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167)

과거와 현재 (2)

전남은, 작년에 FA컵에서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사실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4-2-3-1을 기본으로 쓰는 것도 그렇고. 공격진이 그 때와 똑같이 왼쪽에서부터 오르샤-스테보-안용우의 쓰리톱이란 것도 그렇고.

‘뭐, 공미 자리에서 광양루니 이종호가 전북으로 이적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외국인 선수를 집어넣으며 공격진의 전력 약화만큼은 최소화 시켜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고오오오올- 박동기의 골입니다!]

[박동기의, 시즌 3호 골! 2경기 연속 골입니다! 이형의 멋진 크로스!]

수비는 아니구만.

***

<2016 K리그 클래식 8Round>

[전반 30분]

상주 상무 1 : 0 전남 메탈즈

[골]

상주 상무 : 박동기 7

***

‘역시 작년에 비해서 수비가 물렁물렁해졌어.’

하긴, 그럴 만하다. 헌영민 선수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연세가 연세시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현재 국가대표 승선 이야기가 다시 슬금슬금 나오고 있는 형이 형님이 활약하는 건, 상대방이 국가대표가 아닌 한에는 항상 상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고.

무엇보다 올해는 작년의 주전 센터백 임종은을 전북에 팔아제껴 놓고 센터백 영입은 대학 신인들 보충이 전부였으니까.

‘애초에 그래놓고 수비가 좋길 바라면 양심이 터진 거지.’

그래도 아예 작년 FA컵에서 만났을 때에 비해 전력이 줄어들기만 한 건 아니었는데.

[이기승, 기습 슈팅-! 아, 최효진 선수가 걷어냅니다!]

내 쪽에 저번 FA컵에 보였던 신인따리가 아니라, K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최효진 선배님이 풀백 자리에 나왔다는 거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인천에서 데뷔했다가 포항 주전 먹으셨던 분인데.’

그 때 잘 나가던 포항 스틸즈 부동의 주전이어서 아마 오범석 선배님하고 국내 오른쪽 풀백 넘버 2 자리 다투실 정도였었지?

하여튼 83년생, 축구선수의 황혼기에 접어드신 분이라고는 해도 국대 18경기를 뛰신 선배님이신만큼. 아직도 정정하셨다.

[아, 황수일, 황수일, 돌파 시도!]

[아, 그러나 최효진, 깔끔한 태클로 빼앗습니다!]

‘수일 선배님을 저렇게 잘 막아내다니, 요즘 폼 진짜 좋으신데.’

분명히 전성기 선수 시절 공격적인 풀백이시지만 수비가 비교적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셨는데.

[황수일, 다시 달립니다-만-]

[아, 최효진 선수가 바로 붙어서 차내는군요.]

[황수일의 발에 맞고 밖으로 나갑니다. 전남의 골킥.]

지금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저게 어딜 봐서 공격형이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저거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스피드스타 막는 교과서적인 방법이잖아.’

달리기가 빠른 친구들을 상대할 시 애초에 가속도가 못 붙게 하는. 그런 깔끔한 수비를 보여주고 있으면서 어디가 공격형이냐 공격형은.

‘확실히 국대 짬밥 좀 먹으신 분들은 다르긴 다르단 말이지.’

뭐라고 해야할까, 국제 무대를 내가 경험해 보진 않아서 모르겟는데, 적어도 여기 K리그 경기에서 보여주는 플레이 기준으로 하면 딱히 큰 약점까진 안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 전남, 오른쪽으로 패스, 최효진, 바로 깊게 안용우에게!]

그러면서 부드러운 패스까지. 참, 대단하다.

‘작년에 저 형님 나오셨으면, 솔직히 전남 못 이겼을지도?’

조금식 밀려서 어찌어찌 반칙작전 써가면서 이겼지만, 저런 닳고 닳은 선수가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잘 안 먹히는 경우도 많으니까 말이다.

[안용우, 공 잡았습니다. 단독 드리블!]

뭐, 그렇지만- 그렇다고 위기감이 들진 않았다.

일단 지금은 작년이 아니고.

[아, 이준혁 붙습니다! 드리블]

[안용우 선수, 드리블 돌파가 오늘따라 잘 안 되는 모습입니다]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굉장히 달라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때는 챌린지와는 다르게 빠르게 흘러가는 템포에 적응하기에도 바빴지만.

‘왼발잡이, 크로스 우선이지만 가끔은 질질 끄는 드리블도 즐겨한다고 했지?’

지금은 여유롭게 분석해뒀던 것을 다시 떠올리면서.

[아, 안용우 왼발에 가져다 놓고 크로스-]

[아, 그러나 이준혁 몸으로 막습니다. 튕겨나가는 볼. 전남의 스로인입니다.]

이렇게 공을 깔끔하게 바깥으로 빼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공격 전개에서도 달라졌다.

[전남, 스로인- 아, 이준혁 태클! 공을 빼앗고 달립니다!]

[아주 좋은 역습 찬스!, 바로 크로스 가야죠! ]

공을 빼앗고 나서 허겁지겁 바로 앞으로 오버래핑을 하거나 얼리 크로스만 날리는 게 아니라.

‘역시 달리고 계시네. 오케이. 그럼.’

[선수들이 둘러쌉니다! 빨리 선택을- 반대쪽! 반대쪽 크로스입니다!]

[반대쪽의 이형이 공을 받습니다! 이형 선수 언제 저기까지 올라가 있었던 거죠?]

이렇게 한번 샥 둘러보고 빈틈을 찔러 공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워졌다. K리그 클래식의 템포인데도.

‘허, 참, 웃기네.’

1년 전에는 여러 가지 꼼수를 써 가면서 간신히 막아내고 이겨올라가던 상대였는데.

어느새 지금은 무리할 필요 전혀 없이, 그냥 깔끔하게 실력만으로 우리가 압도하는구나.

[아, 안용우, 다시 드리블합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건가요?]

그걸 인정하기 싫은지, 이 녀석이 계속 나한테 달라붙었지만.

[아, 안용우, 달립니다-! 만.]

[아, 깔끔한 태클이군요. 이준혁 선수 볼을 빼앗습니다.]

[오늘따라 안용우 선수가 전혀 힘을 못 쓰고 있네요.]

‘그렇게 작년하고 똑같은 패턴만 보여주는데 어떻게 못 막겠냐.’

드리블 좀 하다가 크로스 원패턴이라니, 작년엔 내가 크로스를 잘 못 막았으니 드리블 쪽만 제대로 봉쇄하고 나머지는 제대로 못 막아서 간신히 간신히 막았지만. 지금은 아니지.

‘보니까 이 원패턴으로 아시안게임 금메달따고 군면제까지 받아서 자기 스타일에 대해 자신감이 가득 찬 모양인데···’

허 참. 니가 로벤이냐? 그런 원패턴 매크로만 쓰게? 정작 그 아시안게임 이후로 단 한번도 국대에 차출된 적도 없으면서 말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안게임은 U-23 대회다. A매치가 아니라.

이 소리인즉슨 K리그의 선수들 중 최고라서 뽑힌 게 아니라. K리그의 어린 선수들 중에서 최고이기에 뽑힌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런데도 뭐 저렇게 오만하냐. 이 자식아. 나 상대로 그렇게 해도 충분해 보였어?’

뭐, 그렇다면 그 생각을 바꿔주면 될 일이다.

[아, 이준혁 선수 드리블 돌파를 시도합니다!]

[괜찮나요? 위험지역인 것 같은데?]

조금 위험한 지역이긴 하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 녀석, 수비를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어.’

그렇다는 건 선택과 집중을 하여 간단한 수비만 달달 외워뒀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어? 이준혁 선수,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풀백이 중앙으로 파고들 거라는 예상을 전혀 못 하거나. 같은 거 말이지.

[아, 지금 중앙 뻥 뚫렸죠! 뻥 뚫렸습니다!

‘난 너처럼 오른발이 의족 수준은 아니라서. 중앙으로 컷인이 가능하거든.’

중앙에서 볼 배급하던 미드필더인 이상, 왼발만 쓰기보단 오른발을 써야 할 때도 많아서 나름 짧게 치고 달리는 정도는 가능하다는 거다.

[전남 김평래, 밑에서 달려옵니다!]

어허, 그렇다고 이렇게 선수가 섵불리 나오면 안 되지요.

-뻥.

이렇게 찔러주고 싶어지잖아요.

[아아! 바로 이기승에게 패스합니다! 이기승! 앞으로 찔러줍니다!]

[박동기-! 골-! 골! 박동기! 박동기가 전반 30분만에 두 번째 골을 터뜨립니다!]

“나이스! 선배님 나이스!”

“이야아아아-! 나이스으-! 이제 내가 최다 득점자다! 다 꿇어 새끼들아!”

결국 경기 시작 30분 만에 우리는 1년 전에는 운 좋게 한 골 넣은 상대에게, 두 골을 넣는 데 성공했다.

“자, 자, 전반 30분만에 멀티 골인데. 다들 공 좀 나한테 줘라. 해트트릭 좀 해보자고, 오케이?”

“예, 예.”

암요 최다 득점자인데 말 들어야죠.

-삑! 삐이익-!

‘응, 뭐야, 수비수 한 명 붙어 있었어가지고 오프사이드 호각은 아닐텐데, 뭐지?’

의문을 품으며 심판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전남 메탈즈

허용준 In /안용우 Out

***

“야 준혁아, 너 상대하는 쪽 교체됐네?”

“······”

교체. 30분 교체.

그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저 선수가 최소한 오늘만큼은 날 뚫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소리였다.

“준혁아? 쟤 정보 있어? 말 좀 해봐.”

“···아, 응. 있지. 중앙 쪽 움직임 많이 가져가고 중거리 슈팅 좀 쓰는 녀석이라고 분석되어 있었을껄.”

“그래? 그럼 좀 대화 좀 늘려야겠네. 마크할 때마다 말 많이 해줘.”

“···엉.”

그렇게 온규와 말을 끝내고 나서도, 나는 잠깐 멍한 상태로 달려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작년에, K리그 챌린지에서도 나를 상대하는 공격수가 웬만하면 교체되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처음에 낸 선발인원을 감독이 그대로 밀고 나갔단 말이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뚫을 만 해 보였으니까.

신경을 크게 쓰지 않아도, 해 볼 만 해 보였으니까.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나를 상대하는 저 선수가 선발된 지 30분 남짓되는 시간만에 교체되었다. 이게 무슨 소리겠는가. 감독이 직접적으로.

-저 친구를 이대로라면 뚫을 수 없다.

이 소리를 한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잖아.

“온규야-! 사이드!”

그 사실이, 너무나도 내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

-삑! 삑! 삐이익-!

와, 진짜, 진짜 다행이다.

***

<2016 K리그 클래식 8Round>

[경기 종료]

전남 메탈즈 2 : 4 상주 상무

[골]

전남 메탈즈 : 유고비치 57, 스테보 75

상주 상무 : 박동기 7, 30, 김환성 88, 90

***

[아, 전남 입장에서는 너무 아쉽겠는데요.]

[그렇죠, 다 따라잡은 경기였는데, 마지막 2분동안 페널티킥을 두번이나 내주다니요. 이건 반성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질 뻔했는데.’

물론, 내 탓은 아니었다.

-후반전은 이준혁, 너는 빠지고 제명이가 들어간다.

전반전 내용이 압도적이었고, 골 차이도 여유가 있는 만큼 후반전에 한번 제명이 카드를 실험해봤던 것이었다.

그래서 멸망할 뻔했지만 막판 전남 수비진이 자멸하면서 페널티킥이 두 개나 주어졌고, 그 두 방을 모두 꽂아넣는 데 성공하며, 간신히 승리.

“참 스펙타클했다. 진짜.”

순간,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그래, 참 위험했지.”

수석 코치님이, 뒤에서 말을 걸어오셨고.

“정말 보는 내내 가슴이 꺼멓게 물들어가더군, 운이 좋았지.”

조용히 내 어깨에 손을 얹으셨다.

“···에이, 그래도 이기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긴 하지. 하지만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잖나.”

“······”

그렇긴 하지. 한참 이기고 있다가 따라잡히고 2분 남기고 PK로 역전이라니. 별로 좋은 꼴은 아니다.

“그래도 한 가지 성과는 있었군.”

“네?”

여기에 성과가 있다고?

“바로, 우리 팀의 상승세에 자네가 한 몫을 단단히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말일세.”

“······”

“나도, 감독님도 이렇게 차이날 줄은 몰랐네. 참 놀라워. 1년 전에는, 자네가 오히려 구멍이었는데 말이지.”

···조금 부끄러웠다. 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칭찬해주실 정도였나.

“아마 이 경기 덕분에 풀백 로테이션은 자네랑 포진이로 완전히 굳혀질 것 같구만. 축하하네, 주전 경쟁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코치님은 일어나다가, 나에게 한 마디를 더 건네셨다.

“아 참, 자네, 다음이 광주와 경기인 거는 알지?”

“예.”

“미리 준비해두게.”

네?

“로테이션상 저는 다음 경기에 빠지지 않습니까?”

다음 경기는 포진 형님이 레프트백으로 나올 땐데?

그러자, 코치님은 망설임 없이 나에게 질문을 던져왔다.

“자네, 자네 포지션이 뭐지?”

뭐긴, 풀백 겸- 아.

“표정을 보니 이해했군. 그래, 다음 광주전에 자네는 미드필더로 나갈 테니까. 준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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