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넘어서 (1)
2016년 04월 18일, 새벽.
“It’s that true~ yes! 모두오키도키요- 아, 또 오프닝 꼬였네.”
“처음에 오키도키 맞지 않아요?”
“맞아, 그 다음에 오픈풋볼K고. 다시, 다시하자고.”
흠흠-
“It’s that true~ Yes! 오키도키요! It’s that true~ Yes!”
“““오픈풋볼 K!”””
““-랄 라라 라라 라라라라-라라~””
“아니 종운이 형, 형은 왜 랄라라 안해요? 우리가 창피해?”
“아냐, 까먹었어, 까먹었어.”
“···일단은 넘어가는데, 다음부턴 까먹지 말고 꼭 합시다.”
-짝!
“자, 그럼 이 야심한 밤에 저희 이스터, 김헌 기자와 함께하는 오픈풋볼K에 오신 것을 환영하며, 이제 K리그 초반 판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순위표 한번 보겠습니다.”
“자, 아직 시즌 초긴 하지만, 예상과는 많이 다른 성적이죠? 각자 마음속 올해 초 나쁜 쪽으로 예상과는 달랐던 팀 1위는?”
“난 수원.” “난 포항.”
의견이 갈렸고, 당연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단 저도 수원이라고 생각해서 수원 쪽부터 의견 묻겠습니다. 수원을 1위로 꼽은 이유는?”
“간단하죠, 0승이니까요.”
그랬다. 현재 6라운드까지, 수원 블루버드는 아직도 승리가 없었다.
“작년 2위 팀이 아직도 승리가 없다는 건, 솔직히 그 무슨 미사여구를 붙여도 말이 안 되는 거예요.”
반면 포항을 꼽는 이의 의견은 좀 달랐다.
“그 말이 맞긴 한데, 지금 그래도 수원은 반등의 여지는 있어 보이거든요. 패배 자체는 1패밖에 없고, 작년 주전들이 그래도 잘 버텨주고 있잖아요.”
그러니 결국 시즌 초라서 보여지는 문제점으로 그칠 수 있다- 라는 의견이었다.
“반면 포항은, 지금 작년 주전이 또 팔리거나 싹 다 부상이라서, 지난 시즌 주전, 그러니까 25경기 이상 뛰어 본 선수가 절반밖에 안 남았어요.”
그러나 바로 반박 의견이 있었는데.
“아니 근데, 주전이 건재한데 0승이면 그게 더 문제있는 거 아닐까요? 지금 주제도 예상과는 다른 팀을 말하는 거잖아요.”
“근데 포항도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년 3위였고, 그래도 이렇게까지 떨어질 팀은 다들 아니라고 생각했잖아요. 저는 포항을 꼽고 싶습니다.”
“전 그래도 여전히 수원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의견을 몇 번 나누고도 영 둘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기미가 보이자. 이스터의 방송 진행자, 이주환이 최종 결론을 내렸다.
“오케이, 그럼 초반 최악의 팀은 수원과 포항, 두 팀으로 하고 시마이칩시다.”
오늘 이걸 주제로 잡고 5라운드, 6라운드 리뷰도 한 다음에, 7라운드 프리뷰까지 해야 했고, 내일 다룰 인천 특집까지 여러가지를 준비해야 했기에 시간이 생각보다 촉박했던 것이었다.
“그럼, 초반 예상에서 좋은 팀으로 갈렸던 팀은?”
이번엔, 두 명 모두가 동일하게 대답했다.
““상주.””
“다들 똑같은 생각이네요, 저도 솔직히 이건 상주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시즌 초, 상주는 가장 유력한 강등 후보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서울전 대패를 빼고는 나름 계속 볼 만한 싸움을 보여주고, 결과도 좋았던 것이었다.
“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혹시 상주 경기 한 번이라도 풀로 본 사람?”
“저요. 제가 경기 한 번 풀로 봤어요.”
“아, 헌이가 봤구나? 역시 기자네요, 어땠어요?”
“으음-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 측면이라고 봅니다.”
말이 너무 짧다고 생각했는지, 김헌 기자는 부연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지금 상주가 공격 루트가 정말로 다양하더라고요. 득점자가 엄청 많아요. 아마··· 8명, 8명일 거예요, 11골 넣었는데 8명이 골 넣었어요.”
“오. 진짜요? 어디 한번 보자고요, 하나, 둘··· 그렇네요? 이거 좀 신기하다. 득점이 적은 것도 아닌데, 8명이나 골 맛을 보다니.”
실제로, 현재 상주 상무는 득점자가 총 8명으로. 제주와 함께 공동 1등이었다.
“상주 상무가 득점자가 그렇게 많은 이유는 뭘까요?”
“제가 볼때는 이겁니다. 측면, 측면이 강해서에요.”
그 말과 김헌 기자는 부연설명을 시작했다.
“득점자가 많다는 건, 결국 득점을 누구나 넣을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는 소리거든요? 그러려면 공격할 때 골대 주변에 공간이 좀 생기고 있다는 소린데, 그 공간을 만들려면 측면이 좋아야 하니까요.”
측면의 선수들을 막기 위해서는 수비수들이 측면으로 가야 하기에, 골대 주변의 공간이 조금 벌어지게 된다. 그리고 당연히 선수들이 측면으로 가면, 골대 주변에 공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만 이유를 꼽으라면 측면 선수들, 특히 공격적으로 잘해주는 풀백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어요.”
“그렇네요, 박포진- 이형의 풀백 조합이, 굉장히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고 봐야 할까요?”
그 때,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거기에 하나 더 끼워야죠, 이준혁.”
“아, 그 선수요? 수비가 별로여서 올해 이제명 선수한테 밀려서 못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밀려났나 보네요?”
그 말에, 이스터의 일원인 박종운이 답변했다.
“예, 이 선수 올해도 슬금슬금 나오던데요. 그냥 왼발잡이라서 나오는 줄 알았는데, 최근 명단 보니까 그 셋을 돌려가며 쓰고 있더라고요. 이형 선수가 명단에서 빠질 때도 있었어요.”
그 순간, 진행자는 꽤 목소리가 높아졌다.
“오, 그건 좀 대단한데요, 셋이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최소한 지친 상태의 이형 선수보다야, 조금 휴식을 취한 두 선수가 낫다고 생각한다는 소리니까요.”
그리고 그건, 대단한 극찬이었다.
그 소리는 국가대표 바로 밑이라는 소리나 다름 없었으니까.
“그럼 상주 상무가, 이번에는 상위스플릿으로 올라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진행자의 그 질문에, 둘은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음··· 그래도 그건 힘들지 않을까요? 서울한테 워낙 처참하게 깨지고, 제주한테도 져 버려서.”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강팀과의 경기에서 아직 증명이 덜 됐어요.”
서울한테도, 제주한테도 4골씩 먹혀 버렸으니. 아직은 상위 스플릿으로 간다기엔 수비가 불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마 상주가 상위권으로 갈 수 있느냐, 없느냐는 다음 경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의합니다. 다음 7라운드 경기가 정말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 6일 후 열리는 7라운드에서.
그들은 K리그의 맨시티, 전북 현태를 만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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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진이 형.”
“왜.”
“형 꽤 괜찮은, 아니 그냥 좋은 풀백 맞죠?”
“그렇지.”
그래, 포진 형님은 좋은 선수다. 성남에서 주장까지 달아본 선수니까.
“그리고 올해 들어선, 저도 꽤 괜찮은 풀백이죠?”
“그렇지.”
“···그런데 왜 저희는 이렇게 애들한테 인기가 없는 걸까요?”
-와아! 이형! 이형! 싸인! 싸인 좀요! 여기에!
-야 밀지 마! 밀지 말라고! 내가 먼저야!
-형! 형! 크로스 잘 차는 방법좀 알려주세요!
“그것도 저희 유스 애들한테.”
나도 크로스 잘 차는 법은 가르쳐 줄 수 있는데 말이지, 왜 저렇게 다들 이형 선배만 찾는 거니 애들아.
“그야 이형 선배님과는 달리 우리는 국대가 아니잖아.”
···음, 그거라면 할 말이 없긴 하네.
“게다가 중고등학생들이면 몰라도, 쟤넨 초등학생들이잖아, K리그보단 국대나 유럽 선수들만 보고 있을 친구들이라고.”
으, 그래, 저 아이들은 박지성 선수가 QPR로 갔을 때 꼬꼬마 유치원생이었을 애들이라. 유럽 선수가 오히려 더 익숙할 나이긴 하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인기 없을 줄은 몰랐는데요, 저 애들 설마 K리그를 아예 안 보나?”
“그건 아닐껄, 저기 봐봐.”
-이기승 선수! 여기 전북 유니폼입니다! 싸인 좀요!
-저기 동기 형님! 혹시 등딱 요령 같은 거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태준이형! 드리블 잘 치는 방법좀 갈켜주세요!
“기승이 같은 공격적인 미드필더나 공격수들은 인기 있잖아.”
“······”
아, 그렇구나. 하하. 젠장. 풀백이 인기 없는 포지션이라는 게 새삼 실감나네.
“에휴, 난 뒤로 가서 짱 박혀 있어야겠다.”
“응? 벌써요?”
“그래, 애들이랑 같이 연습해주는 시간은 끝났고, 뽄새 보니까 저 애들이 우리 찾을 것 같지도 않은데 뭐.”
“······”
아 선배님, 그렇게 팩트만 이야기하지 맙시다. 너무 아프잖아요.
“너도 같이 뒤로 가 있을래?”
“···아뇨, 그래도 좀만 더 있어보려고요.”
그래도 자라나는 새싹들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있는 한! 조금이라도 더 가르쳐 줘야지!
‘한 명이라도 있는 한, 철저하게 가르쳐 줘야지.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자, 애들아! 저기 이형 선배한테만 줄 서있지 말고! 나한테도 와줘! 잘 가르쳐줄 수 있단다! 난 라이센스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번뜩이던 도중,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응? 쟤는 왜 사인도 안 받고 저기에 짱 박혀 있냐?’
부상인가? 아니지, 부상이면 애초에 여기에 안 데려올 텐데? 뭔 일이 있는 친구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꼬맹이에게 다가간 순간, 조금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꼬마의 얼굴이, 너무 어두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길래 여기에 와서까지 저런 어두운 얼굴이래?’
여기에 온 다른 아이들은, 프로 선수랑 실제로 웃고 떠들며 훈련이라고 할 법한 것을 조금이나마 한다며 좋아하고, 싸인도 받느라 다들 웃고 있는데. 저 친구는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였다.
“저기, 꼬마야?”
“···아저씬 누구세요.”
“아···”
젠장, 그래, 하. 군대 왔으면 아저씨긴 하지.
“그래, 아저씨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왜 여기서 이러고 있냐?”
“···그게 왜 궁금한데요, 아저씨.”
왜 궁금하냐고?
“그야 니 표정이 무슨 세상 다 산 거처럼 굴고 있으니까.”
“······”
“말해봐, 뭐 지도자가 때리거나, 촌지 달래? 그게 맞으면 고개 까딱일 필요도 없고, 그냥 주먹만 꽉 쥐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뭔데.
“···제가 윙어인데, 저희 감독님이 저보고 공격수 관두고 풀백으로 내려가라고 해서요.”
“······”
···저기, 이해는 가는데··· 그, 그렇다고 표정이 그렇게 썩을 것까지 있냐? 듣는 풀백 기분 별로다.
“야, 풀백도 중요한 자리야, 풀백은-”
“그 소리, 안 믿어요, 아저씨, 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요? 풀백 가란 소리는 그냥 너 축구 잘 못하니까 뒤로 빠져있으란 거잖아요.”
“······”
“거봐요, 할 말 없죠?”
요즘 애들 참 할 말 못할 말 다 하네, 아주 똑 부러졌어.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풀백은, 아무리 치장되어 봤자 풀백이니까.
당장 현재 최고의 풀백이라고 불리는 마르셀루가, 연봉이 높던가? 아니면 풀백 중에서 이적료 4천만 유로, 원화로는 5백억을 넘는 선수가, 있었나?
둘 다 아니다.
풀백은 중앙에서, 위에서 밀려난 자들의 마지막 종착지다.
결코 선수의 입장에서, 반길 수는 없는 자리란 거다.
그래도-
“너 그럼 윙어 주전이었어?”
“···아뇨, 후보였어요.”
그 말을 듣자, 나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야, 그럼 걍 뛰어. 경기에 뛰지 못하는 후보 윙어보다는, 풀백이라도 뛰는 게 훨씬 낫다.”
“···왜요?”
이유? 간단하지.
“선수는, 경기를 뛰어야 배우고, 그로 인하여 성장할 수 있으니까.”
선수는 훈련을 통해 성장한다지만, 경기를 뛰지 못하면 성장할 수가 없다.
경기를 통해 자신의 문제점을 찾고, 강점을 찾아낸 다음, 훈련을 통해 약점을 극복하고 강점은 강화하는 담금질을 하고··· 그러면서 성장하게 되는 거란 말이다.
“괜히 경기 뛰고 싶다고 이적하는 선수들이 맨날 나오는 게 아니야, 다들 그걸 알고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요즘 사람들의 인생 목표가 뭔가. 일 안하고 돈 많은 사람, 돈 많은 백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유럽 빅 클럽에서 후보로 밀려난 선수들은 그 꿈을 이룬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후보라곤 해도 연봉을 거의 십억 언저리, 혹은 그 이상을 받으니까.
그런데, 그들 중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자기가 받는 돈을 깎아서라도 자기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들은 아는 거다.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치열한 전장에서, 경기에서 뛰어야만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어찌어찌 살아남아 성장하다 보면, 돈도 그래도 먹고 살 만큼은 벌어.”
“···그걸 어떻게 확신해요?”
“그야, 내가 그런 놈이니까. 윙어는 아니지만, 나도 1년 전에 미드필더에서 여기로 포지션 변경했거든.”
그 말을 듣자, 꼬맹이 녀석이 좀 놀란 눈치를 보였다.
‘호오, 관심 좀 가지네? 더 대화할 수 있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삐이익-!
“아, 선생님이 너희 모이시라고 하는 것 같은데, 맞냐?”
“···어, 예. 저거 모이라는 호루라기 소리에요.”
이런, 이러면 길게 대화하긴 힘들 것 같은데.
“그럼, 헤어지기 전에 너한테 이거 살짝 줄게.”
-척.
“이거 다음 우리 홈 경기 티켓이거든? 나 그때 뛴다. 그 때, 보러 와라. 그 때 다시 한번 이야기 해 보자.”
“···그거 전북하고 경기잖아요.”
오, 일정 아네? 대단한데?
“요즘 잘 나가는 건 알고 있긴 한데, 전북을 이길 수 있어요?”
이길 수 있냐고?
“글쎄, 확신은 못 하지.”
전북은, 누가 뭐래도 K리그의 절대적인 강자고, 우승 후보 1위 팀이니까.
“그렇지만, 우리 꼬맹이가 실망하지 않을 경기를 보여줄 수 있으리란 확신은 있지.”
“······”
“어때? 가져갈래? 말래?”
그 말에, 꼬맹이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어봤다.
“왜 저한테 이렇게 해주시는 거예요?”
흠, 왜 그러냐고?
“그건 지금은 비밀, 경기 때 보게 되면 가르쳐줄게.”
“······”
“자, 나 팔 아프다? 못 받으면 대화도 더 없다?”
-탁
“경기 져도, 가르쳐 주는 거에요.”
허허, 참. 새끼, 끝까지 틱틱대는구만?
“그래, 약속해주마.”
우리 경기를 보러 와줄 꼬맹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경기를 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