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167)

선택 (2)

“정리해드리자면 전남, 수원, 서울. 이 세 구단이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서울이, 절 왜 원하는 거죠?”

K리그 구단 중에서 나를 절대 영입하지 않을거라 생각한 클럽 중 하나가 서울이었다. 서울은 비록 김치우라는 FC서울의 원클럽 맨까진 아니겠지만 어느새 9년차에 접어든 베테랑이 존재했고.

그 선배님은 국대급이냐는 소리까진 안 나올지 몰라도, 만일 서울이 우승한다면 K리그 베스트 11 후보까진 올라오실 수 있는 정도는 되셨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최용주 감독이 쓰리백에서 김치우 선수가 보여주는 활동량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입니다.”

“···”

그 말을 들으니, 왜 서울이 나를 원하는지는 이해는 됐다.

김치우 선수는 83년생, 34살이시다. 슬슬 선수로서 활동량을 경기 끝까지 유지하긴 힘들 때가 오셨다는 거다. 그리고 서울의 주 전술은 쓰리백이다.

그리고 쓰리백에서 사이드백의 활동량이 적으면? 그 전술은 반쪽짜리가 된다.

‘물론 활동량 나쁘면 안 좋은 건 풀백도 마찬가지지만··· 쓰리백보다야 덜하지.’

포백에서의 사이드백, 풀백. 이 역할을 맡은 선수는 물론 활동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만. 부족하더라도 다른 능력을 통해 커버가 가능하다.

공격할 때의 움직임은 빠르고 정확한 크로스로 대체하고, 공격과 수비를 빠르게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만드는 체력은 경험을 통한 판단력으로 메꾸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명이 측면에 서기에 서로의 합만 잘 맞는다면 연계를 통해 활동량이란 약점을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쓰리백에서의 사이드백인 윙백. 이 역할을 맡는 선수는 그러기가 풀백에 비해 훨씬 힘들다.

오로지 단 한 명만이 측면에 서기에 측면에서의 숫자 싸움에서 기본적으로 포 백에 비해 밀릴 수밖에 없기에. 다른 능력이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활동량이 적다면 그 포메이션에서 구멍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고 이 셋 중에서 가장 안 좋은 조건은 서울입니다. 보장 금액이 가장 적고, 옵션 장난질이 좀 많습니다.”

“······”

서울은 최상위권 구단치고는 굉장히 선수들의 연봉을 짜게 부르는 팀이기도 하고, 그리고 김치우 그 선배님이 활동량이 줄었다곤 해도 아주 못 써먹을 선수는 또 아니여서인지.

그들은, 다른 두 구단처럼 나를 격하게 원하지는 않는 듯했다.

“···일단, 제안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

-톡톡

“작년 시즌 성적 기반으로 조건을 계산해보면, 대충 이렇게 된다고 봐야겠네.”

***

[수원 블루버드]

2018년 12월까지 계약.

제한적 바이아웃 50만 유로.(유럽에서 오퍼올 시)

2017시즌까지 확정연봉 3억, 주전일 경우 추가 8천만.

[전남 메탈즈]

2020년 12월까지 계약.

제한적 바이아웃 50만 유로.(유럽에서 오퍼올 시)

2017시즌까지 확정연봉 2억 8천, 주전일 경우 추가 6천만.

[FC 서울]

2018년 12월까지 계약.

제한적 바이아웃 50만 유로.(유럽에서 오퍼올 시)

2017시즌까지 확정연봉 2억 4천, 주전일 경우 추가 1억.

***

물론 인센티브는 승리수당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만큼 실제로 인센티브를 받을 경우 수원은 저기에서 좀 많이 내리고, 전남은 좀 올려야겠지만.

대체로 이 선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듯 했다.

“···이렇게 보면 전남이 날 진짜 원하긴 하나 본데.”

4년 계약에 보장 연봉 2억 8천이라니.

솔직히, 전남 입장에서 이 금액이면 정말 파격적인 대우다.

왜냐하면, 전남은 후원하는 모기업이 K리그 구단 2팀을 굴린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존재하기에 연봉을 크게 쓸 수 있는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솔직히 지원하는 모기업은 보통 전남보다는 다른 클럽 - 그러니까 포항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포항은 옛날 옛적, K리그가 없을 때부터 창단되어 있었던 클럽인데다. K리그 출범 이후로는 꽤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면서 K리그의 명문이라고 지칭할 수 있는 5개, 아니 4개 클럽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구단이다.

반면 전남은 포항보다 20년쯤 뒤에 창단되어 지금까지 FA컵을 제외하곤 우승컵을 한 번도 들지 못한 구단이고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모기업이 어느 구단을 더 예뻐하겠는가? 당연히 포항이다. 솔직히 더 먼저 태어나고 더 성적 잘 내는 형님을 제치고, 더 나중에 태어나고 성적도 더 나쁜 동생이 더 많은 예쁨을 받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거기에다 모기업이 사업을 시작한 위치가 포항이라는 점까지 겹치면서. 전남은 K리그 평균적으로 봤을 때 가난하다- 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업팀’ 치고는 가난한 편이다.

그런데 그런 팀에서 수원에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제안을 했다는 건, 그리고 4년짜리 계약을 제시했다는 걸 보면 저 팀이 정말로, 정말로 간절히 나를 원한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 팀의 핵심 멤버로 뛰게 될 동기 형님과 태준이가 있으니, 적응기간이라는 게 아예 필요없을 거고, 그냥 바로 계약하자마자 풀타임 주전으로 뛸 수 있다는 점까지 생각하면···

유럽을 가더라도, 그리고 만약에 만약에 일이 생겨나 내가 유럽 진출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남은 아주 좋은 선택지다.

“···그리고 수원도, 나쁘지 않아.”

일단, 모든 걸 제쳐두고 연봉이 가장 쎄다. 보장 금액만 3억이다. 3억.

K리그 선수들의 고액 연봉을 상징하기도 하고, 내가 꿈꾸던 연봉인 3억.

‘···물론 그 곳에 가면 이번 시즌 정도는 주전 경쟁을 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 아직은 훈철 그 친구가 있으니까.’

국가대표 3순위 풀백, 그가 군대를 간다고는 해도 그건 이번 시즌이 끝나고 나서일 테고, 이번 시즌까지는 팀에서 부주장 직위를 맡은 그를 내가 확 제쳐버리고 주전을 먹기란 쉽지 않을 거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후배는 반년짜리 부상에서 막 돌아온 상태이기에 상태가 완벽하진 못하다는 것, 그리고 수원은 원래 4-1-4-1을 쓰다가 빌드업이나 수비가 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없어서 억지로 전술을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은, 나를 이번 시즌 풀백으로 쓰지 않는다고 해도, 수비형 미드필더로서는 무조건 실험해볼 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전을 차지할 수 있는 전남만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해볼만한 경쟁이야.’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유럽 진출에도 엄청난 도움이 된다.

당장 현재 한국 국가대표팀의 지동언 선수, 그 선수가 왜 지난 2015-16 시즌 분데스리가에서 800분 가까이 뛰면서 골을 한 골도 못 넣었음에도 전혀 방출같은 말이 나오질 않았겠는가.

뭐 지동언 선수가 있음으로서 있는 마케팅 효과? 장담컨데, 그건 아니다. 구지철 선수 한 명만 있어도 솔직히 친(親) 한국 구단으로서의 이미지는 이미 훌륭하게 얻을 수 있다.

그 선수가 골을 못 넣는 공격수임에도 중용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멀티 포지션 능력.

아주 간단한 이치로 생각해 보자.

회사에 사람이 많고 돈이 많은 대기업들은, 전문적으로 할 일을 나누어 하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빨리, 그리고 잘 해결할수록 일을 잘 한다고 평가받지만.

회사에 사람도 없고 돈도 없는 소기업으로 갈수록 전문적인 분야는 희석되어지고 많은 분야의 일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일을 잘 한다고 평가받는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돈이 썩어넘치도록 많은 극소수의 빅 클럽들은 선수를 찾을 때 어중간하게 여러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선수보단 살짝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더라도, 그 위력 자체가 파괴적인 선수들을 좀 더 좋아하지만.

돈이 썩어나지 않고, 400만 유로(50억)정도만 되도 구단의 역대 최고 영입 금액을 경신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99%의 클럽은 조금 덜 전문적이더라도 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를 아주 사랑한다.

그리고 지동언, 그 선수는 최전방 공격수, 쉐도우 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왼쪽 윙어까지 모두 어느정도 소화 가능한 멀티 포지션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유럽 대다수의 구단들에게는 아주 큰 매력이다.

‘게다가, 현대 축구로 올수록 스페셜리스트보다 멀티플레이어가 더 중용받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지.’

교체 카드의 숫자는 3장으로 정해져 있고 엔트리에 들어갈 수 있는 선수도 제한되는 축구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는 갈수록 더 가치가 높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수원과 전남, 그 둘 중 한 팀을 선택하는 게 맞다. 유럽을 생각하더라도,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K리그에 남아 있을 경우를 생각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

***

[FC 서울]

2년 계약, 바이아웃 50만 유로.

다음 시즌 보장 금액 2억 4천, 주전으로 뛸 경우 기대 인센티브 1억.

***

내 눈은, 분명히 어떤 면에서 생각해도 좋은 게 하나 없는 저 클럽에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분명 유럽이 목표기는 하다. 그리고 국가대표가 목표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서울에 가면 우승컵을 들 수도 있다···’

이게 정말이지, 너무나도 끌렸다.

우승, 우승.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선수들이 수두룩한.

그 선택받은 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우승컵 트로피를 들 수도 있다.

약 1년 전, 그 우승컵을 들어올렸을 때 그 얼마나 기뻐했던가.

- 2015 KEB하나은행 FA컵 우승팀은··· 상주 상무입니다!

-으아아아-아! 아아악!

그 4강 대회가 예능 프로에도 밀리는 FA컵임에도 그러했는데,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린다면?

“······”

상상만으로도 오싹했다.

그리고, 내가 유럽으로 간다면 리그 우승컵이라는 영광을 가질 수 있을 확률은 굉장히 낮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솔직히 우승권 클럽에서 날 영입한다···?

글쎄, 그런 일은 벌어질 확률이 아주 낮다. 애초에 나를 영입한다는 건 그 쪽 구단에서도 약간의 도박을 하는 거다. K리그에서 뛴 기록이 1년 남짓한 아시아계 선수를 영입한다는 거니까.

그리고 우승 많이 하는 놈들은, 도박을 할 이유가 없다. 잘 나가는 대학교 나오고 대기업에서 월급이랑 인센티브 빵빵하게 받는 사람들이 개인 사업에 잘 뛰어들지 않는 것처럼.

이미 잘 나가고 있는 구단이면 나 같은 선수를 사들이는 ‘모험’ 을 잘 하지 않는다. 당장 마르세유도 우승권에서 멀어지고 구단주가 상병신이 되어 버리면서 돌파구를 찾다 보니 나를 알게 된 거 아니였나.

그러니- 내가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가정했을 때, 날 노릴만한 클럽의 최대 한계선은 분데스리가의 중위권 구단이나 리그앙의 마르세유, 이 정도 선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우승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엔, 좀 힘든 그런 구단들 말이다.

‘좀 수준이 낮은 유럽 리그로 간다고 해도 달라질 것도 없지. 거기도 해먹는 놈들만 해먹으니까.’

당장 오스트리아라던가 스위스,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 이 리그들도 최근 몇 년간 우승을 해먹던 구단만 해먹지 않던가.

“······”

솔직히, 이쯤 되면, 내 마음은 서울을 원한다고 봐야 하긴 하다.

팬으로서의 감정은 수원을 원하지만, 우승이란 마약을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다는 유혹은···

너무나도, 너무나도 강렬했다.

하지만, 유럽을 생각한다면 이건 거절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기껏 포백의 풀백에 적응했더니, 쓰리백 윙백에 적응이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나는, 다시는 유럽을 갈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수도 있다.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뚜루루

“유택영 에이전트님? 유 에이전트님?”

-예, 말씀하시죠.

“제가 제대한 후에 이 세 팀의 감독님들과 자리를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그들이 어떤 이유로 나를 영입하려 했는지를 알기 위해.

그리고- 나의 성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그 분들을 만나뵙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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