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1/167)

분석과 성장 (4)

2016년 10월 2일

[예,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올해 K리그도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죠. 지금 여러분은 저희와 함께 2016 K리그 클래식 33라운드, 광주 대 서울, 서울 대 광주의 정규 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함께하시고 있습니다!]

캐스터의 말에 몇 안되는 K리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해설자가 바로 추가설명을 해줬다.

[예, ‘정규 라운드’가 끝나게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오늘 경기를 마지막으로, 이제 K리그는 우승 경쟁 그룹과 강등 경쟁 그룹으로 나뉘게 됩니다!]

캐스터의 말대로였다. 이제 K리그는 33라운드를 기점으로 정규 리그가 끝나고.

1위에서부터 6위까지를 Group A, 그리고 6위에서부터 12위까지 Group B로 나뉘어. 서로의 그룹에 속한 팀끼리 5경기를 추가로 진행하게 되는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기 때문이다.

[그걸 생각하면, 오늘 정규 라운드 마지막 이 경기는 서울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경기입니다.]

[그렇죠, 이제 하위권 팀과의 경기에서 승점을 얻을 기회는 더 이상 없으니까요!]

그렇다. 이제 서울은 남은 경기에서 모두 6위 이상의 만만치 않은 팀들만 만나니, 그나마 약한 팀과의 경기라고 할 수 있는 오늘 광주전에서 무조건 승점을 따내야 했다.

[그걸 감안하면, 서울이 오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네요. 아! 마침 두 팀의 선수 명단이 제출되었다고 하는군요! 함께 보시죠!]

그리고 그 모습을 인터넷 중계로 보던 서울의 팬들은 살짝 놀랐는데.

-????

-온쓰 미쳤냐? 요즘 왜 이렇게 4백 좋아해?

그 플랜 A만 집중하던 감독, 최용주 감독이.

쓰리백이 아닌 포 백을 또 다시 꺼내들었던 거다.

-*-*-*-

-삑.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음 광주전 우리의 전술은 포 백이다.”

그 선언에 FC 서울의 선수들이 살짝 놀라는 눈치가 보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용주 감독은,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딱 콘테형 감독이다. 확고한 플랜 A 전술을 시즌 내내 돌리고 또 돌리는 그런 감독님인데 이런 변화를 추구하시다니?

그런 의문이 가득 담긴 우리들의 눈빛에, 최용주 감독님은 평이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하면 다음 경기는 분명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경기이기도 하지만, 우리 팀에 새로 온 저 친구의 무난한 데뷔전을 위해서이기도 하니까.”

-짝.

“이준혁, 나와서 모두에게 정식으로 인사해라.”

아, 젠장.

‘겁나게 뻘쭘한데···’

사실, 나는 FC 서울에 들어온 지 일주일 째라곤 하지만, 그냥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작년 FA컵에서 우승컵 뺏어가는 마지막 골을 넣은 선수를 좋아할 리가.

‘게다가 솔직히··· 난 곧 나가고 싶다고 하고 당당하게 들어온 선수잖아.’

유럽 구단 상대로 바이아웃 50만 유로라는 값을 보면 암만 봐도, 여기에서 뼈를 묻기보단 혹시라도 유럽의 제안이 오면 바로 떠나버리겠다는 소리이니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거기에다 플러스.

-개랑이 여기 왜 왔냐? 아래로 안 가고?

아마도 내가 수원 팬이라는 소리가 쭉 퍼진 모양인지 이런 소리까지 들었고 말이다. 그래서 소올직히, 그냥 내 할일이나 하는 형식으로 살자고 결심했다.

어차피 나도 솔직히 상무에서나 막내 취급 받지, 일반 클럽에서야 중견 고참은 되니까 쌩 깔려면 얼마든지 깔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록 우리의 FA컵을 빼앗았던 친구지만, 지금은 분명히 우리 팀이 된 친구니까, 모두 환영해줘야지. 자, 다들 박수쳐.”

그게 저 감독님한테 들킨 모양이다.

“어, 이미 입단한 지 좀 지났지만 이렇게 다시 인사드립니다. 이준혁입니다.”

-짝짝짝짝짝.

“작년에 제가 우승컵을 빼앗아 간 만큼, 올해 이 팀에 트로피를 채워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뛰겠습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들어가자, 감독님은 썩 만족스럽진 않지만 일단은 넘어가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오늘의 포메이션을 설명했다.

-짝.

“물론 우리가 쓰리백에 익숙해져 있는 만큼, 살짝 다른 움직임을 보여줄 거다. 고요한!”

“예!”

“너는 오늘 오른쪽 윙어로 선다.”

그 말에 다들 조금 놀랐다. 만능 멀티플레이어인 고요한이긴 해도 올해 오른쪽 윙백으로 뒤었을 때가 가장 좋은 활약을 보인다는 것이 이미 증명된 상태였는데, 굳이 오른쪽 윙어로 올린다는 것은···

“오른쪽은 오늘 공격을 자제하고, 수비 위주에만 집중한다. 오늘은 왼쪽을 위주로 공격을 풀어나갈 꺼야. 좀 더 자세히 보여주자면-”

-탁탁.

“오스마르, 너의 판단하에 좌측이 더 빠르게 공격할 수 있는지, 중앙이 더 빠른지를 선택하여 공격을 전개해라.”

화살표를 보니, 오늘 우리의 공격 전술은 명확했다.

오스마르의 판단하에, 중앙으로 볼을 전개할 경우엔 다카하기와 주세종이 빠르게 짧은 패스를 주고받으며 공격.

혹은-

“좌측으로 볼을 줄 경우, 좌측의 볼 운반은 온전히 이준혁 네가 맡는다. 그리고 일록이 너는 측면과 중앙의 그 사이, 하프스페이스를 파고들어서 최대한 적을 교란시키는거다.”

하프- 스페이스(Half-space)

최근 연구되기 시작한 개념으로.

피치를 세로로 나눌 때 좌측, 중앙, 우측. 이 3등분으로 보는 게 아니라. 5등분으로 좀 더 세밀하게 나누어 측면이라기에도 애매하고 중앙이라기에도 애매한 이 영역을 일컫는 공간.

“이 공간을 오늘 우리는 최대한 활용해볼 거다.”

그러자, 오스마르 쪽이 뭐라고 말했고, 다행히 영어라 그런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감독님? 제가 올라갈 경우, 뒷공간이 조금 위험해 보이는데요. 올라가도 괜찮은가요?]

대충 이런 말이었다.

그리고, 오스마르의 의문에

“좋은 지적이다. 오스마르. 이제부터 차근차근 설명하마.”

최용주 감독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우리 팀을 공략하는 팀들의 전술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전술들에 한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페널티박스 안에 선수들을 꾹꾹 집어넣고 우리의 측면 뒷공간을 노린다는 거지.”

순간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우리가, 아니 상주 상무가 저번에 FC서울 이겨먹을 때 썼던 방식이 그거였으니.

“그래서 나 역시 많이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이걸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저놈들이 더 이상 측면을 못 공략하게 만들 수 있을까?”

“······”

그 질문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저건 질문이 아니라 설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나온 나의 답안 중 하나가 이거였다. 측면의 적들이 아예 수비만 하도록 만드는 거지. 적들이 스스로 라인을 내리도록 만들어 치명적인 위협을 주는 횟수를 줄이는 거다.”

그 선언에, 나는 살짝 소름돋았다.

저건 상대방이 수비를 한다고 가드를 치고 있으면, 가드째로 두들겨 패는 전술을 쓰겠다는 소리 아닌가. ‘그’ 재미없는 축구를 추구하는 최용주 감독이 공격적인 전술을 쓰다니.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힐끗 돌려보자,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 했다.

“모두 이상한 표정이 되셨군 그래? 내가 이런 전술 쓴다고 하니 다들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구나.”

“······”

“뭐, 너희들이 그렇게 생각할 만 하다. 내가 그동안 해 온 게 있으니까.”

전술판을 치우며 최용주 감독님은 말을 이어갔다.

“물론 지금 전술은 내가 했던 짓과는 거리가 멀다. 솔직히 내가 윙어를 쓰는 전술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도 막 바꾸고 싶고.”

“하지만, 나에겐, 그리고 우리에겐 지금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연두색 친구들에게 계속 패배하면서 시즌을 마칠 수도 있을 위기니 말이다.”

그 말을 듣자, 모두들 눈빛이 달라졌다.

전북, 전북. 이번 시즌 서울에게 있어 거대하고도 높은 산.

“그 연두색 친구들을 넘기 위해서는, 우리는 기존의 전술만으로는 안 된다. 기존의 전술도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플랜 B인 이 4-4-2의 완성도도 높여야만 한다.”

-짝!

“자, 그럼, 팀 훈련 시작이다. 모두 일어나!”

-*-*-*-

[정조국! 슛-! 슛-!]

[아, 오스마르가 태클로 바로 끊습니다!]

오케이!

“Hey-!”

-뻥.

[아, 오스마르, 왼쪽으로 볼을 연결해줍니다!]

[이준혁, 빠르게 드리블합니다!]

‘···비록, 내가 측면을 다 해먹는 쓰리백만 쓰시진 않을 거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확실히 즐거웠다.

[아, 송승민, 달라 붙습니다만-]

나에게, 더 많은 임무가 부여되고.

‘광주 쪽 이종민 선수 위치가 이럴 때 보통- 송승민 선수보다 중앙에 섰지?’

[바로 빠져나갑니다! 달려나가는 이준혁!]

[아, 바로 측면으로 두 명의 선수를 제껴버립니다! 저 선수를 저렇게 훤히 놔두면 안 되는데요!]

기존의 팀들과는 다르게, 저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섬세하게 분석해서 알맞은 돌파를 선택하고.

[아, 이준혁! 중앙으로 땅볼 크로스!]

[아, 윤일록! 윤일록 선수, 언제 저기까지 가 있었나요!]

[김민혁 선수, 당황했습니다! 포백 보호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어요!]

[본즈 선수! 달려듭니다! 달려드는데-]

패스를 넣어주면서 그 결실을 본다는 것은.

[고오오오올-! 윤일록 선수의, 아주 멋진 골입니다!]

[1골 1도움이라뇨! 윤일록! 멀티 공격 포인트입니다! 아주 미쳤어요! 이 선수. 아주 미쳤습니다!]

상주 상무에서 느겼던 즐거움과는, 또 달랐다.

모두가 성장하며 갈수록 더 나은 성과를, 승리를 추구했던 상주 상무에서의 경기와는 달리.

이들은, 딱딱 기계처럼 들어맞는 느낌이었고.

그러한 전술을 충실히 수행할 줄 아는 완성된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낼 경우.

- 영원한 승자~ 에~프씨 서울~ 검붉은 깃발을 광주하늘 높이 올려라 승리의! 함성을! 외치자~

[아, 서울 팬분들이 아주 신나해하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지금 전반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2대 0이니까요. 사실상 오늘 경기를 잡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홈 팀보다 더 많은 팬들을 등에 업고 경기하는, 이 K리그에서 수원과 함께 가장 열광적인 팬들이 응원해준다는 것도.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운 느낌이었고.

이 모두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 너 진짜 잘한다? 박태준, 걔가 이제 보니 니 빨이었구나?”

“에이,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걔 돌아가서 풀타임 선발 뛰고 있는데도 아직 공격포인트 하나도 못 올리고 있더만”

[쓰리백 전술하에서 아쉬운 모습만 보였던 윤일록 선수가, 정말이지 미친 듯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네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당연코 이준혁, 저 선수입니다. 지금 측면에서 볼 운반을 거의 혼자서 도맡았어요.]

그리고, 이 거대한 FC서울이라는 팀의 마지막 스퍼트에. 내가 영향력을 뿌리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뭐, 다른 사람들은 너 싫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너 정말 환영한다. 너 아니었음 우리 감독님이 포백 쓸 일 영영 없었을 것 같거든. 고마워”

“하하,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내 자리로 돌아가면서,

-오~오오오오오~ 승리를 향해 가자~

원정팬들이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보고, 나는 피식 웃었다.

‘저 깃발이 반가워보일 줄은 몰랐는데. 세상 일 참 모르는 거구나.’

그래, 곧 떠난다고 해도 난 지금 FC서울의 선수다.

그러니 여기에 있는 잠시 동안은, 유럽이고 뭐고.

-서울을 사랑한다~면 검붉은 기를 올려↗~

검붉은 피를 가진 전사로서.

[전북 현태는 지금 불안하겠습니다!]

[그렇죠! 긴장해야 합니다. 지금 전북은 상주와 무승부 상태니까요! 만일 그러면 승점이 2점 차이로 좁혀집니다!]

이들에게 우승컵을 가져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

<2016 K리그 클래식 33Round>

[경기 종료]

광주 FC 1 : 3 FC 서울

[골]

광주 FC : 여름(47)

FC 서울 : 주세종(10), 윤일록(45), 데얀(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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