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8화 (108/167)

분석과 성장 (1)

2016년 9월 23일

-삐비비빅- 탁.

“으아-함. 벌써 6시 반이냐...”

군대 가서 생긴 나름 좋은 습관 중 하나, 빠른 취침과 6시 반 기상이 할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에 박혀버렸다.

‘병장 때 조금 위태롭긴 했지만···’

그래도 아침조회를 매일 나가긴 해야하니 근본적으로 일어나야 하는 건 변하지 않는 법. 아무리 늦장 부려봐야 군대는 군대다.

“으하-그럼 아침 좀 챙겨 보실··· 아버지?”

“오, 준혁이냐, 일찍 일어났구나.”

뭐야 이건, 나도 6시 반 되자마자 바로 일어난 건데 뭐 이러시냐.

“아니 아버지 어제, 아니 오늘 몇 시에 일어나신 거예요?”

“···글쎄, 한 5시 쯤?”

···와우, 이젠 그냥 새벽에 일어나시네.

“원래 아빠 이 시간쯤에 시간에 일어나시지 않았어요?”

분명 내가 용인시청에서 뛸 때까지만 해도 일찍 일어나시는 편이긴 했지만,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셨지 5시에 일어나시는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원래는 그랬는데, 나이드니깐 밤잠이 없어지더구나. 요즘은 5시면 일어난다.”

···와우. 대단하십니다.

“뭐, 하여튼 너야말로 웬일이냐. 휴가 땐 집에서 항상 한 9시 다 되서야 일어나던 녀석이.”

아, 그래, 휴가 땐 그랬죠. 그렇지만.

“이젠 출근해야 되잖아요.”

어제부로 나는 FC 서울과 정식으로 계약을 맺음으로서, 이제 구닌이 아니라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이니 말이다

“음, 그럼 내가 지금 아침밥 준비하마, 어디 보자-”

“아 아뇨,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시더니 한 마디를 딱 뱉으셨다.

“니가?”

와 이거 좀 음해다 음해,

“아부지, 저 자취경험 2년차입니다. 운동선수고요. 휴가 나올 때 안 해서 그렇지 아버지보다 더 아침 효율적으로 차릴 자신 있습니다.”

운동선수의 아침식사가 어떤지를 보여드리죠.

-*-*-*-

자취 생활을 살다 보면, 느끼는 게 있다.

바로, 아침을 먹는 게 몸에 좋다는 것을 알고는 있어도 그것을 매일같이 1년 내내 지킨다는 건 정말이지 힘들다는 것을.

아침식사를 ‘직접’ 차리는 걸 단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은근히 찌개같은 어렵지 않은 걸로 하려고 해도 시간이 쓰이니까.

멸치 육수 우려내야 하지, 그리고 된장 간 맞춰가며 끓여야 하지, 그리고 호박이랑 팽이버섯도 그 사이에 칼로 손질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거 넘치지 않을까봐 시간 딱딱 재둬야 하는 건 덤이다.

‘뭐 익숙해지면 그렇게까지도 오래 걸리지도 않고 1시간, 아니 30분이면 충분하고도 남지만···’

솔직히 학창시절 때 30분 더 일찍 일어나면 여유롭게 아침 먹고 가도 학교 지각할 일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실천하지 못하고 아침식사를 거르거나 하는데. 성인되서도 그다지 달라질 거 없다.

그리고 어쩌다가 시도를 해 보려고 하면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실수하면서 1시간을 쏟아부어도 제대로 안 되는 경우도 많고 말이다.

그런 장벽이 있으니 다들 해보려고 하다가도 결국 포기하고 차라리 그럴 시간이 있으면 잠을 더 자고말지, 하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거다. 이게 이 세상의 수많은 성인들이 아침식사의 효능을 알면서도 아침식사를 거르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자, 거의 다 됐습니다-”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가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운동선수가 아침식사를 거른다는 것은 군인보고 한 번에 항상 사격 20발 전부 만발을 맞추지 못하면 전역 못한다는 말이랑 비슷한 말이다.

안 먹는다고 뒈지는 정도는 아니고 하루이틀 정도는 문제가 안 일어날 수도 있지만, 반복되다 보면 무조건, 무조건 문제가 벌어질 확률이 엄청나게 높은 그런 놈.

‘물론 그냥 대충 쏴도 만발 다 맞추는 놈들이 있듯이 축구계에도 식단같은 거 하나도 안 지키고 재능빨로 커버를 하는 놈들이 수두룩하지만···’

난 그런 재능이 넘쳐나는 놈이 아니다. 그러니, 마음을 독하게 먹고 귀찮아도 아침을 매일 직접 차려서 먹어야만 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

-띵!

“자, 다 됐습니다. 고등어구이랑 두부입니다.”

김치에 밥은 당연히 있는거니까 생략. 자고로 밥상에 김치랑 밥이 없다면 그것은 한국인의 밥상이 아닌 법이니.

“···뭔가 요리는 거의 안 한 것 같은데, 맞느냐?”

“옙, 바쁜데 매일 챙겨먹으려면 챙기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야죠.”

내가 아침식사를 차릴 때 집중하는 요소가 있다. 물론 맛있으면서 건강에도 좋을 것이 최우선이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바로, 만들기 편하고, 먹기에도 편할 것.

“아침식사 준비가 무슨 번개같이 끝나는구나, 준비하면서 세수하고 머리 감으면서도 이렇게 빠르게 아침이 준비되다니···’

그래, 솔직히 말해서 아침식사에 매일 30분을 넘게 쏟아붓는 ‘진심’ 모드를 혼자인데 계속 유지한다? 이건 진짜 힘들다.

운동선수라고 해서 30분 더 자는 달콤함을 모르는 게 아니다. 아니 단언컨데, 오히려 더 잘 안다고 자부한다.

‘우리들만큼 잠의 달콤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알 사람들도 없을껄.’

매일같이 체력을 훈련장에서 모두 불태우고 오는 선수의 입장에서 쉬는 시간에 푹 늘어지게 자는 낮잠만큼 달콤한 게 없단 말이다. 그리고 낮잠이 달콤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밤잠도 달콤하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나의 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매일 챙겨먹는 기본적인 메뉴는 이렇게 조리시간이 짧아야 한다.

-바삭.

“허어, 맛도 괜찮구나? 프라이팬에다 구운 것보다 오히려 더 나은 것 같은데, 준혁아, 저거 뭐라고 했지?”

“에어프라이기요. 이게 문명의 이기입니다. 하하.”

요리 준비?

인터넷에서 아예 가시까지 다 손질되어 있는 노르웨이산 고등어 찾아서 그 중 나름 나쁘지 않은 가격에 파는 걸로 사고. 두부야 뭐, 안 파는 곳이 더 없다.

요리법?

고등어는 에어프라이기에다 한 15분 내지 20분 돌리고, 두부는 요리하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되는 걸로 준비하면 만사 오케이다. 밥이야 미리 저녁에 예약 취사해두면 되는 거고.

먹을 때 걸리는 시간?

고등어가 가시가 없는데 먹는 데 시간이 걸려봤자 얼마나 걸리겠는가, 두부는 소화 못 시키는 사람이 이상한 거고.

‘뭐, 비타민은 조금 부족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저녁이나 아침에 껍질째 먹어도 되는 사과 하나 먹으면 된다. 이 때 중요한 건, 꼭 껍질채 먹어도 되는 사과로 사야 한다.

‘사과 껍질에 영양소가 많기도 하고, 무엇보다 껍질 까는데도 시간 드니까.’

이러면 순수 요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5분도 안 쓰면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라는 3대 영양소 다 섭취하면서 비타민과 무기질도 챙겨먹는 최고의 식단을 아주 편하게, 힘들이지 않고.

아주 싼 가격에 먹을 수 있다.

‘한 끼 식사비가 이거 알아내고 많이 줄었지···’

선수가 밥 먹는데 돈을 아낀다는 소리가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선수는 밥 먹는데 어느 정도는 돈 아낄 줄 알아야 한다.

물론 돈 많이 벌면 매일 단백질 섭취가 필요할 때마다 투쁠 한우를 쳐먹고도 돈이 남겠지만,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봉 6천이 한계였던 선수다.

물론 6천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적은 액수는 아니긴 하다. 애초에 내 고등학교 친구들이 세전 월 3백을 못 벌고 있지 않던가.

그렇지만, 운동선수는 씀씀이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운동용품 이것저것 사고, 또 트레이너 고용해서 개인훈련도 해야 하고. 영양제랑 진통제 사들이고, 또 남들의 두 배로 먹는데 그게 비싸기까지 하면?

정말이지 돈 먹는 하마가 따로없다.

“어휴, 잘 먹었다. 숭늉이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구나.”

아침에 숭늉까지 먹는 건 사치죠, 아버지··· 그건 저녁에 해드릴게요.

“그럼 너 언제 퇴근이냐?”

“보통 6시에 끝난다고 하던데요. 뭐 항상 저녁은 거기에서 먹고 올 테니 저녁은 아버지가 알아셔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한다.”

하긴 뭐, 각 잡고 요리하는 법은 아버지가 오히려 더 잘 아실 테니.

-끄윽.

“그럼 아버지, 슬슬 아버지 출근준비 하세요. 설거지는 제가 할테니까요.”

“오냐, 너도 10시까지 훈련이라고 늦장부리지 말고 일찍 출발하거라.”

“걱정마세요, 8시에 나갈 테니까요.”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우리 집에서 50키로 남짓밖에 안 되는 거리니까. 도착까지 1시간 잡으면 아주 넉넉하지 않겠나.

“아니, 늦어도 7시 반에는 나가거라.”

“···? 네? 그럼 너무 일찍 도착할 것 같은데요.”

“그래? 내가 볼 때는 그 때 나가더라도 엄청 일찍 도착할 것 같진 않은데.”

···? 뭔 소리시지, 이해가 안 가는데.

뭐, 그렇지만-

“예, 알겠습니다.”

나보다 나이먹으신 어른이 하시는 말씀은 괜히 하는 게 아니다. 그게 아버지라면 더더욱.

“설거지 끝내고 바로 출발할게요.”

-*-*-*-

와 시발,

“하아- 여유가 없는 정도까진 아닌데, 뭔가 출근 전부터 진이 쫙 빠지네···”

아니 진짜 왜 이렇게 차 막히냐, 아침 7시 반에 출발했는데 9시 넘어서 도착이라니, 젠장. 이게 출근길의 무서움이구나.

‘차 안 막히려면 더 일찍 출발해야 하나?’

하. 망할, 그래도 아침식사 준비하고 밥 먹는 시간을 40분 이하로 줄일 수는 없는데···

‘···갑자기 서울 온 게 무지하게 후회된다. 젠장. 출퇴근이 이렇게 힘든 줄은 몰랐어···’

전남이나 수원은 클럽하우스 있으니 걍 거기에서 출퇴근하고 밥도 챙겨주고 그런다는데, 하. 이 망할 서울은 왜 클럽하우스도 없어서 이 개고생을 하게 만드냐.

용인시청에서 뛸 땐 그냥 집에서 버스타고 가면 되는 정도였고 고양때는 걸어가면 되니까 크게 신경 안 썼는데, 출퇴근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어?

전국의 직장인 형님들, 모두 존경하옵니다. 어찌 이렇게 사셨나요.

이래서 형님들이 항상 출퇴근을 지옥이라고 하셨던 거군요. 이제야 알았습니다.

빨리 이 출퇴근 지옥을 벗어날 수 있게 유럽으로 가야겠-

“아, 이준혁 선수? 맞으십니까?”

응?

“네, 맞습니다. 누구시죠?”

“아, 저는 경기 분석관 박종찬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길천이라고, 장비 관리사입니다.”

아, 구단 직원이셨구나.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요. 일단 짐은 여기 장비 관리사님께 맡겨 주세요, 알아서 라커룸에 깔끔하게 정리해 드릴 겁니다.”

“···어, 감사합니다.”

오, 이게 진짜 K리그 구단이구나, 지금까지는 우리가 알아서 훈련장 라커에 있는 짐 챙기고 해야 했는데. 아예 관리사가 따로 있네.

“첫 날인데 일찍 나오셨네요, 보기 좋습니다. 차 막히셨을 텐데.”

“네, 꽤 막히더라고요. 하하.”

“···이런, 도시락도 안 가지고 오신 것 같은데, 아직 아침 못 드셨죠? 서두르면 구내식당에 남아 있는 밥 있을 텐데, 그거 먹으러 가실까요?”

응? 그건 무슨 소리- 아.

“하하··· 먹고 왔습니다. 제대로 식사하고 왔어요.”

“응? 그런데 어떻게 9시 10분에 도착하신 건가요?”

“에이, 6시 반에 일어났는데 오히려 늦은 거죠.”

“···어, 이준혁 선수, 6시 반에 일어나시나요?”

“예, 군대에 있다보니 그게 습관이 됐습니다.”

그러자, 구단 직원들이 당황하는 눈치를 보이다가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음, 이준혁 선수, 그럼 그냥 아침을 여기에서 드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여기 8시부터 9시까지 구단 내 직원들이랑 어린 선수들 대상으로 아침식사 시간이라 식사 제공됩니다.”

···잠깐, 그럼 오늘 나 헛고생한 거였어?

‘···아냐, 좋게 생각하자, 좋게 생각해, 일찍 출발하면 차도 이제 안 막힐 꺼 아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자, 분석관이 말을 걸어왔다.

“뭐 하여튼 그러면 여유롭네요, 이준혁 선수, 그럼 시간도 남으니 훈련 전에 잠깐 저와 분석 세션을 가질 수 있을까요?”

분석 세션이라는 건···

“저에 대한 분석 자료를 보여주신다는 건가요?”

서울에서 평가하는 내 자료를?

“예, 저희가 분석한 이준혁 선수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강점과 약점, 그리고 여기에서 어떤 임무를 맡게 될지를 말이죠"

흠, 그러고 보니 아예 분석팀이 제대로 분리되어 있는 구단으로 온 건 처음인데.

"물론 원래는 점심 시간에 보여드릴 예정이었지만, 지금 시간 여유도 좀 있으니까요..”

"예, 가겠습니다. 보여주세요."

과연 FC 서울은 어떻게 날 평가하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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