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3화 (103/167)

전역식 (4)

“충! 성! 신고합니다.”

갑자기 뜬금없는 아나운서의 경례를 보고, 일부 이 경기에 대한 정보 없이 돈을 걸었거나, 수원 블루버드의 팬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면서 짜게 식은 눈으로 봐라봤지만.

일부 이 경기를 보는 인천이나 성남, 울산, 그리고 그 중에서 특히 전남의 팬들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병장 정승주는 2016년 8월 28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 성! 예, 오늘 올 시즌 상주 상무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린 병장 16명의 마지막 경기라고 합니다.”

그랬다. 바로 상주 상무의 선수들이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뛰지 않는다는 소리에, 그 선수들의 원 소속팀 팬들은 환한 웃음을 지었던 것이었다.

-아니 아직 ㅆㅂ 전역일 남았잖아 광주전까진 싸워 새끼들아.

ㄴ너 개랑이니?

ㄴ이새기 개랑이구만. 난 선수들 돌아와서 좋기만 한데.

ㄴ개랑이네, 개랑 아니면 싫어할 이유가 없지 ㅋ

ㄴ아 ㅆㅂ ㄲㅈ새끼들아.

그리고 올해의 상주 상무와 2번밖에 안 싸웠던 타 팀의 팬들도, 특히 광주의 팬들이 굉장히 환한 웃음을 지어줬다.

그 이유는 상주 상무의 2등을 이끌었던 주축 선수들이 오늘 이후로 모두 상주 상무의 경기에 더 이상 안 나온다는 소리였기에, 약해진 상주 상무를 상대하는 게 확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함박웃음을 짓는 건,

-ㅆㅂ 이제 다들 뒤졌다 우리도 아챔 나간다 딱 대라.

ㄴ아 ㅆㅂ 촌남ㅅㄲ들 ㅈㄴ나대네

ㄴ근데 그럴만하긴 함ㅋㅋㅋ 군바리들 공격진 핵심 둘이 전남이라

상주 상무와의 경기가 남아 있으면서 전역자들도 있는 전남이었다.

현재 상주 상무 부동의 원톱 스트라이커 박동기. 올해 들어 드디어 유망주 시절의 포텐, 소위 잠재력이 조금씩 터지기 시작한 박태준.

이 둘이 전남 소속인 만큼 전역 이후 급격한 전력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ㅆㅂ 전남이야 어찌되든 좋은데 매북ㅅㄲ들만 살판났네

ㄴ그니깐 ㅆㅂ 전북은 이기승 오는데 우린 한명도 안와···

ㄴㅆㅂ 진오 돌려줘 ㅅㄲ들아

ㄴ네 다음 북패.

그렇게 정말 드물게도 인터넷에 상주 상무 이야기로 꽤나 인터넷 게시판이 활발해지던 도중.

-야 트위터에 경기 명단떴다.

선수단 명단이 발표되면서 잠시 그 명단을 보러 게시판이 정지되었다가, 한 사람이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글을 올렸다.

<야 이거 명단 좀 이상한데?>

명단표인데 이거 봐봐. 좀 이상함.

-뭐가 이상함 이형 빠진 거 말고는 이상할 거 없어 보이는데.

ㄴ아니 ㅆㅂ 자세히 봐봐 이준혁 옆에 C라고 적혀있잖아.

ㄴ??? 그러네?

명단에 적히는 C는 주장을 뜻하는 Captain의 약자이니, 선수의 명단 옆에 C가 적혔다는 것은 오늘 주장이 이준혁, 저 선수라는 뜻이었다.

-쟤 어리지 않음?

ㄴ야 쟤 나이 28이야 어린 편 아님 오히려 늙다리에 가까움.

ㄴ그래도 군바리 중에선 어린 편일 텐데? 왜 주장 준 거지?

ㄴ그러긴 함, 나도 왜 준건지 몰겠다 ㅋㅋ

다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냥 잘못적은거 아님? 저기 옆에 나온 홍보자료도 틀렸구만, 병장 이형 외 16명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라고.

ㄴ? 17명 전역 맞지 않음?

ㄴ아님, 배환일 의병전역해서 1명 줄어야함.

ㄴ아 ㄹㅇ? 감귤 팬 아니라서 몰랐음. 그래서 저것도 틀렸다?

ㄴㅇㅇ 잘못올렸을 수도 있음.

그렇게 다들 갑을논박이 벌어지는 가운데, 감독들의 사전 인터뷰를 마치고 TV가 돌려지는 마당에, 드디어 시청자들은 볼 수 있었다.

등번호 23번이, 노란색 완장을 찬 것을 말이다.

-*-*-*-

어어··· 여긴 어딘가. 난 또 누군가.

‘와 씨. 내가 이거 달게 될 줄이야. 몇 년 만이지? 고3때 달고 나서는 한 번도 못 달아봤던 것 같은데···’

보통 프로 선수들이면 대학교 때 실적도 채워줄 겸 한두 번쯤은 달아주는 경우가 많지만, 난 솔직히 졸업반 때에 그냥 선생님이나 할 계획이여서 전혀 달 기회가 없었고.

프로 와서는? 으디서 감히 드래프트로 뽑힌 놈도 아니고 나이도 어린 놈이 주장 완장을 달 수 있었겠나.

그래서일까. 거의 근 10년만에 주장 완장을 달자.

나는 그냥 신나게 얼타고 있었다.

“야, 야, 준혁아! 정신 차려라, 너 지금 동전 던지기 하러 가야 돼.”

“네? 아, 네, 넵. 그렇네요. 바로 가겠습니다.”

자고로 주장이라 하면, 경기 시작 전에 심판들에게 가서 인사하고 동전 던지기 하는 게 국룰이라는 걸 까먹었던 거였다.

‘젠장, 이걸 까먹을 뻔하다니. 그냥 평 선수로 10년 뛰다가 완장 다니깐 확실히 익숙하지가 않다.’

그나마 아직 감독님 인터뷰가 진행중이라 내가 그걸 늦게 깨달았다는 점을 환성 선배님 빼고는 아무도 눈치 못챘다는 점이 다행이구만.

그런 생각화 함께 심판 앞에 오른팔에 주장 완장을 찬 상태로 가자. 심판분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자네가 주장이었나? 잘못 적힌 줄 알았는데.”

“뭐, 마지막 경기라고 박 감독님이 작은 이벤트 보여준 거 아니겠습니까. 형님.”

그리고,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하하, 너무 극존칭인데? 허리 펴.”

“아아아닙니다.”

수원 블루버드의 팬이라면 그야말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

현재진행형 레전드 염기운 선배님과 같은 주장으로서 일대 일 악수라니.

개랑, 아니 수원 팬으로서 이 어찌 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뭐, 일단 동전부터 던지자고. 동전 어디 선택할 거냐? 앞, 뒤?”

음··· 앞이냐 뒤냐로 물어보시다니. 되게 애매하게 물어보시네. 나는 그림이 뒤라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그림이 앞이라고 생각하는 쪽도 있으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말씀드려야겠지?

“저는 그림이 그려진 쪽을 선택하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기운 선배님은 살짝 웃음지면서 말씀하셨다.

“아, 안 통하네, 이 친구. 정신줄 제대로 붙잡고 있었네? 그래, 그럼 내가 숫자면 가져간다.”

“···예? 예.”

···설마 그 애매함을 이용해서 어느 쪽으로 나오더라도 선공권 무조건 가져가시려고 그랬던 거였나?

‘···기운 선배님이 특별이 인성 말 나온 주장도 아닌데 이렇다는 건. 주장쯤 되면 저런 쪼잔함은 기본인가 보네.’

허, 방심을 못 하겠다. 역시 완장의 무게는 참 무겁구나? 역시 난 절대 나중에 주장 할 생각따윈 하지 말아야겠다.

“그럼 던지겠네.”

-핑!

“숫자면이군, 어떻게 하겠나?”

“저희 수원이 전반전 킥오프 가져가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후반전 킥오프는 상주 상무 걸세. 그럼 다들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도록 하지.”

예예, 분부대로 합죠.

“자, 모두 인사!”

그렇게 별 생각 없이 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이제는 더 이상 이 구장에서 아군으로 만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반가워해주는 팬 여러분들을.

우리들의 마지막을 봐 주러 오신 분들의 함성을 말이다.

“자, 그럼 인사도 끝났으니 이제 다들 자리로 들어가게.”

“예.”

“···예.”

그렇게 인사를 마치고 우리 쪽 진영으로 가는 순간, 이제는 귀에 익숙해진 응원가도 들려왔다.

-사랑한다↗ 상↗주↘ 사랑한다 상↗주~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가슴속에 - 영원히남을- 사랑이되어-라··· 외워버렸네. 하하.’

그 응원가를 흥얼거린 순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여기에 참 오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에이, 공 저쪽에 넘겨줬어? 동전 던지기 졌구만!”

“이거 주장직 박탈해야 하는 거 아냐? 동전 던지기도 못 이기는 주장은 물러가라. 우우.”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만나본 동료들 중에 최고였던. 이 멋진 동료들과도 헤어질 때가 다가왔다는 것도.

정말 새삼이지만, 깨닫게 되었다.

“······”

그러니.

“예, 예, 못난 주장 명령입니다. 빨리 제 위치로 돌아가요.”

오늘, 이 날이 온전히 저 분들에게 기쁨만 줄 수 있게.

그리고- 좋은 기억으로만 남도록.

“그리고 좀 심하다 싶으면 언성 높여주세요. 저도 바로 나설 테니까요.”

비록 한 경기뿐이지만, 찐 주장 역할 제대로 해보겠다.

-*-*-*-

-삐이익!

[아 곽희주 선수, 파울입니다.]

[이건 파울이 맞죠, 박동기 선수한테 대놓고 팔을 썼어요.]

“아니 선배님,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매너플레이 좀 해주세요!”

“당사자 아니면 저리 가라. 꼬맹아.”

“꼬맹이? 하, 하긴 은퇴 코앞인데 나잇살 먹고도 그딴 더티플레이 하는 누구보단 꼬맹이가 낫겠네요.”

“···아니 이 새끼가 근데-”

-삐이익!

[아, 곽희주 선수, 옐로 카드입니다.]

[그럴 만 했죠. 너무 대놓고 했어요.]

그렇게 이준혁이 수원 쪽 센터백이 옐로 카드를 받도록 유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코치는 예상 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내가 뭐라고 했나, 잘 할 거라고 했지?”

박 감독은 그저 웃었다.

“···그러게요. 생각보다 잘 하는군요? 저 친구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동료를 위해 나서 줄 줄은 몰랐는데요.”

주장으로서의 필수적인 역할이라면, 상대방이 반칙이라던지, 팀 동료를 향해 거친 플레이를 했을 때 팀 동료를 위해 앞장서서 항의하고, 때로는 기꺼이 나쁜 놈을 도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장은 보통 상대팀도 인정할만한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선수가 맡거나. 아니면 자타가 공인하는 개자식. 그러니까 성깔이 더러운 선수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둘 중 하나는 되어야만 항의했을 때 상대방도 어느 정도 자제하는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는, 정확히는 이 스포츠란 승리지상주의의 세계에서는 착하다고 해서 팀을, 동료를 보호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이준혁, 저 친구는 그 둘 중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력은 있지만, 나이도 어리고 K리그 경험도 적은 편인데다. 개자식이라기엔 플레이가 너무 깔끔했다. 그렇다고 다이빙을 잘 하는 것도 아니였고 말이다.

성깔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냥 조용조용하게 평범한 선수 정도? 그래서 이벤트성으로 주장을 다른 선수에게 주자고 했을 때, 이왕이면 덩치도 있고 이번 한 해 수고했던 동기에게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는데.

지금 보니, 아주 훌륭하게 두 번째를 연기하고 있었다.

“울산전 이후 더티 플레이 연습한다더니, 거기에서 느낀 점이 있었던 걸까요?”

“그것도 있긴 하겠지. 당장 지금 저 플레이는 울산전에서 김태환 그 친구가 써먹었던 행동 아닌가.”

상대방한테 욕 유도해서 옐로 카드 받아내기라는 플레이가 정확히 똑같았으니 영향을 받긴 받은 것 같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고 보네. 저렇게 선배들 앞에서 동료를 위해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는 걸 연기로 할 수 있다면, 세상에 그 어느 팀도 불화가 일어나지 않을 테지.”

“그렇죠.”

결국, 결론은 이거였다.

‘그냥, 저 친구의 동료를 위해 전력으로 나서는 그 모습도 진심이라는 거겠지.’

항상 진심으로 나아지고 싶다고 생각하며 전력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기어이 저 나이에도 정체가 아닌 성장이라는 걸 해내는 데 성공한.

모든 일에 전력으로 승부하는. 그런 녀석이니까.

그랬기에 주장 완장을 줘 봤던 거였다. 저 친구가 주장 완장을 받으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궁금해서.

그리고 지금의 모습은- 너무나도 훌륭했다.

“참, 아쉽군, 아쉬워.”

“그렇죠. 참 대단한 녀석입니다. 이왕이면 이번 시즌 끝날 때까지는 말뚝 박게 만들고 싶은데, 그게 안 된다는 점이 아쉽네요.”

그렇지만. 이별의 순간은 다가왔고,

-삐이익! 삑! 삐이익-!

[골! 골입니다! 상주 상무가! 종료 시간 10분을 앞두고 2대 1로 앞서나가기 시작합니다!]

[아, 이 선수들, 참 대단합니다. 만일 시즌 도중에 저 선수들이 전역하지 않았다면 상주 상무가 우승을 바라볼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제는 정말로 헤어져야 할 때.

그러니- 이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저 늦게 핀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뿐이다.

“에이전트는 구했나?”

“예, 제가 아는 친구들 중 가장 좋은 친구한테 연락했습니다.”

“좋아, 내일 저 친구에게 연락처 넘겨주게나.”

.

.

.

.

.

-삑! 삑! 삐이익-!

***

<2016 K리그 클래식 28Round>

[경기 종료]

상주 상무 2 : 1 수원 블루버드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40, 박동기 80

수원 블루버드 : 산토스 38

***

<전북 현태, 징계 확정··· 승점 9점 삭감 및 벌금으로 1위 자리 상주에게 빼앗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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