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화 (100/167)

전역식 (1)

-퍼억.

“악!”

-삐이익!

[아, 김태환 선수, 파울입니다.]

[너무 대놓고 팔꿈치를 썼어요. 저러면 주심이 휘슬을 안 불 수가 없죠.]

‘으으으, 아 턱이야.’

씹, 이 새끼 저번에 만났을 때까지는 그래도 자제하는 듯하더니, 오늘은 아주 신나게 해대네.

- 자네, 한 번만 더 이러면 카드네.

- ···예, 알겠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심판이 반칙을 이상하게 잘 보고, 휘슬을 불어준 덕분에 좀 자제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악!”

-삐이익!

아니 씨. 개씨발새끼가.

“야 이 씨발새끼야! 너 뒤질래? 어디서 점프할 때 팔꿈치로 모가지를 노려 씨발!”

내가 참는다 참는다 했는데, 딴 건 참아도 이건 못 참겠다.

팔꿈치로 얼굴 가격하는 것까진 그럴 수 있다고 치자. 드리블 하다 보면 솔직히 자기도 모르게 그럴 수도 있고 하니까.

그리고, 스탠딩 태클할 때 정강이 차는 것도 시발. 엿같지만 그럴 수 있다고 쳐. 그래도 그런 건 의도하고 하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하다가 그런 경우도 많고.

무엇보다. 부상당해도 아주 큰 부상까지는 안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마일리지라고 생각할 수라도 있어.

근데 시발. 점프할때까지 이 짓하는 건 선 넘었잖아. 착지 잘못하면 바로 몇주짜리 부상 끊는건데.

“씨발놈아. 말해봐. 모가지 뚫려있으면 말해보라고!”

[아, 이준혁 선수, 김태환 선수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심판이 카드를 꺼내드는데요··· 아, 둘 다 옐로 카드입니다.]

하, 시발.

“아니 심판님, 저 옐로 카드 주신 건 상관없는데요, 얘는 레드 카드 주시면 안 될까요? 쟤 방금 너무 고의적이었어요.”

그러나, 심판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저 친구도 심하긴 했지만 자네도 잘 한 거 없어. 엄연히 경기장에서 욕설 사용은 잘못된 일이야. 겸허히 받아들이게.”

결과에 승복하라는 말을 할 뿐이었고. 결국 지금까지 평범하게 플레이해 온 나도 옐로카드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봤다.

‘저, 저 씹쌔, 살짝 웃고 있네.’

하아- 시이발. 저 새끼. 어차피 한 번 더 파울하면 옐로 카드 받을 테니. 동시 옐로우카드라도 유도하려고 했던 거였냐?

‘하, 하긴 저딴 식으로 플레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 개자식.’

···오오냐, 새끼야. 오늘 내가 니 뒷공간 제대로 털어먹어준-

-삑! 삑, 삐이익-!

상주 상무

이제명 In / 이준혁 Out

‘······’

[아, 이준혁 선수, 교체하는군요. 요즘 이 정도 시간대면 종종 교체하긴 했지만, 교체가 평소보다 빠른데요.]

[아무래도 옐로카드의 영향도 있고, 선수 보호 차원에서 불러들이는 듯 합니다.]

‘쳇, 김 빠지네.’

그 교체 사인을 보고 느릿느릿- 걷자. 울산팬분들이 뭐라고뭐라고 했지만, 꿋꿋이 무시하면서 걸어나갔다.

‘뭐 어쩌라고요,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 이용할 건 이용해야지. 꼬우면 저런 개매너플레이 하는 놈이나 욕하세요.’

저놈 아니었으면 정상적으로 나갔을 테니까.

***

<2016 K리그 클래식 26Round>

[경기 결과]

울산 현태 2 : 3 상주 상무

[골]

울산 현태 : 멘디 40, 김승준 90

상주 상무 :박성희 55, 임협상 60, 김환성 86

***

아아.

“아오, 아직도 얼얼하네··· 멍 든 거 같다.”

“그래? 그 이상으론 안 아프고?”

“어, 그래도 멍 이상까진 안 든 것 같다. 큰 부상은 아닌 것 같긴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 부대 도착하면 바로 검진부터 받으라고 하시긴 했지만, 이 정도 얼얼함이면 딱 멍 수준이겠지.

“오, 다행이네.”

“다행이긴 뭐가 다행이야. 옐로카드 누적이라서 포항전 못 뛰는데.”

이번에 받은 옐로카드가 이번 시즌 세 번째 옐로카드라서 1경기 결장해야 한다고.

“이왕이면 남은 경기 다 뛰고 가고 싶었는데 이게 뭐야.”

물론 적게 뛰진 않았다. 벌써 20경기를 소화해냈으니 말이다.

지금이 26라운드고, 우리가 FA컵을 이번에 16강전까지밖에 이번엔 못 했다는 거를 생각하면 정말 당당히 주전으로서 이번 시즌을 소화했다고 봐도 된다.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지. 이왕이면 주전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30경기를 넘기고 싶은데, 전역하고 계약 줄다리기하는 시간까지 합하면··· 아마 올해 30경기까진 소화 못 할 테니까.’

그게 너무 아쉽다. 하.

그렇게 내가 불평을 토로하자, 태준이는 웃으면서 말했는데.

“야, 그래도 너 이렇게 된 거 좀 쉰다고 생각해. 너 서울전 이후로 두 경기 연속으로 집중 견제 당하고 있는 거잖아. 이러다간 부상당할 수도 있어. 지금 이 상황에서 니가 가장 조심해야 할 건 부상이잖아.”

그 말에는.

“하긴, 그 말이 맞긴 맞네.”

나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서울전 이후로, 확실히 나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강도가 훨씬 심해졌다.

뭐라고 해야 하나. 옛날에는 평범하게 풀백에게 마크하는 정도로 달라붙었다면. 이제는 저 쪽의 선수들이 나를 명백히 의식하고, 조금 더 열심히 압박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날 상대로 선수들이 더티플레이를 하는 빈도도 늘어났고 말이지.’

그런데 좋지많은 않은 게, 더티플레이 당하는 빈도가 늘어난다는 소리는 부상당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소리기도 해서 좀 그렇긴 하다.

어디 한 곳 골절이러던가, 아킬레스건 손상이라던가 십자인대 파열이라던가···그렇게 되면 유럽이고 나발이고, K리그에서도 나가리 될 수 있으니.

‘아,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시발.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진짜.’

막판 스퍼트를 달리기 이전에 열흘 정도 푹 휴식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친구한테 고마워해야 할지도···는 아니지. 씨발.

“하, 그래도 그 자식은 선을 넘었어. 난 걔 좋게는 못 말하겠다.”

“하긴, 넌 더티플레이 진짜 약하게 하는 편이지?”

내가 더티플레이 아예 안 한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솔직히 나 정도면 엄청 약하게 하는 편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유니폼 잡아당기기. 그리고 적당히 팔을 이용한 상대편 진로 방해만 해도 비매너 플레이라고 하겠지만···’

솔직히 조기축구라도 제대로 해 본 사람일 경우엔 그 말에 절대 동의 안 한다는 데 전 재산 걸 수 있다. 그 정도면 진짜 정당한 몸싸움의 영역이다. 심판도 그 수준이면 휘슬 어지간하면 안 부른다고.

더티 플레이의 영역은 팔꿈치와 꼬집기를 잘 사용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데. 솔직히 난 팔꿈치는 옆구리 찌르기 정도만 사용했고. 그 흔한 꼬집기도 거의 안 썼다.

진짜 나름 최대한 매너플레이 했단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김태환, 그 동갑내기 선수에게 개쌍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에휴- 됐다. 그 놈이 내가 뭐라고 한다고 해도 들을 것 같지도 않고, 슬슬 버스 타자. 태준아.”

그냥, 적당히 불평하는 정도로 끝냈다.

‘···유럽에 가면, 내가 저래야 할지도 모르니까.’

더티 플레이란 결국 밀리는 기량을 어떻게든 커버하려다 보니 나오는 거이기도 하니. 내년 되면 나도 사돈 남 말 한다는 소리를 들어야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걸 생각하면 저 친구를 더 뭐라고 하긴··· 솔직히 힘들었다.

‘그걸 생각하면 나도 최소한 대처법 정도는 익혀야할 텐데···’

최근 두 경기동안, 더티 플레이를 계속 당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나 역시 활약이 조금 줄어들었었다. 그냥 평범한 풀백 수준의 활약밖에 못 할 정도로.

그걸 생각하면, 저 더티 플레이에 대항하는 방법 정도는 알아야 했다.

‘더티 플레이 많이 당해 본 선수한테 조언을 좀 구해봐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있-?’

아.

“태준아. 너 이런 더티 플레이 익숙하지?”

“어? 그렇지 뭐. 고딩 때 개태클 당한게 한두번이 아니었으니.”

그래, 내 눈앞에 더티 플레이를 무지하게 많이 당해본.

더티 플레이 대처법 1타 강사가 눈 앞에 있구나.

“넌 이런 더티 플레이 날아오면 어떻게 했냐?”

-*-*-*-

“그래서, 준혁이한테 더티플레이 대처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이거냐?”

“엉.”

“좋아, 그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왜 날 끌고 나온 건데?”

그 말에, 태준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야 온규 니가 우리 팀에서 가장 훌륭한 더티 플레이어잖아.”

“···와, 이 새끼 음해 봐라. 준혁아. 아니지?”

“······”

“준혁아?”

미안, 솔직히 온규 니가 더티 플레이어가 아니라곤 말 못하겠어. 조성환이나 김진규같이 더티 플레이의 신···까진 아닌 것 같긴 한데. 솔직히 김태환이나 고요한 바로 밑급은 되잖아.

“···와 씨발,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네.”

“···아냐, 그래도 너 정도면 심한 더티 플레이어는-”

“아 시끄러, 임마, 빨리 매트 위로 올라와 임마. 원하는 대로 시범 제대로 보여주마.”

그리고 정확히 15분 후.

“으악!, 아, 야 잠깐 쉬자.”

나는 신세계를 맛보고 그만 매트 위에 두 손 두 발을 뻗어버렸다.

‘··· 와, 어떻게 키 더 큰놈이 키 더 작은 나한테 올라타냐?’

어떻게 된 게 저렇게 사람을 사다리 타듯이 자연스레 올라탈 수 있는거지?

“뭐 이 정도로 지치냐? 훨씬 더한 기술들도 많아.”

“···뭔데?”

“공중볼 경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목 감는 거.”

“······”

···어, 팔꿈치로 모가지 갈기는 것보단 낫긴 한데··· 저걸 낫다고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다.

“거기에 조성환 선배급이면 너도 알지? 뭐가 추가되는지?”

“···다리.”

“그래, 다리까지 감으면서 착지 제대로 못하게 하지.”

그리고 그 수준이면, 진짜 잘못하면 한 사람 선수 생명 아작날 수도 있다.

‘개태클은 좀 위험하니까 봉인하고 나머지 플레이들만 매트 깔고 연습하고 있는데도 이거 참, 별의별 방식의 더티 플레이가 다 있구나.’

세상은 참 넓고, 개 같은 기술도 참 많다···

“태준이 넌 이럴 때 바로 보복플레이 들어간다고 했지?”

“엉, 솔직히 그게 가장 직빵이야. 다만 안 들키게 해야겠지.”

에휴, 젠장. 뭐 신박한 수단을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없는 거야?”

“없어. 굳이 방법을 더 찾으면 할리우드 액션 정도?”

“······”

···아 젠장, 저거 시뮬레이션 액션이라고 정정해주고 싶다. 다이빙이란 말도 있는데 왜 저런 말을 아직도 쓰고 있는거지?

‘아냐, 아냐, 참자, 가르쳐 주는 사람한테 이런 생각 가지는 건 실례야.’

그래, 참자, 참아야-

“태준아, 그냥 다이빙이라고 해. 그 할리우드 액션이라는 말 다른 나라에선 안 쓰여.”

“···어라, 진짜? 뭐 그럼 다이빙이라고 정정할게.”

···온규 나이스. 속이 편-안 하구만.

“하여튼 마저 말할게. 너 야구 좀 안다고 했지?”

“엉.”

“그럼, 빈볼이 뭔지 알지?”

“···알지.”

빈볼(Bean ball). 야구에서 투수가 야구공을 던질 때, 고의적으로 타석에 선 선수의 머리 주변을 노리고 던지는 공.

상대편 선수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야구를 보다 보면 꽤 자주 보이지만. 잘못하다간 타석에 선 선수가 죽을 수도 있는.

야구에서 절대로 없어져야 할 플레이라고 하는 최악의 행위다.

“그거 원래는 겁나게 많았는데, 빈볼 던진 팀은 꼭 그만큼 보복성 빈볼을 쳐맞는 문화가 생긴 이후부터는 확 줄어들었다.”

“···그랬어?”

“그래, 그렇다니까?”

그건 몰랐네.

“축구도 똑같아. 원래 더티 플레이 하는 새끼들은 지가 당해봐야만 분노조절을 하는 법이야.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

“그러니까. 배워, 배워야 더티 플레이도 막는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유럽 가면 이보다 더 심한 더티 플레이도 많을 테니.’

당장 그 EPL은 공이 아니라 선수를 발로 차버리는 놈들도 있지 않은가. 그걸 생각하면 이 정도 더티 플레이는 익숙해져야겠지.

“야, 다시 시작하자. 이번엔 나도 기술 쓴다.”

“어이구, 귀엽네. 어디 해 봐.”

그렇게 2차전을 들어가려는 찰나.

“저기, 선배님-!”

후배 녀석이 하나 들어오더니.

“응? 진영이냐? 왜?”

“저기, 감독님이 병장들은 전부 모이시랍니다.”

2차전으로 불타오를 것만 같던 흥이 팍 깨져버렸다.

“아, 썩을. 갑자기 왜?”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 모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 젠장. 이러면 어쩔 수 없네.

“에이, 어쩔 수 없네, 야, 정리 니가 해라 온규야. 대신 나중에 음료수 사주마.”

“솔의 눈 안된다!”

“···그것만 아니면 되지?”

“지코도 안 돼! 새꺄!”

···에잇, 맛알못 쉐끼. 맥콜로 타협해주마.

‘그나저나, 무슨 일이신 거지? 병장들을 다 불러모으시다니, 뭔 일 있나?’

.

.

.

.

.

.

.

“다 모였나?”

“예!”

“그럼 바쁘니, 바로 본론부터 말하지. 올해, 우리는 현재 리그 2위를 차지했지. 정말 환상적인 나날이었네.”

그 순간, 모두가 웃었다. 리그 3위도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그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자네들에게 말하겠네. 구단 측이 다음 홈에서 열리는 수원전에서 그대들의 전역식을 치뤄주기로 했네.”

“···..?!?”

···잠깐, 그 소리는?

“그래, 우리가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거지. 다음 수원전이 자네들과의 마지막 경기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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