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9화 (89/167)

불태워라 (5)

[티아고오오-! 티아고!]

-삐이익-!

[들어갔나요? 들어갔나요?]

[심판 판정 봐야할 것 같습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11Round>

상주 상무 2 : 2 성남 FC

[골]

상무 상주 : 임협상 10, 황수일 38

성남 FC : 티아고 19, 50

***

[골! 골! 골입니다! 티아고의 엄청난 중거리 슈팅이 골로 인정됩니다!]

[이렇게 되면, 승부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아- 망할.

‘하아- 거지같네 진짜. 암만 봐도 이것도 우리 실수라기엔 좀 억울하다. 크게 실수한 것도 없는데 2대 2가 되어버리냐···’

거 참, 이건 좀 너무하잖아. 뭐 이런 게 다 있어.

한 선수가 멀티골을 넣었는데 한 골은 코너킥으로. 한 골은 중앙에서 한 30m 짜리 슈팅으로 감아차서 골키퍼가 손 댔는데도 골대 안으로 들어가버리다니.

‘에라이- 저 시방새, 확 빨리 중국으로 꺼져라.’

···아니면 내가 저기로 가던가 해야지. 젠장.

‘휴, 그나저나, 상황이 꼬였네.’

나를 포함한 수비진이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수비수의 본분은, 골을 먹히지 않는 것인데. 결국 2실점이라는 것은 그 어떠한 말을 해도 변명거리가 되지 못한다.

그러니- 우리도 다시 선택을 해야겠지. 어찌 되었던 간에, 실점을 갚는 방법은 단 하나.

“온규야. 다시 라인 올리자.”

“···오케이.”

바로, 득점뿐이니까.

[아, 이준혁, 볼 받습니다. 시원한 돌파 보여주나요?]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 그런데 김두현 바로 달라붙습니다.]

작년에는 내가 저 형님 따라다니면서 지우개 역할에만 집중했기에 깨닫지 못한 사실이 있었는데.

[김두현, 가속도가 붙기 전에 바로 압박 수비입니다!]

[이준혁, 끌고 가다가! 뒤로 볼을 빼냅니다.]

이 형님, 수비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았다.

대부분의 윙어가 그렇듯이 대충 활동량으로 어떻게든 귀찮게 만드는 수준의 수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수비를 말이다.

‘젠장, 이 선배님이 진짜 수비까지도 어느정도 되시는 줄은 몰랐는데. EPL에서 복귀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뛸 때 기본을 톡톡히 배우셨구나.’

그렇다고, 저 쪽이 볼을 잡았을 때의 수비가 옛날에 비해 더 쉬운 것도 아니었다.

[아, 김두현! 돌파를 시도하는데-]

[페인트였습니다! 크로스! 아, 그러나 멀리 벗어납니다.]

[궤적을 보면 이준혁 선수가 발을 뒤늦게 갖다 댄 것 같네요.]

나도 발전했으니 막기는 그 때보다 더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첫째로, 성남의 공격진이 달라졌다.

FA컵 때 성남은 홍의조와 김두현 선배님과의 연계가 막기 힘들어서 그렇지, 그거 원패턴이었으니까. 내가 그냥 스피드를 이용해서 김두현 선배님한테 등 뒤 안 털리는 정도로만 막아내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남의 공격편대가 저기 왼쪽의 티아고가 들어오고, 공격형 미드필더에 피투라는 선수가 들어오면서 훨씬 둘의 부담이 줄어들게 된 덕에.

저 형님은 단조롭게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기보단, 이곳저곳으로 영향력을 흩뿌리는 선택지를 가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건 전혀 예상 못 했는데.

내 수비 실력이 늘어나서, 오히려 더 막기가 힘들었다.

FA컵 때는 수준차가 너무 나서 그냥 등 뒤 안 털리는데만 집중했었다. 그 이상으로는 읽을 능력도, 경험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게 성남의 상황과 운 좋게 맞아 떨어지면서 뽀록이 터진 거였고.

그러나, 지금은 이것저것 배운 게 있어서 할 수 있는게 늘어나다 보니 저 형님이 하시는 페인트가 어떤 뜻이 있는지가 읽히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었다.

‘아버지가 바둑에서 하수는 용감하고, 고수일수록 조심한다더니 그 말이 딱 맞네.’

젠장, 이걸 이렇게 깨닫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준혁, 크로스- 를 날리지 못합니다!]

[김두현이 바로 걷어찼습니다! 상무의 스로인!]

‘하, 끝까지 막아서네, 이 크로스를 읽으셨다고?’

하하. 진짜. 돌아버리겠네. 이 형님.

수원에서 데뷔해서 국대까지 나갔지만 맥콜놈들, 그러니까 성남으로 가서 성남의 레전드가 되어 EPL 진출. 그리고 군대 때문에 국내로 들어와 경찰청과 수원에서 뛰다가. 다시 성남으로 돌아간 선수. 김두현.

수원 블루버드의 팬으로서, 개랑으로서 내가 가장 축구를 많이 볼 때, 나의 영웅이었고, 배신자였던 선수.

나는 저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것에서 상상 이상이었고.

보면 볼수록, 감탄이 나왔다.

‘기량만 보면, FA컵 때보다 오히려 더 좋으신 것 같은데.’

FA컵 때 혹사당해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나 보지? 하긴 전반기 때 7골 5도움 찍고 후반기 내내 3도움밖에 추가 못 하신 걸 보면 그런 거 같기도 하네.

지금은 리그 초반이기 때문에 아직 체력이 괜찮으실 때라서 이럴 수 있는 거일 테고.

‘국가대표하는 건, 저런 존재구나.’

한국에서 정점을 찍고,

국가대표라는 무대에서 제대로 놀아 본 선수란.

확실히 달랐다.

‘···하지만, 어떻게든 뛰어넘어야겠지.’

전직 국가대표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현직 국가대표는 영원히 될 수 없을 테니까.

“온규야-! 패스-!”

-턱.

그래, 김두현. 저 선수는 분명히 좋은 선수다.

성남의 전설로 남을 자격이 있는 선수다.

내 패스길도, 크로스길도 거의 다 읽어내시고 차단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스피드가 내가 더 낫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걸 또 영리하게 막으실 줄도 알고 말이지.’

내가 볼을 잡자마자 달려드시는 걸 보면 분명하다. 우리 교수님이 말씀해주신 스피드 빠른 선수 막는 법이 그거거든.

하지만, 당신도 알아야 할 게 있다.

[이준혁, 공을 잡습니다.]

[굉장히 측면까지 위치까지 들어왔네요. 짧은 패스를 이어갈 생각인 걸까요? 일단 김두현 달라붙···]

-뻐엉.

‘그렇게 내 스피드를 두려워한다는 티를 내는데. 내가 눈치 못 챌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프로고, 나도 국대 명단에 이름이 올라갈까 말까한 수준까진 올라왔다. 당신에게 한 방 먹여줄 비수 정도는 있단 말이다.

[김두현! 몸싸움!]

-쿵

‘크윽.’

밸런스 무너뜨리려고 하는 게 느껴지지만. 괜찮다. 버틸 수 있는 정도야.

‘당신 압박은 190cm짜리들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아! 빠져나옵니다! 이준혁, 계속 달립니다!]

[이거, 치고 달리기인가요? 이종원 달려듭니다!]

그리고 이제 가속도가 붙었다. 그러면.

-뻐엉.

날 스피드로 막을 놈은, 단언컨데 성남엔 없다.

[아- 이준혁! 빠릅니다! 빨라요!]

[저 선수, 저 정도로 빨랐나요?]

‘내가 풀백으로 온 이유 중 하나가, 이 스피드를 살릴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으니까.’

[아, 이준혁! 어느새 페널티박스 근처! 수비수들 나옵니다!]

[이준혁! 이주녁어억-!]

두 명이나 나오네. 그럼 이제 됐다.

자, 선배님. 받으세요.

[박동기! 박동기이이-! 골! 골! 골입니다!]

[박동기! 최근 물이 올랐습니다! 5골 5어시스트! 지금 K리그 최고의 토종 공격수는 바로 저 선수입니다!]

“으아아아아-! 됐다! 됐다고! 준혁아! 고오맙다! 고마워! 골이다! 골이야!”

“됐어요! 됐습니다! 선배님! 국대로, 국대로 가자고요!”

아, 그래, 됐다.

이 정도면, 정말 지금으로서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어.

“······”

그러니, 부디. 하늘이시여.

결과를.

제발.

-*-*-*-

2016년 05월 23일.

***

<슈틸리케호, 소집명단 발표··· 윤빛하람+윤석영 깜짝발탁>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6월 스페인-체코 2연전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가장 눈길이 가는 부분은 윤빛하람(연변FC)이다. 2012년 9월 11일 브라질 월드컵 예선 이후로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던 윤빛하람이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직접 지난 15일 중국에서 선수들을 관찰한 결과 윤빛하람은 4년만에 대표팀에 복귀하게 됐다.

최전방엔 홍의조, 석형준이 포함됐다. 미드필더는 한국형, 기성룡, 정영우, 고진명, 윤빛하람, 남희태, 손흥빈, 이제성, 지동언이 선정됐다. 수비수는 윤석형, 이형, 임청우, 곽태위, 김기휘, 홍정오, 장연수가 포함됐고 골키퍼는 김진연, 정성용이 골키퍼 장갑을 낄 예정이다.

예비명단엔 권태순, 김주형, 주세중, 김보겸, 한교언, 김승태, 이정현이 이름을 올렸다.

슈틸리케호는 다가오는 29일 유럽으로 떠나 6월 1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세계 최강 스페인과 맞붙고 이어 5일 체코 프라하에서 체코를 상대한다.

***

“······”

그래, 예상했어.

고작 반 시즌 활약에 불과하잖아.

국대 주전이 87, 92고 후보가 90인데, 89년생이 거기에 또 끼어드는 것도 이상하잖아. 유망주도 아닌데. 그런데도 뽑혔을 리가 없잖아.

“···하아. 젠장. 이해···는 해. 이해는 한다고.”

그리고, 쌓아온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보다야.

쌓아온 게 뭐라도 있는 사람을 믿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그래도 씨발. 예비명단에 정현이는 아니잖아.”

딴 건 몰라도, 예비명단에 5골 5도움의 동기 선배도 아니고, 1골 1도움의 정현이를 뽑는다는 건.

내가, 선배님이 그렇게 노력하며 준비하고 온 힘을 다 했던 경기들을, 우리의 지난 11경기를 무시했다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그럴 꺼면 도대체 왜 경기를 보러 왔던 거야. 이형 선배님 뽑아야 해서? 쌓아온 게 아무것도 없는 새끼는, 아무리 발전해도 가망이 없단 소리냐?

“···씨발, 씨이발···”

하아- 좀 지치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러니, 단 거라도 먹자.

“예, 주문하신 팥빙수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푹.

“팥빙수···도 단맛이 안 느껴지네. 하.”

예비 명단이라도 들었으면, 그 선수들하고 훈련이라도 같이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정말이지 행복해하며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되니, 그냥 허무했다.

정말로, 손에 잡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국가대표란, 신기루였던 걸까.

나는, 저 국대란 곳을 영영 갈 수가 없는 걸까?

K리그에서 뛰는 것만도 꿈같은 일이긴 하니, 여기에서 만족해야 하는 걸까?

“국대에 갈 수만 있다면, 정말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텐데···”

.

.

.

.

.

.

“Melmoth ou l'Homme errant?”

···뭐야?

“traduire rapidement!”

“···Qu'est-ce que Melmoth?”

“···Vous plaisantez j'espère?”

아니 시발 이건 또 뭐야. 한 명은 생김새는 한국인인데 뭔 꼬부랑어를 하고 있냐.

그리고, 왜 내 앞에 와서 저 지랄들이야. 가뜩이나 기분 안 좋은데.

“roman gothique? Que-”

“저기요,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아, 아, 죄송합니다. 이준혁 씨. 아니 이준혁 선수? 맞으신가요?”

“···? 맞긴 한데, 누구시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내 앞에 선 남자는 한 숨을 푹 쉬었다.

“맞네요, 휴, 일단 이렇게 갑자기 나타난 것을 사죄드립니다. 일단 저는 임시 통역가고요. 저기 저 쪽은-”

그 순간, 뒤에 있던 외국인이 뭐라고 말하는 순간.

-Je suis scout olympique de marseille, traduis!

나는 분명 저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는데. 중간의 한 단어만큼은 똑똑히 들려왔다.

마르세이유, 마르세유.

그리고, 저 단어라면···

“예, 저 쪽은 마르세유의 스카우터인데, 당신과 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합니다. 잠시 저희와 시간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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