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화 (84/167)

실험 (2)

2016년 5월 5일.

[아! 상주 상무, 볼을 빼앗겼습니다.]

[광주의 역습입니다! 광주! 빠르게 역습!]

“준혁아! 왼쪽!”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임마. 나도 눈 있다고. 저 쪽 달려오는 거.

‘우리 쪽은 센터백은 벌려져 있고, 그럼 바로 왼쪽으로 몰아야겠네.’

그 생각을 빠르게 끝마치고, 나는 반말로 선수들에게 명령했다.

“포진 마크해! 온규 커버해! 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포진 선배님은 나가서 달려오는 풀백에게 다가가고, 온규가 달려나가서 윙어 받은 선수를 사이드로 밀어내는 사이. 나는 온규의 자리를 바로 커버했다.

[빠르네요! 빠릅니다! 바로 진형을 갖추네요!]

[저렇게 되면 풀백이 공격하기가 마땅치가 않죠!]

내가 이제 풀백이 슬슬 익숙해지면서 느끼는 건데, 풀백이 압박을 당하고 마크 당하게 된 상황에서도 공격을 이어가고자 할 경우에도 패턴이란 게 있다.

뭐 가장 좋은 것은, 언제나 그렇듯 고전적이고 직관적인 방법. 드리블 돌파다. 상대방이 달라붙든 말든 닥치고 치고 달려서 상대편 풀백을 제칠 수 있으면 해결된다.

그렇지만.

[아, 박포진 선수가 철저하게 달라붙습니다. 드리블 돌파가 막히네요!]

‘애초에 포진 선배님을 가볍게 뚫을 정도로 공격력이 좋으면 국대에 이름이 한 번쯤은 불려 봤어야지.’

그게 아니니 그 선택지는 지워도 된다.

그럼 두 가지가 남는다.

첫째는, 내가 했던 것처럼 반대쪽으로 넘어가는 크로스를 날리는 것. 우리의 진형이 왼쪽으로 따라오니까. 오른쪽의 노 마크된 선수에게 공을 보내주면 되는 거다.

근데 이건 솔직히, 나처럼 자주 쓰는 놈은 없을 거다. 한 측면에서 다른 측면으로 크로스를 올리면, 적어도 한 60m 정도를 뻥 하고 날려야 하는데, 그 60m 거리를 올리는 크로스에 대해, 자신감이 넘치는 친구가 많을까?

그럴 리가. 내가 장담할 수 있다. 그런 선수들은 유럽에도 별로 없다.

대부분의 풀백들은 애초에 크로스를 주구장창 연습했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 그걸 배우기보단 2대 1 짧은 연계, 스피드를 통한 개인 돌파를 배우거나, 아니면 수비적인 기술들 위주로 연습하지.

왜냐고? 풀백은 윙어가 되지 못하거나, 센터백이 되지 못한 자들이 밀려난 곳이니까.

그리고 크로스는, 에초에 연습하기도 까다롭다. 제대로 각 잡고 연습하려면 한 최소 8명? 그 정도는 필요하다. 팀 훈련을 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팀 내에서 가장 발언권이 작은 편인 풀백의 크로스 연습을 위해서 팀원들이 모두 함께 연습한다? 그 기회를 차라리 그냥 윙어한테 주지 않겠어?

‘나도 솔직히 코너킥 전담 미드필더여서 대학교 시절이랑 고양에서 주구장창 연습했던 게 아니면 이 짓 못했을걸.’

그럼 결국, 가장 쉬운 선택지이자, 평범한 선택지가 남는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미드필더한테 패스하기. 그리고 바로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찔러주면서 공격 시도.

하지만,

“준성 붙어! 나 나간다! 온규는 원위치!”

그건 너무 뻔하잖아. 임마.

[아, 광주 다시 중앙으로. 김준성, 달라붙어 있습니다. 광주 앞으로 주기가 힘들어 보입니다.]

그리고, 축구에서 뻔한데, 이런저런 이유로 전개 속도가 느리기까지 하면 뭐다?

[광주, 중앙의 파비오에게 연결하려고 하는데-?]

[아, 이준혁! 인터셉트! 패스 길을 예측했습니다!]

쳐 맞아야지. 이런 상황에서, 패스길은 너무 뻔히 보인다고.

‘자, 그럼, 지금 해야할 것도 뻔하지?’

[아, 이준혁 바로 앞으로 찔-러주지 않고, 왼쪽 옆으로 길게 패스합니다.]

[1대 0이고,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시간을 끌고 있네요.]

이렇게 패스해주고 물러나서, 또 삼각형으로 패스를 돌릴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다시 원위치 복귀.

‘1대 0이고, 시간도 시간인데 지금은 그냥 시간 끌어야지.’

애초에 후반 90분이 다 되어가는데 지금까지 빠르게 하는 건, 정말 힘들다. 수비나 열심히 하기도 지친 상황이라고.

‘물론 저 공격형 미드필더가 나한테 압박감 주는 유형이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아, 광주, 볼을 빼앗았습니다. 파비오에게 패스]

[아, 파비오, 공 잡고 돌파 시도하는데- 몸을 돌리질 못하고 있습니다.]

‘미안한데, 넌 내가 고양에 있을 때도 개처럼 달라붙어서 어느 정도는 막아냈었잖아. 임마. 벌써 까먹었냐?’

[아, 파비오, 돌파하지 못합니다. 공 빼앗길 위기!]

피지컬이 그 때의 나한테도 밀리던 놈이 어디서 까불고 있어. 아무리 발기술 좋다고 해도 유분수지.

[파비오, 다시 간신히 중앙으로 리턴!]

흠, 이거 중앙으로 나가서 압박 더 주냐, 아니면 그냥 계속 이놈 마크하냐?

“나 나가?!”

“이준혁 나가지마! 원위치!”

오케이. 접수 완료.

그렇게 후반 90분이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다시 한 번 가볍게 카운터 역습을 뻔하디 뻔한 소강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하자,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진들은 하나같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상주 상무, 오늘 빈틈이 영 보이지가 않는군요, 선수들이 후반전 막바지인데도 빈틈없이 빠르게 상대편 선수들을 마크하고 있습니다.]

[이야- 이거, 좀 놀랍네요. 놀랍습니다. 상주 상무. 이전까지의 난잡했던 수비가 완전히 사라졌어요.]

[어떤 면에서 이게 가능했던 걸까요?]

캐스터의 물음에, 해설자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일단, 그 무엇보다 큰 건, 서로 말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저걸 보세요.]

-웅희! 오른쪽! 오른쪽!

-내가 커버! 주녁이 넌 내려와!

[후반 90분이 되어 가는데도 이렇게 말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거 정말 중요합니다.]

그 말이 끝나고, 해설위원은 추가적인 말을 덧붙였다.

[축구하다 보면, 어차피 일류 선수들은 마음 통한다고, 똑같은 움직임 가진다고, 말 같은 거 하나도 안 해도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전혀 아닙니다. 캐스터님도 부부젤라 아시죠?]

[예, 당연하죠. 2010년 월드컵을 본 사람이면 모두가 알 겁니다.]

부부젤라. 그 뿌뿌우~ 거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현재 유럽에선 대부분 금지되어 있는 응원도구.

[그게 남아공에서 울려퍼졌을 때, 선수들이 정말 많이 불평했었습니다. 선수들이 의사소통을 하기가 너무 힘들다고요.]

[오, 그 관중들이 꽉꽉 차는 유럽에서 온 선수들도요?]

[그렇죠. 그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만큼 경기장에서 서로 대화가 되냐, 안 되느냐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실제로 유럽의 각 리그와 UEFA 대회에서 금지되었을 때, 오직 FIFA 관계자 쪽만이 문화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뿐, 일선 선수들 중에선 반대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당연한 게, 부부젤라가 그들의 콜 플레이에 지장이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상주 상무는 너무 조용했죠. 그래서는 수비진 선수들의 질이 좋다고 해도 수비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수비수가 공을 잡고 있고 공격수가 압박해 와서 골키퍼한테 백 패스 줬는데, 미리 사인을 보내거나 말하지 않아서 골키퍼가 한 박자 늦게 나온다면?

바로, 공격수가 달려들어서 골 넣기 아주 좋은 찬스가 된다.

아주 간단한 콜 미스지만, 정말로 치명적인 콜 미스다. 그리고 선수들의 질과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당장 K리그에서도, 국가대표팀에서도, 유럽에서도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일이니까.

[하지만, 최소한 오늘만큼은 상주 상무의 그 약점이 말끔하게 사라졌군요. 아주 훌륭합니다. 훌륭해요. 효과도 바로 드러나고 있네요.]

-삐이익-!

<+4:00>

[그동안 계속 실점이 많아서 불안했던 팀이, 실점까지 줄어들었어요. 기본으로 평균 2실점씩 하던 팀이 지금 후반 추가시간이 주어지는 상황인데도 무실점입니다. 특별한 전술 변화도 없었는데 말이죠.]

다만, 감탄이 나오는 수비와 다르게 옥에 티가 하나 있긴 했다.

***

[광주 FC] 0 : 1 [상주 상무]

***

평소와는 다르게 아직도 1득점밖에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물론 전개가 별로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공 뺏었습니다. 바로 역습 들어가는 상주 상무! 빠르게 윙어에게!]

[아, 하지만 제대로 터치를 못 하고, 밖으로 나가버리고 마는군요. 오늘따라 윙어들의 퍼스트 터치가 정말 별로인 것 같습니다.]

그냥 공격진이 겁나게 찬스를 날려먹은 것 뿐이었다. 다만 변명의 여지는 있었는데.

[연속으로 원정 경기를 해서 그런가, 좀 여파가 있어보여요.]

[그렇죠, 4일 만에 경기를 하는 것도 영향이 좀 있겠죠.]

오늘 넣은 그 1골도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온 골인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경기는 확실히 경기력 측면에서 보면 완벽한 경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축구에서 1대 0 승리든, 4대 0 승리던 간에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광주와 상주 상무의 2016 K리그 클래식 경기 9라운드에서, 상주가 1대 0으로, 승리를 따냅니다!]

이기면 승점은 똑같이 3점이라는 건 같다. 무실점을 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것으로 상주 상무! 어린이날 경기를 승리하며 4위 자리를 수성해냅니다! 무섭게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공격은 별로였다곤 해도, 해설위원은 오늘 상주 상무의 경기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는데.

[저는 오늘 상주 상무의 경기를 보니, 오늘 경기를 통해 상위권으로 도약할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고 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공격은, 사이클이란 게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공격수는 골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넣지 못하거든요.]

몰론 메시와 같은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공격수는 폼이 좋을 때 몰아서 골을 넣고, 안 터질 땐 정말로 안 터지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

[하지만 수비는 슬럼프가 훨씬 덜하죠. 이 단단한 수비를 유지한다면, 정말로, 정말로 상주 상무가 처음으로 상위권에 들어서는 일도, 꿈은 아닐 겁니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모조리 비웃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여기까지 SPOTV였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9Round>

[경기 종료]

광주 FC 0 : 1 상주 상무

[골]

상주 상무 : 김온규 38

광주 FC : (없음)

***

-짝!

“여어, 온규야, 첫 골이자 결승골이네! 수고했다!”

“너도 첫 어시스트 축하한다.”

흐흐, 그래, 첫 공격 포인트지. 9라운드 만에···

‘시즌 끝났을 때 한 5어시스트 정도는 하고 싶었는데. 그건 힘들지도 모르겠네.’

뭐, 그래도 수비형 미드필더와, 풀백의 본분은 어시스트가 아니라, 결국 수비인 법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측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어냈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솔직히 지금의 활약 정도면 만족한다, 솔직히 내가 오늘 볼 전개를 제대로 못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지.

‘그냥 공격수 놈들이 제대로 못 받은 거지.’

암만 생각해도 이거 정말 불공평하다. 공격수들은 왜 실수해도 욕을 덜 먹는단 말인가. 수비수가 저런 실수 연속해서 했으면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 텐데. 이겼으니 봐준다. 쳇.

“온규야, 너 오늘 수비하면서 불편한 거 있었냐?”

“불편한 거라··· 글쎄. 나름 너 잘 움직여 줘서 딱히 불만은 없는- 아, 하나 있긴 하다.”

뭔데?

“이름, 니 이름이 나중에 좀 부르기 힘들어, 준혁이라고 정확하게 발음을 못하겠어.”

“아···”

하긴 막판엔 거의 주녁이라고 했지?

“그럼 앞으론 힘들면 주녁이라고 불러. 그게 더 편하면.”

“그래도 돼?”

“별로? 상관 없지?”

뭐 비하하는 의미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이름 헷갈릴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오케이, 땡스. 고맙다.”

“그래, 그럼 난 잠깐 나가서 음료수나 한 잔 뽑아먹는다.”

좋아. 휴- 광주도 무난하게 이겼다. 이겼다고.

‘그럼, 다음 경기는 인천전인데. 그 때는 휴식 취하겠지?’

5월 11일에 FA컵도 뛰어야 하는데, 15일까지 뛰기는 힘들 테니까. 한번 휴식 주시겠지.

‘뭐, 내가 안 뛴다고 해도, 무난하게 이기겠지.’

인천은 K리그 저 밑바닥에 박혀 있으니. 우리가 쉽게 이기지 않겠어?

-*-*-*-

-삐이익!

[아, 상주 상무. 영 안 풀리는군요 전반 내내 무득점이라니.]

[뭐, 그럴 법하죠.]

“···다들 모여라.”

[텐 백을 깨기란, 쉬운 게 아니니까요.]

인천이, 상주 상무를 상대로 텐 백.

약팀이 절대적인 강팀을 상대로 쓰는.

무승부를 바랄 때 쓰는 전술을, 꺼내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