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0화 (110/167)

분석과 성장 (3)

2016년 09월 28일.

[골-! 김신욱의 멋진 마무리입니다!]

[경기 종료 6분을 남겨두고 터진 김신욱의 득점포! 이제 전북은 사실상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내며 2차전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 미친. 망했네.”

비록 아직 1차전이긴 하고 아직 서울 상암에서 열리는 2차전이 있긴 하지만, 사실상 이 정도면 결론이 나 버렸다.

왜냐고?

-삑! 삑! 삐이익-!

[경기 종료합니다! 4대 1! 전북이 전주성에서 서울을 압도합니다!]

***

<2016 AFC Champions League Semi-Final 1st Leg>

[Game Over]

Jeonbuk 4 : 1 FC Seoul

[Goals]

Jeonbuk : P. Leonardo(21,39), P.Lopes(25) Kim Shin-wook(83)

Fc Seoul : Ju Se-jong(45)

***

4대 1, 4대 1이니까. 역전하려면 3대 0 해야한다.

아 물론 서울이 2차전에서 기적을 쓸 수도 있을 거다. 세상 축구사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는데.

그런데, 올 한해 4번 만나서 무승부도 없이 모두 패배를 박았는데, 다음 경기에서 3대 0 이상의 승리를 할 꺼라고 누가 예상할까. 하하.

“햐,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전북 저새끼들 진-짜 엿같이 축구 잘한다.”

비록 FA컵 8강에서 부천에게 탈락한 옥에 티가 있긴 하지만. 일단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도 사실상 결승 진출이라고 봐야 했고. 리그는 승점 감점에도 불구하고 다시 1위 탈환에 성공.

이 성적을 보고 누가 그들보고 실패한 시즌이라고 말하겠는가.

“에휴- 나도 저기에 나가고 싶었는데. 못 나가는 게 너무 아쉽다.”

그래, 나는 아챔에는 나가지 못한다.

보통 유럽에서도 국내 리그 출전 명단과 국제대회 컵 대회 출전 명단이 따로 있듯이. 아시아 쪽도 똑같다. 국내 리그 출전 명단과 국제대회 컵 대회 명단이 따로 있고. 그 명단에 들지 못한 선수는 출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나는 9월에 전역한 군 전역자다. 일반적이라면 팀에 등록을 할 수 없지만, K리그의 로컬 룰에 의하여 팀에 등록될 수 있었던 선수란 말이다.

즉, 여름 이적시장이 끝나고 나서 전역한 케이스이기에 내가 출전이 허용되는 건 국내 K리그, 그리고 FA컵뿐이다. 국제대회는 당연-히 못 나간다. 젠장.

“에휴- 그래, 내가 저거 봐서 뭐하겠냐, 방송 끄고 원래 보려던 거나 좀 더 보자. 봐.”

그렇게 내가 중계 영상을 끄려던 와중, 눈에 들어오는 채팅들이 있었다.

- 정의구현 실패···

-ㅆㅃ 내가 난생 처음으로 북패ㅅㄲ들 응원했는데 지네 매북 저새끼들 도대체 언제짐?

-응 꼬우면 니네도 매수해~

“와, 이건 또 신선하네.”

밑의 어그로는 차저하더라도, 좀 신기할 수밖에 없었던 게.

“원래 서울은 공공의 적 분위긴데, 이젠 전북이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구만?”

원래, K리그 공공의 적 1호는 FC 서울이다.

안양에서 서울로 좀 매끄럽지 못하게 연고지 이전을 하는 바람에 K리그 팬들에게 그야말로 욕을 배부르게 먹고 북패라는, 뜻 풀이를 하면 상당히 쎈 단어가 들어간 별명이 생겨버렸고.

00년대에는 사실상 서울 상대로 이기면 정의구현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올 정도로 까였던 팀이란 말이다.

그런데, 지금 채팅들을 보아하니 그 공공의 적 포지션이 전북으로 옮겨간 듯한 느낌이었다.

“쯥, 하긴 그렇지.”

연고지 이전이 평범하게 죽을 죄라면, 심판 매수는 뼈와 살을 발라내서 죽여야 하는 능지처참할 죄니까 말이다.

그런데 너무 솜방망이 징계만 쳐맞고 그런 거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이 잘나가고 있으니 모두가 합심해서 패는 게 당연한 거다.

“이거, 이러면 암만 봐도 전북 이제 별명 딱 붙여질 것 같은데. 매북으로.”

원래는 최대 멸칭이 서포터즈가 짱돌 던져서 돌북이라거 부르거나 모기업이 자동차 팔아대서 똥차라고 했는데. 이젠 저거 하나로 다 정리될 분위기였다.

그냥 올해 깔끔하게 강등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이렇게 외치기라도 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옹호하는 세력도 있고 그랬을 텐데.

그게 아니라 솜방망이 징계 쳐받고 그런 거 신경도 안 쓸 수 있을 정도로 잘나가고 있는데 저런 멸칭으로 부르자는 말을 자정하자는 소리가 나올까?

···솔직히, 내가 생각하기론 아니었다.

“진짜 전북은 올해 저 매수 사건만 아니었으면 최고의 한해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에휴, 매수는 왜 해가지고 진짜··· 전북 팬분들만 불쌍하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중계 방송을 완전히 꺼버리고, 나는 원래 하려던 행동을 시작했다.

“아, 씹, 이거 왜 이리 키기만 했는데도 렉이 이렇게 걸리냐.”

바로, 분석 프로그램을 나도 두어 개 깔아서 쓰기 시작했던 거다.

물론 제대로 배운 건 아니였다. 솔직히 제대로 배우려면 10시간이 넘는 정규 교육 코스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하는데

-이준혁 선수가 분석관 하실 건 아니잖아요?

그러시면서 선수에게 유용한, 실전에서 쓰는 기능들 몇 개만 야매로 대충 가르쳐주셨던 거다. 그리고, 그 ‘야매’ 만으로도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다.

“스피드, 거리, 가속도, 감속도, 스프린트··· 이런 훈련 데이터까지 아주 알뜰살뜰하게 측정하는구만.”

그리고 심박수랑 스텝 밸런스도 가르쳐줬는데, 이건 도대체 언제 측정한 건지 모르겠다. 메디컬 테스트 때 뭐 주렁주렁 이상한 옷 입히더니 그 때 측정한 거였냐?

그리고 경기 분석은? 그야말로 끝내줬다.

“광주 선수들이 자주 슈팅 날리는 구역, 구역별 기대실점, 가장 조심해야 할 위험지역 이런 것까지 다 나오네 진짜. 어휴.”

보통은 이런 거 그냥 비디오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반복적으로 익혀야 해서 진짜 하루종일 붙잡고 있지 않은 이상 ‘제대로’ 된 분석은 어려운데. 이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정말로 분석하는 데 마우스 몇 번만 꾹꾹 누르면 다 나왔다.

‘이거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갈렸을까···’

점심시간에 배우러 갈 때마다 뭐 하루종일 혼자서 계속 경기랑 훈련 촬영한 영상 편집하고 데이터 입력하고 코딩하고 그러시던데, 진짜 대단하시다. 하.

“좋아, 그럼 이번엔 패스별 설정··· 앗.”

-그르득득.

“아 씹, 전체 다 보여주도록 잘못 설정해서 또 렉 먹고 있네. 노트북 바꿔야하나 진짜?”

내 돈이 얼마나 남아 있지? 중고차 하나 샀고, 이것저것 식재료 샀고, 또 이번 달 내가 해치울 음식값 생각하면···

“···음, 그냥 디스크 조각모음이나 하고 써야겠구나.”

부디 다음 월급 받을 때까지만 버텨다오 노트북아.

-*-*-*-

“휴우- 젠장, 이건 또 슛이 패스로 기록되어 있네. 젠장. 이건 도대체 언제쯤 고쳐질련지.”

그 말과 함께 이길천 경기분석관은, 오늘도 일찍 잠들긴 글렀다고 생각하며 데이터들을 수정하고 있었다.

“아니 패스랑 슛을 구분하는 건 힘들다고 쳐도 크로스랑 패스는 구별 좀 제대로 해줄 수 없나 진짜. 이것 때문에 항상 시간 항상 잡아먹네.”

하지만 이미 수없이 말한 불평불만이지만 고쳐지지 않는 단점이었기에, 분석관은 언제나 그렇듯 자연스럽게 레드불 캔을 비우기 시작했다.

“끄-윽. 아, 진짜, 빨리 구글이 알파고 축구 쪽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좋겠구만. 바둑도 이겼는데 저런 건 더 쉽게 구별 가능할테니.”

그렇게 더 나아진 미래를 기대하면서 다시 갓 들어온 따끈따끈한 전북과의 경기를 다시 코딩하던 도중.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이메일 알림음이 뜨자, 일단 이것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자고로 업무하고 있던 중에 이메일이 들어온다면 무조건 확인해야 하는 법이 회사원의 숙명인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보통 작업 중에 이메일이 온다면 그건 수정사항이나 요구사항인 경우가 많은 법.

‘···설마 추가 업무 시키시는 건 아니겠죠, 김감독님..? 제발 그건 아니라고 해주시죠.’

다행히도, 아니었다.

-account seoul23 log out

‘······’

그냥 프로그램 로그아웃 메세지였다.

그리고 그 이메일을, 분석관은 꽤나 신기한 눈초리로 봤다.

“허, 이 친구, 이제야 나갔네? 지금 밤 12신데?”

뭐, 다음 경기는 10월 2일에나 있으니 큰 무리야 없겠지만, 그래도 이 시간까지 분석 프로그램을 돌려봤을 줄이야.

“흠, 언제부터 켜 놓은 건지도 한번 확인해 봐야겠군.”

그리고 이메일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 저 선수의 아이디로 한번 다시 접속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꽤나 놀랐다.

“오, 대단한데.”

9시 50분에 프로그램을 킨 걸 보면, 사실상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끝나자마자 프로그램을 돌렸단 소리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냥 켜놓고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아니었고, 본 자료들도 굉장히 수비수들에게 필요한 자료들 위주로 딱딱 잘 봤다.

“이 친구, 생각보다 진짜 분석에 진심이구만?”

솔직히 말해서 대부분의 선수들은 분석 자료를 가져다 줘도, 잘 안 들어먹는다.

다들 자신들이 더 잘 드리블하면 그만. 자신들이 조금 더 집중하면 그만.

이렇게 생각한다. 생각이 많아지면 움직임이 위축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유소년 때부터 이런 분석자료를 접해오지 않는 축구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아직 이런 식으로 해서 이전에 비해 훨씬 강해지면서 우승을 차지한 클럽 팀이 없다는 것도 한 몫하고 말이지.’

사람들은, 결국 성공한 사람을, 그것도 1등을 따라간다.

학교에서 다들 전교 1등의 공부법을 궁금해하고 따라하려고 하지 전교 2~3등의 공부법을 따라하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스포츠도 결국 우승한 팀의 운영방식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선수들을 영입한다.’ 던 아스날, 리버풀 두 팀이 오히려 예전에 비해 잘나가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따라하려고 했겠는가. 독일이 우승하기 전까진 아시아권에서 정말 이런극소수 일부만 빼곤 쳐다도 안 봤다.

“그런데, 좀 다르구만? 이 친구는.”

그냥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쓰는지 알자마자 저렇게 분석하는 데 시간을 쏟아붓다니, 굉장히 특별한 친구였다.

그 생각까지 들자. 분석관은 잠시 코딩을 멈추고, 다른 프로그램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머리도 식힐 겸 저 친구가 상주 상무에서 보여준 모습을 훈련에서 보여준 테이터값을 이용해 한번 돌려본 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잠깐, 이게 맞나?”

충격적이었다. 다시 돌려봐도 돌려봐도 똑같았다.

“이 모습 그대로 광주전에 들어간다고 치면 팀 xG가 경기당 평균 0.4가 상승할 거라고?”

XG(Expected Goals), 번역하면 기대득점.

간단하게 말하자면, 저 친구가 투입되면 경기당 평균 0.4골을 더 집어넣을 것이고, 38경기 리그를 진행하다 보면 팀 득점이 15득점이 더 증가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15득점은 평범하게 득점 하위권에 속하던 팀을, 팀 득점 1위로 바꿔버릴 수 있는 차이다.

“휘유- 솔직히 엄청나게 기대 이상인걸? 이거, 난 솔직히 올해는 저 친구 후보가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만? 바로 이렇게 적응을 빠르게 해버리다니.”

자료도 저렇게 나왔겠다. 마침 치우 선수도 휴식이 필요했으니-

“저 친구, 다음 광주전에 꼭 넣어보자고 한번 강력하게 주장해 봐야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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