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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9월 18일
[레오나르도! 프리킥-! 고오올-!]
[들어갑니다! 들어갑니다! 레오나르도! 동점 골입니다!]
-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 전북 에! 프! 씨! 전북 에프씨 전북 에프 씨 오오오~
[전주성에서 전북의 팬들이 기쁨의 클레멘타인을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죠! 한 명이 퇴장당한 상황에서 동점골을 뽑아낸 거니까요,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레오나르도의 황금의 오른발이! 전주성을 들썩입-]
“준혁아, 밥 다 됐다. 빨리 와라.”
타이밍 죽여주시네, 아버지.
-삐리리릭.
“예, 갑니다.”
그래, 더 봤자 내 속만 타들어간다. 젠장.
“나왔습니다. 아버지, 오늘 메뉴는- 꼬리곰탕이네요, 감사합니다.”
음, 곰탕 좋지.
좋은 단백질에 자연산 비아그라라고 할 만큼 풍부한 콜라겐에다가 철분 같은 미량원소까지 들어있어서 선수들의 보양식으로서 아주 완벽하고 또 완벽한-
“TV 보느라 좀 미적거릴 줄 알았는데, 어떻게 바로 나온 거냐?”
“아 왜요, 빨리 나올 수도 있죠.”
“축구 경기 봤다 하면 끝나고 먹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녀석이 무슨 소릴 하는 게냐?”
“······”
젠장, 부정을 못 하겠네.
“보아하니 네가 응원하는 수원이 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아뇨, 지고 있는 건 아닙니다. 1대 1이거든요, 그리고 아직도 11대 10으로 저희 쪽이 한 명 숫자가 많고 경기 종료 전까지 16 내지 18분 정도는 남았다는 걸 생각하면 승산은 있···
진 않겠지.
“예, 졌어요.”
11명의 선수들이, 10명의 선수들에게 쫄아서 수비적으로 웅크리고. 웅크리고 있다보니 오히려 10명인 전북 쪽 선수들이 더 공격적으로 나오고.
그 기세에 오히려 짓눌려서 골대 근처에서 계속 전북에게 위험한 기회를 조공하다시피 하다가 결국 페널티박스 근처에서 핸드볼 파울로 프리킥 내주고 나서 깔끔한 실점. 하하.
정말이지, 응원하는 팬으로서 보고 싶지 않은.
너무나도 끔찍한 상황이다.
-후루룩.
그래서인지, 밥을 먹으면서도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수원은, 포기해야 하나?’
사실, 난 정말로 수원에 가고 싶다.
작년 기준으로 인센티브까지 포함할 경우 연봉 3억 8천이라는 금액은, 비록 현재 수원이 승리가 훨씬 줄어들고 하면서 많이 깎이겠지만···
그래도, 보장금액만 3억이다. 내가 올해 9월은 계약기간이다 보니 뛰지 못할 거라는 걸 감안해서 빼더라도 10,11,12월 세 달간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만 따져도 벌써 7천 5백만이다. 승리수당 합하면 9천만은 될 거고.
수원에서 세 달간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이, 고양에서 받던 내 연봉보다 높다는 거다.
그리고, 전역 후에 만나 본 결과 감독님도 날 원했다.
-우리는 원래 4-1-4-1이나 4-2-3-1을 기반으로 한 활발한 패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하는 구단이네. 헌데 지금 그게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이 지금 군대로 빠져나가면서 너무 힘들어졌지.
-그래서,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자네가 필요하네. 포백 보호가 어느정도 되면서도 빌드업적인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자네가.
-자네가 만일 우리 수원에 온다면, 나는 자네를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사용할 생각이고, 4-1-4-1로 다시 전술을 되돌릴 생각일세. 중앙에서 패스 줄기를 뿌려줄 선수만 있다면 우리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을 꺼야.
그걸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 제안은 달콤했다.
내가 어릴적부터 사랑하는 팀에.
좋은 대우를 받고 입단해서.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한다.
사실 이거야말로 모든 축구선수들의 로망이자 낭만 아닌가.
하지만.
-야, 웬만하면 수원은 가지 마라.
“······”
선배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수원은 가서는 안 됐다. 지금 수원은 병들어 있었으니까.
뭐, 사실 수원이 정상이 아니다. 이 정도 결론은 누구나 내릴 수 있다.
작년 2위를 달리던 팀이 강등권과 승점 4점 차이만 나고 있는 수준으로, 이렇게나 추락해 있다면 사실 당연히 선수단 분위기가 좋을 수는 없다.
아무리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선수들이라 할지라도 패배라는 쓰디쓴 독약을 여러 번 먹게 되면 망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보통 승리라는 달디단 맛에 익숙해진 선수들은 계속해서 단 맛에 익숙해져 있어서 패배라는 쓴 맛을 누구보다 거부하게 되는 경향이 있고.
그렇기에 경기를 뛸 때마다 패배하면 분노하고, 지더라도 쉽게 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것이 명문이란 팀이고, 그것이 강팀이었던 팀의 품격이다.
그렇기에, 나는 믿었다.
내가 사랑해오고, 내가 응원했던 수원이란 팀을 믿었다.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린 명문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금 거기 분위기 개판났어, 한 명은 팀이 원정명단 짜고 있는데 자기 부상당했다고 명단제외 시켜달라고 한 다음에 가족여행 가고, 두 놈은 시즌 중인데도 음주가무 즐기고 다니고 있다고 하더라.
선배님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들어보니 더 어이가 없었다. 그들 중 두 명은 팀의 고참 중의 고참이고, 나머지 한 명도 중견급 정도는 되는 선수였으니까.
팀이 어려울 때, 고참이란 선수들이 앞장서서 팀을 이끌지는 못할망정, 팀을 오히려 자빠뜨리고 있다는 소리 아닌가.
-거기다 몇몇 중견선수들은 내년에 자긴 여기 나갈 거라는 이야기 공공연히 떠들고 다니고 있단다.
그 말들이, 나를 현실로 끌어내렸다.
나는, 거기에 가면 거지같은 팀 분위기에서 뛰게 될 거다. 선수로서 나의 발전에만 집중하기가··· 정말 어려울 거라는 거다.
그럼에도.
‘···하지만 수원이다. 수원이라고. 그 수원.’
이 점이 너무나도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아버지.”
“응?”
“혹시 좀-“
“안 돼.”
···말하기도 전에 거절당했네.
“아니 제가 뭘 물어볼 줄 알고 거절부터 하시는 겁니까.”
“보나마나 뻔하지, 너 계약 문제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귀신이시네.
“이번엔 너의 힘으로 해야 한다.”
“···왜죠?”
“너 곧 유럽 갈 꺼라고 했었지?”
“예, 그렇습니다.”
아마 빠르면 이번 겨울 이적시장에, 늦더라도 내년 여름 때에. 내 바이아웃을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유럽으로 갈 거다.
“그렇다면 너는 사실상 완전히 독립을 해야 한다는 건데, 이러면 남의 조언을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네가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연습도 해 봐야 한다.”
“······”
“유럽에서는 혼자서 판단하는 일이 훨씬 많아질 거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지.”
그래, 그렇구나.
유럽으로 간다는 건. 남의 조언을 구하기가, 훨씬 어려워지고. 오롯이 나의 생각과, 나의 판단만으로 해야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아진다는 소리기도 하다.
그곳으로 가면, 나는 이방인이니 말이다.
“이번 일은,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너 스스로 생각하거라.”
“···네.”
결국, 나의 선택만이 남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나의 선택이라면···
“잠시만요 아버지, 문자 하나 보내겠습니다.”
-에이전트님, 한 가지만 알아봐줄 수 있을까요?
-*-*-*-
등 등등 등뜨릉등뜽~
-톡
“예. 전화 받았습니다. 이준혁입니다. 에이전트님.”
- 예, 찾아본 결과 수원은 이번 시즌 끝나고 풀백으로서 뛸 수 있는 다른 선수를 미리 구하고 있는 듯 합니다. J리그 쪽에서 한 선수와 접촉해 있더군요.
하아- 빌어먹을.
“···그렇군요.”
우리나라에서 3D업종으로 분류되는 직업들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로 채우듯이.
축구계도 다르지 않다. 유럽 축구계에서도 힘들지만 대우가 좋지 않아. 모두가 하길 꺼려하는 포지션이 있고, 사이드 수비수 포지션들이 대체로 그렇다. 왼발 사이드 수비수는 더더욱 그렇고.
그러니까- 유럽에 외노자로 진출하는 게 꿈인 내 입장에선. 나는 어디까지나 주 포지션이 사이드 수비수, 풀백 및 윙백이여야만 한다.
그런데 지금, 수원은 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겠다고 하고 있고. 풀백은 또 따로 구하고 있다.
이 소리는? 수원으로 갈 경우 나의 주 포지션은 더 이상 풀백이 아니라 수비형 미드필더가 될 거라는 거다.
유럽에서 하겠다는 선수들이 넘쳐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나의 주 포지션이 되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수원은 포기해야겠군요.”
- 아마도 그렇죠, 유럽에 가겠다는 이준혁 선수님의 마음가짐이 확실하시다면 말입니다.
···그래, 국내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나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나버릴 거다.
그리고, 나는 나의 이야기를 그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다.
나는 이미 결심했다. 저 유럽을 한 번쯤은 어떻게든 노려보겠노라고.
그래, 그러니까.
“···에이전트님, 결심했습니다. 서울로 보내주세요.”
-···진심이십니까?
“예, 서울로 가고 싶습니다.”
서울로 간다.
-···서울은 제안 온 세 팀 중 가장 대우가 열악합니다. 알고 계시죠?
-알고 있습니다.
금액만 봐도 꽤나 차이 나니까.
-···그런데도 전남이 아니라 서울로 가고 싶으시다는 건, 우승 때문인가요?
그래, 그것도 있긴 하다.
다만, 우승컵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유럽에 가는 데 성공한다면 가장 큰 이적 성사 이유는 무엇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 가격이 아직은 꽤 싸다는 점이 가장 클 거다.
아무리 내가 연봉이 엄청난 속도로 올랐다고는 해도, 내 연봉은 확정 연봉 3억이 안 되는, 유럽식으로 따질 경우 주급 약 4600유로의 적은 연봉이니.
그들의 연봉체계를 무너뜨리지 않고 적당히 풀백에서 기존 주전과 경쟁을 해볼만한 선수를 영입 시도하기에 부담을 느끼지 않을 금액이다.
그들이 날 영입하려고 들 때, 연봉 체계를 휘저으면서 영입할 필요가 없으니 평소처럼 가까운 데서 찾지 말고 좀 먼 데서 선수를 대려온다는 마음가짐만 가져 주면 되는 일이니까.
그리고, 50만 유로라는 아주 싼 바이아웃까지 겹치게 만들면서.
나는 적당히 싸고 긁어볼 만한 선수로 포장해서 유럽 쪽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매물로 나를 포장하는 데까진 성공했다.
그렇지만.
“저는, 계획대로 풀린다면 프로로서 항상 조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다른 말로 한다면, 그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관심을 가질만한’ 매물에 불과하다는 거다.
내가 조금만 더 비싸다면?
내가 사이드 수비수가 아니라 다른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라면?
내가 한 살만 더 나이 든다면?
그 순간, 나는 유럽 진출이라는 꿈을 접어야 하는 경계선에 서 있는 선수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그 인식을 충분히 바꿀 수도 있겠지만, 내가 전성기로 뛸 수 있는 시간은 약 2년 남짓한 시간.
그 평가를 바꿀 시간조차 충분치 않으니, 나는 조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번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주연을 맡아볼 기회가 왔으니, 주연 역할을 해 보고 싶습니다.”
윙백.
쓰리백에서 측면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게 되는 측면의 선수.
활약에 따라 팀을 망하게 만들수도 있고. 팀을 흥하게 만들수도 있는.
측면 수비수 중에선 가장 ‘주인공’ 에 가까운 포지션.
그런 곳에서 뛰어보기 위하여.
나는, 서울을 택하겠다.
“물론 우승도 하면 더 좋고요.”
그 말이 끝나자. 전화기 너머로 피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선수는 욕심이 많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렇죠. 알겠습니다. 그럼 서울과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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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서울, 이준혁 영입, 계약기간은 2018 시즌까지로 알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