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는 (2)
“그런 일이 있었구나. 유럽에서의 제안이라···”
“예, 너무 뜻밖의 일이라서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아버지는 흐음- 하는 목소리를 내시더니,
“확실히 고민이 될 만한 일이긴 하겠구나. 네 입장에선 앞으로의 인생이 갈릴 문제니.”
그래, 이 선택이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크게 가를 테니까.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선수로서 뛸 수 있냐는 것일 텐데, 그 곳에 너의 자리가 있는 것은 확실한 거냐?”
“···아뇨, 솔직히 말해서, 지금 마르세유가 그대로 전력을 온존한다면, 아주 운이 좋아봐야 백업일 겁니다.”
알아본 결과, 15-16시즌 마르세유의 왼쪽 풀백 주전은 Benhamin Mendy. 우리나라 말로는 벵자민 멘디 혹은 망디라고 읽는 선수.
11-12시즌부터 리그 되, 그러니가 프랑스 2부리그 팀에서 주전을 먹고 13-14시즌 마르세유로 이적해와 저번 15-16시즌까지 부동의 주전으로 뛰어온 선수인데, 내가 이 선수를 밀어낸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 친구는 94년생인데 벌써 리그앙에서 3년을 소화한 풀백이기에 현재의 실력도, 미래의 실력도 나보다 그 친구가 더 고평가받을게 뻔하고.
무엇보다 프랑스 U-21 국가대표팀의 주전이자 현재 프랑스 A대표팀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꽤 높아 보인다고 평가받는 선수이기에. 인기면에서도 크게 밀릴 수밖에 없으니까.
‘뭐 거기로 간다면 일부 우리나라 마르세유 팬분들이 내 유니폼을 세컨으로 맞춰주실 가능성이 있으니 내 인기가 아예 쌩 신인보다야 낫겠지만···’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다. 애초에 우리나라에 마르세유 팬이 얼마나 있을지도 의문이고, 있다고 해도 프랑스 국가대표팀 컨텐터가 훨씬 사랑받지 않을까?
“다만, 그 스카우트가 한 말도 그렇고 제가 따로 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갈 확률이 좀 높아 보이긴 합니다.”
물론 2019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다고는 하는데, 스카우트가 돈 될 만한 거 더 팔아치울려고 한다는 말한 것. 리버풀이나, 맨유, 프랑스 타 클럽의 루머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시기에 나에게 접근했다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그냥 팔린다고 보는 게 맞겠지, 선수 입장에서도 타 팀으로 이적하고 싶을 거고.’
생각해 봐라, 성공만을 거듭하고 직장에서 좋은 평가받던 사원이 갑자기 윗대가리가 미쳐 돌아가서 자기 동료들 다 짤리고 회사도 안 좋아진 상황에서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 제안을 받는 거다. 그럼
-아냐, 내가 잘 해서 이 직장을 바꿔보겠어!
라고 할까? 아니다. 그냥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기업으로 탈출을 꿈꾸겠지.
그 말까지 듣자, 아버지는 살짝 의문에 찬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셨다.
“그렇다면 간단하지 않느냐? 이번 여름에 그 선수가 그 팀을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정말로 그 선수가 이적한다면 계약을 맺고, 아니면 그냥 K리그에 남는 게 맞아 보이는데 말이지.”
···그래, 내가 8월에 전역한다면 저 방법을 쓸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나는 저럴 수가 없다.
“아버지, 제가 만일 마르세유에 간다고 하면, 전 겨울이 되어서야 그 팀 소속으로 경기를 뛸 수 있습니다.”
나는 군인 신분인 만큼, 9월에 전역한 후에야 정식 계약을 맺을 수 있다. 유럽으로 갈 경우 16-17 여름 이적시장이 끝난 다음에야 전역한다는 거다.
이 말인즉슨, 만일 마르세유 측에서 제대 직후에 나와 계약을 맺더라도 나는 겨울 이적시장이 열리는 내년 1월이 되어서야 마르세유의 선수로서 인정되어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럼 마르세유 쪽에서 어떻게 할까?
“멘디를 판다고 해도 무조건, 무조건 여름에 레프트백 선수 영입이 있을 겁니다.”
5개월이라는 기간동안 스쿼드를 완성지어 놓지 않고 그냥 시즌의 절반을 치루고 싶은 팀은 그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이 소리는 그럼 3개월 동안 실전을 뛰지 못해서 실력이 조금 떨어져 있는 상태로, 반년 정도동안 이미 기존 감독의 전술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는 선수와 주전 경쟁을 해야 한다는 거다.
정말, 정말 힘든 생존 싸움을 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유럽 팀을 알아보는 건- 아, 이것도 안 되겠구나.”
“예, 3개월간 공백이 있다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그 말에 아버지는 신음을 삼키셨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럼 K리그는 그런 게 없고?”
“예, K리그는 군 전역 선수에 대한 조항이 있거든요.”
K리그 선수규정 제 7조 6항.
소속 클럽이 없는 상태에서 입대한 선수는 전역 후 14일 이내에 등록기간과 상관없이 선수 등록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그냥 완전한 FA랑 다를 게 하나 없이 이 실력, 이 폼 그대로 그 팀의 소속으로 주전 경쟁을 하고, 리그 경기를 뛸 수가 있다.
“흐음- 정리하자면, 유럽으로 가고는 싶은 거지?”
“···예.”
그래, 가고 싶다. 유럽이니까.
“하지만 갈 경우엔 네가 3개월간 붕 떠버린다는 점 때문에 주전을 차지하기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는 거구나.”
“···예, 그렇습니다. 3개월간 경기를 뛸 수 없다는 게 너무 치명타입니다.”
그 기간동안 K리그에서 뛰면 경기 뛰면서 몇천만을 확실하게 벌 수 있는데. 유럽으로 가면 돈 한 푼도 못 받고 내가 알아서 개인훈련만 해야한다.
축구 실력적인 면에서도, 돈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도 손해다.
“1~2년 더 K리그에서 뛰다가 가는 것을 노리는 것은 안 되는 거냐?”
“예··· 그 때는 유럽에서 오퍼가 안 올 가능성이 굉장히 높죠.”
내 나이가 세는 나이로 28살, 만으로 스물여섯이고. 스물일곱까지 4개월 정도 남았다. 유럽 진출을 할 수 있는 나이 상한선의 커트라인이다.
그걸 감안하면 유럽 진출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방법이 없는 게 아니긴 한데.’
바로 K리그 팀이랑 3개월 단기계약 맺고 난 후에 유럽으로 나가는 거다. 그럼 겨울 이적시장 때까지 K리그에서 계속 경기를 뛰며 실전 감각을 유지할 수가 있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나 가능한 거다. 이것도 한 가지가 걸려서 말이다.
‘···K리그 구단이 호구가 아니고, 1억이 넘는 돈을 태워가면서 나한테 그래 줄 구단이 있을 리가 있나.’
그래, K리그 로컬룰인 FA 보상금 제도 때문에 내가 K리그 팀과 계약을 맺을 경우 나를 영입하는 구단은 내 이전 소속구단인 고양 쪽에 보상금을 줘야 한다.
‘계산기 두드려보니까, 보상금을 아무리 줄이고 줄여도 1억은 됐었지···’
그래서 솔직히 그 방법은 포기했다.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고작 3개월 쓸 풀백 겸 미드필더에 1억을 태우는 K리그 구단은 없을 거다.
결국,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고, 한 마리 토끼를 선택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유럽으로 도전할 것인지.
아니면 정말 K리그에 뼈를 묻을 것인지.
“······”
“······”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을까. 아버지가 천천히 말씀하셨다.
“···이 문제는 내가 딱 잘라 정답을 말해주기가 힘든 문제구나.”
“···그런가요.”
휴, 역시 이건 아버지라고 해도 확답을 주시긴 어려운 문제지.
‘감독님이나 수석코치님이 돌아오시면 그분들한테도 여쭤보면서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슬슬 작별인사 후 공중전화기를 내려놓을 생각을 하던 순간.
“그래, 이건 내가 뭐라고 말해도 네가 해온 행동을 보면 네 마음은 이미 반쯤 정해진 것 같거든.”
아버지가 뱉으신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 그건 또 무슨 소리십니까. 아버지.”
내 마음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내 의문에 아버지는 웃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너, 기억나느냐? 어릴 적 네가 축구한다고 했을 때, 내가 뭐라고 했었는지?”
그 말을 듣고 눈을 왼쪽 위로 돌리며 과거를 추억해봤지만, 딱히 크게 기억나는 일화가 있진 않고 어렴풋이 반대하셨다는 기억만 떠올랐다.
“···솔직히 기억이 잘 안 나는데요. 그냥 탐탁치 않아하셨다는 것 정도만 기억나요.”
축구 제대로 해보겠다고 한 지가 벌써 10년을 넘어가는데 그 기억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가 있겠는가.
‘운동장 뺑뺑이 돌았던 기억에서부터 빠따로 쳐맞은 기억이라던가, 불알 쥐어짜진 기억이라던가··· 그런 자극적인 기억이라면 또 모를까.’
그러자, 아버지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셨다.
“으하하하! 으하하하하!”
정말로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리신 거였다.
“···어, 아버지?”
“그 때, 축구 안 시켜준다고 그렇게 땡깡을 부려 놓고 기억을 못 하는 거냐?”
“그랬었나요?”
“그래, 그랬다. 밥 안 먹기도 했고, 집에 며칠째 안 들어오기도 하고 그랬었지.”
“···아, 기억나네요.”
그래, 그런 때가 있었지? 가출해놓고 친구네 집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어서 기억이 안 났네.
“말하니까 이제 기억나느냐?”
“예, 아버지가 좀 심하게 반대하셨었죠. 그런 방법까지 써야 할 정도로.”
그리고 이제 아버지가 반대하신 이유도 생각났다.
“아버지가, 이 판은 최상위 1%가 아니면 너무 위험이 크다고 말씀하셨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그래, 그랬지.”
그리고, 인생은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씀하셨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실패하면 되돌릴 수가 없는.’
“그러면, 네가 내 말에 답한 말도 기억하느냐?”
“···..예.”
인생은 한 번 뿐이니까- 도전하는 거 아니냐고.
···으아, 부끄럽네. 진짜 딱 중학생이 할 만한 중2중2한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뭐, 솔직히 네가 뭐라고 해도 내 말을 듣지 않겠구나- 싶었지. 그런 말 하는 놈은 어떻게 막아도 끝내 그 쪽으로 빠져나가거든.”
그 말과 함께, 아버지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나도 프로야구가 없을 때부터 그 짓 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된 놈이니까. 아주 잘 알고 있지. 참 내 아들다운 답변이었어.”
“······!”
“그러니- 솔직히 뻔하지 않겠느냐. 누가 뭐래도 넌 내 아들인데. 결국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택하겠지.”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도, 너무나도 내 심장을 후벼파는 말이었으니까.
“뭐, 솔직히 부모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네가 K리그를 선택했으면 하는 바이긴 하다. 부모라는 존재는 자식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선택하는 것보단 로우 리스크, 로우 리턴을 선택하길 바라거든.”
“······”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지?”
그래, 역시 아버지다.
···아버지는,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계셨다.
“···예.”
그래, 나는. 유럽에 가고 싶다.
정말로 하늘과도 같아 보이던, 저 태양과도 같은 곳을 한 번 가 보고 싶다.
설령 날개가 녹아 추락하는 이카로스가 되더라도- 도전해 보고 싶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명백하지?”
“···예.”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명백하다. 남은 시즌, K리그의 준수한 풀백을 넘어-
“K리그 최고의 풀백 정도는 되어 보거라.”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