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화 (71/167)

새로운 해가, 새로운 시즌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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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거 야구 명언이다.”

“···뭐 뜻만 통하면 됐죠!”

새로운 해, 새로운 시즌 (2)

<2016 K리그, 프리뷰>

이번 주, K리그 클래식이 3연패에 도전하는 전북과 그를 막을 유일한 대항마로 불리는 서울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8개월 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번 시즌의 전문가들의 예측을 분류하자면 '2강-6중-4약'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일단 지난 시즌 득점왕인 김신욱을 영입하며 완전체가 되어가고 있는 전북과, K리그의 영원한 득점왕 데얀을 복귀시킨 서울이 2강 구도를 형성했고.

6중은 수원, 성남, 포항, 울산, 제주, 전남이 분류되었고, 이어 올 시즌 1부로 올라온 상주와 서울E, 거기에 인천과 광주가 '4약'으로 분류됐다.

다만 이 안에서도 순위를 나누자면 K리그에만 참가하기에 AFC 챔피언스리그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울산을 대부분 상위 스플릿 유력 진출팀이자 다크호스로 분류하고 있고.

가장 유력한 강등 후보로는 상주 상무를 꼽는다, 비록 상주 상무의 전력이 나쁘지는 않지만 클래식 기준으로 “아주 강한 전력”까진 아니고, 9월의 전역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2016 K리그가 이 예상대로 흘러갈지, 어떻게 변화될지, 알아보기 위해서 팬 분들이 이번 주말 개막전에 경기장을 한번 찾길 바란다.

-OO 스포츠

***

“···라는데, 넌 어떻데 생각하냐?”

“말해 뭐해, 짜증나지.”

···솔직히 뭐 기사의 내용 자체야 틀린 말까지야 아니다. 우리가 9월에 전역하니까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우리가 클래식 기준으로는 ‘아주 강한’ 전력은 아니라는 것도 맞긴 하다.

하지만.

“우리 팀 약하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있나.”

우리 팀 약하다고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데 기분 좋을 수가 있겠냐고.

게다가 솔직히, 우리 팀이 그걸 감안해도 저렇게 무시당할 팀 정도까진 아니었다. 애초에 2014 K리그 베스트 11중 2명이 있고, 올해 입대하는 선배들이랑 후배들도 모두 한가닥 하는 친구들인데다가.

‘우리 연습경기 성적도 무패였는데 말이지.’

어디 어중이떠중이들이랑만 한 것도 아니고, 상화이 선화도 이겼다. 인터밀란에서 활약하던 프레디 구아린이 있고, 제라드와 함께 아주 프리미어리그 역사에 남을 유명한 장면을 남긴 전(前) 첼시 소속 뎀바 바가 있는 그 팀을 이겼다고.

그런데도 솔직히, 다들 우리를 이미 강등 확정된 팀처럼 생각하는게 너무 짜증났다. 솔직히 우리보다야 광주나 이브랜드가 훨씬 더 유력한 강등 후본데.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 뻔했다.

‘만만한게 군경팀이구만. 젠장.’

팬 수 적으니까 저렇게 강등후보로 언급해도 물어뜯길 염려도 적다고 생각해서겠지.

“야, 그래도 웃어라, 웃어, 우리 인터넷에 올릴 사진 찍는다잖냐. 좋은 생각이나 하고 있어. 스마일.”

“······”

에휴, 그래, 더 말해서 뭣하겠냐, 이런 문제는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결국 시즌 시작하면 저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근데 우리 소개를 이런 식으로 찍어도 되는 거야? “

“몰라. 그건 구단이 알아서 할 일이지.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잖아?”

“······”

아니 그래도 유니폼 입고 A4용지에다가 이름 써서 들고 있는 게 선수단 소개 사진인 건 좀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니냐?

‘유니폼이 작년보다 훨씬 예뻐져서 좋아했더니만, 왜 이런 건 허접하냐.’

···그래도 유니폼이라도 예뻐진 게 위안인가?

“근데 생각해 보니 넌 등번호 왜 그래?”

“응?”

“아니, 너 좀 더 앞번호 달아도 되잖아.”

아, 그거?

“뭐, 난 솔직히 앞쪽 등번호 달든 말든 크게 신경 안 쓰거든.”

보통 축구에서 선수가 앞 번호를 달고 있으면, 그러니까 1~11의 번호가 붙으면 주전을 의미하고, 그 뒤로 숫자가 많은 선수일수록 후보라는 뜻이긴 하다. 그래서 은근 뒷 번호 주면 불만 가지는 예민한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난 애초에 처음 축구할때부터 좀 뒤늦게 축구부에 들어가느라 자연스레 뒤쪽 번호 달고 축구를 시작하다보니 그게 익숙해져서 뒷번호 달아도 별로 신경도 안 썼다.

“아니 근데, 그냥 아무거나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니가 콕 찝어서 그대로 23번 달라고 요청한 거잖아. 뭔 의미 있어?”

의미? 당연히 있지.

“내가 은퇴하기 직전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입고 부활한 게 이 번호잖아.”

그래, 1년 전, 나는 은퇴의 기로였지만, 이 번호를 달고 부활했다. 그래서 웬만하면 그냥 이 번호 그대로 가고 싶은 것도 있고.

“그리고 나름 이거 의미도 있어, 풀백이 보통 2번이랑 3번 달기도 하고, 저 숫자 합하면 5, 미드필더 번호잖아. 나한테 딱 맞는 번호 아냐?”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감독님한테 올해도 23번 그대로 달라고 요청했던 거다. 게다가 23번을 다는 선수가 주전인 경우도 생각보단 흔하다.

조금 멀게는 리버풀의 제이미 캐러거가 그랬고, 가깝게는 현재 토트넘에서 뛰고 있는 에릭센도 23번이니까.

“하, 난 너 이해 못하겠다. 그래도 나 같으면 되도록 앞 번호 요청했을 텐데.”

“그래서 너는 12번 달았잖아.”

12번, 주전과 후보의 경계 사이에 있는, 완벽한 주전급이 입는 등번호라기엔 조금 모자랄 수도 있겠지만 후보 중에선 1위라는 뜻이기도 한 번호.

이 번호를 감독님이 녀석에게 준 건 올해 태준이에게 최소 윙어 3옵션 자리가 확고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작년에 쟤가 32번이었으니. 진짜 출세한 거지.’

이 정도 번호이동이면 작년보다 기회 엄청 더 받을거다.

-다음 분 와주세요!

“아, 우리 차례 왔나 보네. 빨리 찍자.”

“오케이, 찍고 바로 감독님이 오라고 했었나?”

“응, 부대에서 시즌 전, 출정식같은 거 한다고 하네.”

음, 불안한데, 수면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옛날에 여기 처음 왔을 때도 졸려서 죽을 뻔했는데.’

도대체 뭔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할 쓸데없는 말이 그렇게 많은 거냐는 거다.

‘···커피 좀 마셔두고 가야하나?’

-*-*-*-

“그럼 끝으로 마지막 한 마디만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커피 마시고 오길 잘했다. 아메리카노는 신이야.

‘역시 이놈의 군대는 기대를 저버리질 않는구만,’

끝으로, 마지막, 한 마디만, 다음엔 뭐 더 붙일꺼냐?

“필사즉생, 행생즉사라고 합니다. 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국군체육부대의 일원으로서 매 경기 헤이해지지 말고···”

음, 저 필사즉생이란 단어 참 좋아하네 저 놈들, 슬슬 지겹다. 이순신 장군님, 왜 이런 못된 사자성어를 만들어놓으신겁니까.

그 순간.

-쿠우울-크우-

“······”

“······”

내 옆에 앉은 태준이의 우렁차게 코 고는 소리가 울려퍼지면서, 잠깐 모두가 정적에 빠졌다.

“야, 야, 일어나 임마.”

“어, 엉, 어, 아, 깜빡 졸았네. 미안.”

그러니까 내가 말할 때 같이 커피 마시고 오지 그랬냐.

그래도 덕분에 좋은 점도 있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순신 장군님처럼 필사즉생의 각오로 싸워나가다 보면 K리그 잔류라는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이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짝짝짝짝짝-!

태준이 덕분에 옛날과 비교하면 군부대 쪽 연설이 정말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짧게 끝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부대장이 내려가면서 이 쪽을 째려보는 것이 느껴지긴 했지만.

“으험- 졸리다, 졸려, 좀 더 빨리는 못 끝냈나?”

“······”

이 놈은 진짜 마이페이슨지 신경도 안 쓰고 하품을 쩝쩝해대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반년 뒤면 볼 일 없는 사람이라는 건가, 상꺽 티 팍팍내네.

“그럼 마지막으로 박감독님의 연사가 있겠습니다.”

-툭툭.

“자네들이 졸린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선수단이 이렇게 모인 김에 한 마디 정도는 해야할 것 같아서 아주 짧게는 못 할 것 같고, 한 5분만 참아주게. 그 정도는 안 졸고 버텨줄 수 있엤지?”

“예!”

그 말을 하고

“작년, 우리는 성공했다. 정말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지.”

그 말에, 작년의 시간을 함께했던 선수들은 모두 웃음을 지었지만.

“하지만, 자네들도 올해 언론 예상들을 봤겠지?”

곧 수그러들었다.

“잘해 봤자 10위, 강등 플레이오프를 피하는 게 고작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

그 말과 함께, 감독님은 약간 쓴웃음을 지으셨다.

“뭐, 사실 언론들은 그렇게 느낄 만하다. 압도적으로 우승해야 할 챌린지에서 우리는 마지막 라운드에야 겨우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간신히 1등을 차지했으니까. 그들이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랬다. 상주 상무는 작년 압도적인 1등으로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에 신경쓸 필요 없다. 너희가 신경써야 할 것은 오직 나, 김 코치, 등등의 우리 코칭스태프들 뿐이다. 외부의 시선 평가에 흔들리거나 할 필요는 없다.”

그 말을 하고 난 직후, 감독님은 연단에서 마이크를 빼고 뚜벅-뚜벅- 연단에서 걸어나와, 우리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결국 언론이, 밖에 있는 친구들이 아무리 우리를 물고 뜯는다고 해도, 자네들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건 우리고, 우리들에게 좋다고 평가받으면 그걸로 되는 거다.”

“······”

“그리고, 이 팀을 책임지는 감독으로서 말하건데- 나는 확신한다. 이번 시즌의 상주 상무는, 내가 이제까지 맡아 온 팀들 중에서 가장 강하다. 장담하컨데, 그러하다.”

-꽝!

“그러니 나는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다. 올해 우리의 목표는 - 시즌이 끝났을 때 우리의 위에 단 두팀만을 허락하는 것이다.”

“······!”

그 말에, 나를 포함한 모든 선수단이 놀랐다.

‘3위? 3위가 목표라고?’

그 말은, 우승 후보인 전북, 서울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발 밑에 두겠다는 말이 아니던가.

‘솔직히 상위 스플릿 진출인 6위를 노리는것도 정말 벅찬 목표인데···’

그 정도만 되어도 모두가 이번 시즌을 대성공이라고 할 거다.

“다들 의심하는군, 왜 그런 거지? 감독의 말을 못 믿는 건가?”

“······”

솔직히, 그랬다. 이건 이번 시즌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나도 믿기 힘들-

“다들 작년의 FA컵을 기억할 것이다. 그 때, 모두 우리가 질 것이라고 예측했지. 하지만 결과는 어땠지?”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작은 혼잣말로 대답했다.

‘우승이었···죠.’

그래, 우승이었다.

모두가 우리의 승리를 믿지 않았지만.

결과는 우리의 승리였고, 우리는 우승했다.

“이 팀을 몇년간 책임져오고, 너희들을 하루종일 쳐다보는 감독으로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희는 내가 맡아온 그 어떤 팀보다도 강하다.”

“······”

“자신들이 한 말에 책임을 지지않는 언론에 휩쓸릴 필요 없다. 이 팀을 책임지고 맡는 내가, 우리가 하는 평가를 믿어라. 너희는 강하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보단, 새로운 목표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누가 뭐래도 우리의 감독님은, K리그에서 부족한 지원으로도 4위까지 올라가 본 경험이 있는 분이셨고.

대한민국의 전설들을 눈앞에서 봐 오신 분이었으니까.

그러니- 믿고 싶었다.

그리고- 다들 믿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히딩크 감독님께서 옛날 2002년에 말씀하신 말이 있었지.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

“우리가 세계를 놀라게 하진 못할 테니 그 말을 그대로 쓰진 못하겠지만, 지금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군.”

“다들, 이 K리그를 놀라게 할 준비는 되었나?”

그 말에, 모두들 침을 삼키며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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