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167)

예상하지 못한 일들 (2)

-지금 당장 답을 달라는 말은 아닐세, 아직 9월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미래는 어찌 될 지 모르는 일이니. 우리의 늙은 마녀 때문에라도.

-하지만 가능하다면, 자네가 내년 우리의 계획 속에 있었으면 하는 바라네.

-나중에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 메일로 연락을 주고. 전화는 시차 때문에 못 받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 그럼, 또 보지.

그 말과 함께 헤어진 후.

“······”

나는, 솔직히 뭐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하아- 유럽이라··· 유럽. 어릴 때 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축구를 하는 모든 아마추어 선수들의 꿈을 순차적으로 말해보자면 첫 단계는 프로고, 그 프로들의 꿈은 최상위권 프로가 되어 국가대표가 되는 거고, 그 국가대표들의 꿈이 유럽이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현실을 점점 깨닫고, 저 미래의 꿈은 하나씩 버리게 된다.

마치 평범한 학생들이 중학교 시절엔 최상위권 대학들을 바라보고 나도 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지만. 막상 그 현실이 코 앞에 다가온 고 3이 되면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지는 것처럼.

중학교 때까지는 나중에 세계 최고를 노리겠다는 친구들이 적지 않지만, 고등학교 때는 국가대표만 가면 정말 좋겠다는 친구들이 엄청 늘어나고, 대학교 때는 프로만 가면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현실은 대학교 졸업하고 나면 다들 교사나 실업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하지.’

그것도 대학교 한 3학년 때부터는 주전을 먹거나, 공부를 대학교 들어와서 꽤나 열심히 했을 때의 이야기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물론 난 드래프트 지명해주겠다는 제안까진 받아 봤으니까 굳이 따지면 완전히 같은 케이스는 아니긴 하지만···’

3년도 보장 안 되는 4라운드 제안에 자퇴를 할 순 없다는 생각에 거절했으니 결국 결과론적으로 볼 경우엔 저 일반적인 상황과 크게 다르진 않다.

그만큼, 유럽이라는 꿈은 나에게 잊혀졌던 꿈이었다.

10년, 15년 전의 철 모르던 시절의 꿈에 가까운.

그런데, 그 꿈이 내 눈앞에 있다는···

-딱, 딱

“야, 야, 준혁아, 일어나라, 저녁점호 준비해야지.”

“어? 어, 엉. 어, 그래 준비-”

-턱

“으아아아악-! 아갸갸갸···”

이런 시빨···

“어, 발 찧었냐? 괜찮아?”

“으어억··· 너 같으면 괜찮아 보이냐!”

시발 너무 아프다...

"으어 시발, 시발, 아, 진짜 너무 아파.. 아."

그렇게 내가 발 잡고 동동거리자, 태준이는 묘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살짝 중얼거렸는데.

-···국대 떨어져서 한참 멍때리더니만, 테이블이 국대 떨어진 거 잊게 해주는 데 즉효약이네···?

그 말을 듣고, 나는 딱 동작을 멈췄다.

아, 그래 나 국대 떨어졌지?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어디 병원 가야돼? 열외시켜줘?”

“아, 아니, 그럴 필요까진 없고. 그냥 좀 지나면 나아질 느낌이야.”

“오케이, 그럼 이상 없다고 보고한다.”

“옹야.”

그렇게 저 녀석이 앞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조금 헛웃음이 나왔다.

‘참 특이한 일이다. 내가 국가대표를 떨어진 사실도 까먹다니. 하도 오늘 충격적인 일이 많이 벌어져서 그런가.’

하긴 그렇긴 해, 국대 떨어진 일이랑 유럽 제안이 동시에 들어오는 게 어디 흔하겠어?

“저녁점호 임원보고! 총원 2! 열외 무! 현재원 번호! 하나!”

“..둘!”

아, 갑자기 생각하다 보니 또 빡치네. 슈틸리케 그 인간, 최소한 예비명단에라도 들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태준이가 문 앞에서 저녁점호 보고를 마치고.

-이상 저녁점호를 마치겠다! 현 시간부로 22시까지 미비된 동작을 완료하고 연등자는 행정반으로 오도록! 취침 후 30분, 기상 전 30분 유동병력 없다. 이상!

언제나 그렇듯 똑같은 말로 저녁점호를 마친 당직사관의 말을 들으며 태준이가 걸그룹 뮤비를 틀려고 했지만-

“야, 오늘은 뉴스 좀 보자.”

오늘은 제지했다.

“아, 왜?

“스포츠 뉴스 할 시간이잖아, 오늘은 좀 거기로 돌리자고, 오늘 슈틸리케 그 인간이 뭐라고 했는지 정리된 것 좀 보게.”

“···그래라.”

어디 슈틸리케 그 외노자가 뭐라고 했는지 좀 보자고.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채널을 돌렸는데.

[작년에 이어, K리그에 또 슬픈 소식이 전해져 버렸습니다.]

“···?”

우리는 두 눈을 크게 떠야 했다.

[K리그의 J팀이 경기당 100만원을 주고 심판 매수를 한 사실이 드러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자세한···]

“···뭐야씨발?”

“뭐라고?”

바로, K리그에 초대형 폭탄이 터져 버렸으니까.

-*-*-*-

사실 스포츠에서 승부조작이란, 정말 흔하다.

전 세계적으로 엄청 흔하다.

당장 축구라는 종목에만 한정지어도, 그리고 21세기에만 한정지어도. 승부조작 및 심판매수 사건은 아주 흔하게 일어났다.

2005년에는 독일과 벨기에에서, 2006년에는 이탈리아에서, 2008년에는 포르투갈에서, 2011년에는 터키에서 발각되었고.

그리고 2009년 중국, 2011, 2012년에 발견된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승부조작에 더해서 2009, 2013에 일어난 유럽 축구 승부조작 스캔들까지 합하면?

그냥 너무 많아서 세는 걸 포기해야 한다.

어디 남미나 아프리카같이 국가의 공권력이 없는 나라에서 벌어진 것도 아니고,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에서 사실로 밝혀져서 관계자가 최소 징계를 받거나 감옥을 간 사건들만 해도 이 정도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에서 가장 금기시되어야 할 존재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의 경기를 봐주시는 팬들은 그딴 불공정한 게임을, 짜고 치는 고스톱을 보고 싶어서 오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일까.

군대에서 밤 10시 넘어서 시끄러운 일은 보통 용서되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당직사관님, 저 오늘 싸지방 연등합니다.”

“저도요.”

“저도요.”

승부조작. 그 거지같은 것.

도대체 K리그의 어떤 J팀이 그 쓰레기, 아니 쓰레기한테도 미안할 짓을 저질렀기에 수많은 팀원들이 제대로 정보를 찾아보고자 했던 거였다.

그리고 찾아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프로 스포츠, 또 승부조작 터졌다··· 이번엔 K리그 최상위권 구단>

조용할 날이 없는 K리그다. 작년에 이어 최상위급 구단도 심판 매수에 나선 것이 검찰 수사를 통해 나타났다.

검찰은 지난 1년 전 벌어진 경남 FC 심판 매수 사건에 대한 관련 수사를 지속한 결과, 프로축구 J구단 관계자가 경기 때 우호적인 판정을 해달라는 국민체육진흥법을 위반한 혐의를 밝혀내 K-리그 소속 심판 A(41) 씨와 B(36) 씨를 불구속기소했고.

이들에게 수백만 원의 뒷돈을 건넨 혐의로 J구단 스카우터 C 씨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은 2013년 각각 두 차례와 세 차례에 걸쳐 부정한 청탁과 함께 경기당 1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해 경남 FC 관계자에게 같은 청탁과 함께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프로축구 K-리그 전·현직 심판 4명은 1심에서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J구단은 지난해 벌어진 경남 FC와는 달리 리그 최상위권의 강팀으로, 이는 작년의 사건보다 훨씬 큰 사건으로 터질 우려가 크다.

2010년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2012년 프로배구-프로야구 승부조작, 2013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이후 밝힐 것을 다 밝혀냈다고 생각했었지만. 끊없이 나오고 있는 승부조작.

이에 검찰은 스포츠계 전반에 심판을 상대로 한 부당한 금품 매수행위가 있었는지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하고, 최대한 빠르게 J구단에 대한 판결을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00뉴스

***

“시발, 이거 실화야? 최상위권 구단 J팀이 심판 매수했다고? 그럼 이건 그냥 너무 뻔하잖아!”

K리그 클래식에서 J라는 이니셜을 가지고 있는 팀은 세 팀이다.

전남, 제주, 전북.

그러나 이 중에서 최상위권이라고 할 만한 팀은 단 하나다.

전남은 FA컵 우승을 해 본적은 그래도 좀 있으나, K리그 우승이 하나도 없는데다 최근 성적도 그리 좋지 않은 약팀이었고.

제주는 최근 성적이 나쁜 편은 아니고 옛날에 K리그 우승을 해 본 적은 있으나 FA컵 우승은 단 한 번도 없기에, 최상위급 구단이라고 할 만한 팀은 아니다.

그러니, 단 한 팀만 남는다.

“전북이 심판 매수했다는 소리잖아. 이거!”

전북.

20세기 우승은 단 한 번도 없지만.

2005년 FA컵 우승을 시작으로 2015시즌까지

K리그 우승컵 4개.

FA컵 우승컵 3개.

그리고, AFC 챔피언스 리그컵 1개를 차지한.

K리그에서 범접할 수 없는 최강팀이 되어가고 있고. 프로선수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대우를 보장하는. 현재 명실상부한 K리그 최고의 팀.

그런 팀이 매수를 시도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아니 경남이야 뭐, 원래 5천만원 옵션 아끼겠다고 잘하던 외국인 선수 쫓아낸 막장스러운 놈들이니 그나마 덜 충격적이었는데. 이건 또 뭐야. 시발.”

“그러게요, 진짜 좀 충격적인데요, K리그의 드림클럽이 왜 저런 건지···”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기에, 우리들은 이제 전북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를 가지고 열띤 이야기를 펼쳤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견은.

“기승이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당연히 승점 삭감은 기본이고, 내년 강등 확정 아니겠냐?”

“그래요, 이탈리아 칼치오폴리 때도 그랬잖아요. 이거 그 때랑 엄청 비슷한데요. 리그 내 최고의 팀이 심판 매수를 한 것도 그렇고.”

그러나, 일부는 또 생각이 달랐다.

“글쎄··· 이 개같은 축협 새끼들이 경남보다 더 쎈 징계 때릴지가 의문이다.”

“그래요, 경남도 5백씩은 줬는데 이건 액수가 너무 적어서 솔직히··· 그냥 심판 접대비라고 하고 넘어갈 수도 있을거 같아요.”

그리고, 나는 입을 다물었지만, 아마 후자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법은 불소급 원칙이 보통 기본이고, 뭣보다 이미 선례가 있잖아.’

작년 말, K리그가 끝나고 2013년도에 승부조작을 시도했던 게 밝혀진 경남의 징계는 올해 승점 10점 삭감, 그리고 7천만원의 벌금이 다였다.

물론 그 때는 그 판결이 생각보다는. 그러니까 '생각보다는' 이슈가 덜 됐다.

조작한 그 팀이 이미 2부리그로 강등당해 있어서 더 강등을 시킬 수도 없었고. 우승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회수할 트로피도 없고. 뭣보다 매수한 경기 대부분을 오히려 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불소급적용 시켜서 2013년 규정대로 했던 거였고.

그런데 이제와서 똑같은 짓 저지른 전북에게 더 강한 징계를 내린다?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없을거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미 경남이라는 선례도 있으니, 아마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테지.’

그러니 나는, 기대 안 한다.

저 윗대가리 분들이 우리 스포츠라는 세계에 대해 어떤 이해도를 가지고 있을 거라는 기대 따윈 안 한다.

게다가 저 높으신 분들이 할 만한 훌륭한 변명도 있다.

-에이, 포르투갈 리그에서 포르투? 라는 팀은 심판 매수하고도 승점 6점만 깎였는데요? 유럽도 그러는데, 저희 정도면 양반이죠!

저렇게 나오면 할 말이 없어진다. 실제로 저딴 일이 벌어진 건 맞으니까.

더 웃긴 건, 그 솜방망이 징계 덕분에 포르투는 징계를 받고도 그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는 거다.

참, 거지같은 일이다.

스포츠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짓인 승부조작을 저지른 놈들이 전혀 반성의 시간도 가지지 않고 우승이라는 모든 선수들이 바라는 명예를 거머쥐다니.

'···그리고, 우리도 지금 자칫하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테지.'

전북은, 당장 작년에만 2위와 승점 8점 차이로 K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러니 승점 10점 감점 정도라면, 전북이 우승을 거머쥘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

"······”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절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높으신 분들이 우리를, 팬들을 위해 더 강하게 징계를 때려주거나 그럴 리는 없지.

그러니-

“···그러니까, 뛰고 싶단 말이냐?”

“예, 코치님, 만일을 위해 29일 전북전에 저도 준비는 하고 싶습니다.”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힘으로.

저들이 우승하는 일이 없도록, 단 한 톨의 도움이라도 보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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