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167)

전역식 (2)

-다음 수원전이 자네들과의 마지막 경기일세.

감독님의 말씀에 나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은 움찔했다.

마지막이라니.

이제 전역일을 하루하루 세더라도 막막함보다는 기대감이 들 정도였으니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는 있었지만.

막상 마지막이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선배 중 한 명은 의아하다는 투로 감독님에게 여쭤보기까지 했다.

“저, 저기 감독님, 저희 그래도 되는 겁니까? 아직 전역 전에 저희 광주전까진 뛸 수 있는데요.”

그랬다. 우리의 전역일자는 2016년 9월 13일인만큼. 모두들 9월 11일자 경기인 29라운드 광주전까지 뛰고 하루 푹 쉬었다가 전역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우리들이 그 경기를 뛰고 바로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어야 한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졌겠지만, 30라운드 경기는 17일과 18일에 열리니 그 경기를 뛴다고 해서 소속팀에 엄청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고 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 지금 전역하는 사람들 중에서 광주 소속인 선수는 없다. 눈치 볼 필요 없이 줘패도 된다는 소리다.

그러니 당연히 그 마지막 경기까지 뛸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원전이 마지막이라니?

“맞는 말이네, 솔직히 성적만 보자면 자네들을 한 경기라도 더 뛰게 하는 게 맞아. 그래서 9월 11일 광주전까지 기용하자는 의견도 적진 않았지.”

“하지만- 그건 내가 먼저 나서서 거절했네.”

어째서냐는 우리들의 시선을 받으며, 감독님은 말을 이어가셨다.

“뭐, 이미 시즌 동안 넘치도록 이 팀을 위해 헌신해준 자네들을 끝까지 고생시키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있고.”

“국군체육부대 축구단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과를 낸 자네들이 원정 경기에서 초라한 박수만을 받은 채로 떠나는 것도, 별로이지 않는가.”

그리고 그 말 끝에, 감독님은 한 마디를 덧붙이셨다.

“무엇보다. 예년처럼 강등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니 상부에서도 금세 수락하더군.”

“······”

뭐, 산술적으론 아직 승점이 삭감되지 않은 전북 정도를 제외하곤 잔류 확정은 난 팀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래도 이 추세라면 남은 시간동안 반의 반 타작만 승리해도 상위 스플릿 진입은 무난해 보이긴 하니 감독님의 말씀도 틀린 말이 아니긴 했다.

“그래서 다음 수원전은 사실상 자네들의 전역식이기도 하니. 다들 최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단단히 준비해주도록 바라네. 그럼 이만 해산하고, 볼 일들 보도록.”

-*-*-*-

전역이 다가왔다.

이 말에, 사실 대부분은

-이야, 좋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군대 나간다는 게 실감 난다.

-이제 드디어 머리 길게한다고 눈치주는 사람도 없고, 쓸데없는 제식훈련 안 해도 되서 너무 좋네요.

-개꿀이네. 3주 가까이 경기 쉰다는 소리잖아? 말년에 푹 쉬다 가면 오케이겠네.

이런 반응이었다.

그래, 아무리 잘 대우해준다고 해도 군대다. 한참 피 끓는 20대가 이런저런 규율에 얽매여 쳇바퀴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데 누가 반기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어휴, 드디어 돈 좀 만지겠네.

-그래, 군대에 있으니깐 돈도 제대로 못 받고 너무 힘들었다.

드디어 다시 돈,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가장 컸다.

물론 구단에서 지원해주는 선수생활지원금과, 국군체육부대에서 주는 승리수당 같은 걸 합하면 군인임에도 불구하고 연 2천 가까이 받을 수는 있었고, 이걸로 생활에 부족함을 느낄 리야 없었겟지만···

‘나같이 연봉을 많이 받지는 못하던 선수도 세전 6천이었는데. 그걸 감안하면 다들 손해라고 생각하겠지.’

물론 입대 전까지 K리그에서 30경기도 소화 못 해본 선수들 몇몇이야 나보다 더 연봉이 적었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태준이 정도만 되도 거의 1억을 손해봤다고 봐야 하고.

만일 입대 전에 이형 형님이나 기승 형님, 혹은 임협상 선배님같이 국가대표급이거나, K리그 클래식 베스트에 드는 선수 수준이었다면?

···사실상 금액적으로 거의 집 한 채는 손해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이 군대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어찌 아니 기뻐하겠는가. 이제 두세 살만 더 먹으면 30대가 되어 매일 은퇴를 걱정해야 하는 프로 선수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도 전역이 찾아왔다는 것은 반갑기 그지 없었다.

나가게 되면 K리그에선 연봉 2억은 보장받을 수 있을 테고, 아마 유럽에 가더라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막상 찾아오자. 기쁘기도 했지만.

‘···왜 이렇게 오만가지 감정이 다 드는 걸까.’

- Baby why I'm so lonely↗↘ 난 애타는데 넌 뭐니~

그렇게 멍하니 나온 지는 두 달이 지났지만 막상 티비 뮤비에 올라온지는 얼마 안 된 이 노래를 듣고 있다 보니 등골이 차가운

···응? 차가운?

“엇 차가!”

아 씹, 겁나 차갑네.

“···야 박태준, 뒤질래?”

“단물을 사온 전우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리준혁 동무.”

···이시키는 갑자기 왜 북한말을 쓰고 있냐.

“어울리지 않아? 왠지 전역 직전이니깐 이런 말투 써보고 싶더라고.”

“아 시끄러 임마. 진급 누락되서 병장도 늦게 단 놈이 뭔···”

그 말에, 태준이는 피식 웃었다.

“야, 솔직히 그건 억울하다? 여름 사격 평가시기에 계속 원정 가서 진급 누락된 거잖아. 솔직히 시즌 시작하기 전 겨울에 한 번 사격장 가고 거기 평가대로만 하는 건 좀 억울해.”

그리고 여름에 사격장에 가지 않았단 소리는. 주전을 차지했다는 소리였기에 태준이는 전혀 상처받지 않은 얼굴로 음료수를 나한테 건네줬다.

“자, 한 잔 하고 정신 좀 차려라. 이 놈이 원걸 뮤비 들어오니까 저기에 푹 빠져가지고는 참. 너도 남자였구나?”

“아 시끄러. 그런 거 아냐.”

“그럼 뭔데?”

그런 태준이의 대답에, 음료수 캔을 따며 딱 한 마디만 뱉었다.

“그냥, 이 모든게 꿈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말이지.”

누군가가 나한테 한 2년 전에

-너, 이번 해 겨울에 상무에 입대할거고. 거기에서 풀백으로 전환하면서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들고, 마르세유 같은 유럽 클럽에서 널 영입하고 싶다고 찾아올꺼야! 연봉? 연봉은 다섯 배 정도로 뛸 거고!

이런 말을 했다면, 나는 무슨 사기꾼이 다 있냐며 내쫓았을 거다.

그런데. 지금 나는 고작 2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다. 그 무슨 라디오 듣다 보면 엄청 많이 나오는 광고였나··· 그 무슨 대학을 다니고 나의 성공시대 시작됐다고 하던 그 광고처럼.

군대, 정확히는 여기 상주 상무라는 곳에 와서 모든 것이 달라졌단 말이다.

그래서, 솔직히 막상 이곳을 떠난다는 소리를 듣자. 기분이 묘했다.

이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진 그 누구보다도 장및빛 미래를 꿈꾸며 유럽으로 가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막상 이 순간이 찾아오자.

-나가서도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런 많은 생각이 섞인 나의 대답이.

이 모든 것이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짧디짧은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긴, 그럴 만 하지.”

태준이는 바로 내 말을 이해했다.

태준이는 분명 고등학교 시절, 우리 89라인 중에서 가장 잘 나가던 유망주였고 대학교를 중퇴하며 2009년부터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이번 시즌 전까지는 단 한 번도 K리그에서 두 자릿수의 공격포인트를 넣어본적이 없었던. 그야말로 완전히 망해버린 유망주였다.

그러다가 이번 시즌에 들어서 9골 2도움을 달성하면서, 프로 7년차만에 드디어 처음으로 빛을 보게 된 케이스였으니.

“나도 나가게 되면, 이렇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긴 한다. 야.”

내 말을 바로 이해했다.

우리 둘 다. 그 누구보다 이곳에서 큰 성장을 이루어낸 만큼. 전역하고 소속팀이나 다른 팀에 돌아가서는 이런 활약을 펼칠 수 있을지를 걱정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태준아.”

“왜.”

“동기 형님도 이런 걱정 하시려나?”

그 형님도 이번 시즌 전까진 커리어 하이가 5골 5도움이었던 피지컬 원툴 공격수였다가 올해 공격포인트 1위 달리고 있으니 왠지 걱정 많을 것 같은데.

“글쎄. 그 형님은 그보단 이번에도 국대 떨어져서 한탄하시던데.”

아, 그렇지. 참. 동기 형님은 그 걱정이 더 크시긴 하겠다.

현재 9골 10도움이라는, 현재 2016 K리그 클래식 최다 공격포인트를 달성하며 이 페이스를 그대로 이어갈 경우 잘 하면 K리그 MVP까지 달성이 가능해보이는 동기 형님이지만.

슈틸리케 그 인간은. 포르투갈 리그에서 밀려나 터키에서 교체 선수로 뛰고 있는 석형준과, 이제야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 서서히 1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황의찬을 뽑았을 뿐.

동기 형님을 예비 명단에도 뽑지 않았다. 물론-

“그러고 보니 넌 안 화나냐? 또 국대 떨어졌는데.”

당연히, 나도 뽑지 않았고 말이다.

“···뭐 짜증이야 나긴 하는데, 두 번째다 보니 그래도 저번보단 담담하더라.’

물론 열불이야 났지만··· 뭐 어쩌겠어. K리그 MVP 후보도 안 뽑겠다는데. 리그 베스트 수준은 당연히 뽑을 마음이 없겠지.

“······”

“······”

그렇게 잠깐 한탄을 퍼붓고, 여러 생각이 뒤엉켜 침대에 털썩 눕자.

“푸하하하-!”

문득, 웃음이 나왔다.

“···뭐야, 준혁아, 너 미쳤냐?”

“끅,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상황이 생각해 보니까 좀 웃겨서.”

“뭐가?”

뭐가 웃기냐고?

“갑자기 작년 봄 때가 생각나서 말이야.”

“···언제? 그렇게 말하면 잘 못알아듣지.”

음- 그 때가···

“차두리 선배님이 주장완장 성룡이한테 주는 국가대표 경기 볼 때 말이야.”

“···아아, 기억났다.”

그래, 그 때 우리는 우리 또래가 국가대표에서 막 활약하는 경기를 보면서. 참 많은 자괴감이 들었었다.

-우리는 이제 너무 늦은 거 아닐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때 니가 그랬었지? 우리에게도 막차 기회 정도는 남아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래, 그랬었다.

“그래, 그리고 사실. 올해 우리 성적이면 어느 정도는 팀 고를 수 있잖아.”

“그렇지.”

두 자릿수 골을 넣은 윙어, 그리고 리그 베스트 풀백. 이 정도면 K리그에서 팀을 완전히 입맛대로 고른다고는 말 못해도. 어느 정도는 고를 수 있는 위치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이제 막차를 탑승하는 데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그 목표가 달성되고 나니 이렇게 궁상떨고 있는 게, 좀 웃겨서 말이지. 그냥 축하만 해도 모자랄 판에. 큭큭.”

그러니까-

“우리, 전역인데 이런 걱정같은 건 하지 말자.”

군대라는 장벽을 만나고 프로를 포기하거나 기량이 떨어져버린 수많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반대로 여기에서 발전한 우리들 자신을 충분히 칭찬해주고.

“이 군대에서 전역하게 되었다는 걸, 그냥 순순히 기뻐하자고.”

이제, 프로에서 앞으로 최소 2~3년은 더 뛸 수 있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선수들보다 두 배는 더 길게 프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태준이는 조금 침묵하다가 조금 밝아진 목소리로 한 마디를 했다.

“그럼, 뭘로 기뻐할까?”

“글쎄, 너 지금 체지방 몇퍼냐?”

“9.8퍼.”

오케이. 나도 9퍼 언저리 뜨니까. 그럼 뭐 하나쯤은 먹어도 문제 없겠네.

“그럼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 하나 사서 먹자.”

“그거 비싸지 않냐?”

“이 정도는 먹어줘야 축하 아니겠냐. 내가 살 테니 가자.”

이제 곧 그걸 살 일도 없어질 테니, 이 정도는 사야지.

“그거 먹고 힘내서, 우리들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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