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화 (83/167)

실험 (1)

사실, 올해는 아직 전지훈련 때를 제외하고는 미드필더로 뛴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기승 선배님이 부상당하지 않은 상태로 딱 버티고 계셨고, K리그라는 상위 무대에서 나를 그 자리에 실험하기란 조금 도박이니까.

그래서 아직까지는 그냥 이기승 선배님이 풀타임으로 굴려지고 있었고, 그걸 보면서 난 올해는 미드필더 출전은 접어야겠구나- 싶었다. 왜냐하면 지난 4월자에.

<상주, 유준우-박강준-신진오-윤선영, 신병 4명 합류 확정.>

신병이 온다는 공지가 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작년부터 입대 신청을 꾸준히 넣으면서 군대에 간다고 말했었기에. 올해 리그 중반에 군경팀에 올 것이 확실함에도 FC 서울에서 모셔간 미드필더.

‘신진오 선수가 온다···고.’

입대도 4월 18일 입대여서, 훈련소 거치고 몸 바로 만들 경우 한 6월 중순이면 경기에 투입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 그냥 이기승 선배님을 6월 전까지 실컷 굴리고, 그렇게 이기승 선배님이 지칠 때 즈음 신진오 선수를 투입하면 된다. 그러면 이번 1년 미드필드에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해 줄 선수 로테이션은 아주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그래서 올해는 미드필더로 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 말대로다.”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이건 예상 못 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은, 시야다. 정확히는, 그 시야를 바탕으로 뿌려주는 볼 전개능력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단점은, 몸싸움과 공중볼이다. 일단 키도 작은데, 점프력도 그닥 특출난 편이 아니라···

‘그래도 몸싸움은 조금 늘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공중볼 하나만큼은 아직도 폐급 수준이지.’

그래서, 난 수비형 미드필더로는 출전기록이 많지 않다. 아무리 볼 전개에 집중하는 레지스타형 미드필더라고 해도, 수비와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수비진영 앞을 보호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나는 탈락이었던 거다.

‘게다가 수비형 미드필더엔 이미 김환성 선배님이란 부동의 주전이 있으니 말이지’

김환성 선배님은, K리그 기준으로도 아주 좋은 선수다. 잘 나가던 시절 끝물의 성남과 울산에서 부동의 주전으로 뛰실 정도였던 육각형 미드필더이신데다가. 은근히 슈팅도 좋으시다.

특히 페널티킥 능력이 일품이셔서 페널티킥 전담으로 작년에도 9골이나 넣으셨던 선수이자 올해도 페널티킥 전담이신 분이시고.

‘그 밖에도 뭐 최태현 선배님, 조지운 선배님 등등이 많은데··· 날 쓰시다니?’

그런 생각이 마구 들었지만. 그 말에 나는

“넵, 준비하겠습니다.”

본능적으로 하겠다는 소리부터 나왔다.

자고로, 풀백은, 아무리 잘해봤자 연봉이 낮다.

당연한 게, 축구에서 연봉은 웬만하면 골 많이 넣는 놈이 가장 많이 가져간다. 그렇기에 수비수의 연봉은 보통 공격수보다 낮은데, 풀백은 그 수비수들 중에서도 가장 덜 중요한 포지션으로 여겨지니···

‘하지만,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연봉을 세게 부를 수 있는 때야.’

지금 나는 FA 상태고, 나이는 스물여덟. 만으로 26세. 축구 선수의 인생에서 가장 연봉을 세게 받아야 하고, 세게 받을 수 있는 상태다.

헌데 풀백만 소화한다? 그러면 높은 연봉을 받기가 아주 힘들다. 그렇다면 내가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가장 좋은 행동이 무엇일까.

‘풀백 뿐만이 아니라 다른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해.’

바로, 풀백만 소화하는 게 아니라, 멀티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거다. 풀백보다야 미드필터가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는 건,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러니 비록- 광주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해야지 뭐. 돈은 진리라고.

해보자. 억대 연봉을 위하여.

-*-*-*-

-야! 준혁아! 오른쪽! 오른쪽!

-오케이, 넌 왼쪽 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석 코치의 뒤로 익숙한 발걸음이 들리자, 수석 코치는 바로 등을 돌려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감독님. 무슨 일이시죠?”

“···자네 등 뒤에 눈이 달렸나?”

“아닙니다. 그냥 감독님을 몇 년째 모시다 보니, 발걸음도 익숙해진 거죠.”

그 말을 들은 감독은, 조금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살짝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나도 꽤나 오래 있었구만. 참 오래 있었어.”

“그렇죠, 올해까지 마치시면 5년째니까요.”

보통 대부분의 감독이 2년 내지 3년을 머무르고 나면, 그 팀에서 나가게 되는데 5년이니. 나름 오래 있었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보통, 그 마지막 해에는 성적 부진으로 잘린다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박 감독은 더더욱 예외적인 경우였다.

“아, 그건 그렇고, 어쩐 일이십니까?”

“아, 다음 광주전 선발 명단 초안이 나와서 말이지.”

-툭툭.

“이제 태블릿으로 완전히 바꾸신 겁니까?”

“한번 쓰다보니 이게 확실히 편하더군. 역시 뭐든지 최첨단 기기가 익숙해지기만 하면 원래 쓰던 것보단 훨씬 편하단 소리겠지. 자 보게나.”

“4-1-4-1식 4-3-3 이군요.”

“그래, 아무래도 이번 시즌의 A플랜은, 이게 될 것 같네. 4-2-3-1도 있긴 한데, 그걸 쓰기엔 우리 팀에서 파괴력 넘치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어 보여서 이게 아마도 메인 플랜이 될 것 같구만.”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사실 시즌을 소화하는 데 있어서 A플랜 하나만 잘 잡혀도 나름 상위권까지 가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고, 특히나 4-3-3에서 변형된 전술은 대부분 그렇다.

다만 그럼에도 이 전술의 문제점을 꼽자면 - 라인을 내리고 수비적으로 나오는 팀을 부수기는 조금 힘든 전략이라는 거다.

당연한 게, 저기 혼자서 외로이 나와 있는 공격수를 보아라. 저 한 공격수에만 선수가 네다섯명이 붙을 수가 있는데, 공격수가 공격을 잘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감독도, 수석 코치도 이 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저 친구, 이틀간 지켜본 결과는 어떤가?”

그리고, 그에 대한 감독과 수석코치의 답안지가 바로.

“정답인 것 같습니다. 감독님. 공수 전환이 훨씬 빨라졌습니다.”

이준혁의 수비형 미드필더 전환이었다.

“역시, 저 친구의 볼 전개 능력은 저 자리에서도 통하는군.”

“예, 좌측 측면에서도 우측으로 롱 크로스를 뿌려줄 수 있던 선수인 만큼, 시야가 정말로 넓습니다.”

상대 팀 수비진이 역습을 한 이후 제대로 수비 진형을 갖추기 전에, 앞으로 빠르게 롱 패스를 보내줄 수 있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통해 강력한 카운터 역습을 먹인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훈련인 만큼 전방압박을 강하게 하는 팀에게 잘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전방압박이 그리 심하지 않은 팀에겐 바로 투입이 가능할 듯 합니다.”

“그래? 왜 저 친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쓰느냐고 말하던 친구들에게 지금 저 모습을 보여주고 싶구만.”

그 말에, 수석 코치는 살짝 웃었다.

“이해하시죠, 감독님, 지금 저희처럼 실점이 많은 팀이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제주와 서울에게 쳐맞은 8실점과 전북과 3실점 3득점의 난타전을 벌인 탓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K리그 클래식 꼴찌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수비가 결코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공식 키도 175cm밖에 안 되는 친구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쓴다는 소리니, 당연히 반대의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준혁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을 준비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어. 슬슬 두 번째로 만날 때는 우리 팀을 상대로 수비적인 역습 전술을 꺼내드는 팀들이 나올 테니까 말이지.”

“그렇겠죠. 저희 순위가 순위니까요.”

그랬다. 현재 상주 상무는, 시즌 초 예상과는 달리, 당당히 4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비록 실점 1위라고는 했으나, 득점 역시 1위라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보여줬기에 가능한 순위였다.

“참 감개무량합니다. 시즌 초반이긴 해도 정말로 저희가 상위권 공기를 맡아볼 줄이야···”

국군체육부대에서 10년을 넘게 몸 담으면서, 최고의 성적이 2004년에 기록한 8위였는데. 시즌 초반이라고는 해도 4위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말하지 않았나, 이번 시즌 3위를 달성하겠다고.”

“에이, 감독님도 스플릿 상위 진출까지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확신 못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시즌 전 준비를 한참 할 때,

-상위 스플릿 정도··· 는 가능하겠군.

이런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났기에, 김 코치는 그렇게 말했고, 감독도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랬지.’

자신도 발표하면서, 100% 자신한다기보단, 그저 목표를 높게 잡자는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초를 치는 말을 하지는 말게, 감독이란 항상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을 수 있는 말만 하기에도 입이 바쁜데,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면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질 않아.”

살짝 꼰대와 같은 말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코치는 그 조언을 흘려듣지 않고.

“명심하겠습니다.”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년 자신에게 금과 옥조가 되어줄 수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 반응에 만족한 감독은 살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전술적인 이야기나 계속 하지, 수비는 얼마나 약해질 것 같은가?”

“음-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자, 얼굴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설마 수비 불안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소리인가?”

그렇다면, 이 전술은 일회성 이상으로는 쓰기 힘들다는 뜻이다. 아무리 팀에 득점이 많아진다고 해도, 수비가 안 좋은 팀이 상위권에 오르기란 힘든 법이니까.

“아뇨, 그게 아닙니다. 오히려 수비 면에서도 더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믿기 힘들지만, 그렇게 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오네요.”

“······? 그게 사실인가?”

“예, 저걸 보십시오.”

-나 사이드 커버! 준혁아 앞! 앞! 이새끼야 커버해!

-알겠어 간다고!

“온규가 훨씬 눈치 안 보고 활발하게 대화합니다.”

“···이런, 그렇구만. 그건 생각 못 했어.”

수비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활발한 대화다.

언제, 누가 수비진에서 나가고 빠질지, 그리고 빈 공간을 누가 커버할지를 모두가 함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바로 빈 틈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간극을 줄여주는 것이 대화이기에, 대화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잘 못할 때가 있다. 바로.

“온규 저놈이 선배 눈치를 봤다는 소리겠지?”

“그렇겠죠, 지금 준혁이한테 하는 말과, 환성이한테 하는 말을 비교해 보면 말이죠.”

선배 눈치 볼 때다.

축구는 실패의 스포츠인 만큼, 제아무리 메시라고 해도 실수를 한다. 그래서 서로 그런 플레이를 할 경우 지적하면서 고쳐나가야 하는데, 여기에 선후배 문화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지적을 마음껏 하라고 해도.

-아, 이거, 아예 잘못된 플레이는 아니었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는데··· 에이, 아냐, 그냥 넘어가자. 아예 못할 판단도 아니었으니까.

이렇게 지적을 알아서 자제하게 되는 분위기가 생겨버린다. 그리고 그건, 특히나 수비 진영에 있어서 훨씬 더 치명적이다.

“허 참,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아예 지적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보니, 저희가 조금 무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감독은 조금 강하게 말했다.

“오늘 모아서 그라운드 위에서 무조건 반말 쓰라는 이야기라도 해야겠군.”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바로 고쳐지진 않을 터였다. 그 히딩크 감독님도 국가대표에서 이걸 고치는 데 시간이 걸렸으니까 말이다.

“좋아, 환성이 넣을 땐, 온규 말고 해성이랑 같이 넣자고. 해성이는 짬이라도 같이 먹었으니, 그런 부담감은 훨씬 덜할 테니.”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온규 쓸 때는 준혁이 저 친구, 수미로 고정해보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군.”

“그래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아, 어디 실전에선 어떨지, 봐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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