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8화 (98/167)

최고를 향하여 (3)

현재 2016 K리그 클래식 수위권으로 꼽히는 우측면 수비수라면 아마 이 셋이다. 우리 팀의 이형 형님, 전북의 최철순. 그리고 지금은 부상중인 서울의 고요한.

그리고 K리그 왼쪽 사이드에서 수위권을 뽑자면. 울산의 이기제, 제주의 정훈, 그리고 나 정도가 후보에 들어갈 꺼다.

‘뭐 왼쪽에 김치우 선수나 오른쪽에 안현범 선수 정도를 더 끼워넣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둘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김치우 선수는 짬밥으로 버티는 느낌이고 안현범 그 어린 친구는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말이다.

‘솔직히 실력으로면 따지면 안현범 그 친구보다야 포진이 형님이 더 낫지. 걘 나이빨이야.’

다만, 둘 중 어디에 이름을 내밀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가 바로- 저 고광민이다.

[고광민, 달라붙습니다!]

빠르고, 파고드는 움직임이 좋은 측면 공격수였지만 경쟁자들에게 밀리고 작년부터 서울이 3백으로 전환하면서 윙어를 사용하지 않는 전술을 쓰자. 과감히 윙백 전환을 시작하면서. 결국 이번 시즌 K리그의 수위권 풀백으로 거듭난 선수.

‘나랑 참 비슷한 선수지.’

2년 전까지만 해도 원래 다른 포지션이었다가 1년 전부터 포지션 변경을 시작한 끝에 현재는 좋은 사이드 수비수로 평가받고 있다는 게 말이다.

물론 다른 점은 있었다.

나는 미드필더 출신이고, 저 선수는 윙어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가장 다른 점은-

[이준혁 선수, 고광민이 달라붙기 전에 바로 논스탑 크로스-!]

올해 수비 면에서 비약적인 상승을 이끌어낸 나에 비하면, 아직은 수비가 덜 익어 있다는 점.

‘이렇게 내가 크로스 쉽게 날릴 수 있도록 놔두면 안 되지.’

내 최고의 장점이 크로스인데, 이렇게 좀 거리를 벌려두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

[아, 하지만 오스마르가 걷어내면서. 서울이 볼을 가져갑니다.]

‘쳇. 아쉽네.’

뭐, 따지고 보면 크로스는 가장 덜 주의해야 할 옵션이니까 저러는 거겠지. 게다가 서울은 오스마르라는 좋은 수비수와 곽태휘라는 국가대표 센터백이 있으니 더더욱.

마치 작년의 나처럼 ‘크로스는 버린다.’ 이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하긴 수비에 자신이 없다면 그게 최선이지. 서울은 쓰리백을 쓰는만큼 페널티 박스에서 공중볼 장악력만큼은 아주 훌륭한 편이니 더더욱.’

물론 이런 빈약한 수비만 가지고 있었다면 고광민 선수가 서울이라는 K리그의 강팀에서 중용받고, K리그 베스트 11에 이형 선배님의 경쟁자로서 이름이 불릴 리가 없다.

저 선수의 최고 강점은.

[아, 이번엔 고광민이 돌파를 시도합니다!]

바로, 공격 면에선 K리그에서 가장 위력적인 풀백으로 꼽힌다는 거다.

빠른 스피드를 위시한 돌파력과 여차하면 직접 슈팅을 날릴 수도 있는 괜찮은 슈팅력까지. 최소한 공격적인 면에서만큼은 이 선수가 현 2016 K리그 클래식 사이드 수비수 원탑이다. 고등학교 시절 득점왕도 차지하고 드래프트 때 2순위로 뽑힌 윙어 출신 답달까.

그래서인지 저 선배님은 당연하다는 듯이 공을 잡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고광민! 빠릅니다! 빨라요!]

이렇게 해서 K리그 최상위권까지 올라왔으니까. 그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말이죠.

[아, 이준혁 선수, 그런데 잘 따라갑니다!]

스피드가 주 무기라면, 최소한 K리그에서는 내 밥입니다. 선배님.

[아 역시 이준혁 선수 빠릅니다. 작년 FA컵 때도 차두리 선수한테도 스피드가 밀리지 않았던 선수거든요!]

미드필더에 있었을 때도 난 30m 스프린트가 4초 초반대로 꽤 빠른 편이었지만. 내가 작년 비시즌과 올해에 작정하고 스피드를 최고로 올리는 데 집중한 결과 얻어낸 30m 스프린트 기록은?

03 : 69다.

장담하건데, 현재 K리그에서 나보다 빠른 선수는 없다고 자부한다.

[아, 고광민 선수 이준혁 선수에게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어요!]

[그렇죠, 작년에도 FA컵 결승전에서 차두리 선수가 스피드로 저 선수를 뚫지 못했거든요!]

‘조금 당황하셨네.’

작년 FA컵 때는 그래도 자기가 조금 더 빨랐으니 당연히 이번 스피드 대결에서도 이길 거라고 생각한 건가? 하하.

미안한데, 그 때는 당신은 연장전 되어서야 들어왔고, 나는 90분 풀타임으로 뛰었을 때였어. 그걸 생각하지 못하면 안 되지.

‘자, 스피드가 막히고, 주 발인 오른발 막혔습니다. 어떻게 하실 거죠. 선배님?’

그러자, 고광민 선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

[고광민, 한 번 접고, 왼발로 크로스-!]

바로 주저하지 않고, 왼발로 크로스를 날렸던 거였다.

[아, 좀 멀리 빗나갑니다! 하지만 좋은 시도였어요!]

‘···휴, 다행이다.’

하긴, 저 선수만의 장점이 하나 더 있긴 하다.

바로- 양발로 크로스를 날릴 수 있다는 것.

‘하아- 양발을 다 잘 쓴다는 게 저럴 땐 진짜 참 부럽네.’

나는 오른발이 의족 수준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왼발 오른발 격차가 조금은 있는 수준이다. 뺏을 땐 쓸 수 있고, 드리블할 때도 어느정도 사용이 가능하지만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는 러닝 크로스는 거의 왼발로만 올린다.

그런데 저 선수는 양발로 모두 크로스를 올릴 수 있다는 게 정말이지 너무 부러웠다.

‘물론 완전한 양발은 아니고 포진이 형님처럼 오른발잡이에 가깝긴 하지···’

방금 전 크로스만 봐도 왼발로 올리니까 내가 예상을 아예 못한 상태에서 날린 기습 공격이었는데도 좀 많이 빗나가지 않았는가. 그런 것처럼 완벽한 양발잡이는 엄청 드물다.

하지만- 어차피 축구는 실패의 스포츠. A플랜이 막혔을 때 조금 완성도는 부족하더라도 B플랜을 꺼내들 수 있다는 것부터가 아주 훌륭한 강점이다.

당장 지금 상황에서 내가 공을 빼앗기라도 했다간 바로 카운터 역습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크로스로 어떻게든 공격을 마무리시키면서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고.

나는 이제부터 앞으로의 수 싸움에서 저 선수의 왼발도 살짝씩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어지니, 오른발 돌파의 위력이 조금이라도 더 늘어날 테니까.

‘참 부러운 점이지 진짜.’

내가 오른발로도 크로스를 잘 올릴 수만 있으면 선택지가 몇 개는 더 넓어질데 말이다. 확 왼쪽에서 주전 경쟁하다 막히면 오른쪽 풀백으로도 뛰어 보고, 미드필더에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도 훨씬-

‘아냐. 됐다. 지금 와서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해 봤자 뭐 어쩔건데.’

지금은 경기 중이니 내가 가진 카드의 가짓수를 어떻게 늘릴 수도 없고, 무엇보다.

[이준혁, 다시 공을 잡습니다.]

내가 가진 카드들도 충분히 강력하니까. 예를 들어.

[이준혁, 드리블을 시도하다가- 반대편으로 멀리 패스를 보냅니다.]

[오른쪽이 뻥 뚫려 있었군요! 신진오, 짧은 패스, 박동기, 박동기!, 아, 하지만 빗나갑니다.]

시야와 패스 면에서 저 선수와 나는 절대 비할 바가 아니다.

[이준혁 선수의 재치 있는 롱패스였습니다.]

[확실히, 저 선수가 시야가 아주 넓어요. 라이트 팬분들은 파워풀한 드리블 돌파가 더 기억에 남으시겠지만, 솔직히 축구를 조금 볼 줄 아는 분들은 다 압니다. 저렇게 슥 한번 보고 바로 찔러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그렇죠, 괜히 저 선수가 6월에 국대 이야기가 조금씩 나왔던 게 아니죠.]

‘내가 괜히 이 체격에 그 수비에 이런 스피드까지 가지고도 재작년까지 중앙에서 볼 차던 게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175cm, 72kg인 이 공중볼 하나도 못 따는 신체와 빠른 스피드를 가졌지만 박 감독님 빼고 모든 감독님들이 날 중앙에 박았던 이유가 설마 그 감독님 빼고 다 눈깔이 삐어 있어서였겠나. 패스 줄기를 내가 가장 잘 뿌리니까 거기에 있었던 거다.

‘뭐, 올해도 몇 경기는 중앙에서 뛰었고 말이지. 한 5경기였나. 4경기였나.’

그렇기에, 누가 가장 먼저 내 장점을 꼽으라면 나는 스피드보단 이거였다. 이것 덕분에 나는 그리 높이 올라가지 않고도 공격에 가담이 가능했으니까.

그리고 높이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고광민, 볼을 잡습니다-만- 달려가지 않습니다.]

[예, 이미 이준혁 선수가 내려가 있군요.]

저런 뒷공간을 노리는 윙백의 역습도 여유롭게 막을 수 있다는 뜻이다.

‘괜히 내가 작년에 첫 시즌으로 풀백 소화하는 거였는데도 수비가 엄청 나쁘다거나 하는 소리를 잘 안 들었던 게 아니란 말이지.’

돌파도 사용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론 크로스 위주로 공격해서 많이 안 올라가고도 공격 가담이 가능했고, 스피드빨로 어떻게든 남들이 태클 기회 한 번으로 끝낼 때 두 번 세 번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그랬던 거다.

‘하물며 수비 기술이 더 좋아진 지금은 말할 것도 없지.’

[고광민, 그래도 돌파를 시도하지만-]

[바로 걷어냅니다. 서울의 스로인.]

그렇게 고광민을 이용한 공격 전개를 전반전 동안 몇 번 막아내자. 슬슬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아, FC 서울 이번엔 김치우 선수에게 볼을 건네줍니다.]

FC 서울 쪽 선수들이 서서히 이 쪽의 볼 배급을 줄이고, 왼쪽의 김치우를 통해 볼을 전개하는 빈도를 늘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흐, 막았다는 거네.’

내가, 저 고광민을 막았다.

너무나도 쉽게.

‘이제 그러면, 저 김치우 선수가 훨씬 바빠지겠고, 그럼 좀 더 빠르게 방전되시겠지.’

그리고 사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내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있었다.

현재 왼쪽 김치우 선수의 나이는 34. 노장의 반열에 들어선 선수다. 아직 수비 능력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체력이 크게 떨어지시면서 공격적인 모습은 크게 줄어든 상태.

그래서 서울은 고광민 선수의 측면 공격을 꽤 많이 이용하는 편이었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서울의 승리 플랜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 셈이었다.

즉, 고광민 선수를 꽁꽁 묶어버린 정도만 해도 난 우리 팀이 승리로 나아가는 데 내가 충분히 기여를 했다는 뜻이었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하고 싶지가 않네.’

오늘 나의 목표는 이 선수를 뛰어넘어. 그 누가 봐도 내가 현재 K리그 최고의 풀백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

그러니.

[이기승. 볼을 잡습니다.]

한번 해 보자, K리그에 올라와선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짓도.

‘기승 형님 여기 봐 주세요.’

그렇게 내가 손을 들자. 바로 기승 선배는 알았다는 듯이 원 터치로 내 앞으로 공을 차넣었다.

[이기승, 왼쪽으로 길게. 이준혁!]

좋아, 완벽하다.

[고광민, 달려드는데요!]

-뻥.

[아, 이준혁! 치고 달리기 드리블!]

[스피드 승부입니다!]

-퍽.

크, 꽤나 기습적으로 들어왔는데도 바로 어깨 들이미네. 그래도 나름 빠른 선수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기본은 되어있다는 건가.

‘하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더 빠르고, 피지컬도 당신이 더 앞서진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아, 뚫렸습니다! 고광민!]

태준이도 아니고 내가 드리블 돌파 하리라는 걸, K리그의 어떤 선수들이 예상했겠어. K리그에 올라와서는 거의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플랜 B인데.

[이준혁!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이준혁!]

자, 이제 페널티박스가 코앞이다. 어떻게 할까.

‘동기 선배한테 패스? 살짝 빠져있는 태준이한테 패스? 아니면- 저 달려오는 기승이 형님한테?’

차례대로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한 가지를 깨달을 수가 있었다.

‘나한테 마크를 따로 오진 않고 있네.’

하하. 내가 아예 슈팅까지 쓰리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 모양이구나? 그렇다면.

[이준혁, 패스-!?가 아니라, 슛!]

[유상훈 쳐냅니다!]

어라, 쳐냈어? 대단하네.

그렇지만, 안심하지 말라고.

[박태준! 박태주우운!]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들도 있잖아.

[골! 골! 골입니다! 박태준! 이것으로 시즌 9번째 골을 터뜨립니다!]

-삑, 삑, 삐이익-!

좋았어, 비록 골은 아니지만, 어시스트다.

하지만-

아직 난 만족스럽지 못하다.

내가 여기에서 남은 경기에서 마주칠 상대팀 중 가장 강한 당신들에게 내가 최고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준혁 선수, 저런 돌파도 잘 했던 선수였던가요?]

[이 친구,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요!]

그리고 1년 전, 그때와는 달리 당신들이 이제는 아래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늘,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

“태준아! 나이스으! 잘 했어! 오늘 바로 10골 넣어보자!”

***

<2016 K리그 클래식 24Round>

[전반 종료]

상주 상무 1 : 0 FC 서울

[골]

상주 상무 : 박태준 28

FC 서울 : (없음)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