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떠난다.
-삐이익! 삐익! 삐익!
[아, 상주 상무! 득점! 득점입니다! 이걸로 2대 1!]
[후반전 88분에 득점! 득점입니다! 상주 상무, 시즌 두 번째 승리를 따내기 일보 직전입니다! 오늘 승리하면 상주가 몇 위죠?]
그 순간, 해설위원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계산이 끝났는지
[4···아니, 1등입니다! 상주 상무가 현 시간부로 잠깐이나마 1등의 자리에 오릅니다!]
상무가 1등에 올랐다는 사실을 더듬거리며 전해줬다.
그 말에, 캐스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그 정도나 되나요? 상주 상무는 서울에게 크게 지지 않았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라 4 : 0 패배를 당해서 득실점이 박살 났을 텐데, 어떻게-
‘아’
순간, 캐스터는 바보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올해 바뀐 규정을 잘 생각하지 못했군요.]
[예, 그렇습니다. 올해 K리그는 승점 동점일 경우, 다득점이 우선시되기 때문이죠.]
그랬다. 일반적이라면 상주 상무가 그런 다득점 패배를 당하고도 시즌 초에 1위를 차지하기란 불가능이었겠지만. 올해 바뀐 규정에 따라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오늘 아직 성남과 인천의 경기가 남아 있고, 내일 경기도 남았기에 완벽한 1등은 아니지만, 상주 상무의 팬 분들은 그래도 잠깐은 즐거워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숨! 막! 히! 는! 고토옹도~ 뼈를 깎는 아픔도~
[예! 상주 상무 팬들이 최후의 5분 군가를 우렁차게 부르며 끝까지 승리하기를 바라고 있군요! 좋은 모습입니다!]
-삑! 삑! 삐이익-!
[경기 끝났습니다. 상주 상무, 잠깐이나마 1위의 공기를 맡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SPOTV였습니다!]
.
.
.
.
.
“수고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경기 선수들이 인사하는 사이를 틈타,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봤지만.
“······”
여전히 내가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진짜로, 진짜로 그만둬 버린 건가. 기사도 안 떴던데.’
그 모습을 보고, 어제 태준이가 울면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승열이 그 새끼, 씨발, 그 새끼···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왜 그 자식이 이렇게까지···
이브랜드라는, 2부리그에서 막 올라왔기에 쓸만한 선수층이 아직 얇을 수밖에 없는 구단에서조차. 교체 명단에도 없었고.
선수단 인사에도 없었다.
그래, 없다.
그 승열이가. 없다.
내가 학창 시절에 가장 잘 될 거라고 생각, 아니 확신했던 천재가.
은퇴를 결심했다.
-*-*-*-
지금의 내가 만일 학창 시절 만났더라면 가장 천재라고 생각했을 동갑내기는, 당연히 기성룡이다.
그는 EPL의 선수이자, 현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주장이니까.
그러나, 나는 솔직히, 학창 시절에 그가 천재라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당연한 게, 그를 단 한 경기도 만나보지 못했으니까.
그 선수는 일단 빠른 89다. 나보다 한 학년 위라는 소리다. 일단 여기에서 걸린다. 학원 축구에서 한 학년 위라면 솔직히 붙어볼 기회가 쉽게 오진 않으니까.
물론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팀의 핵심이었으니 일반적인 경우라면 상관없었을 테지만. 기성룡은 그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호주로 해외 유학을 간 이후, 단 한 경기도 학창 시절에 한국에서 공식적인 축구 경기에 출전한 적이 없으니까.
연습경기라도 뛰어봤으면 모르겠는데 우리는 용인의 약소 고등학교인데 그들은 광주에 있어서 그것도 잡지 못했고.
그러니까 나는 기성룡, 그가 프로에 가서 아무리 뛰어난 활약을 보인다고 해도, 별로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애초에 아무리 천재라고는 하지만 내가 마주치지도 못한 천재에게 어떻게 질투하고 벽을 느끼겠는가. 내가 벽을 느낄 최소한의 정보라도 있어야지.
그래서 내가 고등학교 때 직접 마주치면서 가장 성공할 거라고 느꼈던 선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이승열 그 친구를 뽑았다.
뭐, 물론, 솔직히 천재라고는 해도 그 친구. 고1 시절에는 태준이한테 좀 많이 밀렸다. 그 시절 태준이는 드리블에 대한 모든 것이 이미 완전체에 가까웠는데 키까지 그땐 큰 편이어서 우당탕 드리블을 해도 다 뚫어버렸던 1갓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친구는. 빠르고 간결한 드리블, 완숙한 기술, 완벽한 슈팅 타이밍. 이 세 가지를, 피지컬이 완성되지 않았음에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중학교 때 무릎에 칼을 대는 비극을 겪고도.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하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평가를 오히려 더 올리던 노력가였다.
그래서 신갈고에서 박태준, 이승열, 그 둘은 브라질 유학까지 1년 갔다 왔다. 그쪽 축구부에서도 확신한 거였다. 이 둘은 무조건 큰다고.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돌아오고 나니, 그놈은 미친놈이 되어 있었고, 모두가 대학교 진학을 선택하던 때에 당당히 프로에 도전장을 내밀어 무려 FC 서울에 2라운드로 뽑혔다.
그 시절 FC 서울의 스트라이커들은 이랬다.
데얀, 정조국, 김은중, 박주영, 그리고 가끔은 섀도 스트라이커로 뛰던 이청룡까지.
K리그 역사에, 혹은 국대에서 자신의 흔적을 뚜렷하게 남긴 미친 스트라이커들을 가지고 있던 그 FC 서울이, 드래프트 2순위로 고졸자 스트라이커를 뽑았단 말이다.
당연히, 모두가 그 친구는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틈바구니에서 그 친구는 2군 생활 따위 없이, 단번에 1군의 틈바구니를 파고들어, 바로 1군 자리를 따냈고.
대부분이 교체이긴 했으나, 30경기를 넘게 출장하고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프로 직행한 고졸자가 바로 K리그 신인왕을 차지하는 데 성공.
그리고 2년 차가 되어도 부침 따위 없다는 듯이 더 적은 출장을 하면서도 오히려 득점은 더욱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2010년, 대학교 3학년의 나이에 그 친구는 월드컵이라는 무대로 나아갔다.
그 친구의 앞날은, 그 누구보다도 창창해 보였다.
.
.
.
그런데. 비극이 시작됐다.
<이승열, 이적료 20억에 J리그로 이적! 아시아 최고급 대우받아···>
서울에서 잘 뛰고 있던 선수가, 갑자기 일본으로 떠나가더니.
<이승열, 울산 현태로 이적! K리그 복귀!>
<이승열, 성남으로 이적, 부활의 날갯짓 펼치나?>
<이승열, 전북 현태로 이적.>
반복되는 무릎 수술, 그리고 수수료를 노리던 망할 에이전트의 농간이 합쳐지며 인한 잦은 팀 변경으로 인해.
이제는 울산으로, 성남으로, 전북으로, 그렇게 매년 팀을 옮기는 떠돌이가 되기 시작했던 거였다.
그리고, 바뀐 팀에서 항상 무리하며 최선을 다하다 보니.
-그 새끼··· 씨발, 그 새끼 이제 무릎이, 사실상 맛이 갔데, 조금만 더 무리하는 순간 연골 파열이래.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 해주면서, 결국 이번 이브랜드에서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한때의 위대했던 유망주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부상이라는 악령과 개 같은 에이전트 탓에.
그리고, 약간의 불운이 겹치면서.
날개를 다 펼치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 중 한 명이 되어버렸다.
“···”
-하아.
빌어먹을. 스파게티가 영 들어가질 않는다.
‘젠장. 우울하니 핸드폰으로 순위 업데이트한 거나 봐 볼까.’
그래도 1등 한 거 보면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도 있으니. 어디 보자, 순위표···응?
“뭐야 시발, 이거 뭐야.”
***
<전반 5분>
인천 0 : 1 성남
***
‘시발, 뭔 게임 시작한 지 5분 만에 골 먹히고 그러냐, 인천 이놈들은.’
이러면 성남이 승점 10점이니까 우리는 한 7분짜리 천하였던 거네.
‘에라이 젠장, 감질도 안 난다.’
신경질 나서 폰을 탁 던져버리려던 순간.
“승열이, 오늘 결국 못 나왔더라.”
그 날 이후 내내 우울해 보이던 태준이가, 입을 열었다.
“진짜로 은퇴하는 건가 보다···”
“인마, 그렇다고 또 울지는 마라.”
“···안 울어, 그때도 눈에 먼지 들어갔던 거야.”
···이 자식, 아무래도 안 되겠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태준아, 한잔할래?”
내 말에 태준이가 잠깐 움찔했지만.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술 마시고 싶진 않아. 그건 안 되지.”
“······”
“···그냥 놔 둬줘, 좀 충격받아서 그럴 뿐이니까.”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라커룸 냉장고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놔두라고 하는 사람치고, 정말로 가만히 놔둬도 되는 사람은 없지. 당장 내가 고양에 있을 때 그렇게 참다가 터졌으니까.’
그러니, 차라리 지금 바로 속에 있는 말을 터뜨리게 하는 게 오히려 낫다.
“···오케이, 찾았다.”
“···야, 진짜 됐다니까. 슬플 때 난 술 안 마-”
-탁
“자, FA컵 끝나고 남았던 무알콜 맥주다. 알콜은 없으니까 이걸로 먹어.”
“······”
-치익
“건배.”
“건배.”
-땅.
“···”
“···”
그렇게 목 넘김 소리만 들리다가. 태준이가 먼저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냐.”
그러나.
“······”
“······”
그 대답에 대한 말은 나도, 태준이도 입을 다물었다.
그런 게 이 무대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찬란한 빛을 바라보지만.
그 빛을 받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그 빛을 받던 사람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빛을 잃어버릴 수 있는.
그런 세계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으니까.
“준혁아, 넌 에이전트 선임 저렇게 하지 마라.”
“···응, 그냥 계약할 때 변호사 부를 생각이야.”
승열이의 일을 들으니, 에이전트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부서지는 느낌이다. 대표팀 공격수가 이런 일을 당한다는 건, 그냥··· 그냥, 나는 언제든 짓눌려져 버릴 수 있다는 거 아닌가.
물론 금액적인 부분에서 조금 더 수고스럽고, 귀찮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의 미래를,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맡기기가. 참 두렵게 느껴졌으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 말에는, 그래도 답을 할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거지.”
“응?”
“그냥 열심히 해서, 자주 따고 인터뷰 때마다, 이승열이란 이름이 이 프로에서 계속 언급될 수 있게 해주자고.”
당장 생각해보자. 파트리스 에브라, 그 선수가 박지성 선수 친구만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한국에서 인기가 많았는가. K리그 MVP나 웬만한 국가대표보다 에브라의 인기가 더 많았다.
···물론 우리가 그 정도까지는 성공하긴 무리겠지만.
“적어도, 축구교실을 운영할 때 우리가 인터뷰에서 이 친구가 이러이러한 점이 뛰어나다고 하는 기사가 많으면, 도움이 되겠지.”
돈을 빌려준다거나, 하는 일회성 도움도 있겠지만.
그건 결국 우리 살을 떼어내서 주는 도움이라 계속 도와주기도 힘들고, 무엇보다 우리보다 훨씬 고점이 더 높았던 그 프로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니- 그 노력파 친구에게 노력한 만큼 땀방울을 얻을 수 있도록.
“그걸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
“······”
내 말에 태준이는, 잠시 침묵하다가.
“준혁아.”
“응.”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닌텐도, 네가 가지고 있어 줘라. 그리고 당분간 나도 너 훈련 할 때, 무조건 같이 끌고 나가줘.”
“······”
“더, 더 더, 열심히 해서, 인터뷰 마구 따내고, 그 친구가 잊혀지지 않도록.”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 한 잔 하며 서로 그리 어둡지 않은 얼굴로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어졌다.”
"···그래."
-땅
“승열이를 위하여.”
“승열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