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6화 (86/167)

불태워라 (2)

<2016 K리그 클래식 10Round>

[후반 22분]

상주 상무 0 : 0 인천 UTD

***

상주 상무

이준혁 IN/김성환 OUT

***

-짝.

[아, 이준혁 선수가 투입되는군요. 후반 23분에 이준혁 선수가 투입됩니다.]

[저 선수, 최근 K리그에서 꽤 잘 나가는 왼쪽 풀백 중 하나인데, 요즘 3경기 연속 미드필더로 나오네요? 딱히 포지션을 변경했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말이죠.]

“와 준혁이 너 또 나왔냐? 안 지쳐?”

저기요, 기승 형님이 그런 말씀 하시기 있습니까.

“딴 건 몰라도 형이 그 소리 하긴 좀 그렇지 않아요? 형은 리그 풀타임 선발이잖아요.”

나는 그래도 리그 1경기는 교체됐고, 2경기는 완전히 빠졌는데. 저 형은 풀타임이다.

“야, 난 그래도 FA컵은 빠졌잖아. 그리고 진오 오면 훨씬 여유 생기고. 근데 넌 그게 아니잖아? 미드필더 겸업이라 풀백 개점휴업해도 거의 맨날 명단에는 들고 있고.”

뭐 그렇긴 하지, 이번 5월에 합류하는 친구들 중에선 라이트백은 있어도 전문 레프트백은 없으니까. 내 출전 기회가 아무리 줄어도 포진 형님이 오른쪽 가는 빈도 줄이고 나랑 레프트백 자리 조금 더 노나먹는 게 한계일 거다.

그러니까. 사실상 출전 시간으로만 따지면, 나는 앞으로 꽤나 혹사당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저는 지금은 뛰어야죠. 지금 아니면 언제 고생해요.”

“···쯥, FA로 한 몫 땡기겠다는 건 좋은데, 그래도 몸 조심해라.”

예이 예이.

“하여튼, 중거리 같이 때리던 성준이 빠지고 너 나온 거 보면, 뭐 감독님이 지시 내린 거 있냐?”

오, 예리하시네. 역시 기승이 형님답다. 역시 미드필더가 대부분 축구 머리가 좋다니까?

“저희, 지금부터 4-2-3-1로 바꾸시랍니다.”

4-2-3-1. 우리의 B플랜 중 하나.

비록 시메오네식 4-4-2가 등장한 이후 살짝 죽은 감이 있지만. 텐 백을 깨는 데 그래도 그나마 가장 전통적이고 효과적인 전술 중 하나인 포메이션.

‘텐 백을 깨는 것만 생각하면 이게 최고지.’

물론 제대로 텐 백을 파훼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이 많긴 하지만. 지금 우리는 조건이 어느 정도는 갖춰져 있다.

“형님은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로 가주세요.”

그리고 나는.

“제가 원래 형이 뛰던 왼쪽 중앙 미드필더로 갈 겁니다.”

중앙 미드필더. 아마도 박투박이다.

-*-*-*-

[아, 상주 상무, 포메이션이 변경되었습니다. 4-2-3-1이네요.]

[재미있네요, 상주 상무가 이건 승부수를 던졌다고 봐야겠습니다.]

[어떤 승부수를 말씀이시죠?]

[골 넣고 이기던가. 골 먹히고 지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했어요.]

그 말을 하고, 해설위원은 설명을 덧붙였다.

[4-2-3-1은 그냥 보면 밸런스가 잘 맞은 전술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그냥 대충 보면 밸런스가 상당히 잘 맞은 전술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이건 쓰려고만 한다면 옛날식 4-4-2처럼 초 공격적인 전술이 됩니다. 지금 상주 상무처럼, 공격시에 풀백을 올리면-]

[사실상 총 8명이 공격에 참여할 수 있게 되거든요.]

[···오, 센터백 두 명 빼고는 모두 공격에 참여한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한 오래도 아니고, 2~3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텐백 상대론 가장 많이 쓰였습니다.]

그렇다. 텐 백이 강력한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수비에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밀집된 수비를 깨기 위한 가장 정석적인 방법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공격에 무지막지하게 많은 인원을 투입하면 된다.

그래서 옛날에는 클래식 4-4-2가. 그리고 최근에는 4-2-3-1이, 리그 내의 강팀들이라면 항상 연습은 해 두는 전술 중 하나였던 거다. 근본적으로 둘 다 측면을 파고들면서, 공격하는 선수들의 수가 많은 전술이니까.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 조금 쓰는 빈도가 줄긴 했는데.

[그런데, 저러면 수비가 너무 약해지지 않나요?]

[예, 정확합니다.]

저렇게 초 공격적으로 가다간 역습 쳐맞고 박살나기가 너무 쉽다는 거다. 당연한 게, 공격에 투자 저렇게 하는데 수비까지 좋으면 다 이것만 쓰지 않겠는가.

[그 중에서 특히나 중앙 미드필더 둘의 부담이 아주 큽니다. 저 둘은 공격의 시발점도 되어야 하고, 상대편이 역습하면 중간에 최소한 시간을 끌며 저지하는 수비도 할 줄 아는 선수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들거든요.]

즉, 만능이어야 한다는 소리다.

[게다가 공격형 미드필더를 잘 제어하는 시메오네식 4-4-2가 등장하면서 옛날에 비해서는 힘이 떨어졌죠.]

그래서 많은 강팀들이 다시 3미들 체제로 회귀하여 4-3-3을 쓰거나, 쓰리백 위주의 전술을 연구하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텐 백을 깨는 데에는 공격적인 4-2-3-1이 정석입니다.]

당장 올해 EPL에서 챔스를 확정지은 팀 중 하나인 아스날이 이 전술을 A플랜으로 내세워 15-16 시즌을 치루었으니, 완전히 죽었다고 하긴 어려웠다.

[자,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두 팀이 어떠한 식으로 서로를 공략할지 지켜보는 재미가 있겠군요.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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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엉-!

들어갔나?

[아 이기승, 날카로운 슈팅-! 그러나- 골대 옆을 비껴갑니다! 인천의 골킥!]

젠장.

‘휴, 아직도 골 문이 열리질 않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된 이상, 나는 또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빨리 내려가자. 분명히 골 킥으로 케빈 저 놈한테 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려가면서, 인천의 덩치 큰 외국인 공격수가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네. 내가 들어온 이후로 훨씬 더 자주 앞으로 볼을 날리는구만. 밖으로도 조금 더 나오고.’

하긴, 그럴 법하다. 안 그래도 난 공중 볼 장악이 좋지는 못한, 아니 공중 볼 받는 솜씨만큼은 폐급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공식 키 192인 녀석이랑 공식 키 175인 내가 경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하다.

'그걸 노리고 인천 녀석들이 이렇게 나오는 거겠지.'

희망이 생겼다고. 저기 저 중앙 미드필더의 약한 선수를 뚫으면, 혹시나. 이길 수도 있다고.

‘하지만, 니놈이 키가 나보다 크다고 해서 무조건 못 막는 건 아니야.’

물론 쉽지 않다. 지난 비시즌, 교수님이 말씀하시길.

-자네보다 덩치가 큰 상대를 막는 법은, 절대 쉽지 않을 걸세. 물론 180 언저리라면 그래도 자네도 힘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니 막을 만 할 테지만, 190이 넘어가는 이런 친구들은 정면으로 붙으면 힘도 못 쓰고 밀려날 가능성이 높아.

그러니까. 최소한 한 가지 전제조건이 있어야 한다. 키 작은 녀석이 키 큰놈을 막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러니까, 만일 막아야 한다면 그 공격수의 등 뒤에서 먼저 자리를 잡게.

그러니. 나는 저 친구들이 천천히 생각할 때.

-뻥!

[인천, 케빈에게 롱 킥을 날립니다!]

조금 더 빨리 생각하고, 조금 더 빨리 움직여서.

[아, 케빈, 공을 받는데- 이준혁 선수가 뒤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막아보겠다는 건가요?]

이 녀석의 뒤를 잡고.

-그리고 나면, 상대편이 등을 돌리지 못하도록 하고, 돌리더라도 바로 대처가 가능하도록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데에 집중하게.

[아, 케빈! 생각보다 빠르게 제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리를 집어넣어서 등을 돌리지 못하게 막고, 손도 조금씩 사용하면서. 최대한 저 친구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등을 돌린 상황에서의 싸움은, 나도 꽤 경험이 많다.

‘농구할 때 몸싸움이랑 다를 바가 없는 거지.'

중학생 때 내가 키가 155 언저리여서 다들 나 상대로 등 돌리고 밀어대는 포스트업만 주구장창 했거든. 그래서 등으로 밀어내는 힘을 버티는 데엔 익숙하다. 그 때에 비하면 손도 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당장 그 웨이트 메이트인 대상이 녀석이랑 1대 1 할 때도 무작정 밀리진 않았다고!’

[아, 케빈, 밀어냅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도, 조금씩 밀려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아, 박포진! 바로 케빈에게 달라붙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다른 수비수와 협력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벌리고.

‘···됐다! 오케이! 포진 선배님 나이스! 볼 우리 꺼다!’

2대 1로는 공을 빼앗는 게 어렵지 않으니까.

그러면, 위기는 넘어갔다. 그리고 위기 다음에는.

-뻥!

“기승아 받아라-!”

우리의 기회가 찾아온다.

텐 백은 분명, 수많은 공략법이 있지만, 그게 안 통하는 경우도 많을 정도로 거대한 난제다.

하지만, 텐 백의 공략법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 공략법들을 살펴보면 꽤 공통되는 주제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저 쪽이 실수할 수 있는 상황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숫자싸움에서 수비진이 공격진에 비해 크게 우위를 가지지 못 하도록 한다는 거다.

그리고, 지금 그 상황이 찾아왔다.

역습을 시도하기 위해, 3명 정도가 살짝 나와버렸고. 원 위치로 돌아가려면 아주 살짝의 시간이 걸리는.

넉넉잡아 5초 동안의 시간.

지금 이 앞으로의 약 5초가. 우리가 저 텐 백을 뚫어버릴 기회다.

[이준혁! 바로 이기승에게!]

[이기승! 바로 박동기에게 패스!]

-타타탓.

‘1초.’

[박동기! 공 받고 몸을 돌려보려 하지만, 바로 달라붙은 요니치입니다!]

-타타타닥.

‘2초, 3초.’

[몸을 돌리지 못하고 뒤로 패스하는데- 임협상 달려듭니다!]

-타다다닥

‘4···초!’

[임협상! 임협상 슈우웃-!]

[아! 골키퍼 쳐냅니다!]

그 순간, 순간적으로 난 볼 수 있었다. 골키퍼가 안심하는 표정을.

‘하지만 말이야. 안심하면 안 되지.’

[아! 이준혁! 이준혁-!]

‘아직, 네가 잡진 못했잖아!’

세게 찰 필요 없다. 아니, 세게 찰 수도 없다. 지쳐 있어서. 힘, 힘 제발 빼고! 툭!

-퉁!··· 철썩.

.

.

.

-고오오올-! 이준혁 선수의! 골입니다아-!

“으아아아아아아-아-!”

***

[후반 41분]

상주 상무 1 : 0 인천 UTD

***

[저 선수, 분명 센터라인 정도에 있지 않았나요? 그런데 어떻게!]

[바로 전력으로 달린 겁니다! 혹시나. 혹시나 루즈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죠!]

[그래도 저 속도라니, 너무 빠른데요! 정말 미친 스피드였습니다!]

-사랑한다↗ 상↗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 영원히남을- 사랑이되어↗라~

[결국, 텐백이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 싸움이죠! 그걸 아주 잘 보여주는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한 골로, 모든 상황이 바뀌어버렸다.

[인천은 이제 급해요! 무승부라도 하기 위해서, 이제 모두 공격해야 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다급하게 중앙선에 공을 가져대는 인천입니다! 남은 4분, 과연 인천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경기 재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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삑! 삑! 삐이익-!

***

<2016 K리그 클래식 10Round>

상주 상무 2 : 0 인천 UTD

[골]

상주 상무 : 이준혁 86, 박동기 90+1

인천 UTD : (없음)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휴, 진짜, 진짜 힘들었다.

‘···스코어만 보면, 편하게 경기한 것처럼 보이는데 말이지.’

실은 막판까지 골 못 넣을 뻔하다가, 한 골 간신히 넣고 저 쪽이 올라오면서 수비에 숭숭 생긴 구멍을 이용해 2대 0이란 스코어를 만들었을 뿐인데.

“역시, 텐백은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감독님이 다가오셨다.

“이준혁이.”

“예.”

“이겨서 다행이긴 하지만, 나는 여전히 네가 네 몸을 아끼지 않는 것을 좋게 보진 않는다.”

“······”

그 말과 함께, 감독님은 한 가지 명령을 내리셨는데.

“다음 전북전에, 넌 결장이다. 명단에도 없을 거다. 알겠나.”

“······?”

나는 그 결정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

‘왜 성남전이 아니라?’

오늘은 5월 15일.

그리고 이제 5월달에 남은 경기는, 두 개다.

5월 21일의 홈에서 맞이하는 성남전과.

5월 29일의 전주로 가서 맞는, 전북 원정.

그러니, 휴식을 주실 생각이시라면 성남전에 휴식을 주셔야 한다.

“의아한 표정이군. 그래, 그럴 만하지. 그럼 자네의 의문을 풀어줄 한 가지 사실을 가르쳐 줄까?”

“······?”

“다음 21일 성남전에, 슈틸리케가 우리 홈 경기장으로 온다.”

뭐··· 라고? 잠깐.

“···그 말씀. 제가 생각하는 그게, 맞습니까?”

슈틸리케. 우리나라 A대표팀의 감독. 그가 온다는 것은···

“그래, 잘 하면 자네에겐 큰 기회가 될 테니. 성남전까지는 열심히 해보도록.”

“······!”

국가대표.

그 자리를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어느새 내가 들어서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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