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향하여 (1)
2016년 7월 30일.
-후루룩- 쩝쩝.
‘음, 맛있다. 역시 수원에 원정경기 오면 갈비탕이지.’
아주 마음에 들어. 특히 요즘 수원 올 때마다 이겨서 더 마음에 들어.
그렇게 기분 좋게 먹다보니
-득득.
숟가락이 뚝배기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음? 아직 배가 좀 고픈데··· 벌써?’
평소라면 벌써 비워질 리는 없을 텐데 왜 이러는- 아하.
‘양 줄이고 가격 유지했네. 썩을.’
어쩐지. 너무 빨리 바닥이 비워진다 싶었어. 이제 보니 미묘-하게 뚝배기 크기가 좀 줄었다.
“어, 준혁아, 너 벌써 다 먹었냐?”
“엉. 두숟가락 남았고, 한 그릇 더 먹을지 고민중.”
싹싹 그릇을 비우며 한개로 만족하느냐 아니면 좀 배부르더라도 두개를 먹느냐 하는 진지하고도 또 진지한 고민은.
“야, 그럼 너 내것도 좀 먹어라. 나 입맛이 없다.”
“올. 감사.”
금방 해결됐다. 우리 온규 만세 만세 만만세.
“근데 넌 어떻게 항상 경기 끝나고 그렇게 음식이 잘 들어가냐? 경기 끝나면 입맛 없는 게 보통인데.”
온규의 말을 듣고, 나는 픽 웃었다.
“원래 나도 힘들었는데 이것도 약간 습관이더라. 매번 꾹 참고 먹다보니 이젠 잘만 들어가.”
뭘 모르는 사람들이 선수들이 그렇게 격렬하게 경기 뛰고 난 후에 입맛 없다는 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운동 하나도 안 했던 사람이 갑자기 격렬하게 운동한 직후엔 입맛이 돌기보다는 그냥 달콤한 음료수 몇 잔 마시고 끝내는 것처럼.
우리도 경기 뛰고 난 직후의 식사는 솔직히 아예 안 먹거나 간단하게 바나나나 칼로리바, 샌드위치 정도에 달콤한 음료를 곁들이는 것을 선호하지, 이런 제대로 된 식사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다만, 먹는 게 영양학적으로 옳으니까 홈 경기하기 전에 면류를 챙겨먹고, 원정 경기는 끝나고 식당에 들려서 갈비탕이나 곰탕을 먹을 뿐이지.’
그럼에도 잘 안들어가서 반쯤 버리는 선수들이 넘쳐난다. 괜히 과르디올라가 뮌헨에서 선수들이 경기 뛰고 식사 안 한다고 화냈던 게 아니다.
“얼마나 가져가?”
“이 정도. 더, 더더더, 오케이, 딱 좋다.”
“오케이, 땡쓰. 나중에 부대 가면 음료수 몇 개 던져주마.”
“그래주면 고맙-”
그 순간, 태준이가 끼어들었다.
“야, 온규야, 거절해라. 속지 마.”
“왜?”
“저놈 솔의 눈 먹는 놈이다. 게다가 민초까지 좋아해.”
“······와, 준혁아, 너 혀 어디 이상한거냐? 정신차려라.”
아니 이 새끼들이?
“야, 솔의 눈이 어때서? 그만큼 마셨을 때 첫 맛은 시원하면서 끝맛에는 적당한 달콤함이 남는 게 없어! 그리고 민초는 단언컨데 가장 완벽한 음식이라고! 달콤함과 시원함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완벽한 음식이라고.”
그렇게 내가 항변했지만.
“예 예, 너 많이 드세요. 난 됐으니까 초코우유로 줘. 허쉬로다가.”
“응, 초콜릿에 치약 뿌려먹는 놈하고는 입맛을 논하지 않는다.”
저 두 놈들의 갓의 눈과 민초 음해는 굉장히 단호했다. 젠장.
‘에휴, 그래, 맛알못 쉐끼들이랑 무슨 말을 하리오, 밥이나 먹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뚝배기로 돌리려는 순간.
[다음 소식입니다. 축구대표팀이 리우올림픽을 6일 앞두고 유럽예선 우승팀 스웨덴과 펼친 마지막 평가전에서 승리하면서 자신감을 충전했습니다.]
귀가 쫑긋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막내 공격수 황의찬이 공격을 주도했고 문창진이 탁월한 결정력으로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자세한 소식은···]
“오, 그러고 보니까 올림픽 시작하지? 올림픽은 언제 끝나려나?”
“글쎄, 14일간 하니까 21일까지 하지 않냐?”
“아 그게 아니라 축구팀 얼마나 갈거같냐고. 메달 따려나?”
온규의 그 말에,
“···으음, 글쎄? 솔직히 난 관심이 없다.”
“미투.”
나와 태준이는 피식 웃었다.
“···응? 왜?”
왜냐고?
“야,솔직히 저 친구들이 메달 따고 군대 안 온다고 생각해 봐라. 어떨 것 같아?”
“···아 씨발. 그렇네.”
그래, 우리만 여기에서 뛰고, 저놈들만 쏙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봐라. 솔직히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하겠지만. 많이 생각하다간 분명 부러워서 미쳐버릴껄?
“그건 안 되지, 안 돼. 저 친구들 몽땅 이곳으로 오라고 해. 이 좋은 팀에 못 오다니 이건 국가적 손해지. 하하. 탈락하고 빨리 원서나 써라. 이놈들아. 아주 귀여워해줄테니.”
그래? 그것 참-
““와.정.말.부.럽.다.””
부럽구나. 하하하하.
“···씨발, 니들도 부러우면 남아! 부사관 지원해!”
음- 저게 무슨 소리지?
“태준아. 너 저 소리 들리냐?”
“무슨 소리? 난 요즘 상병 말은 안 들리는 병이 생겨서.”
“이런, 안됐구나. 실은 나도 요즘 그 병 초기증세라 너한테 물어본 건데.”
그렇게 내년 3월 전역자를 놀려먹어주니까. 반응이 아주 격렬했다.
“···씨이발. 개새끼들, 이제 곧 전역한다고 기냥 막 나가네 진짜.”
욕을 바가지로 퍼붓네 이 자식.
“어허, 어디서 감히 하늘같은 민간인에게 군인이 욕을 하는 거지?”
“시발 니네도 아직 군인이거든?”
“이틀만 지나면 민간인 진이다 임마.”
그리고 자고로 군대에서 ‘진’ 자 붙으면 그 때부턴 그 계급으로 불러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러니 이틀 뒤부턴 우리를 민간인이라고 부르도록 하여라.”
“지랄 났네. 새끼들이.”
“어휴, 욕 너무 많다. 저 군인 아저씨 너무 무섭당.”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앗, 살짝 심했나보구만.
“미안, 쏘리.”
“···아냐, 휴. 생각해보니 우리가 저기에 관심 가져봤자 늘어나는 건 질투심밖에 없긴 하겠네. 니 말대로 관심 끄자. 끄자고.”
온규의 그 말에, 우리는 살짝 웃었다.
“그래, 우리는 다음 경기나 준비하자고. 그게 데미지 덜 받는 일이야.”
“맞아. 게다가 우리보다 못하는 놈들 경기 봐 봤자 뭣에다 쓰려고? 다음 경기나 준비하는 게 훨씬 스트레스 덜 받는 일이지.”
그렇게 나와 태준이가 말하는 모습을 보고. 온규도 그만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니들이 맞네. 다음 경기나 준비해야겠다.”
“그래, 맞아, 다음 경기나 준비하자고.”
다음 경기는 2위 결정전이자.
사실상 전북이 최소 승점이 마이너스 몇 점은 될 것까지 생각하면.
사실상의 1위 결정전.
FC 서울과의 대결이니까.
“···야, 다음 경기 11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벌써라니. 11일 생겼으니 더 열심히 준비해야지.”
“그래, 우리 FC 서울 꺾고 우리 있을 때 1위 한번 찍어보자고.”
그런 우리의 말에 온규는 살짝 이상한 눈빛으로 우리들을 쳐다보더니
“야, 나 너희한테 궁금한 거 있다.”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응? 뭔데?”
“너희 병장이잖아. 이제 전역 두 달 남은.”
아니 이놈이 어디서 숫자를 늘리고 있어.
“한 달 반이다. 정확히 46일 남았고.”
“어쨌든 얼마 안 남았잖아. 시즌 중에 전역하는 건 똑같고.”
“···뭐 그렇긴 하지.”
우리는 9월 14일 전역이니까. 29라운드까지만 상주 상무 소속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순위에 미친 듯이 집착할 수 있냐? 만에 하나 우승해도 너희한테 돌아가는 거 단 하나도 없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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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아니야.”
딸깍.
“아니야.”
딸깍, 딸깍.
“···이것도, 아닌 것 같군.”
털썩.
“휴우- 참 어렵구만.”
경기를 앞두고 영 제대로 마음을 정하지 못하던 박 감독이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옷을 챙겼다. 바깥 바람 좀 쐬다가 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감독실 문을 열자마자 박 감독은 맹렬이 자신의 생각을 후회했다.
‘···이런, 날씨가 죽여주는구만.’
부대 내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고있다 보니 지금이 8월이라는 것을 깜빡해 버렸던 것이었다.
‘이런 것까지 깜빡하다니, 정말로 나이가 들었나 보군 그래. 허허.’
그래도 이왕 나왔으니, 운동장 한 바퀴는 돌면서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감독은, 깜짝 놀랐다.
-야! 야! 마크! 마크해!
-좀 더 중앙으로 모여! 다시 벌려!
전역이 단 두 달도 안 남은 병장들이, 훈련 시간이 끝났음에도 자처해서 단체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감독님, 나오셨습니까?”
“아, 김 코치, 이게 무슨 일인가? 자네가 시킨 건가?”
박 감독의 의문에, 김 코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발적으로 한 겁니다. 감독님, 서울전 이기고 싶다고 다들 나왔습니다.”
“······? 그거 하나만 보고 저렇게 모두가 단체훈련을 한다고? 병장들이?”
박 감독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그런데, 외박까지 반납한답니다. 외박도 이젠 지겹다면서.”
“······”
이제 슬슬 머리가 멍해진 감독은, 의아한 감정을 가득 담아 물어봤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한다고 하던가?”
이제 저 친구들은 곧 떠난다.
슬슬 자신들의 성적도 성적이지만, 소속팀에서의 자리를 걱정하며 몸을 사릴 때란 말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단체로 몸을 아끼지를 않다니.
대체 무엇 때문에?
“저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저 친구들 딱 한 마디만 하더군요.”
-1위가 눈 앞에 보이는데 그게 중요합니까.
“비록 시즌이 끝났을 때, 1위를 만들 수는 없더라도 지금 있을 때 1위 한번 만들어놓고 전역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
“오직 그거뿐이라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박 감독은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로 나온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참 대단한 친구들이구만.”
“그렇죠. 젊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이상 감독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도 좀 더 열심히 해야겠구만.”
어찌 저런 선수들을 보고, 팀의 감독이 편히 있을 수 있겠는가.
“···감독님, 그래도 감독님의 연세가 연세십니다. 조금 자중하시죠.”
“하하하. 자중? 글쎄. 자중이라. 마지막인데 자중을 하고 싶진 않구만.”
넘어가듯 말한 박 감독의 말에, 김 코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감독님? 마지막이라뇨? 그 말씀은?”
“이미 상부엔 말해뒀네. 다음 시즌부턴 자네가 정식으로 팀을 이끌게 될 거야.”
-감독의 사임.
느닷없이 떨어진 폭탄에 김 코치는 많이 당황했다.
“저기, 감독님, 굳이 그러실 필요 있습니까? 올해 성적이면 상주 상무 역대 최고 성적이 유력합니다. 윗선에서도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는데요. 굳이 그러실 이유가 있습니까?
그랬다. 상주시는 올해 나름 시원한 공격축구로 인해 높은 성적과 함께 괘 많은 팬을 증가시킨 상주 상무 팀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고.
군부대도 나름 큰 말썽을 피우지 않고 잘 부대를 이끌었던 박 감독에 대한 평가가 낮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사임이라니.
“부디 재고해주실 수는 없-”
“아냐, 이미 정해졌어. 다음 시즌부턴 자네가 감독일세.”
그 단호한 말에, 이미 결심이 섰음을 알게 된 김 코치는 설득을 포기하고, 대신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러신 겁니까?”
그 질문에 박 감독은 짧게 말했다.
“난, 솔직히 이번 시즌보다 더 높은 순위를 기록할 자신이 없네.”
“······”
“이번 시즌, 솔직히 난 많이 한 게 없어.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이번 시즌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선수들이 만든 거라는 것을.”
그 말에, 김 코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이러한 선수들을 만드신 것은 감독님입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하지만 저런 문화는 감독이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세. 선수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거지.”
그런 걸 감독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면 팀 케미스트리가 망가지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이 제안 앞장서서 한 놈이 누군가?”
“···이준혁, 그 친구였습니다.”
“그럼, 나보다는 그 친구에게 더 큰 박수를 보내주게.”
이러한 멋진 팀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준 저 친구에게-
“최대한의 존중과 예의를 담아서 말이지. 가능하면 선물도 좀 주고.”
“······글쎄요, 저 친구가 선물이라고 여길만한 게 있겠습니까?”
“왜 없나. 당장 저 친구, FA 상태인데. 우리가 선물해줄 수 있는 게 차고 넘치지.”
박 감독의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코치는,
“에이전트, 믿을 만한 에이전트가 필요하지 않겠나.”
“아, 그렇군요.
이어지는 감독의 말에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FA 상태이니, 당연히 믿을만한 에이전트가 필요한 법. 그리고 그들은, 축구계에서 잔뼈가 굵었기에 믿을 만한 에이전트들을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저 친구에게 관심 가질만한 괜찮은 친구들한테 한번 연락 돌려보겠습니다.”
“그래, 의심이 가면 다음 서울전 경기 보고 판단하라고 하고.”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