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3)
-뻐엉.
[아, 깔끔하게 걷어내는 박포진. 전북의 스로인입니다.]
[아, 전반전이 끝나가고 있는데도, 상주의 골문이 열리지가 않는군요?]
***
<2016 K리그 클래식 7Round>
[전반 45분]
상주 상무 1 : 1 전북 현태
[골]
상주 상무 : 황수일 21
전북 현태 : 한교원 2
***
[라인을 올린 것 치곤 예상 외로 잘 막아내고 있습니다. 상주 상무.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음, 지금 전반전을 지켜본 결과, 두 가지 이유에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긴 해설이 될 것 같았기에, 해설자는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말을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전북을 상대로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라인을 내립니다. 올해 전북을 위협하는 유일한 팀인 서울도 라인을 결코 높게 가져가는 팀은 아니죠.]
그랬다. 전북을 상대로 감히 라인을 올릴 미친놈은 없었고, 전북의 유일한 대항마라고 불리는 서울은 공격적이라기보단 수비적인 팀에 좀 더 가까웠기에 전북은 이렇게 서로 공격하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렇기에 이런 막싸움은 전북이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이번 시즌은 처음이겠죠.]
물론, 전북이 생각보다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이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지금 지켜보니 의외로 상주 상무의 저 전술, 수비적입니다.]
[네? 라인을 올렸는데 수비적이라뇨?]
캐스터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보통 수비 라인을 올릴 경우, 절대 수비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
[이게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웃기게도 사실입니다. 지금 상주 상무의 포메이션이 이렇죠?]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비 라인은 크게 올렸지만, 미드필더 라인은 조금만 올렸습니다. 덕분에 수비 라인과 미드필더 라인 사이의 간격은 엄청나게 줄어들었죠. 거기에다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은- 전북의 2선에 있는 공격형 미드필더가 아주 큰 압박을 받는다는 소리였다.
[이 말은, 의외로 이 전술이 초 공격적이기보단, 공격적인 수비전술에 좀 더 가깝다고 봐야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바로 당장, 미드필더와 수비 라인간의 간격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현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수비축구인 시메오네식 4-4-2의 핵심이니까.
물론, 문제야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수비라인을 올려버린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캐스터님처럼 의문을 표하실 만한 전술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가요?]
[예, 단 한 방에 공든 탑이 무너지기가 너무 쉬운 작전이니까요.]
-*-*-*-
‘씁, 슬슬 집중력 떨어지네.’
역시 압도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라인을 올리니까, 자꾸 스프린트를 하게 되고, 체력이 빨리 떨어진다.
그리고, 체력 저하란- 결국 집중력 저하고.
집중력 저하란, 실수가 잦아질 위험을 품고 있다는 소리이다.
수비가 한 번만 삐끗하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질 위험을 말이다.
‘뭐,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그 전북이랑 경기를 하는 건데 이 정도 리스크는 감당해야지.’
전북, 저 친구들은 그야말로 K리그의 맨시티라고 내가 편의상 말하고 다니긴 하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K리그의 뮌헨이라고 말하는 게 좀 더 정확할 정도로 압도적인 구단이다.
왜 그러냐면, 당장 지금 나온 전북 라인업을 봐라.
당장 여기에 있는 선수들만 봐도 확실해진다.
자금력이 우리나라보다 좀 더 좋은 J리그에서 런던 올림픽의 주역들이었던 김보겸, 김창수를 빼 오는 데 성공하고.
작년 전남 공격과 수비의 대들보였던 이종호와 임종은을, 그리고 포항의 주전 윙어였던 고무열을, 모두 다 데려왔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특히 이종호는 이적료만 10억이 넘는, 국내 구단끼리의 거래 중에서는 최고 수준의 이적료를 주고 영입했다던데 말이지.’
뭐 그 외에도 득점왕 김신욱 선수 데려온다던가, 외국인 선수 연봉만으로 몇몇 연봉 규모 적은 시민구단 총 연봉보다 더 쓰는 구단.
그런 팀이 바로 전북이다. K리그의 절대적인 1갓.
···그런데 더 자본력 큰 리그, 그러니까 중국이 있어서 가끔 선수 빼앗기는 것까지, 솔직히 딱 뮌헨이긴 하다.
그렇지만
‘아직 근-본이 너무 부족해서 맨시티라고 하는 거지. 20세기 우승 하나도 없는 것들이잖아.’
뭐 우승컵 수집하는 기세 보면 곧 근본도 생길 것 같긴 하다. 당장 K리그 2연패 중이고, 올해도 아직 유일한 무패 팀이니까.
‘그래도 아직, 뮌헨 같은 명문이라기엔 좀 부족하다. 이 녀석들아.’
당장 K리그를 대표하는 최다 우승의 빛나는 명문구단 수원이 있거늘 어딜 감히 명문이라고 칭하고 다닌단 말인가. 적어도 우승 한 번은 더 하고 나서야 명문이라는 말을 붙이거라.
-삐익-삑!
+ 2 : 00
‘그래도, 이제 추가시간 2분만 더 버티면 전반전은 이대로 마무리되겠네.’
뭐, 교체도 없었으니 저 정도면 적당- 어? 시발.
‘저 새끼, 저거?’
[아, 추가시간 2분이 주어집니다.]
[루이스 공 잡습니다, 크로스-]
시발, 엿됐다. 저거 막아야 한다.
“온규막아!”
“어, 어?”
시발 막아야한다막아야-!
-통
[아, 한교원입니다, 한교원어언-!]
[상주 대위기! 선수 붙습니다!]
시발 역시나네!
‘뭔 전반 막판에 센터라인에서 이런 미친 패스냐! 새꺄 페어플레이 좀 해! 외노자 새끼야! 추가시간 같이 모두가 힘들 때 자기 혼자서만 개같이 축구하네! 매너있게 축구해!’
-퉁!
‘아 시발, 게다가 딱 봐도 저 공, 내 쪽 까진 안 올것 같은데’
이건 도저히 내가 건드릴 수가 없다. 저거 억지로라도 제대로 막을 방법은 슬라이딩 태클밖에 없는데 페널티 박스 안에서 그랬다가 잘못하면 얄짤없이 퇴장에다 페널티킥이다.
‘시발, 그냥 들이받아서 슈팅 이상하게 하도록 유도하는 게 전부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들이받으려는 순간, 문득 영건이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준혁아, 결국 수비는 관찰, 그리고 타이밍이야.
그 생각이 떠오름과 동시에, 놀랍게도 뛰어가면서도 나는 차분한 마인드로 축구공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퉁.
‘그래, 지금 내가 힘 줘서 밀어내도 저 녀석의 슈팅을 밀어내버리긴 힘들겠지.’
한교원 저 녀석은 키가 180cm가 넘는 위너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기회는 단 한 번, 저놈이 슈팅을 날릴 때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퉁.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저 녀석의 앞까지 축구공이 왔고, 나는 이 녀석에게 훨씬 더 바싹 붙었다.
‘자, 너는 오른발잡이지? 하지만 이 상황에선, 왼발 슈팅을 하려고 들 수밖에 없을 거다.’
왜냐하면, 니가 오늘발로 공을 차려고 하는 순간, 내 쪽에 공이 훨씬 가까워질 테고, 그렇게 볼을 빼앗길 위험을 감수할 리는 없으니까.
‘그러니, 자, 왼발만 보자.'
왼발, 들어라. 하나- 지금!’
-쿵.
제발, 제발-!
[아! 한교원 선수, 아쉽게도 골대를 살짝 벗어나 버립니다!]
[아 이런, 실수했네요. 마지막 슈팅을 하기 직전 경합 과정에서 살짝 밸런스가 무너졌습니다! 상주의 골킥입니다!]
시, 시발, 살았다.
“후아아아아··· 죽는 줄 알았네.”
마지막 슈팅 날리기 직전에 팔로 진로 방해하고 몸 들이받은 게 통했다.
그 순간, 훈승이 형님이 달려와서 나를 꽉 안았고.
“우와아-! 준혁아, 나이스다! 나이스! 못 막을 뻔했는데!”
“어억, 아닙니다 선배엑-”
옆에서 마크를 실수한 온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와, 준혁아, 진짜 미안하다. 저 패스 진짜 생각도 못 했어.”
“···아냐, 아냐, 근데 이건 솔직히 저 새끼가 미친 거였어···”
이건 진짜, 나도 중앙 미드필더로 뛴 경험 없었으면 절대 못 볼 각이었으니까.
‘휴, 진짜, 무슨 전반전 추가시간이 이렇게 박진감 넘치냐. 하하.’
방심을 못 하겠다. 진짜.
“자, 자, 일단 전반전부터 방심하지 말고 잘 마무리합시다!”
“그래! 다들 집중해라! 아직 1분 남았다!”
.
.
.
삑! 삑! 삐이익-!
[아, 전반전이 결국 더 이상의 득점 없이 끝났습니다. 후반전에 두 팀은 무슨 모습으로 돌아올까요?]
[글쎄요, 확실한 건, 이제 상주 상무는 다시 정상적으로 라인을 내릴 것 같네요. 수비적으로 전술을 변경할 것 같습니다.]
해설자의 그 말에,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던 꼬마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런 완벽한 기회를 한 번 만든 이상, 전북은 이제 그걸 집요하게 노릴 테니까.’
솔직히 초등학생인 자신이 봐도 너무 뻔했다. 상주 상무가 비록 저걸 막긴 했지만 사실 저건 선수가 임기응변으로 잘 막은 거였고, 원천적으로 보면 수비 뒷 공간이 넓다는 약점이 정확히 찔려진 거였으니까.
그리고, 한 번 뚫린 약점은, 같은 전술로는 계속 공략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냥 여기즈음에서 수비적인 전술로 변경하고.
[그렇죠, 솔직히 전북 상대로는 무승부만 따내도 잘 따내는 거 아닙니까!]
승점 1점이라도 챙겨가는 게 맞다. 그럴 거다.
그런데.
[어어, 상주 상무, 후반에 임협상 선수를 투입하는 걸 빼고는 아무런 포메이션 변화가 없습니다. 이거, 악수 같은데요···?]
그들은, 공격적인 움직임을 바꾸질 않았다. 전북이라는 거함을 상대로.
[한교원, 한교원! 슈웃-! 골-! 골입니다! 한교원!]
[아아, 이건 상주 상무의 전술 미스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똑같은 상대에게 골을 먹혀 버렸잖아요.]
한 골을 먹히면.
[어어어, 박동기! 박동기! 골! 고오오올-! 골입니다! 다시 승부의 균형이 맞춰집니다!]
전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몰아치면서.
[직접 프리킥입니다. 이형- 직접 슛-!]
[골! 골! 골입니다아-! 상주 상무! 전북에게 패배를 안겨주기 일보 직전입니다!]
기어이 역전을 해 냈다.
[이제 쫓기는 쪽은 전북입니다! 전북! 다급해졌습니다!]
[상주 상무가 세레머니 하는 동안, 빠르게 공을 가져다가 중앙에 가져다 놓고 있습니다!]
그 전북을 상대로. 말이다.
그리고 그 골이 터지는 순간.
[이거, 이제 확실해졌네요. 지금까지 긴가민가했지만, 이제는 확실해졌습니다.]
[뭐가 말이죠?]
해설위원은 말했다.
[올해의 상주 상무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상위권을 노릴 만한 팀이에요!]
.
.
.
.
.
-삐익! 삐익! 삐이익-!
-*-*-*-
-탁탁탁.
“아저씨-!”
어라, 이 목소리는 왠지 익숙한데.
“아저씨!”
아하. 얼굴 보니 알겠다. 그 세상 다 산 것 같아보이던 꼬맹이구만.
“어, 보러 왔냐? 어땠어? 재미있었지?”
“···마지막에 골 넣고, 왜 안 잠근 거에요?”
“어? 하하하. 이런, 그거 따지러 온 거냐?”
이런, 좀 냉정하네, 이 친구.
“뭐, 고집이지. 우리가 이렇게 가기로 한 이상, 이대로 가보자는.”
***
<2016 K리그 클래식 7Round>
[경기 종료]
상주 상무 3 : 3 전북 현태
[골]
상주 상무 : 황수일 21, 박동기 62, 이형 71
전북 현태 : 한교원 2, 25, 레오나르도 91
***
그래, 오늘 우리는 끝까지, 정말 끝까지 공격적으로 나갔고.
그 결과, 마지막의 마지막에 한 골 더 쳐먹고 결국 비겼다.
“···그 고집 버렸으면, 이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꼬맹이의 말에, 나는 웃으면서 답해줬다.
“하지만, 그 고집 덕분에 무승부까지 왔잖아.”
“······”
그래,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왔다면, 이길 수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수비적으로 나왔다면, 이렇게 치고 받으면서 싸울 수도 없었을 거다.
“그리고 수비적으로 나왔다고 해도, 우리가 한 20분 정도를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또 어디에 있는데?”
전북 상대로 20분 동안, 지쳐 있는 상태에서 수비적으로 간다고 실점 안 하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전북의 저 친구들도 위축되었다가 마지막의 마지막에야 동점골 넣었다- 이렇게 생각하거든. 나는.”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꼬맹이의 머리에 손을 탁 얹으며 말했다.
“어차피, 축구에 완전히 옳은 선택 같은 건 하나도 없어. 단지 결과를 통해 증명할 뿐이지.”
“······”
“그러니까, 너도 너무 그렇게 빠르게 포기하지 마라. 축구는, 그리고 인생이란 앞날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야.”
그 말에, 꼬맹이는 삐쭉 입을 내밀었다.
“큭, 너무 열혈만화 같은 말이라서 맘에 안 들어?”
“···예.”
참 요즘 애들은 냉소적이란 말이지.
“그래도 축구,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고.”
“······”
“그러니까. 일단 한 2년은 해 보고 다시 고민해. 초등학교 6학년이 풀백으로 밀려났다고 축구를 그만둔다는 말을 하기엔, 난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거든. 중학교 3학년 때라면 모를까.”
그래도 이 말은 조금 현실적으로 보였을까. 이 꼬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문제 해결! 난 이제 버스로 가야 해서, 이만 가 보련다.”
그 말을 끝으로 선수단 버스로 가려던 도중, 뒤에서 꼬맹이가 외쳤다.
“저기요, 형. 잠깐만요.”
“응? 왜?”
“아직 이건 대답 안해주셨어요. 왜 저한테 이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아, 그거? 그건 진짜 별 이유 아닌데.
“선배가 아이한테, 후배한테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데, 이유가 필요해?”
“······”
그냥 그 이유다.
“그럼 난 간다-! 다음에 또 보자.”
“···예, 형-!”
그리고 버스로 가던 도중,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아.”
저놈, 이제 형이라고 부르네?
···요즘 애들 참 무서워? 자기한테 도움 안 되면 아저씨고 도움 주면 바로 형이라니. 강호의 도리가 바닥에 떨어졌구만.
‘세상 참 무서워···’
그렇게 내가 요즘 아이들의 무서움에 손과 발이 벌벌 떨리는 병에 걸리려던 와중.
“준혁아! 빨리 와라! 경기 보고 사단장님이 맘에 들어하셔서 그대로 2박 3일 주신단다!”
“···.? 진짜요?”
“진짜지!”
“우와아아-!”
휴가라는 만병통치약이 순식간에 병을 낫게 해줬다.
"휴가 필요없다메?"
"아, 당연히 주면야 감사히 받죠!"
요즘 어르신들은 참 통이 크시구만. 하하. 휴가 만세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