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9화 (99/167)

최고를 향하여 (4)

[윤일록과 주고받으면서 데얀이- 윤일록, 윤일록의 크로스-!]

아, 어, 어?

[반대쪽 헤딩- 골, 골입니다아-!]

[박주영의 아주 멋진 헤딩골입니다!]

-오오오~ 오오오~ 박주영 알레!

아 씨발.

***

<2016 K리그 클래식 24Round>

[후반 52분]

상주 상무 1 : 1 FC 서울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28

FC 서울 : 박주영 52

***

‘이건 뭐, 윤일록 저 선배님이 너무 잘 줬네.’

당연히 아드리아노한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늦게 들어오고 있는 박주영 선수를 보고 있었을 줄이야. 썩을.

‘내가 아드리아노가 아니라 뒤에 오는 박주영 선수에게 달라붙었더라면··· 아냐, 그래 봤자 똑같았겠지.’

그럼 아드리아노한테 줬을 테니. 그게 더 위험했다.

게다가 난 공중볼 경합 하나만큼은 정말 폐급 중에 폐급이니까. 스피디한 돌파라면 몰라도 저런 크로스에 이은 뚝배기는 달라붙어 봤자 못 막는다.

[최용주 감독의 전술 변경이 아주 제대로 들어먹혔군요. 교체 투입된 박주영의 아주 멋진 헤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골을 보고 해설위원은 살짝 감탄했다.

[이야, 이거 좀 예상 외네요.]

[어떤 것이 예상 외인가요, 해설위원님?]

[최용주 감독은, K리그를 보시는 분이라면 알겠지만, K리그의 콘테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감독입니다.]

축구 외적으로는 구단이랑 걸핏하면 싸워대는 것과 선수단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닮았고.

전술적으로는 어떻게든 이기는 축구를 선호하고 쓰리백 좋아하는 전술파이자. 베스트 11을 매우 좋아하고 플랜 A를 매우 사랑하는 감독.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모습이 너무 놀랍습니다. 최용주 감독이 플랜 B를 보여줬다는 게 말이죠.]

그래, 그 최용주가 플랜 B를.

4-4-2를 꺼내들었다.

[사실 서울의 약점은 명확하긴 했습니다. 쓰리백을 쓰는 팀이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약점인 양쪽 사이드의 뒷공간이죠.]

현대 축구에서 쓰리백이 주류 전술에서 밀려난 이유가 바로 이 측면의 공격에 약하다는 것 때문이었으니, 말해 뭣하겠는가.

비록 안토니오 콘테가 나름대로의 방법을 찾아내면서 부활하긴 했지만, 그 콘테조차도 쓰리백으로 그 약점을 지우기 위해선 꽤 많은 조건이 필요하기에 가끔씩 4백을 쓸 때도 있을 정도로 여전히 측면을 어떻게 하느냐는 쓰리백의 고민거리다.

[그동안 서울은 그 약점을 커버하기 위해 오른쪽을 활동량이 좋거나 초 공격적인 선수를 집어넣고, 오른쪽 센터백이 우측으로 자주 빠지는 식으로 커버했습니다만··· 전반전에 그게 완전히 와해됐었죠?]

해설자의 그 말에 캐스터는 맞장구쳤다.

[그렇죠, 이준혁 선수가 측면을 완전히 부숴버리지 않았습니까.]

[예, 저는 그래서 솔직히 이 게임을 상주가 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쓰리백의 전통적인 약점을 제대로 호구잡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최용주 감독이 좀처럼 쓰지 않던 플랜 B를 꺼내들었습니다. 그것도 4-4-2로요. 이러면 상주가 측면 돌파는 힘들어집니다.]

오히려 중앙의 공격수가 좌우로 활발하게 움직임을 가져갈 경우 측면에서 밀릴 가능성이 높아지니 말이다.

[과연 이 달라진 전술에 상주가 어떻게 대응할지, 궁금해지네요.]

-*-*-*-

우리나라의 스트라이커 계보는 여러 말이 있지만. 내가 리얼타임으로 본 선수들만 따진다면, 그리고 일반적인 사람의 인식을 조금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90년대와 02까지의 최용주와 황선흥. 00년대 초반에서 08까지의 조재진과 이동국. 그리고, 08년대부터 12년도까지의 박주영.

이 스트라이커들에게 항상 요구되는 게 있었는데.

-뻥.

[박주영, 헤딩-!]

[아, 이번엔 빗나갑니다! 상주의 골킥!]

바로 뚝배기였다.

최전방에서 전사처럼 싸우고, 버티면서 헤딩을 할 줄 아는 선수. 그런 선수가 대한민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잇는다.

그리고 한 때 그 계보의 적통이자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고 주목받았던 박주영. 그런 선수를 나와 매치업 시켰다는 건, 암만 봐도 확실했다.

‘하. 시발놈들 같으니. 크로스 올리는 것만 봐도 그렇고, 확실하네. 내 뚝배기 약점을 명확하게 노리겠다. 이거냐?’

그 박주영을 굳이 이쪽으로 돌려가면서까지 이러고 있다는 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하.

‘이건 딱히 뾰족한 수도 없어서 더 빡치네. 쯥.’

물론 풀백에게 공중 볼 경합은 엄청 중요한 능력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내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이 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긴 해야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건 시즌 후에나 할 수 있는 거지. 지금 내가 이 약점을 메꿀 수는 없어.’

나는 축구 게임 선수처럼 경기 뛸 때마다 능력치가 올라가고 그걸 마음대로 분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 약점을 메꾸기 위해서는 빡세게 이것만 대비하는 이런저런 훈련을 하기 전까진 절대 제대로 못 메꾼다.

하지만.

-할수있다! 상주! 둥둥둥둥 둥둥- 힘을내라! 상주!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애초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축구에 완벽한 전술 따윈 없다.

분명히 어떤 전술이던 간에 약점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약점을 선수들의 기량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커버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만 비로소 어느정도 쓸 만한 전술이 나오는 거다.

그런데, 실전에서 아직 별로 쓰지도 않은 전술이 약점이 없을 리가 있나.

그리고 내가 헤더 하나 공략당하고 있다고 바로 무장점 선수로 떨어진다면 최고를 노린다고 나 스스로 자뻑하지도 않았다.

‘보자··· 서울 녀석들. 중앙이 다카하기랑 주세종인데 4-4-2라?’

흠. 이거 우리 진형에서 볼 돌리면서 가패축구 하시려고 하신 모양인데.

“기승이형.”

“응, 왜?”

“FA컵 결승전 기억나시죠?”

“아, 그거? 중앙으로 움직이게?”

오, 역시 기승이 형님. 척 하면 척이다.

“넵. 중앙으로 저 좀 움직일 것 같은데. 쭉쭉 올라가세요.”

“오케이.”

그래 니들이 내 약점 노리니깐, 기분 좋았지?

근데, 나도 너희 약점 노릴 수 있거든?

[아 이기승 선수 앞으로 올라갑니다.]

너희가 우리의 옆구리를 노렸으니.

나는 너희의 명치를 노려주마.

-*-*-*-

삑! 삑! 삐이익-!

[골! 골! 골입니다아-! 경기 종료 직전, 이기승 선수가 갈 길 바쁜 서울에 재를 뿌립니다!]

‘···실수했군.’

너무 완벽하게 측면이 공략당해 버려서 저 쪽이 공격형 미드필더도 있는 것도 아니고, 이기승 저 친구가 오랜만에 출전하는 만큼 정상이 아니라는 것에 기대어 한 번 도박수를 꺼내본 건데.

[이건, 이기승 선수도 선수지만, 이준혁 선수의 움직임이 너무 좋았습니다. 중앙 쪽의 움직임을 늘리면서 이기승 선수가 미드필더에서 아주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질 수가 있었고, 이기승 선수는 그걸 멋진 골로 보답했습니다!]

이준혁, 또 저 친구였다.

‘후, 그래도 후반 30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빠르게 깨져버렸군. 역시 나에게 이런 도박수는 어울리지 않는 건가.’

이렇게 되니 조금 후회스러웠다. 원식이라도 있었더라면, 하다못해 오스마르를 중앙으로 올렸다면-

‘아냐, 후회해 봤자 소용 없지.’

오스마르는 이번 시즌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지 오래고. 원식이도 없는 지금 4-4-2를 쓸 경우엔 저 둘이 그나마 최선이라고 이미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결과는 이미 나와버렸다.

목마른 상황에서 물이 엎질러버렸다면, 거기에 실망하기보단 물을 어떻게 하면 떠올지를 생각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행동이다.

‘이것으로, 전북과는 승점 9점 차···’

징계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전북이 경남과 비슷한 징계가 나올 경우엔 승점 감점을 당하고도 이 쪽이 우승을 장담할 수는 없는 승점 차였다.

‘···이대로는, 또 무관으로 끝날 수도 있겠군.’

그리고 그렇게 되면, 2012년 리그 우승 이후로 무려 4연속 준우승을 달성하게 된다.

‘···결단이 필요할 때인가.’

***

<2016 K리그 클래식 24Round>

[경기 종료]

상주 상무 2 : 1 FC 서울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28, 이기승 88

FC 서울 : 박주영 52

***

MoM : 이준혁(DF)

***

“네, 꺼질 줄 모르는 돌풍의 주인공, 상주 상무가 결국 서울까지 누르고, 1위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경기의 MoM, 상주 상무의 이준혁 선수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준혁입니다.”

후, 좋아, 별로 안 떨었다. 그래도 FA컵 때 MoM 인터뷰 한 번 받았다고 옛날보단 덜 떠는구나.

“올해 첫 MoM이신걸로 아는데요, 어떤 기분이신가요?”

기분이라···

“솔직히 2어시 할 때. 아, 오늘은 내가 뽑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승리했는데 멀티 득점한 사람이 없고, 2어시 날린 선수가 있으면 웬만하면 그 선수가 뽑히긴 하니까.

“그런데 막상 또 이렇게 뽑히니깐 예상했던 것보다도 기분이 아주 좋네요. 하하.”

K리그에서 MoM 받는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좋네. 좋아.

“예, 그렇군요. 오늘 경기까지 포함하면 제주에 있는 정훈 선수의 어시스트 개수를 넘어서는데요, 알고 계셨나요?”

“어, 그랬나요?”

“예, 현재 6어시신데. 이러면 풀백 중에선 공격포인트가 풀백 중에선 단독 1위에 오르시게 됩니다.”

음, 그렇구나. 내 기록 말고는 신경 안써서 몰랐네.

“골도 2골이나 넣으신 걸로 아는데, 혹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에 대해 욕심이 있으신지?”

욕심이라, 글쎄. 되면 좋지만.

“아뇨, 솔직히 되면 좋기야 하겠지만, 안 되면 말고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격포인트는 분명 중요한 지표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선수를 온전히 평가할 수 없으니까요.”

단적인 예로, 역대 최고의 풀백으로 불리는 파울로 말디니가 공격포인트가 적다고 어디 폄하당하던가? 아니다.

그리고 EPL에서 현재 주가를 올리고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 캉테는? 공격포인트가 적으니 쓰레기 선수인가? 절대 아니다.

“공격수라면 공격포인트를 올리는 것이 팀의 승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으니 그것이 높을수록 좋겠지만, 저와 같은 수비수들은 그게 아니니.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습니다.”

···뭐 물론 팬들이야 공격포인트 더 올리는 선수를 더 알아주겠지만 말이지. 그래도 내 축구관은 이게 맞다.

애초에 2006년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멤버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던 브라질이 왜 그렇게 폭망했던가. 밸런스 생각 안하고 공격적인 선수들만 때려박다가 그 모양 그 꼴이 났잖아.

“겸손하시네요, 다음 질문입니다. 최근 이준혁 선수는 K리그에서 가장 핫한 왼쪽 풀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시죠. 그래서인지 이번 9월 월드컵 예선전에 국대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고 계시나요?”

국대, 국대라···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딱 하나뿐이겠지.

“언제나 가슴속에 태극마크를 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만큼, 불러 주신다면야 당연히 가고 싶습니다.”

내가 유럽에 가고자 하는 것도, 거기에서 생존해내는 수준이 아니고선 국가대표를 노리기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레프트백 주전은 92년생이자 독일에서 한 시즌 정도는 풀로 뛰어본 김진우, 87년생의 박준호, 이 둘이다.

그리고 이들은 유럽에서 한 시즌이라도 주전으로서 뛰어 본 적이 있는 선수들이고, 아마 내가 유럽에 나가지 않으면 이들보다 높은 평가를 받기란 쉽지 않다. 최고점 시절에 유럽 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먹어본 사람의 평가랑, 한 번도 안 먹어본 사람의 평가는 완전히 다른 게 현실이니까.

'게다가 3순위인 훈철의 나이가 90년생이라는 것까지 따지면. 난 K리그에 남아있는 한 정말로 천운이 터지지 않는 이상.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란 쉽지 않지.'

그러니, 유럽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군요,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전역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것 같은데요, 슬슬 전역 후에 어디에서 뛸 지는 정하셨나요?”

“하하, 그건 템퍼링이잖아요. 아직 공식적인 제안을 해온 곳은 없었습니다.”

뭐 제안은 많이들 들어왔지만 아직 ‘공식적인’ 루트로 제안을 해온 곳은 없었다. 다들 구두제안이었지. 마르세유도 마찬가지고.

“다만 어디든 간에, 제가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곳이길 원합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더 앞으로 나아가길 위해서.

K리그 최고를 넘어,

유럽으로 가서도 주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예, 좋은 말이네요. 그럼 마지막으로 상주 상무의 팬 여러분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앞으로 한달 뒤에 전역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여러분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뛰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예! 그럼 지금까지 이준혁 선수를 만나봤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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