.”
“오, 나이스. 빨리 먹으러 가자.”
그런 모습을 보며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그렇게 할 필요까지 있나- 싶은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 이 선배님도 은근 서울 성골이잖아. 내가 알기로 100경기 언저리는 뛰셨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그러면, 그 선배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했을 것이 뻔하다.
“선배님.”
“왜.”
“밥 먹고 잠깐 카페 좀 같이 가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사드리겠습니다.”
“···? 뭐, 그래.”
-*-*-*-
-탁.
“자,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음, 좋아. 땡큐.”
-쪼오옥.
“선배는 10월 아침인데 아이스에요?”
신기하네.
“뭘 모르는구나, 자고로 아메리카노는 얼어 죽어도 아이스다. 설령 겨울이라고 해도 나는 아메리카노에 얼음을 넣을 거란다.”
···이게 바로 얼죽아인가 뭔가 하는 거구나.
“그보단 난 니가 더 신기하다. 그거 안 써? 에스프레소잖아.”
“···쓰긴 쓰네요.”
“근데 왜 그걸 시켜먹었어.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먹지.”
아, 저라고 이런 거 먹고 싶어서 먹는 줄 아십니까. 유럽에선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이런 거 먹는다길래 그냥 한번 시켜본 건데 이렇게 쓸 줄은 몰랐죠.
“그냥 그게 가장 싸서 시킨 거지?”
“···아니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무슨 소리입니까. 다 유럽 적응을 위해서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저얼대 돈 아낄려고 시킨 게 아니란 말씀.
“자 그럼, 우리 준혁이는 뭔 할 말이 있어서 갑자기 카페에 온 거냐?”
“···아니 그냥 올 수도 있죠.”
“거짓말하지 마 이 녀석아. 군대에서도 돈 아낀답시고 카페 자주 안 갔던 니가 내가 말 몇마디 했다고 툭툭 기어와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먼저 사주겠다고 하고 나왔잖아.”
“······”
젠장, 속일 수가 없네. 역시 군대에서 같이 살다 보면 사람들이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보아하니 뭐 나한테 궁금한 게 있는 것 같은데, 말해봐라. 뭐가 궁금하길래 이렇게 뇌물까지 바친 거냐?”
음-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돌려서 말해봤자 소용 없을 테니.
“형님, 저 어떤 선수에요?”
“···갑자기 쌩뚱맞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 저번에 요한 선배가 저 보고 부럽다느니 그런 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런 내 말에, 태현 선배님은 조금 놀란 눈을 보여주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긴, 그럴 만 하지.”
“네?”
이건 또 뭔 소리야.
“음- 요한이도 말이야, 원래 해외진출이 꿈이었었다?”
“네?”
미친, 이건 또 처음 듣는 소린데? 서울의 성골 중에서 성골이 그랬다고? 서울에 남겠다고 에이전트도 짤라버린 그 사람이?
“진짜요?”
“진짜로, 그래서 작년 여름에 이적하려고 했었어.”
그 말에 나는 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클럽에서 핵심 주전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겨울도 아니고 여름에 이적을 시도한다는 건 진짜로 해외에서 뛰고 싶다는 욕망이 엄청나게 클 경우에나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굳이 왜요?”
“글쎄? 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도했던 건 사실이야. 나이도 나이니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한번 진지하게 해외 나가보려고 했었던 거려나?”
“······”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영혼까지 모두 검붉은 색일 줄 알았던 그 선배님도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다는 말 때문에 말이다.
그리고-
‘집중해서 들어야겠네. 이거.’
나름 나랑 비슷한 케이스 아닌가. 내 나이대의 선수가 해외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알 만한-
“그런데 중동에서밖에 오퍼가 안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대우도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그래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남았던 거야.”
“······”
“뭐, 작년에 엄청 잘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솔직히 충격적이었겠지.”
음, 듣지 않는 게 좋았을지도··· 굉장히 희망을 많이 부수는 말이네.
“그러니까 니가 부러운 걸지도 모르지. 2년 전에는 2부리그에서 옵션까지 다 합쳐서 6천만 받던 미드필더였는데, 지금은 보장연봉만 그 네 배고, K리그 베스트 11에, 유럽까지 각 보고 있으니 말이다.”
“···유럽은 아직 각 안 보고 있는데요.”
“짜샤, 다 소문났어, 유럽 구단들 상대로 바이아웃 걸었다메.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젠장, 진짜 이 바닥엔 비밀이란 게 없다. 없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요한이랑 너랑 맡는 역할도 비슷하잖아? 측면 수비수에, 중앙 미드필더 땜빵도 꽤 자주 하는 거.”
“···그렇죠.”
물론, 세세하게 따지면 왼쪽 풀백과 오른쪽 풀백이라는 차이에서부터, 그 선배는 좀 더 공격적으로 위에서 노는 경우가 많고 나는 수비적인 포지션에서 노는 경우가 많다는 차이점도 있긴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라면 많이 비슷하다고 볼 만했다.
“그러니까 당연히 널 보면서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거야. 나이도 한 살밖에 차이 안 나잖아.”
-나는, 열심히 한 게 맞나?
-나는, 정말로 지금이 최선이었을까?
“그런 식으로, 너에 대한 의식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을 거란 말이지. 요즘은 국가대표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
“······”
그 말은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런 사람에게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건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이상한 건-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덤덤한 정도로 끝내고 나한테 잘 가르쳐 주냐는 거지.’
소고기 사준다고 잘 가르쳐준다고?
천만에, 솔직히 그 선배, 서울에서 4년 넘게 주전 먹었는데 그러면 솔직히 보장되는 연봉만 3억은 무조건 넘길 거다. 공격수가 아니라서 보장 5억까진 못 갈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먹고 사는 데 큰 지장은 절대 없을 선수란 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소고기 하나에 핵심 노하우까지 줄줄줄 잘 가르쳐준다니. 말이 안 되잖-
‘잠깐만? 그럼 혹시···’
-*-*-*-
-탁.
“뭐 하는 거냐? 왜 갑자기 꼬깔을 가지고 와? 너 나한테 반칙 기술 배우고 싶다고 한 거 아니였어?”
그 퉁명스러운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예, 맞죠.”
“그런데 왜 굳이 이런 식으로 꼬깔을 배치해?”
“아니, 가끔씩은 좀 다른 연습도 해야죠.”
예를 들어-
“크로스 연습이라던가, 말이죠.”
“······”
“한번 받아주세요.”
그 말에, 선배는 살짝 주저하더니 위치를 살짝 잡고, 저쪽으로 가서 달리기 시작했다.
“갑니다-!”
.
.
.
.
.
.
“하아- 수고했습니다. 선배님, 역시 가끔씩은 이렇게 크로스도 써 줘야 기운이 풀리네요.”
“······”
음, 말이 없네. 혹시 잘못 판단한 거였나?
“그럼, 내일 아침 또 뵙겠습니다.”
그 순간, 선배님이 날 불렀다.
“···어떻게 알았냐?”
빙고.
“제가 그랬거든요.”
내 실력을 단 한 발짝이라도 늘리기 위해서 나보다 더 뛰어난 선수에게 내 강점을 팔아서라도 같이 훈련하며 그 선수의 습관이라던가를 알아서 배우고. 또 배우고.
그럼으로서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경험을. 나도 겪었으니까.
“그래서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도 같았거든요.”
그건 질투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말로는- 향상심이라고 해야겠지.
이 형님은, 나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고.
또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려고 한 거다.
그러니-
“앞으로 이렇게 번걸아가면서 서로 노하우 좀 공유하죠. 형님.”
-척.
“······”
아, 손 잡아줘요. 빨리. 뻘쭘하잖아요.
“아직 시간 조금 남았으니, 나도 하나 가르쳐주마.”
“······예? 예.”
거 참, 솔직하지 못하신 양반이시구만.
뭐, 그래도- 참 신기하다.
‘저 선배님이 나한테 배울 점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는 게, 정말 신기하다. 진짜.’
어느새, 내가 이렇게 올라와 있었구나.
그러니-
“예예, 갑니다-”
오늘 하루는, 순수히 기뻐하자.
내가, 어느새 남에게 가르침을 받기만 하던 대상이 아니라.
남들에게 가르쳐줄 무언가가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