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태워라 (3)
2016년 05월 18일
[예, 오늘도 고품격 럭셔리토크쇼, 라디오 풋볼N토크가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MBC 의 해설위원이자, 옆 동네 오픈풋볼 진행자이신 이주환 해설위원을 모셔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주환입니다.]
-오 오늘은 서오정이 아니라 이주환이 왔네?
-오픈풋불 K는 언제할꺼임? 요즘 K는 일주일째 방송 안하던데?
[아, 오픈풋볼 K는 내일 할 겁니다. 11라운드 승부예측할 거예요.]
[주환아? 여기 네이버다. 거기 이야긴 하지 말자.]
[앗, 옙.]
-아 ㅋㅋㅋㅋ 그렇긴 하네.
-아 오픈풋불은 다음에서나 이야기 하라고, 여긴 네이버라고 ㅋㅋㅋ
[흠흠, 자, 그럼 언제나 그렇듯 먼저 풋투에게 물어봐 시간입니다. 댓글 읽는 시간이죠. 지금도 계속 댓글이 올라오고 있는데요. 어디 한번 뭐가 있는 지 봐 보죠.]
-국대 이야기 해주세요
-국대, 국대 이야기요, 스페인이랑 체코랑 한다는데, 당연히 이것부터.
-국대 명단 어떻게 나올지 예상해주세요.
[아, 역시 국대 관련 질문이 넘쳐나네요, 글쎄요. 이번 국대 명단이요?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만, 저는 잘 안 뽑히던 선수들이 대거 등용될 거라고 봅니다.]
그 옆에 있던 이주환 해설은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죠. 저번 3월에 있었던 A매치에서 이미 증명이 되어버렸거든요.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는, 폼이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고요.]
-ㅇㅇ그렇지, 저번 3월달에 경기력 눈 썩는 줄 알았음.
-그래, 저게 맞음, 딴 건 몰라도 경기 아예 못 뛰는 선수들은 빠져야지.
-? 그럼 유럽파 다 빠짐요?
[예, 그래서 유럽파 선수들은 이번 평가전에는 대거 빠질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유럽파 선수들 중에서 꾸준히 주전으로 중용받고 있다! 할 수 있는 선수가 지금 홍정오 선수랑 구지철 선수밖에 없거든요.]
그랬다. 현재 대한민국의 유럽파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저 둘을 제외하고는 모두 경기에서 아예 모습을 볼 수가 없거나, 교체로나 간신히 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며칠 전에 기사가 떠 버렸죠?]
[예, 구지철 선수가, 오른발 새끼발가락이 실금이 갔다고 한 걸 보면. 이번 A매치는 못 뛴다고 봐야죠.]
-??? ㄹㅇ?
-ㅇㅇ, 6주 부상임.
-이런 TQ 스페인 체코하고 경기하는데 이꼬라지여? 개노답이네.
그 반응을 보고,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던 두 진행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스페인과 체코라는 유럽의 강호들을 상대하게 되었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것은 아쉽긴 했으니 말이다.
[뭐, 그래서 이번엔 유럽파 선수들이 아니라, 국내파나 중동, 중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뽑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동안 안 뽑혔던 선수들이 나올 가능성이 꽤 높아요.]
-그럼 누구누구 나올 것 같아요?
그 댓글을 보고, 진행하던 김동환 해설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음, 제 의견은 공격진에서 뉴페이스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지금 공격진이 멀쩡하질 않거든요.]
그 말에 진행을 하던 김동환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주환 해설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슈틸리케호의 황태자인 이정현 선수, 작년 K리그 득점왕 김신욱 선수도 리그에서 부진하고, 손흥진 선수는 토트넘에 가서 교체로만 뛰고 있고, 이청룡 선수랑 석형준 선수는? 아예 못 나오고 있죠. 그냥 총체적 난국입니다.]
-와 ㅆㅂ 저렇게 보니깐 진짜 어질어질하넼ㅋㅋ
-그동안 뽑히던 윙어랑 스트라이커 다 죽었다 ㅋㅋㅋ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근오 선수가 국대에 재승선하거나, 지금 상주 상무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박동기 선수 둘 중 하나는 대표팀에 뽑힐 거라고 봅니다.]
-? 이근오는 알겠는데 박동기는 누구임?
-올해 상주상무 원톱. 이정현이랑 ㅈㄴ게 비슷한 스타일임. 기록 4골 4도움.
[예, 다른 분이 이미 설명해 주셨네요. 등지는 플레이에 매우 능한 선수라서, 슈틸리케 감독이 딱 좋아할 스타일이긴 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땐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근데 나이가 좀 많지 않나요? 그 선수 제가 알기로 나이 좀 있을텐데.
[예, 88년생이죠, 다만 이정현 선수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생각하다 보면, 이 선수가 안 나올수가 없거든요, 지금 폼도 좋고, 그래서 말씀드린 겁니다.]
그렇게 잔행자는 말을 마친 이후, 마이크를 옆쪽으로 옮겼다.
[그럼 이주환 해설의 의견도 묻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저도 공격진을 꼽으려고 했는데, 거긴 이미 말했으니 넘어가고, 그 다음으로 걱정되는 곳을 말하겠습니다. 저는 왼쪽 풀백이 좀 걱정입니다.]
-? 풀백은 또 왜 걱정해.
-공격진 이야기나 좀 더해봐요 형님 ㅋㅋ
[아니, 들어보세요. 여러분, 나도 웬만하면 이런 말 안 해. 그런데 보세요. 지금 우리나라 대표팀 왼쪽 풀백이 이렇거든요? 김진우, 박준호 이 둘이 경쟁하고, 훈철 선수 정도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어요.]
-ㅇㅇ 그렇지.
-훈철은 누구임?
-동아시안컵에 한두번 나온 친구임. 수원에서 뛰고 있었을껄?
[그런데, 지금 앞에 두 명은 경기에 아예 나오질 못 하고 있고, 훈철 선수는 장기부상 끊은 상태죠, 완전 그냥 망했어요. 공격진은 그나마 저렇게 포지션에 대체할 선수라도 있지만, 여긴 진짜 망했습니다.]
-와 여기도 듣다 보니깐 어질어질하네, 주전, 백업, 3순위 선수까지 몽땅 나가리네 ㅋㅋㅋ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으신가요?
[···글쎄요, 솔직히 여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 자리는 누가 차지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지금 전 레프트백 자리에 장연수 선수가 들어간다고 해도 전 놀라지 않을 겁니다.]
-??? 걘 뛰더라도 원래 오른쪽 아니었음?
[그만큼 레프트백 선수가 부족하다는 소리입니다. 왼발 쓸 줄 아는 레프트백은 더더욱 귀하고요.]
-그럼 그냥 올대에서 잘하는 친구 뽑아오면 안됌?
-ㅇㅇ 그게 나을거같은데
[아, 글쎄요, 그건 안될걸요. 솔직히 풀백은 그 나이대에 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없어서요. 그나마 심상민 선수 정도가 이브랜드에서 주전급으로 뛰고 있긴 한데···]
그 순간, 가만히 듣던 김동환 진행자가 말을 꺼냈다.
[레프트백 이야기하다 보니까 나온 건데, 저는 이 선수 눈여겨보고 있네요]
[어, 누구를 말씀이신가요?]
[이준혁이라고, 지금 상주 상무에서 뛰고 있는 선수 있습니다. 박동기 선수 어떤지 보려고 상주 상무 하이라이트 경기 몇 개 봤었는데, 이 선수도 은근히 눈에 띄더라고요?]
그러자, 댓글들의 반응이 순간적으로 하나로 통일되었다가.
-? 걔는 누구임?
-몰라? 전혀 못 들어보던 친군데?
그렇게 모두가 혼란스러워하던 가운데, 순간적으로 약 8개월 전의 기억을 떠올린 사람이 있었다.
-아 잠깐, 걔 그놈 아냐? 청년 FC 경기 때 나와서 ㅈㄴ게 어그로 끌던놈.
그러자, 댓글들이 순식간에 폭주했다.
-아 ㅆㅂ 맞는거같은데?
-어, 맞는 거같음 ㅋㅋㅋ 그렇게 말하니까 기억난닼ㅋㅋㅋ 9대 0 못만들어서 죄송하다고 하고 그랬었짘ㅋㅋ
-? ㄹㅇ? 그 ㅅㄲ 깡 ㅈㄴ좋네.
[예, 그 선수가 맞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선수를 평가전이니만큼, 한번 국대에 뽑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음, 저도 그 선수 보긴 했습니다. 잘 하긴 하더라고요.]
얼핏 들으면 당연히 발탁되어야 한다는 소리처럼 들렸다. 하지만 잘 하긴 한다. 는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그런데 너무 보여준 기간이 짧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 선수는 아직 K리그에서 반 시즌도 안 뛴 선수고 나이도 89년생이라서, 기껏 대표팀에 뽑아도 세대교체의 의미도 없거든요.]
-어? ㄹㅇ? 그 때 얼굴 보니까 어려 보이던데?
-ㅇㅇ, 난 20대 초반인 줄 알았는데.
[저는 그래서 그 선수보단 지금 이브랜드에서 뛰고 있는 심상민 선수를 뽑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미 어느 정도 증명하기도 했고, 올해도 이브랜드에서 꾸준히 뛰고 있거든요.]
무엇보다. 나이도 93년생으로 어리기 때문에, 다음 세대교체를 맡길 인물로도 적절하다.
[그 밖에도 그냥 원래 센터백이나 미드필더 보던 선수를 또 풀백을 시킬 수도 있고요, 당장 장연수 선수만 해도 원래 센터백 내지 수비형 미드필던데, 풀백을 시키고 있잖아요?]
그걸 보면, 그 선수가 뽑힐 확률은 좀 낮다- 는 게. 이주환 해설의 의견이었다.
다만-
[다만, 변수는 있죠. 슈틸리케 감독이 사흘 전에 중국으로 갔었는데, 21일에 또 상주종합운동장에 간다고 했죠?]
[그렇죠, 국가대표 예비 선수들이 꽤나 모인 경기니까요.]
상주에는 방금 말한 박동기라는 공격수에다가, 전직 국가대표 이형이 있었고. 성남에도 유력한 국대 후보 홍의조가 있었기에, 슈틸리케는 그 경기를 직접 보러 간다고 이미 발표한 상태였다.
[아마 이 경기를 통해 6월의 평가전 명단이 최종적으로 결정날 겁니다. 거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뽑힐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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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4일. 늦은 밤.
-벌컥, 벌컥
“크허허···”
휴우. 젠장.
“아- 잠이 안 오네. 하하.”
이게 분명히 머리로는 계속 잠들라고, 그래야 내일 잘 뛸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몸이 영 말을 안 듣는다.
“휴우- 나가서 싸지방에서 성남 영상이나 다시 봐야겠다.”
잠도 안 오니, 그게 나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행정반에 연등을 신청한 후, 내 말판을 사지방에 옮기고 들어가자. 의외의 인물이 하나 보였다.
“어, 동기 형님?”
“···뭐야, 준혁이냐? 너 일찍 잔다고 하지 않았어?”
뭐야, 말판 보니깐 사지방에 아무도 없었는데?
“형님이 싸지방엔 왠일이십니까? 아니, 그보단 말판엔 안 보였는데?”
“아, 말은 해 뒀어, 귀찮아서 말판만 안 옮긴 거지.”
아, 깜빡하셨나보구만. 그럴 수 있지.
“그럼 제가 옮겨드릴까요?”
“야, 우리 이제 다음 달이면 병장이야 새꺄. 쌍말이라고. 뭐 그런데 귀찮게 말판 옮기고 다녀? 걍 너도 옮기지 말고 다녀.”
···그런가?
“아,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자리에 앉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형님.”
“왜?”
“그런데 형님은 갑자기 왜 상대팀 분석을 보고 계시는 거에요?”
평소에는 분석지 보기 싫어하고, 가끔 필요하면 나한테 물어보던 이 형이. 왜 자기 힘으로 혼자서 익숙하지도 않은 분석을 하고 있는 거지?
내 질문에 동기 형님이 살짝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뱉었다.
“···국가대표가 눈앞에 있는데, 뭐라도 해야지.”
“······”
“너도 잠 안와서 여기 온 거지?”
“···예, 그렇죠.”
국가대표.
모든 선수들의 꿈.
거기에 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잠 못 드는 밤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아- 형이 형님이 부럽네. 어떻게 그렇게 푹 잘만 자는 건지.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가.”
···뭐, 그러겠죠. 20경기를 넘게 뛰었으니까.
“형은 처음은 아닌 걸로 아는데, 그런데도 그렇게 떨려요?”
그 말에, 동기 형님이 살짝 쓴웃음을 지었다.
“벌써 5년 전 이야기다. 이 녀석아. 게다가 내 나이는 이제 곧 서른이라서.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고. 너 같으면 안 떨리겠냐.”
“······”
당연히 떨릴 수밖에 없겠네. 음.
“그래서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분석지 보고 있는 거잖아.”
···분석 못 하는 거 알긴 아시네.
“형, 그거 그럼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어? 그럼 나야 고맙긴 한데, 괜찮겠어?”
괜찮냐고?
“당연히 괜찮죠.”
내가 내일 풀백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선, 결국 공격수가 골도 잘 넣어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게다가.
“형님이 잘해야 제 크로스도 빛나죠.”
그러니- 부디. 형이 분석하고 골 팍팍 넣어서 우리 둘 모두.
“국가대표, 같이 돼 보자고요. 형님.”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