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s come true (1)
2016년 03월 13일, 일요일, 상주시민운동장.
[예!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K리그 개막전, 그 마지막 경기입니다. 어느덧 2016 K리그 클래식 1라운드도, 마지막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방금 전 제주와 광양에서 열린 경기가 끝나면서, 이제 이 경기만 남게 되었죠. 상주와 울산, 울산과 상주와의 경기!]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이 두 팀이었지만, 이번 시즌 만큼은 생각보다 매우 연관이 있는 두 팀이 겨루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이제는 예비역 병장이 된 이정현 선수가 전 동료들에게 선전포고를 했죠? 상주 선수들의 휴가와 외박을 잘라주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작년에 가장 든든했던 스트라이커가, 오늘 상주 상무의 골문을 두들기러 왔습니다!]
바로, 작년 상주 상무를 책임지던 주전 공격수, 군데렐라 이정현이 부산에서 울산으로 이번 시즌 임대 이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걸 들은 임협상 선수는 미디어데이에서 우리는 전북과 서울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가볍게 이기고 휴가를 챙겨가겠다고 했었죠!]
[이야- 휴가를 지키려는 군인의 패기는 역시 무섭군요!]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이 된 상황.
사실,매년 스쿼드가 물갈이되는 상주 상무에서는 드문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개막전부터 이렇게
[과연, 오늘 개막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잠시 후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는 SPOTV, 상주시민운동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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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현아, 오래간만이다? 민간인 냄새가 폴폴 나네?”
“그르게 말이야, 우리들 휴가랑 외박 자르겠다고 했다며?”
“어허, 현역들은 저리 가십쇼, 짬내 납니다-켁.”
“와 이 예비군 새끼가, 애들아! 조져!”
물론 후배 놈이 조금 건방진 소리를 하는 바람에 살짝 소란이 있긴 했지만.
“야야, 적당히 해줘, 그래도 이제 우리 선수 아니고 저쪽 선순데”
그래도 이제 더 이상 직속 후배처럼 부려먹긴 힘드니 적당히 만져주는 걸로 끝내줬다.
“와- 주장 지금 전역하면 울산 선수라고 쟤 편드는 거 맞죠?”
“맞아요, 우리 휴가를 빼앗겠다고 선언한 분충을 그냥 보내주다뇨, 용납 못합니다. 헤드락 두어번은 더 걸어줘야죠.”
···물론 이런 반대파도 나타났지만, 우리 주장님이 “꼬우면 니가 선배하든가” 라는 말씀을 하시자 다들 웃으면서 헤드락을 풀었다.
“하여튼 태환이 넌 말이야, 올해 주장으로 선임됐으면 우리 휴가 줄여주겠다는 소리라던가 하는 소리같은 거 할 때 니가 나서야지. 왜 후배한테 맡겨? 그라운드 안에서처럼 개매너일 필요는 없지만, 이럴 땐 좀 나서라.”
“···넵, 선배님.”
음 근데 선배님, 제가 볼 땐 쟤 내년에 군경팀 들어와야 해서 사리는 것 같은데요,
‘나랑 나이 똑같은데 아직도 군대 해결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여기에서 심하게 나설 수가 없는 거 아닐까. 여기에서 평소처럼 거칠게 나왔다가 내년 후임으로 들어온다?
‘···어휴, 상상만 했는데도 무섭네.’
뭐, 나한텐 좋은 소식이네. 내 포지션 맞상대가 위축된다는 소리니.
그렇게 소란이 잦아들자, 이형 선배는 정현이와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하여튼 반갑다 정현아, 부산 강등당해서 걱정했더니, 바로 탈출하네.”
“에이 탈출은요, 임대에요.”
“그래도 탈출은 탈출이잖아. 게다가 김신욱 선수 나가고 울산 감독이 너 엄청 원했다며?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 사실상 확정이네, 잘됐다.”
자고로 감독픽이란 말만 붙어도 주전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데, 주전 스트라이커까지 나간 상황에 감독픽이니, 그야말로 주전 확정이다.
“내가 올해 전역하면,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같이 뛰자고.”
“옙! 기대하겠습니다!”
···그런데 선배님?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저희 주장이신데, 울산 친구들하고 그렇게 많이 어울리는 건 조금 그렇지 않나요?
그리고 그건 저쪽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저 쪽 주장이 나섰다.
“···정현아 가자, 시간 됐다.”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아, 시간가는 줄 몰랐네요, 반가워서 저도 모르게 막 떠들다 보니. 그럼 선배님, 나중에 뵙겠습니다!”
“그래, 잘 가라-! 태환이 너도!”
그렇게 인사하고 우리 라커룸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나를 포함한 몇몇은 볼을 부풀렸다.
“형님, 그래도 그렇지 너무 친하게 구는 거 아니에요?”
“견제 좀 한 거야, 이 녀석들아.”
“네?”
그건 또 뭔 소리야.
“저 놈 라이트백이잖아. 나도 라이트백이고”
“그게 무슨 소- 아.”
-내가 올해 전역하면,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같이 뛰자고.
와 시발. 다시 생각해 보니 소름 돋는다.
나랑 동갑인 저 울산의 주장 녀석은, 윙어로 뛰다가 작년부터 울산의 라이트백에 정착하면서 주전을 먹기 시작한 놈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주장인 이형 선배도 라이트백이다.
이게 뭔 소리냐고?
‘저 형님, 방금 전역하면 니 자리 빼앗을 거라고 넌저시 암시하신 거잖아.’
국가대표쯤 되면 저런 은근히 돌려 말하는 재주까지 익혀야 하는 거냐? 대박이다. 이쯤이면 여자어 수준 아냐?
그리고, 또 놀란 점도 있었는데.
“형님도 돌아가시고 주전 경쟁 하실 걱정 하시는 거에요?”
“당연하지, 임마.”
···세상에, 국대급 선수도 저런 걱정을 하는구나.
“아니 형님 실력이 누가 봐도 더 나은데 뭔 그런 걱정을 해요.”
“실력이야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은 있지, 근데 주장 완장까지 달았잖아.”
아.
“지금 부임해 있는 감독님의 플랜에선 내가 제외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거야.”
그렇구나. 하긴 애초에 주장을 줄 때, 백업 선수를 주장으로 뽑지는 않지.
물론 그게 팀에서 몇년동안 있던 잔뼈 굵은 성골이면 다르겠지만, 저 친구는 작년에야 울산에 간 친구니까. 주전으로 쓸 생각이 없다면 굳이 주장 완장까지 챙겨줄 필요는 없다.
그렇다는 건.
‘···국대 풀백이 백업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소리인 건데.’
와, 이건 진짜 예상 못했다. 2014 월드컵 주전이었던 선수가 이렇게 빨리 위기를 맞이할 수도 있는거야? 딱히 뭐 부상이나 그런 것도 없었는데?
‘···진짜 프로라는 게 한치 앞도 알 수 없구나.’
하아- 진짜, 마경이다. 마경. K리그. 선수 조합 문제같은것도 아닌데 이렇게 국대가 주전에서 자리 빼앗길 수도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형 선배가 살짝 웃었다.
“얌마,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솔직히 내가 백업으로 밀려나면 100% 다른 K리그 구단에서 오퍼 올껄. 올 수밖에 없어. 트레이드든, 이적이든.”
“······”
“물론 나도 익숙해진 울산에서 굳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긴 한데, 그래도 아예 출전 못 하고 사는 최악의 상황까진 안 와.”
그래도, 팀 옮기고 새 생활 적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그러니까. 너도 네 걱정이나 해라.”
“예?”
“너야말로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때잖아. FA니까.”
“······”
그래, 지금 나는 FA다. 이적료 한 푼 안들고 모든 팀들과 자유롭게 접촉할 수 있는 선수다. 이 소리는, 모든 팀들이 날 툭툭 건드려 본다는 거다.
‘당장 전지훈련 때도 나 건드려보는 구단들 좀 있었으니.’
지금은 계약할 마음 없다면서 다 거절했지만.
“올해 너 잘하기만 하면 팀 거의 골라갈 수 있다? 게다가 니 나이도 딱 전성기 나이고.”
“에이 설마요. 그래도 제가 올해 엄청 잘해도 1년 반짝인데, 골라가는 정도까진 못 되지 않을까요? 게다가 풀백인데.”
그냥 대충 아무 팀이든 돈 많이주는 곳으로 가야지. 뭐 내가 골라.
“야, 그래도 순수 왼발 풀백은 꽤 귀해, 당장 니가 작년 수비 좀 모자라도 포진이랑 출전시간 나눠가질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 덕분이잖아.”
“······”
아니 제가 실력 모자랐던 건 팩트긴 한데···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좀 섭섭합니다 형님···
“그러니까 오늘 저 친구 탈탈 털어서 니 몸값도 올리고, 나 울산에 계속 있게 해 달라고, 오케이?”
“···예!”
-*-*-*-
-사랑한다↗ 상↗주↘ 사랑한다 상↗주↘ 내 가슴속에 - 영원히남을- 사랑이되어↗라~
-삐이익!
[예, 상주시민운동장에 모인 5천여 관중의 뜨거운 열기와 함께, 전반전 시작되었습니다!]
***
<2016 K리그 클래식 1Round>
[경기 시작]
상주 상무 0 : 0 울산 현태
***
[예, 바로 강하게 압박하는 울산! 공을 빼앗습니다! 우측으로 패스!]
[김인성! 달려듭니다!]
[김인성! 빠릅니다! 하지만-! 이준혁, 공을 빼앗습니다!]
‘미안하지만, 스피드로는 안 되지, 안 돼.’
너의 가장 큰 장점이 네가 어릴 적에 유럽에서도 탐냈을 정도로 빠른 스피드라는 건 알지만, 나도 스피드는 만만치는 않다고.
[저 친구, 지난 FA컵 결승전에서 차두리에게도 스피드는 밀리지 않았던 선수거든요! 김인성 선수가 국내에서 손꼽힐 정도로 빠르다고는 해도, 저 친구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게 전반전 동안 몇 번 막다 보니,
[어, 김태환 선수, 크로스-!]
[아, 하지만 조금 부정확했네요, 살짝 멀리 날아가버립니다!]
이 친구들이 조금 이상하게 굴기 시작했다.
‘얼씨구? 이 놈들 봐라? 이건 또 뭐야? 방금 전에는 저놈들 역습 상황이라 중앙 돌파 여지가 있어보였는데, 그냥 크로스를 날린다고?’
보통, 윙어가 중앙 돌파를 할 수 있어 보이면 일반적으론 중앙 돌파를 한다. 그게 더 훨씬 여러 방법으로 공격 전개하기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저 친구들은 방금은 중앙 돌파를 포기할 상황이 아닌데도 윙어에게 중앙 돌파를 안 맡기고, 전혀 망설임 없이 측면을 파고든 후 크로스를 시도했다.
“···해성이 형님, 방금 이거, 저놈들 의도한 걸까요?”
“글쎄, 아직 확신하기는 힘들어 보이거든? 좀 지켜보자.”
“예.”
그러나 몇분이 지나지 않아, 확신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오늘따라 김태환 선수에게 공을 몰아주는군요!]
[첫 시즌, 개막전이니만큼 팀의 새로운 주장 기를 살려주겠다는 걸까요? 김태환 크로스-! 아, 아깝게 빗나갑니다! 하지만 좋은 시도였어요!]
이 새끼들, 암만 생각해도 날 크로스 구멍으로 생각하고 노리고 있었다.
“선배님, 이쯤 되면 저 놈들 암만 봐도 저 노리는 거 맞죠?”
“···그래,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집요한 걸 보면 확실하네.”
하, 하하, 이거 참 대단하네,
스피드가 막힌다고 생각하자마자 내 약점이라고 알려져 있는 걸 바로 파고들 줄이야.
‘그래, 이게 K리그구나.’
내가 약점 보인 게 그 한 경기였고, 결국 이겼는데도.
그 한 경기를 분석해서, 보여준 약점을 바로 물어뜯으려 드는 세계.
‘대단하다. 대단해. 이게 프로지.’
당하는 사람이 나인데도 박수를 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말이야.
“그럼 선배님, 조금 안쪽으로 들어오겠습니다.”
“오케이. 환성 선배님! 내려오세요! 내려와!”
너희들도 착각한 게 하나 있다. 나도, 프로다. 이걸로 밥 먹고 살고, 이것만 연구하는 새끼라고.
그런데 설마 작년처럼 대책 없이 크로스에 나가리되도록 놔뒀겠냐?
‘아, 설마 제대로 막을 대책을 마련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뭐 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볼만 잡으면 질질 끈다던가, 몸빵 좋은데 몸싸움 할 줄 모르는 축구선수같이 문제점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도 그 문제를 은퇴할 때까지 평생 못 고치는 선수들도 수두룩하니까. 나도 그런 류중 하나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
‘근데 그럼 개막전에 내가 아니라 포진 선배님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것들아. 아니면 제명이가 나오거나 했겠지?’
개막전에 내가 선발로 나왔다는 게 뭔 뜻인지를 모르는 거냐, 아니면 그냥 생각 안하고 넘어간 거냐?
내가 시발, 그렇게 크게 구멍이 드러났는데, 그걸 보완할 생각을 전혀 안 했을 것 같아?
[김태환! 다시 한 번 오버래핑!]
[또 크로스 가나요? 가나요?]
내가 발전했다는 것을 오늘, 똑똑히 보여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