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4화 (74/167)

그리고, 누군가는

2016년 4월 7일

“야, 준혁아, 스맛폰으로 영상 그만 좀 봐라, 너 데이터 무제한도 아니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신기해서 안 보기가 힘들다. K리그에 올라왔다고 이렇게 기사랑 하이라이트 영상이 몇 개나 쫙 뽑히다니.”

K리그가 인기 없다, 인기 없다고 하지만, 솔직히 챌린지에 있던 나로선 이 정도만으로도 상전벽해다.

‘저번 우리 경기에 하이라이트 영상만 열 개란 말이지, 열 개.’

물론 우리가 저번에 한 경기가 K리그 최고의 킹갓제너럴명문팀인 수원하고의 경기였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겠지만, 풀 경기 영상 말고도 영상이 무려 10개나 나왔다.

“야, 야구는 매일 하는데도 하루에 수십 개씩 기사 쏟아지고, 영상 한 20개씩 나오잖아. 근데 뭐가 놀라워.”

“야, 챌린지는 하이라이트 영상도 없는 경기 꽤 많거든?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 뭘 더 바래?”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이 시키가.

“어이구, 챌린지 촌놈.”

···그래, 나 챌린지 촌놈이다 임마.

-끼이익.

“도착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여기 카드요. 태준이 너, 돌아갈 땐 니가 내라.”

“오케이.”

그렇게 택시에서 내린 우리 둘은 호텔 건물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브랜드 선수단이 이 호텔에 있는 거 맞냐?.”

“맞을걸. 정 궁금하면 니가 승열이한테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잖아?”

“···나 승열이 전화번호 없다.”

어?

“태준이 너 승열이 전화번호 없어? 가장 친한 친구잖아.”

“원래는 있었는데, 걔 전북에서 계약 끝나고 나서 전화번호 바꿨더라고.”

···사람이 좀 안 좋은 상황에 처하면, 연락 끊고 지내는 건 어디나 다 똑같구나. 브라질까지 같이 갔던 두 친구가 저렇게 연락이 끊기다니.

“그래서 나 따라 나온 거였냐?”

“···그래.”

에휴- 참, 사람 앞길 모르겠다.

“그럼, 오늘 만나서 잘 풀어봐라. 저녁 7시까지 여기에서 만나자.”

“그래- 그럼 너는 계약 잘하고.”

그렇게 서성이다가 좀 고급스러운 식당에 도착한 나는, 얼마 안 지나서 밖에 나와 있는 민구를 찾을 수가 있었다.

“아, 준혁이 형? 왔네요. 여깁니다. 형님!”

“오랜만이다. 민구야, 잘 지냈냐? 아니, 잘 지냈냐는 말이 오히려 어색한가? 3라운드 MOM이니까.”

“에이, 운이 좋았죠.”

운이 좋긴 개뿔이 좋아. 힘으로 잘 버티고 넣은 좋은 골이더구먼.

그렇게 우리가 말하는 사이, 민구 옆에 앉아 있던 구단 측 관계자가 살짝 웃었다.

“하하하, 두 분 정말 사이가 좋으시군요.”

“예, 미드필더 시절에, 저 선배님 보고 많이 배웠거든요.”

“······”

글쎄, 내 기억으론 그냥 패스 하기 전에 생각 좀 하라는 소리랑 고개 좀 쳐들라고 매일 잔소리했던 기억밖에 안 나는데.

“이야, 참, 대단하십니다. 이준혁 선수, 이왕이면 겨울에 저희랑 선수 계약도 맺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 말을 듣자,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그건 여름에 다시 얘기하죠.”

선수 계약은, 여름 이적시장 시작하기 전까지는 가계약도 맺을 생각 없으니까.

‘내가 사실상 가장 많은 금액을 당겨 받을 수 있는 땐데, 신중해야지.’

지금의 내 나이는 28살. 만으로는 26세다. 내가 이번 시즌에 맺는 계약이 내 전성기의 끝자락이란 거다.

그러니, 내가 최대한 당겨 받을 수 있는, K리그 팀들이 가장 급하게 선수를 사는 시기 때 계약을 맺는 것이 나에게 훨씬 유리했다.

‘게다가, 내가 아무리 작년에 그럭저럭 잘했다고 해도 K리그 챌린지에서 뛴 기록이었지, 클래식에서 뛴 기록이 아니잖아.’

1부리그 구단들은 2부리그에서 몇 년간 쌓은 성적보다, 반시즌이라도 1부리그에서 쌓은 성적을 구단들은 훨씬 선호하게 되어 있다.

당연한 게, 중학교 시험 때 성적 잘 나왔다고 고등학교 수능 성적이 잘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그러니, 내가 가장 좋은 계약을 받기 위해서는 K리그를 반시즌이라도 뛰고 거기에서 나온 성적으로 계약을 맺는 것이 가장 유리했던 것이었다.

“하하, 너무 그렇게 딱 잘라 말씀하시면 섭섭한데요, 저희가 그렇게 낮은 금액으로 제안하지도 않았었는데.”

“······”

물론 뭐, 그걸 감안하더라도 꽤 좋은 제안을 저쪽에서 제안해 오긴 했고, 내가 K리그에서 망할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좀 도박 수이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관심 없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K리그에서 한 번이라도 제대로 뛰고 내 가치 평가를 받고 싶었다.

“이런, 아쉽네요. 이왕이면 지금 빨리 입도선매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

그런데도, 이렇게 이 이브랜드 쪽과 만나게 된 이유가 있었는데.

“···그보단 계약서부터 보여주시죠.”

“흠, 알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그럼, 정식으로 제안하겠습니다. 이준혁 선수, 저희 뉴밸런스는 정식으로 이준혁 선수와 스포츠용품 스폰서 계약을 맺고 싶습니다.”

-*-*-*-

사실, 처음에는 안 믿었다.

아니, 사실 그 제안을 듣자마자 맨 먼저 나온 소리는, 이거였다.

“보이스피싱이죠?”

“···아닙니다.”

“아니긴, 끊습니다.”

-뚝.

물론 차분히 생각해보면 저 구단 쪽에서 영입 제안 관련 메시지를 보내던 번호로 연락이 왔기 때문에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그때는 이런 생각밖에 안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애초에 아직 K리그도 3라운드밖에 진행 안 됐고, 난 이제야 K리그 2경기를 뛰었다. 사람이다. 1경기는 포진이 형님이 뛰었고.

그렇다고 우리 상주 상무가 성적이 뭐 무지하게 좋은 것도 아니었다. 1승 1무 1패라는, 아주 평균적이고도 평균적인 기록을 냈으니까.

···그 중에서 서울한테 4대 0으로 개털린건 덤이고.

하여튼, 그런 상황이었는데 스폰서 제안을 해오니, 이런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대 보이스피싱일 리가 없는 전화번호였고, 그 쪽에서 계속 연락이 오자. 다음으로 한 말은 이거였다.

“왜죠?”

···솔직히,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됐던 거였다.

그래서 이유를 듣다 보니. 가관이었다.

“그게, 주민구 선수에게서 들었습니다. 저희 쪽 축구화를 애용하신다고요.”

내가 작년부터 신기 시작한, 뉴밸런스 쪽에서 나온 비자로 축구화.

···솔직히 내구도는 경기 뛸 때마다 갈아줘야 할 정도로 개판이긴 하지만, 그래도 키카보단 훨씬 질 좋고 가볍고, 미즈노보다 훨씬 싸서 내가 민구에게 받은 이후로 애용하기 시작한 그 축구화.

그 축구화가 이런 일을 불러왔던 거였다.

“그 축구화를 애용하시는 한국 프로 선수가 저희 쪽에서도 주민구 선수를 제외하곤 없는데, 그걸 신고 경기를 뛰시더라고요.”

그랬다. 한국에서 축구화의 절대 강자는 미즈노, 아디다스, 나이키다. 이 셋을 신는 사람들이 사실상 90%가 넘고, 푸마 정도가 그나마 가끔 보이는 수준이다.

그래서 뉴밸런스 쪽에서 어떻게든 그 벽을 뚫고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고 있던 판에.

-어? 저거 우리 축구화 아닙니까?

-어? 그렇네? 우리 쪽 축구화 신는 사람 있었어?

내가 그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뛰는 모습을 발견하고, 곧장 나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정식으로 우리 축구화를 신어달라는 계약을 제안하게 된 거였다.

“일단, 금액과는 별개로, 기본적으로는 축구화가 한 달에 4켤레 정도가 주어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저희 축구화의 내구성이 좋지 않다고 하신 만큼 8켤레를 제공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우, 이거 좋네.

‘그럼 이제 축구화 아낄 필요가 없다는 거잖아.’

훈련장에서도 막 똑같은 축구화 쓰고 다녀도 된다. 그럼 볼 컨트롤도 더 좋아질 수 있을 거고. 이건 무조건 좋은 거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희의 스포츠 모델이 되게 되시는 만큼. 운동화 및 각종 스포츠 의류도 제공해 드릴 겁니다. 많이는 아니지만, 신상품이 나올 때마다 2벌 이상씩은 지급될 겁니다.

이것도 좋긴 하네.

애초에 옷차림? 그게 뭐가 중요해. 대충 운동하는 데 편하기만 하면 장땡이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라 저런 스포츠 의류가 꾸준히 제공되면 일단 나쁠 수가 없고,

“그리고 그걸 입고 페이스북에 올리시거나 할 때마다 추가로 금액이 붙을 겁니다.”

거기에다 돈까지 더 들어올 수 있으니까 더 좋은 거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그 밖에도, SNS에 사진을 올릴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축구화가 나오는 사진으로 홍보를 해야 합니다, 계약하는 순간 경기에서 무조건 뉴밸런스 축구화만 신어야 하며, 그걸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고, 상기된 사항을 상습적으로 지키지 아니하였을 때는 곧장 계약 파기와 위약금을-”

···저 어질어질한 계약 조건을 보시라. 젠장. 뭐 저렇게 복잡하냐.

‘물론 계약인 만큼 복잡한 게 이해는 가고, 지켜야 할 조항도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지만···’

하, 이거 진짜 겁나게 길다. 길어.

미리 핸드폰으로 계약서 사본을 보고 왔다면 좀 덜 당황했겠지만, 나는 공식적으로는 군대에 있어서 핸드폰을 못 쓰는 사람이기에 계약서를 보는 게 오늘이 처음인 탓에, 영 적응이 되질 않았다.

“뭐, 일단 오늘은 첫 번째 제안을 하러 온 셈이니, 가볍게 제안서만 드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그럼, 남은 외출하는 동안은 주민구 선수와 즐겁게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어어, 예. 에.”

와, 씹 머리 아파.

“형, 저거 다 알아들었어요?”

“···한 절반? 절반쯤 알아들은 것 같다. 가져가서 진득하게 봐도 다 이해할지는 모르겠고.”

“와, 형님 대단하네요, 전 10%도 못 알아듣겠던데.”

뭐야.

“넌 근데 바로 계약한 거야?”

내가 계약하기 전, 민구는 이미 계약했다고 들었다. 당연한 게, 나 같아도 나 같은 사람한테 제안하기 전에 먼저 자기네 팀에서 그 축구화를 신고 있는 선수들부터 제안할 테니까.

그런데, 그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로 계약하다니.

“저 에이전트 뒀거든요.”

“응? 에이전트 뒀어? 언제?”

“이번 K리그 올라오면서요, 덕분에 재계약할 때 꽤 좋은 조건으로 계약했어요.”

와 씹, 부럽다.

‘에이전트라니.’

에이전트.

선수를 대신해서 구단, 광고, 스폰서 등과의 계약을 처리하는 그들.

솔직히 고용하면 축구만 신경 쓸 수 있어서 편해진다곤 하지만, 문제는 수입의 일부 퍼센트를 떼어가기에, 나 같은 사람들은 아직 단 한 번도··· 고용한 적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애초에 1부 2부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거나 유망주라면 몰라도, 그게 아닌 진짜배기 2부 리그 선수들에겐 에이전트가 계약하자고 먼저 찾아오지도 않고. 아직까진 옵션도 별로 없어서 그냥 선수들이 알아서 계약한다.

그런데, 지금 나는 느꼈다, 그냥 내 눈으로만 봐선 절대 제대로 된 계약을 맺지 못할 거라는 것을.

‘시발, 조항이 너무 많아.’

뭐부터 건드려야 제대로 된 협상이 가능할지가 파악이 잘 안 될 정도니, 답이 없다.

“형, 이번 김에 형도 에이전트 하나 선임하세요, 이거 계약금만 봐도 솔직히 선임할 돈은 충분히 되잖아요.”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네.”

장기간은 몰라도, 한 1년~2년 정도는 진짜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K리그 여름 이적시장까지 대비하려면 진짜로 바로 선임해야 할지도?

‘이 스폰만 받아도, 대충 평범한 2부리거 선수의 연봉은 되니까 선임비는 나올 거고.’

그래도. 그런 복잡한 기분과는 별개로, 꽤 좋은 일이긴 했다.

‘이야- 진짜 많이 컸구나, 나도.’

에이전트 선임이라니, 그런 건 진짜 K리그에서도 연봉 좀 받는 선수나 하는 짓인데, 꽤 사치스러워졌다.

그렇게 나름 머리는 복잡해도, 태준이와 만나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태준이가 이런 건 잘 알 텐데.’

고등학교 시절 89년생 중에서 가장 주목받던 친구 중 한 명이었고. 대학교 중퇴해서 프로 진출도 빨리한데다, 팀도 많이 옮겨다녔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중에 만나서 태준이한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원래 장소로 돌아간 나는.

“···뭐야?”

믿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태준이가, 그 마이페이스 태준이가.

울고 있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