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167)

분석과 성장 (2)

“···와우.”

말이 안 나온다.

“좀 놀라셨나요?”

“···예, 좀, 아니 많이 놀랍네요. 저도 라이센스는 딴 사람이지만, 이 정도로 상세한 보고서는 처음 보는데요.”

사실 나도 B라이센스까지 따 봤던 만큼 이런 거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차원이 다르다. 무슨 평가 요소가 21개나 되냐.’

이제는 선수 평가 요소도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구나. 선수를 평가할 때 평가요소를 테크닉, 피지컬, 멘탈리티로 나누고 또 그걸 7개로 나누다니. 무슨 게임 능력치창 같이 날 분해해 놨네.

“하하, 이제는 모든 능력치가 좋다고 육각형 선수라고 말하는 시대가 지났습니다. 그 이상으로 평가요소가 세분화됐거든요. 대학교 졸업할 즈음에 B 라이센스를 따셨다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대학생 재학 시절 C라이센스까지 취득해둔 후, 2012년 초에 B라이센스를 취득했다. 그 때는 이미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긴 했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축구라는 쪽에서 일할수도 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래서 솔직히 고작 4년만에 분석이 그 때에 비해 얼마나 자세해졌나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 때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진짜, 고작 4년 사이에 이렇게까지 변화할 수가 있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스탯표도 이젠 별의별 처음 보는 이상한 것도 쓰네? xG? xA? 이건 다 뭐야?

“하하, 당연하죠. 이준혁 선수, 축구는 계속해서 발전하고 또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이제 점점 구단들이 선수를 판단할 때 피상적으로 보이는 골, 어시스트 같은 요소의 중요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분석관님의 그 말을 듣자,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한 거죠? 고작 4년만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고작 4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바뀌다니. 축구계에 뭔 일이 있었던 거야?

그런 내 질문에, 경기 분석관은 조금 머리를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음- 이준혁 선수, 야구를 좀 아시나요?”

“어··· 어린 시절에만 좀 봐서 최근 야구가 뭔지는 잘 모릅니다.”

아버지가 은퇴하시고 난 이후론 야구를 제대로 보는 수준은 아니었다.

“음, 그래도 그 정도면 어느 정도는 아시겠네요. 류현진 선수는 좀 아시죠?”

“···뭐, 그 정도는 알죠.”

류현진. 비록 지금은 부상으로 인해 부활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되는 선수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야구대표팀 국가대표 1선발이자 세계 최고의 야구 선수들이 뛰는 메이저리그에서 찬호-팩 형님 이후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그 선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선수가 활약하던 2013, 2014년도 기사를 떠올려보시면 아시겠지만 원래 야구계에서 쓰던 스탯이 아니라, 야구계에 막 처음 듣는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아, 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무슨 스포츠 기사란에 WAR니, FIP니 하는 난생 처음 듣는 용어가 엄청나게 많이 등장했었지. 나중에 보니까 무슨 세이버매트릭슨가 뭔가 하는 새로운 선수 평가 기법이라고 했고.

“예, 그런 식으로 한 2000년대 초반에서부터 미국 야구에서는 기존의 스탯들이 선수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세이버메트릭스라고 일컬어지는 새로운 스탯들을 통해 선수들을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성공했죠.”

그러면서 분석관은 신나게 머니볼이라던가, 페니볼이라던가, 80년이 넘게 우승을 못해본 팀이 이걸 접목시켜서 결국 우승을 해낸 야구계에서 새로운 방식을 통해 좋은 성적을 낸 사례들을 이야기해줬다.

“그래서, 마침 축구단도 가지고 있는 미국의 몇몇 구단주들은 당연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분석법을 축구에도 쓸 수 있을까?”

어···

“그거 리버풀 이야기인가요?”

“맞습니다. 리버풀도 그렇고 아스날같이 미국인 구단주들이 있는 팀들은 대부분 그런 시도를 했습니다.”

어··· 그런데, 그건 좀··· 좋은 예시는 아니지 않나?

‘아스날이야 그래도 저번 시즌에 2위 했지만, 리버풀은 완전 폭망했잖아.’

당장 저번 2015-16 시즌에 리버풀은 8위를 찍고 유로파 리그 진출조차 실패하면서, 한때 챔피언스 리그는 기본이요 가끔씩 리그 우승을 다투던 그 영광을 잃고 완전히 몰락해 버렸으니까.

“표정을 보시니 무슨 소리를 하고 싶으신지 알겠네요. 예, 뭐 처음엔 잘 통용되진 않았습니다.”

“그렇죠, 축구를 스탯으로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데요.”

그래, 어디서 감히 축구를 스탯만으로 평가하려 든단 말인가. 야구와는 달리 축구는 훨씬 다이나믹하다.

예를 들어, 야구는 우리 팀이 홈런타자가 엄청 많다. 그런데 이만수, 이승엽 같은 홈런 타자가 팀에 들어왔다. 그럼 팀이 어떻게 될까?

정답은- 그냥 평범하게 더 세진다. 야구는 좋은 선수들 사이에 좋은 선수를 끼워넣는다고 해서 팀이 약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는 1+1 = 2가 성립되는 스포츠니까.

‘물론 뭐 선수들끼리 싸우거나 해서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거나 하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외부 요소를 빼고 그냥 선수들의 실력만 볼 경우엔 야구는 계산이란 게 되는 스포츠다.

하지만 축구는 그렇지 않다.

멀게는 2006 월드컵에서 호나우두, 아드리아누, 카카, 호나우지뉴라는, 솔직히 개사기 수준의 미친 선수들이 동시에 출전한 브라질 대표팀은 8강에 그쳤고.

가깝게는 명백하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한다고 할 수 있는 공격수 손흥빈은 클럽 축구 기록만 보면 박지성 선수를 뛰어넘고도 남았지만, 국가대표에서의 활약은 박지성 선수에 비해 미약하다고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축구는 선수의 능력치를 ‘객관적’ 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참 힘들고, 1+1 =2 처럼 공식화가 정말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예, 그리고 축구는 득점이 좀 적은 게임이라는 것도 이에 한 몫을 했습니다. 막말로 운빨 좀 타서 한 골 넣고 잠궈버리면 아무리 상대적 강팀이 경기력이 좋다고 해도 지는 경우가 꽤 생기잖아요.”

“그렇죠.”

당장 역사상 최강의 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2010-11시즌의 바르셀로나는 그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트레블은 이루지 못했다. 무리뉴의 레알 마드리드가 영혼을 담은 수비를 펼치며 우승컵을 하나 빼앗았기 때문이다.

이는 역대 최강의 팀이라는 팀도 ‘운’ 이 따라주지 않으면 패배한다는 거다. 축구는 분명 실력겜이기도 하지만, 스포츠 중에선 운빨좆망겜의 요소가 매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달라지고 있습니다.”

“어떻게요?”

“결국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돈과 시간과 인력을 갈아넣다 보면 어느 정도는 해결법이 나오기 마련이거든요.”

“······”

아니 뭐 틀린말은 아니긴 한데···

“한 팀이 돈과 시간과 인력을 갈아넣으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재작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하고 독일하고 싸웠던 일 아시죠?”

“예.”

마네이랑의 비극, 2014 브라질 월드컵 4강전에서 브라질과 독일이 겨룬 끝에. ‘그’ 브라질이 7대 1로 독일한테 개쳐발렸던 일.

“그게 바로 돈과 시간과 인력을 갈아넣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 중 하나입니다. 그 당시 독일은 자국의 각 대학교들과 연계해 2년간 브라질 선수들의 개별적 플레이 특징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대비했었습니다.”

“······”

그 말을 듣자, 소름이 돋았다. 2년 전이라면, 아직 브라질하고 경기를 한다는 확신도 없었을 때일 텐데 대비를 했다는 소리 아닌가.

“뭐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났으니, 그들에게서 저희도 신문물을 받아들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는 거죠.”

-톡톡.

“자, 보세요, 여기 이준혁 선수의 경기를 OPTA 프로그램으로 돌린 것 중 하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 맵에서 이렇게 이준혁 선수의 패스만 쭉 따서 일정한 시간만 뚝 잘라내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파란색이 성공한 패스, 빨간색이 실패한 패스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준혁 선수는 참 공격적이고 전진적인 패스를 좋아하고, 그리고 사이드에서 사이드로 넘어가는 크로스도 망설이지 않고 사용한다는 게 바로 보여지죠.”

“그리고 또 이것만 있는 게 아니라 원한다면 이준혁 선수의 패스의 속도와 세기는 어땠는지, 드리블 시도, 태클의 시도와 성공, 어떤 상황에 어디에 있었는지, 어디로 움직였는지, 그런 것들을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현대 축구는 그래요.”

“······”

할 말이 없었고, 입이 절로 벌어졌다. 그야말로, 미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런 게 있다면, 내가 어떤 플레이를 하는지 같은 걸 하나하나 다 알아볼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이거··· 모든 팀들이 다 이렇게 하나요?”

“글쎄요, 저도 고용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노리는 국내 팀이라면 한 작년 내지 올해부터는 이미 다 쓰고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맙소사.

“···와, 소름돋네요. 진짜. 축구는 영영 데이터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불가능이란 없는 법이죠. 하하.”

“10년이 아니라 고작 4년만에 강산이 바뀌었군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놀라웠다.

이게 바로 제대로 된 프로팀의 분석이고 현대 축구라는 것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이거, 사용법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분석원이 좀 놀란 눈치를 보였다.

“하하, 적극적이시네요? 보통 선수들은 이런 거 보면 머리아파 죽으려고 하면서 피하던데.”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내가 생각해도 이런 자료들 보면 선수들 대다수는 머리아파 죽으려고 들껄. 나도 솔직히 머리아플 거고. 그렇지만.

“제가 더 발전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자료를 눈앞에 두고 왜 물러납니까.”

나는, 재능이 특출나지 못하다.

스피드라는 재능은 있지만 솔직히··· 173cm, 축구화 신고 175cm라는 키를 가지고 있는데 특출난 피지컬이라고 하기엔 조금 어폐가 있고, 나보다 더 잘난 개인기를 가진 놈들을 수두룩하게 봐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범한 선수로 만족하지 못하고 유럽이라는, 국가대표라는 미래를 바라면서. 정말로 선택받은 자들만이 올라가는 그런 자리를 꿈꾸고 있다.

남들보다 잘난 거 없는 재능으로.

남들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노력하면서.

남들보다 더 환한 미래를 꿈꾸고 있단 말이다.

그런데 평범한, 대다수의 선수들과 비슷하게 이 자료를 무시한다?

그건, 내 꿈을 이루고 싶지 않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남들보다 실력을 조금이라도 끌어모을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면 탐욕스럽게 그것을 집어삼키고 소화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그들과 같은 위치에서 겨룰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만-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일 테니까.

“하하, 아주 좋네요, 저희들도 아직은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선수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와주신다면야 당연히 환영이죠.”

“그럼 지금 당장-“

“하지만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이준혁 선수, 벌써 9시 50분이에요.”

아, 이런.

“훈련하셔야 할 시간입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시간 때 찾아와도 될까요?”

그러자 분석가는, 아주 환한 얼굴로 말했다.

“대환영이고 말고요. 저야 좋죠.”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