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하지 못한 일들 (1)
얼떨결에 저 사람들을 따라온 지 1시간만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사짜 아냐?’
왜냐고?
-Hum - très bien!
-c'est délicieux!
프랑스 사람들이 뭔 저렇게 쌈장을 맛깔나게 싸먹는건데. 허 참.
“저기, 지금 뭐라고 말한 건가요?”
“아, 방금 한 말이요? 그냥 맛있다는 소리로 알아들으시면 됩니다.”
트레비앙, 델리씨유. 둘 다 맛있다는 표현이라고? 이건 또 뭐야. 하 거지같네.
‘아오, 뭔 말인지를 하나도 못 알아들으니까. 스트레스 배로 받는다.’
영어, 영어로 말해줘··· 내가 살다살다 영어가 그리워지는 감정을 느낄 줄이야.
“저기요, 저도 알아듣게 영어 좀 써주시면 안될까요? Speak English! please!”
그렇게 말했는데, 저 프랑스 남자는 고개를 통역 쪽으로 돌리면서 그냥 저 사람을 통해 대화하라는 몸짓을 보내왔다.
“아니, 도대체 왜 저러는 거에요? 저 사람 영어 못해요?”
아니 여기에 날아올 정도면 최소 국제 스카우터일 거 아닌가. 당연히 영어 못하지는 않-
“네, 이 분은 영어 잘 못 합니다. 그래서 제가 같이 온 거고요.”
“······?”
뭐야 시발 이건 또. 영어 못하는 놈이 왜 국제 스카우터야?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인삿말도 실수할까봐 하기 힘들다고?
‘아니 영어 6등급짜리인 나도 그 정도는 할 줄 아는데.’
이건 좀 이상하잖아.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 안 배워요?”
“···음, 정확히는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동안 같은 제2외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좀 있죠? 대학 잘 가려고?”
“···그렇죠?”
좀 있긴 하지. 제2 외국어에 가산점 주는 대학이 있으니까.
“그 친구들이, 어디 나중에 대학 가서도 제2외국어 잘 공부하고 하던가요?”
“···아니였죠?”
다들 시험보고 나서 까먹었다고 하던데.
“그런 느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원래 프랑스는 한국처럼 취업할 때 영어 성적을 필수적으로 요구하지도 않았거든요, 요즘은 좀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영어를 학교에서도 일주일에 3시간? 정도밖에 안 가르치고요. ”
“······”
아니, 그럼 일반인 중에서 영어 회화가 아예 불가능한 놈들이 넘쳐난다는 소리잖아. 진짜 사짜 아니지?
-끄억.
‘아 트림까지···’
진짜 꼴볼견이다. 점점 사짜같은데.
“휴, 그럼 다시 한 번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프로방스 한인 교회 쪽에서 마르세유 구단에 임시로 고용된 줄리엔입니다. 통역사고요. 저 분은 작년 가을부터 마르세유 국제 스카우트로 보직을 옮긴 케빈입니다.”
작년 가을? 가을? 그렇다는 건··· 아 설마.
‘그때 그 이상한 사람? 그 사람이 저 사람이구나!’
작년 10월달 때, 처음 보는 사람이 영어도 아니고 프랑스어로 나한테 말 걸어와서 그냥 도망쳤는데. 이제 보니 그 때 그 사람이 저 사람이다.
‘···그 때 뭐라고 했었더라··· 무슨 age? 라고 했던 거만 기억나는··· 아.’
그게 혹시 나이 물어보는 거였냐? 하, 그럼 최소한 이거 장난은 아니라는 건데···
‘8개월동안 돈도 별로 없는 한 사람을 엿먹이기 위해서 이런 장난을 칠 리는 없으니.’
좋아. 그럼 이제부턴 진지하게 대답하자.
“···이준혁입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제부터 통역에만 집중할 겁니다. 이제부터 제가 말하는 건 통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내 앞에 놓여진 남자가 뭐라고 하면서 손을 내밀고, 통역사가 뒤따라 말해줬다.
[음- 일단 반갑다는 말부터 해야겠지. 마르세유 스카우터 케빈이다.]
음, 통역이 갑자기 하게체를 쓰네? 뭐 유럽 사람 나이를 내가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대충 얼굴만 봐도 나보다 최소 10살은 많아 보이니 그 정도야 뭐.
“예, 그럼 저도 인사드리겠습니다. 상주 상무 선수 이준혁이라고 합니다.”
그 말과 함께 악수를 한 후, 나는 예상이 맞는지부터 확인했다.
“일단 이것부터 묻고 싶네요, 10월 때 저에게 말을 거셨던 이후로 계속 지켜보셨던 건가요?”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기억 못 하는 줄 알았는데.]
휴우- 그럼 일단 내 예상은 맞았고. 그럼 이제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어본다
“왜 저를 지켜보신거죠? 마르세유 같은 팀이?”
내가 리그앙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그렇게 많은 정보를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한때는 리그앙을 본 적이 있긴 있다.
우리나라가 낳은 천재 공격수, 박주영이 AS 모나코로 갔을 때. 그러니까 2008년 여름에서부터 2011년 여름까지는 리그앙을 좀 봤거든.
그 때의 마르세유는 리옹과 함께 리그앙을 대표하는 강팀이었다. 그 세 시즌 동안 2위-1위-2위를 찍었고, 특히 10-11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그 맨유랑 붙어서 꽤나 팽팽하게 싸웠으니까.
그래서 의문이 든다.
그런 팀이, 왜 나를 K리그 챌린지에 있을 때부터 찾아왔냐는 거다.
[음, 일단 우연의 일치라고 말하고 싶군. 원래 자네를 보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 군인체육대회에 나온 친구들 중에서 쓸 만한 선수가 있는지를 알아보려다가 얻어걸린 거지.]
···이건 또 뭔 소리야, 영어도 못하면서 외국인 선수를 어떻게 찾- 아.
‘그래, 우리랑 붙었던 알제리가 프랑스어 쓰지?’
저 빠게트 새끼들이 아프리카 쳐들어가서 지 나라 언어들만 쓰게 했으니까.
그리고 알제리 친구들 정도라면 영입할 만 할 테지. 그 친구들은 우리들처럼 프로에 있다가 군대로 끌려온 친구들이니까. 뭐 볼 만한 가치는 있었겠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았다.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한 거죠? 알제리 선수들을 보고 싶은 거라면, 그냥 알제리 리그에서 뛰는 걸 봐도 될 텐데요.”
생각을 해 봐라. 프랑스에서 북아프리카로 가는 건 그냥 배 타고 가도 된다. 그리고 언어 문제도 걱정 없다. 프랑스어 쓰면 될 테니까.
그런데,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아시아로 온다? 비행기값, 표값, 저 통역사 비용 값까지 다 치뤄가면서.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흐음-? 꽤나 구체적으로 질문하는군. 왜 그리 의심이 많은 거지?]
왜 의심이 많냐고? 그야 당연한 거다.
날 언제 지켜봤느냐는 건 해결됐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 안 됐잖아.
“마르세유가 절 영입하려고 들 이유를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나는 지금이야 K리그에서 나름 괜찮게 뛰고 있지만. 그 기간이 고작 반 시즌이고, 무엇보다.
“저는 국대에서 이름을 날리지도 않았습니다.”
보통 우리나라 선수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코스는 이거다. K리그나 J리그에서 주전으로 뛰어 좋은 활약을 보이고, 그런 다음 국가대표로 나가서 세계와 통할 만한 경쟁력이 있다는 걸 검증받은 후에야 유럽으로 가는 거다.
그리고, 그 절차를 거치더라도 처음으로 간 유럽 팀이 바로 저런 빅클럽인 경우는 사실상 없다. 보통 리그 내의 중위권, 하위권 구단들이 영입을 시도하고, 거기에서 성공했을 때나 빅 클럽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아시아권 선수는. 아직 미지수라고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니까.’
그래서 상위권 팀들은 아시아계 선수를 구매하는 ‘리스크’ 를 굳이 짊어지지 않는다.
왜냐고? 이미 기존의 방식대로 해서 잘 나가고 있는데. 굳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마르세유라는 잘나가는 상위권 팀이. K리그에서 뛴 지 고작 반 시즌 된 선수를 사 보려고 하는 리스크를 짊어지는가.
나는 이게 너무나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강등권 왔다갔다하는 하위권 팀이라면 로또라도 긁어보려고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하겠는데 말이지.’
그런 내 물음에, 저 스카우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 말하자면, 우리의 늙은 마녀 때문이지.]
“네?”
[잠깐 올해 우리 팀의 순위를 봐 보겠나?]
그 말을 듣자. 나는 살짝 의아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시키는 대로 네이버에 들어가 저번 시즌 리그앙 순위를 살펴보기로 했고.
그 결과.
“······?”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표정을 보니 굉장히 의아하다는 표정이군. 그래, 바로 그 표정이야.]
“···마르세유가, 언제 이렇게 몰락한 거죠?”
그래.
리그 앙의 강호. 마르세유.
[올해 우리는, 잔류에나 기뻐하는 팀이었다네. 우리의 늙은 마녀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어.]
그 마르세유의 15-16 시즌 순위는. 13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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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그 충격적인 순위를 보게 한 이후 케빈이란 마르세유의 스카우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말하기 시작했는데, 요약하자면
Margarita Louis-Dreyfus.
우리나라 말로 읽으면 마르가리타 루이-드레퓌스란 이름을 가진, 마르세유의 구단주. 이 구단주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는 소리였다.
[그 늙은 마녀가 돈이 되는 선수라면 모조리 팔아치우고, 잡아야 할 선수도 잡지 않았지.]
당장 작년 여름에 주전 스트라이커, 주전 양쪽 윙어,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주전 공격형 미드필더, 주전 센터백을 모조리 팔아치우고, 그걸 또 감독에게 책임을 물어 개막전 패배 이후 바로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마녀는 아직도 만족 못하고 이번 여름에 또 선수들을 팔아치우려고 하고 있지.]
와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뭐 그딴 구단주가 다 있냐.
[그래서 우리 스카우트진은 영입의 방향도 바꾸어야 했지. 사실상 임대와 자유계약, 두 방법으로 선수들을 수급할 수밖에 없었어.]
“······”
[또 그러면서, 그 마녀는 그 선수가 상품성이 있는지까지 요구했지.]
아, 그래서였군. 이제 이해가 간다.
[그래서 우리는 아시아권의 선수들을 찾기 시작했네, 우리가 눈을 돌리지 않던 곳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던 거야.]
그리고, 그 중에서 내가 눈에 들어왔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그냥 제가 티셔츠 팔이를 해주길 기대하신다는 겁니까? 그러면 사람 잘못 찾으신 듯 하네요. 저는 상품성이 있는 선수가 아닙니다.”
풀백이라는 인기 없는 포지션에다. 청년 FC를 적으로 돌린 사람이니까.
오히려, 안티가 많으면 더 많은 선수지.
[물론 알고 있네, 자네의 SNS가 욕으로 가득하더군?]
“···영어도 모르시면서 그건 또 어떻게 아신 겁니까?”
[인터넷은 구글 번역이라는 아주 편리한 도구가 있거든.]
···구글이 요즘은 신이구나? 프랑스 사람이 한국인 SNS도 다 알아볼 수 있고.
“하여튼 그럼 아시겠네요. 저는 마케팅용으로는 어울리는 선수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알아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게 내가 말하고 일어날 채비를 하자. 저 프랑스인이 당황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아직 내가 무슨 말 하는지를 모르겠나?]
“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를 영입하고 싶다는 걸세.]
“······?”
잠깐, 뭐라고?
[자네가 마케팅에 불이익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건 상관없다는 소리네.]
“···왜죠?”
[왜냐니, 나는 스카우트고, 스카우트라면 마케팅이나 모든 것을 떠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지.]
“그게 뭡니까?”
그 질문에, 프랑스인은 아주 짧게 말했다.
[재능.]
“······”
축구 선수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나에게는 있긴 하지만 그리 크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것.
[ 감옥에 갈 만한 죄를 저지르는 놈이 아닌 이상에야. 그것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법일세. 그리고, 자네는 내가 지난 8개월간 지켜본 결과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
그 녀석을, 지금 저 스카우트는 내가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제안하겠네. 리. 9월 전역 이후. 마르세유로 올 생각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