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7화 (97/167)

최고를 향하여 (2)

2016년 8월 10일.

“18명 다 모였나?”

“예”

“좋아, 그럼 오늘 경기 전 마지막 미팅을 시작하겠다. 먼저 우리가 예상한 오늘 서울의 라인업이다.”

“아마 여기에서 박용우나 주세종 정도는 오스마르가 올라오거나 윤일록이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우리가 판단한 바로는 이렇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서울의 모습에 꽤나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서울이 작년부터 올해까지 못 한 것도 아닌데, 이 쪽도 되게 많이 바뀌었네.’

농담이 아니라, 작년에 있었던 FA컵 선발 명단에서 외국인 선수를 빼면 골키퍼 빼곤 같은 선수가 안 보였다.

‘뭐, 그냥 팀을 떠난 선수도 있고··· 부상도 있고 하겠지만. 좀 씁쓸하네.’

FA컵 당시 그렇게 큰 압박감을 줬던 선수들이 이렇게 하나도 안 보인다는 게 말이다.

“그럼 우리의 명단을 발표하겠다. 우리의 포메이션은 원래 쓰던 대로 4-1-4-1이다. 먼저 골키퍼에 오훈승.”

“예!”

그 순간, 1번 마크를 달고 있었던 올해의 골키퍼 주전 양원동 선배가 2연속 선발 실패에 헛웃음을 지었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 내가 주전을 차지한 레프트백 자리만 해도 다시 로테이션 슬금슬금 돌아가고 있으니.’

한 20라운드 이후부터 서서히 감독님은 주전들을 돌아가면서 한 명씩 로테이션을 큼지막하게 돌리기 시작하셨다. 이건 어디 한 곳 뿐만이 아니라. 모든 포지션에서 마찬가지였다. 상주 상무의 유일한 현(現) 국가대표 이형 선배님조차 예외가 아니었으니.

그래서 비록 전북과의 승점 차이가 좀 늘어나 버렸지만 이건 감독님을 탓할 수 없었다. 바로, 우리는 곧 나갈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전역할 때까지 몇 경기 남았더라. 5경기였나?’

그래, 이제 진짜 얼마 안 남았다.

당장 우리가 뛸 수 있는 경기가 얼마 안 남은 이상 이제 상주 상무도 슬슬 우리가 전역한 이후를 걱정해야 할 때기도 하고. 구단 쪽에서도 은근슬쩍 선수에게 말을 걸어온다. 몸 좀 아끼면서 쉬엄쉬엄 하라고.

‘당장 기승 형님이 시즌 중반부터 주전에서 물러나고 후보가 되어버린 게 대표적이시지.’

시즌 초반 상주 상무의 에이스였던 형님은 여름이 되면서 딱 출전이 뜸해지더니 지금 8월이 되자, 완전히 후보로 밀려났다.

그리고 솔직히 기승 형님이 실력 때문에 밀려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뭐, 솔직히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생각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 쪽 입장에서야 그게 당연한 거긴 하다. 당장 일 년 쯤 남아 있으면 선수가 경기 뛰면서 감각을 잊어먹지 않게 하는 걸 더 좋아하지만.

이제 전역이 한 달, 두 달 남은 선수에게는 적당히 열심히 뛰면서 부상당하지 말고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더 바라는 것이 당연하다. 선수도 여기에서 갈리는 것 보다는, 그쪽에서 갈리는 것을 더 선호할 거고.

뭐, 그래도 그런 것을 거부하고 당당히 실력적으로 괜찮다면 얼마든지 뽑아달라고 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먼저 공격수에 박동기.”

“옙.”

현재 8골 9도움으로, 중동으로 팔려간 성남의 티아고를 제외하면 현재 2016 K리그 클래식에서 최고로 많은 공격포인트를 올린 동기 형님.

“그리고 미드필더는 왼쪽부터 박태준, 이기승, 신진오, 황수일, 수비형 미드필더에는 김준성이 들어간다.”

““옙.””

그리고 요즘 후반기 들어서 상한가를 치기 시작한 태준이.

이 둘은 직접 감독님에게 찾아가 웬만하면 자신을 빼지 말아달라고 한 덕에, 선발에서 감독님이 웬만하면 빼지 않으시는 대표적인 선수들이었다.

지금이 자신들의 커리어 하이인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면서 말이다.

이대로만 가면 동기 형님은 비록 골은 광주의 정조국보다 많이 부족하지만, 저 압도적인 도움 숫자를 앞세워 K리그 MVP를 받을수도 있는 페이스고.

태준이도 현재 난생 처음으로 두 자릿수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지만 아직 10골이라는 목표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비진은, 이준혁, 이웅희, 유준수, 박포진 넷이다. 이상.”

나 역시 그들과 같았다. 로테이션을 돌리긴 했지만, 경기 끝나기 전에 교체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돌리진 않았으니까.

나는 지금 누가 뭐래도 - 명백하게

K리그 베스트 11을 노리는 후보 중 하나인, 지금이 최고 전성기인 선수니까.

-*-*-*-

“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2016 K리그 클래식 24라운드 상주 대 서울, 서울 대 상주의 경기입니다.”

의례적인 멘트를 친 이후, 캐스터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우승 후보끼리 경기를 치르는 빅 매치기도 하죠.”

그 말에 해설자도 웃었다.

“참,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상주 상무가 우승 후보라니.”

“그렇죠. 야구 쪽에서 야구는 모른다는 말이 있죠? 이젠 그걸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 모른다고요.”

“예, 저번 시즌 레스터 시티의 우승도 그렇고 축구계에 대 이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엄밀하게 따지자면 리그 순위의 1위는 아직 전북이었다.

최근 상무는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패배를 쌓고, 서울이 부상자들이 생겨나며 주춤하는 사이 전북은 조금 차이를 벌려 버렸으니까.

그러나 태클을 거는 K리그 팬들은 없었는데, 연맹이 제정신이라면 올해 전북은 최소한 승점 삭감과 함께 조건 없이 강등을 시킬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 2위 싸움이 아주 중요했다. 팬들이 생각하기로는 이게 사실상의 현 1위가 누가 될지를 가르는 싸움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모두가 상주 상무가 최종 우승을 차지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당연한 게, 시즌 종료 10경기 정도를 앞두고 주전 중에선 8명, 후보까지 합해서 총 17명이 나가게 되는 그런 팀을 우승후보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오늘 FC 서울의 팬들은 그런 기세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흉흉했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깃발을 나부끼며.

-영~원한 승자~ F~C 서울~ 검붉은 깃발을 상주하늘 높이 올려라 승리의 함성을 외치자~

굉장히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서울 팬들 입장에선 도저히 이 상주 상무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작년엔 FA컵을 빼앗아 가고.

올해 시즌 시작 전엔 이웅희라는 K리그 수위권이자 팀 내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센터백을 빼앗아 가고.

올해 시즌이 시작하고 나서는 신진오라는 FC 서울의 약점인 중원을 완벽하게 메꾸어 주던 선수까지 빼앗아갔으면서.

이번 시즌 승점도 1승 1패로 서로 나눠가진 양심 없는 새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오오오오오~ 승리를 향해 가자~ 서울을 사랑한다~면 검붉은 기를 올려↗~

그 화려한 깃발을 돌리며 응원하는 모습에, 당연히 상주 팬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사랑한다↗ 상↗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 영원히남을- 사랑이되어↗라~

_We are 상주~ 오오오~ We are 상주~ 오오오~

저 놈들만 이기면 시즌 후반에 1위라는 꿈에도 꾸지 못했을 순위표를 박제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 보이는데. 어찌 물러나겠는가.

그래서 수원팬들에게 숫자가 밀렸던 저번 경기와는 달리, 오늘 경기는 아주 치열한 응원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중계진들은 아주 환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비인기 경기여서 K리그임에도 관중수가 천 명도 안 되던 상주의 경기가, 응원하는 사람들이 3천, 4천을 찍는 모습을 이렇게 쉽게 볼 수가 있다니.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아주 뜨거운 열기입니다. 사실 시즌 전에 이 경기가 이렇게 빅 매치가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말이죠.”

“그렇죠, 전문가들이 평가하길 상주 상무는 강등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지금 그들은 당당히 서울 최악의 원수이자 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이 하나 더 있었는데.

“이 두 팀이 팀 스타일도 완전히 정반대라는 게 흥미롭죠.”

“그렇죠, 완전히 다른 팀입니다.”

서울은 쓰리백을 중심으로 수비를 단단하게 쌓고 득점의 대부분은 데얀과 아드리아노라는 최강의 공격수들에게 맡긴 수비지향적인 팀이라면.

상주는 수비는 반쯤 버리고 양쪽 풀백의 공격적인 오버래핑을 이용해 화력을 극대화시킨, 전형적인 니가 한대를 때리면 나는 두대를 때리겠다는 공격에 목숨을 거는 팀이었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다 다른 팀이었다.

다만 그와는 별도로, 너무나 달랐기에.

“해설위원님은 이 빅 매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싸움의 관전 포인트는 아주 간단했다.

“상주가 다득점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주 큰 관전포인트입니다. 그러기만 한다면 상주가 최소 무승부를 바라볼 수 있겠지만, 그 이하라면 서울이 승리한다고 봅니다.”

상주의 창이 서울을 완벽하게 뚫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그렇다면 그 중 가장 주목할 포지션들은 어디입니까?”

“제 생각에는-”

그리고 이 말도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해설위원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대답했다.

“-결국 사이드, 측면이 아주 중요합니다.”

.

.

.

.

.

.

-탁.

“측면이 우리가 노려야 할 포인트다.”

“······”

“물론 서울의 약점이라고 한다면 미드필더진이 작년에 비해 그리 단단하진 않다는 점도 있지만. 결국 쓰리백은, 측면을 노리는 것이야말로 정석이지.”

물론 모든 선수가 포메이션대로 움직이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쓰리백의 경우 수비수 한 명 정도는 중앙 미드필더 지역까지 활발하게 움직이거나, 측면 수비수가 나갔을 때 측면으로 가서 빈 공간을 커버하기도 한다.

군대에서 포병으로 갔다고 해서 총 쏘는 법을 안 배우지는 않고, 분명히 기획부서에만 배정되어 있다고 해서 영업이나 마케팅 쪽 일을 아예 한 번도 안 한 사람은 오히려 더 드물듯이 말이다.

하지만, 포메이션이란 게 또 묘하게 사람들의 인식과 역할을 구분짓게 되고, 선수들에게 ‘당신은 이런 위치에 기본적으로 있는 사람’ 이라고 입력값을 넣어주기에.

쓰리백은 측면에 사람이 1명만 있는 경우가 많고. 포 백은 측면에 사람이 2명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감독님은 그렇기에 중앙을 박살내려고 하기보단 그 점을 노릴 생각인 듯 했다.

“그러니 그 누구보다도 너희들의 활약이 중요하다. 이준혁, 박태준, 박포진, 황수일. 너희가 서울의 빈 측면을 뻥뻥 뚫어버려야 한다.”

““예.””

그리고, 그 점은 자신 잇었다. 현재 상주 상무는 측면 자원들은 최고였으니.

다만 우려되는 점은 하나 있었는데.

“다만 오른쪽의 고광민은 주의해라. 이 친구. 요즘 폼이 심상치 않다. 현재 국가대표에서, 형이와 저울질을 할 정도로 폼이 올라왔다고 하더구나.”

그리고, 그 소리는.

“내가 보이엔 이 친구가 현재 형이와 함께 K리그 풀백 원탑이다.”

“······”

“만일 서울이 우승한다면, K리그 베스트 11 중 한 자리는 이 친구가 먹을 것 같더군.”

.

.

.

.

.

.

[경기 시작합니다! 상주 상무, 왼쪽으로 볼 돌립니다!]

[이준혁, 볼을 잡습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이 쪽으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고.

[고광민! 달려듭니다!]

-고광민 선수가 나에게 달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하, 짜릿하네. 진짜.’

원래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데 말이지.

나는 상대방이 쉬울수록 더 불타오르고, 상대방이 강하면 더 꺼져버리는 강약약강 스타일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당신이 지금 내가 겨룰 수 있는 사람 중에선 가장 최고의 상대지.’

형이 형님과는 같은 팀이라 못 겨루니. 현재 K리그에서 내가 직접 상대할 수 선수 중에서 가장 강력한 풀백은 저 고광민이었다.

‘그러니까. 피하지 않겠어.’

[아, 이준혁, 돌파를 시도합니다!]

이번 시즌 내가 K리그 최고의 풀백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