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화 (73/167)

Dreams come true (2)

“크로스 막는 법?”

“응, 나한텐 그게 가장 급해.”

지난 FC서울과의 FA컵 결승전은, 비록 승리하긴 했지만, 나의 약점도 뼈져리게 노출된 경기였다.

‘차두리 선배한테, 크로스를 뻥뻥 내줬으니까.’

아마도 그걸 노리는 팀들이, 분명 새 시즌엔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하나··· 그래, 이건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게 좋겠다. 한번 직접 니가 공 차면서 달려들어 봐.”

“오케이.”

축구공을 하나 가지고 온 나는 드리블을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크로스를 날리려는 친구들이 그렇듯이 직선적으로, 라인을 따라서.

그런데, 크로스를 막기 위해서 바싹 붙어야 할 영건이는 계속 나에게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달려들질 않았다.

‘음, 크로스를 날리려고 하는데도 계속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네?’

보통 크로스를 막기 위해서는 이것보단 더 바싹 달라붙어야 하는게 정석일 텐데, 그냥 평범하게 수비하는 것처럼 떨어져 있네.

‘이러면 언제 뺏는다는 거지? 뭐, 일단 연습이니까 철저하게 원래 하던 대로 가 보자, 이쯤이면 슬슬 올려야 할 위치기도 하고.’

그리고, 크로스를 올리려는 그 순간-

“자, 빼앗겼지? 왜 그런지 알겠어?”

아아, 한 번 당해보니까 확실하게 알겠다.

“크로스 올리려는 바로 그 순간 달려드는구만?”

“그러췌! 크로스를 올릴 때, 올리는 선수는 골대 쪽을 볼 수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레 볼 컨트롤이 느슨해지고, 이 쪽으로 몸을 돌리게 되거든, 그 때를 노리는 거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기술이다.

말로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실전에선 뒤쳐지지 않고 따라붙으면서 상대방이 언제 몸을 돌리려 하는지, 발 움직임 같은 걸 동시에 파악하면서, 돌파 옵션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어야 하니까.

“상대방을 잘 관찰해둬야겠네.”

“그래, 결국 수비는 관찰, 그리고 타이밍이지.”

결국, 영건이가 말하는 것은 이거였다.

-타이밍, 타이밍이 무엇보다 중요해, 1대 1 상황에서 상대방의 크로스를 막는 건 상대방이 크로스를 올리기 직전에 몸을 돌릴 때, 그 때를 노려.

.

.

.

그러니까- 작년에 보여준 모습과, 지금 몇 번 드리블친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은 다시 크로스다.

그러면 몸을 돌리려는 스텝을 밟는 타이밍을 노려서- 하나, 둘, 지금!

[아! 이런, 김태환 선수, 볼을 빼앗겼습니다!]

[라인 아웃도 아닙니다! 인플레이 상황! 이준혁 선수, 바로 앞으로 공을 날려줍니다!]

그리고, 그 때 그걸 듣고 알아챈 게 있었다.

기본적으로 수비를 할 때는, 한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넘어갈 때의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공을 노릴 때, 뭔가 다른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려는 기세를 보이게 되면. 예를 들어 드리블에서 크로스를 올리려고 할 때, 공을 뺏은 직후에 드리블을 칠려고 할 때.

그런 때야말로 ‘진짜로’ 적극적인 수비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게 된 거였다.

그걸 깨닫자. 나는 크로스 수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수비 면에서 훨씬 업그레이드 될 수가 있었다.

단단히 달라붙어 볼을 자연스레 차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상대방이 그 사이에 실수를 하길 바라는 수동적인 수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이준혁, 태클 시도! 성공입니다!]

[저 친구, 오늘따라 볼을 빼앗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군요! 상주 입장에선 든든하겠어요!]

적극적으로 나아가, 상대방의 볼을 ‘빼앗고’ 공격권이 빠르게 우리 팀의 차례로 넘어오게 하는 공격적인 수비를 할 수 있게 된 거였다.

[아! 상주 상무, 역습! 역습 들어갑니다!]

[이야, 이거 제대로 된 역습입니다! 지금 오른쪽 측면, 텅텅 비었죠!]

그리고 공격 쪽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자네는 패스를 줄 때, 공격수들이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경향이 있더군?

-예, 그렇습니다.

공격수가 편한 자세로 공을 찰 수 있게 해야 골을 더 잘 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것도 좋지, 하지만 그것만 이용하면 자네의 패스는 반쪽짜리야.

교수님은 관점을 한번 달리해 보라고 하셨다.

-자네가 1년간 수비수를 하면서 깨달은 게 있지 않았나? 특히나 막기 힘든 패스나, 크로스, 드리블 같은 게 뭔지 말일세.

수비수들의 등 뒤, 빈 공간, 내가 전담하게 된 위치에 아주 살짝 걸칠까 말까한 애매한 위치.

-그런 곳, 수비수들이 아주 싫어할만한 공간으로 패스나 크로스를 줘 보게.

-그럼 가뜩이나 낮은 크로스 실패율이 더 높아지지 않습니까?

-맞네, 하지만 ‘치명적인’ 기회는 더 만들 수 있지.

-······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난 이번에 오기 전, 교수님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선수로서도 K리그 올타임 베스트 11에 드실 정도의 레프트백이셨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분이 하시는 말이니만큼, 절대 헛된 이야기일 리는 없었고. 그 변화를 이번 시범경기들에서 시도해 본 결과

-야! 준혁아, 너 옛날엔 패스 훨씬 좋았는데, 요즘 왜 이렇게 안 좋아진 거냐? 좀 잘 좀 줘봐!

공격수들한텐 이런 말을 듣는 빈도가 늘어나긴 했지만, 코칭스태프들의 평가는.

-이준혁이, 너 패스 정말 좋아졌다, 계속 그렇게 해라.

쭉쭉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그리고, 자고로 선수에 대한 평가는, 코칭스태프들이 훨씬 정확한 법.

그래서, 나는 이번 시즌을 기준으로 패스 스타일을 바꾸어 봤다. 선수를 보고 크로스를 주기보단, 공간을 보고 크로스와 패스를 주기 시작한 거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주 훌륭했다.

[아, 울산, 오늘 공격이 영 안 풀리네요,]

[그렇습니다. 울산 입장에선 이형 선수가 있는 왼쪽은 뚫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오른쪽에 투자를 했는데, 지금 그 오른쪽도 다 막히고, 오히려 위험한 장면이 몇 번 나오면서 다들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상대방 수비수들이, 조금씩 위축되기 시작한 거였다.

‘이야, 안 봐도 훤하다 훤해, 행동에서 나오네. 1승 제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니깐 조금 놀랍지?’

하긴 그럴 꺼다. 당연히 내가 이길 거라고 생각한 상대한테, 예상치 못하게 한 방 맞으면 어질어질한 법이지.

‘그럼, 난 이 어질어질한 틈, 잘 파고 들어주마’

너희가 내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크로스를 파고들 생각을 했던 것처럼.

[이준혁, 파고듭니다. 임협상에게 좋은 패스!]

[임협상! 임협상! 파울! 파울! 페널티킥! 페널티킥입니다! 울산 현태의 치명적인 실수!]

-짝!

“예에-! 선배님, 나이습니다. 어디 다친 덴 없으시죠?”

“당연하지, 저 친구들이 급하게 손 쓰다가 파울난 거니까.”

“한 골 넣고, 편하게 갑시다. 편하게!”

.

.

.

-삐이익! 삑! 삐이익-!

***

<2016 K리그 클래식 1Round>

[전반 종료]

상주 상무 1 : 0 울산 현태

[골]

상주 상무 : 임협상 46

울산 현태 : (없음)

***

전반이 끝나고.

[아, 지금까지 모습으로만 보면, 상주 상무, 전혀 강등권의 모습이 아닙니다. 챌린지 시절의 상주 상무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 되었군요, 너무나도 훌륭합니다.]

해설자는 상주 상무를 극찬하기 시작했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요?]

[지난 시즌, 상주 상무는 공격의 팀이었습니다. K리그 챌린지에서 총 80득점을 퍼부우며 득점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죠.]

득점 2위인 대구의 득점이 67점이었으니, 무려 13득점 차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2위인 대구와 득실점이 고작 6점 차이였습니다.]

[아, 그렇다는 건?]

[예, 상주의 수비력은, K리그 챌린지에서도 평균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그랬다. 작년 K리그 챌린지의 상주 상무의 실점 순위는 54실점으로 6위였으니까. 그리고 실점 순위 7, 8위가 수원과 강원의 55실점이라는 것까지 생각하면.

상주 상무의 수비는, K리그 클래식 기준으로는 폐급이었다. 전문가들이 괜히 강등 1순위로 꼽은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수비진 멤버가 작년과 달라지지도 않았는데 이러한 안정된 수비라니, 놀랍습니다. 정말이지 놀라워요.]

[그렇군요, 그럼 울산은 현재 상황이 어떻다고 봐야 할까요?]

그 질문에, 해설진은 잠깐 고민하더니.

[측면이 막혀버린 이상, 중앙에서 해결을 봐야겠죠. 울산은 이정현 선수와 서정진 선수의 활약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후반전에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삐이익!

[아, 이정현 선수, 파울입니다.]

[아, 이정현 선수, 거칠게 플레이하면서 전방에서 공간을 어느 정도 만들어주고 있긴 하지만, 그게 답니다. 그 외의 영향력은 전혀 발휘해주질 못하고 있네요.]

‘정현아, 우리가 지난 1년간 널 얼마나 봐 왔는데 쉽게 당해주겠냐?’

느네가 내 약점을 파악해서 파고들 생각을 했다면, 너희 역시 분석당할 거라는 생각을 했어야지. 우리한테 정현이 원톱이라니.

우리는 정현이가 어떤 플레이를 좋아하는지. 어떤 플레이가 편안한지, 다 알고 있다고. 코칭스태프는 2년간 봐 왔고. 그런데 그렇게 쉽게 생각하다니.

‘뭐 정현이가 연계플레이만 잘 하는 게 아니라 김신욱 선수같이 골도 잘 넣고 발밑도 좋은 완전체에 가까운 선수라면 또 모르겠지만’

하지만 정현이는 아직은 그 정도까진 아니다. 2선과의 연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냥 지워버릴 수도 있는 선수다.

그래서 우리가 4-1-4-1을 꺼내든 거였다. 김환성 선배가 서정진, 저 친구를 마크하고, 괴롭힌다면, 정현이는 고립될 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그리고 그건 정확했다.

[아, 울산, 너무나도 무기력해 보입니다. 측면도, 중앙도, 모조리 틀어막혔어요.]

“해성아! 왼쪽으로! 왼쪽으로! 그렇지! 나이스으-!”

“얌마! 이준혁! 후배가 반말 까?”

“급해서 그랬죠! 어쨌든 막았잖아요!”

“···어휴, 그래, 막았으니 봐준다.”

[이게 맞나요? 저는 지금 두 팀이 유니폼을 바꿔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올해 K리그의 다크호스가 될 거라고 예상되었던 울산이, 강등이 유력해 보이던 상주 상무에게 이렇게까지 꽁꽁 틀어막히다뇨!]

- 전-진하라! 상-주상무! 워↗어어 워-어어어- 상-주상무-의 승리 위해↘ 워 오오 워 오오오↘

아, 응원가 타이밍 좋고.

“자! 자! 이제 굳히기 갑시다! 굳히기 가요! 한 골 더 넣고 ! 개막전 유일한 업셋 가봅시다! 온규야, 가자!”

“···그래. 근데 텐션은 좀 낮추자.”

***

<2016 K리그 클래식 1Round>

[경기 종료]

상주 상무 2 : 0 울산 현태

[골]

상주 상무 : 임협상 46, 김도협 53

울산 현태 : (없음)

***

-오늘 개막전 경기를 승리로 이끈 상주 상무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짝짝-!

이야, 짜릿하구만. 5천 명한테서 받는 박수라니. 기분 째지네.

“수고했다.”

“아,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니다, 전지훈련 때 연습경기로 반쯤 확신하긴 했지만, 정말로 12월 사이에 또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올라섰더구나.”

그 말에, 나는 별 말 없이 싱긋 웃었고, 감독님도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즌이 끝나기 직전, 김 수석이 그렇게 말했다지? 한 달 후 달라진 모습을 보여달라고.”

“예, 그랬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솔직히 큰 기대까진 안 했다. 12월은 선수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휴식의 기회니까.”

감독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의 시즌은 8개월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11개월에 가깝다. 1월달 초부터 전지훈련이 있으니, 사실상 12월 한 달을 제외하고는 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이 12월엔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유일하게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때가 그 때 딱 한 달 뿐이기 때문이다. 겨울방학만 있는 학생이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너는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구나.”

“······”

“수고했다. 네가 흘린 땀방울은, 오늘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그 순간, 나는 5천명에게 박수를 받는 순간과 비슷한 감정을 받았다. 그 말은 나의 한 달이, 그 무엇보다도 값어치 있었다는 소리었으니까.

“오늘이 네 첫 K리그 데뷔전이지?”

“예.”

“어땠나?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자네의 꿈이 이루어진 셈인데.”

“······”

그 질문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꿈처럼 여겼던 K리그 데뷔에 대한 감상을, 뭐라고 표현해도 모든 감정을 담기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래서, 나는 의미라도 확실하게 전달되도록 아주 짧게 한 마디를 답했다.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

그리고-

“더 잘해서, 이 꿈 속에서 계속 뛰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감독님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좋은 대답이다. 그럼 이제 스파게티 먹으러 가보도록.”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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