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화 (69/167)

6년 전의 절친 (2)

2009년, 12월.

“너, 일본으로 간다고?”

“응.”

U리그 플레이오프 우승 이후 가게 된 고깃집에서 폭탄선언이 떨어지자, 나를 포함한 모든 친구가 깜짝 놀랐다.

“야, 좀 위험하지 않아?”

“그래, 너라면 지금 드래프트 나가도 무조건 1라운드로 뽑힐 텐데? 왜 굳이?”

물론 옛날엔 우리나라에서 잘하는 선수는 일본으로 가는 게 일상이긴 했다. 당장 황선흥 선수가 그랬고, 최용주 선수가 뛰던 90년대, 00년대 초까지 K리그는 여러모로 J리그에 비해 뒤처져서 우리나라에서 잘하는 선수들은 모두 J리그로 갔다.

하지만. 2002년 이후로 모든 게 달라졌다.

월드컵 4강에 들면서, 우리도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들고 리그에 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시설들을 대거 보수하고, K리그에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수준이 많이 올라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K리그가 J리그를 따라잡지 못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미 결정했어. 그쪽에서 계약금도 꽤 많이 주기로 했고.”

돈이었다. 돈.

드래프트 제도가 부활하게 되면서 신인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연봉이 K리그는 5,000만 원이지만, J리그는 가장 못한 C 계약이 480만 엔, 한화로는 약 6,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엄청나게 큰 장점이 또 하나 있는데.

“그리고 구단 쪽에서 모교 지원금 지원해줄 거래. 그거면 우리 학교 버스도 새로 살 수 있을 거야.”

“···진짜? 으와! 영건이 만세! 만세!”

J리그 구단은 선수를 빼갈 때 대학교에 지원금을 준다는 거다. 보통 7천에서 8천만 원 정도인데 이 정도면 솔직히 축구부로서 정말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때문에 대학 쪽에서 졸업 전에 K리그 진출하겠다고 하면 자퇴서 쓰지 않으면 안 받아주는 데 비해, J리그 진출의 경우 자퇴하지 않고도 프로 계약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졸업장을 따는 게 가능하다는 거다.

그 점들이 겹치면서 지금 대학교에선 J리그의 문을 두드리는 선수가 많았고, 영건이도 그중 하나가 된 것이었다.

.

.

.

뭐, 그리고 결과는 성공이었다.

영건이는 진출 첫해부터 J리그에서 주전을 먹는 데 성공하고, 그래서 국대에도 계속 뽑히고, 지금은 광저우에서 몇십억씩 되는 연봉을 받고 있으니.

다만.

-애들아, 혹시 일본 놀러 와줄 수는 없냐? 나 힘들다···

가끔,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게, J리그로 나가면 우리나라 선수는 용병이고, 외국인 선수다. 실력에 대해 토종 선수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고, 알아서 잘하길 바란다.

갓 20세, 21세의 나이에 혼자 감당하기에는, 조금 힘든 일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게 우리에게 눈에 들어왔을 리가 있나.

3, 4학년을 지나 슬슬 현실을 깨닫고 드래프트 번외지명으로 연봉 1,200만이라도 좋으니 프로 구단에 연습생으로라도 들어가길 원하고, 시청에 들어가서 실업 선수가 되길 바라는 우리에게 저런 고민이란···

이해는 해도 말뿐이고, 절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같이 우승하던 때와는 서로의 생각이 달라지고, 고민이 달라졌으니까.

그나마 가끔 하던 연락도, 한 3년 전에 어머니 일 터지고 나서부턴 하지도 않았고. 그래서였을까.

“···그동안 잘 지냈어?”

“···뭐, 그냥저냥 지냈지. 너는?”

“···나도 잘 지냈다.”

막상 대학교에서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던 것은 잠깐뿐이었고, 막상 제대로 대화를 나눌 자리가 갖춰지자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6년 전, 같은 학교에서 주전 수비수, 주전 미드필더로서 U리그 우승을 했던 그때와는 사는 세계가 너무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나마 한 2년 전의 태성이라면 K리그에서 그럭저럭 뛰고 있었으니까 영건이와 사는 세계가 비슷해서 잘 어울릴 수 있었겠지만.

“···준혁아, 태성이는 어떻게 됐는지 혹시 아냐? 요즘 연락이 안 돼서.”

“···걔 저번에 상무 지원했다가 떨어졌어.”

“······”

어느새 우리 중 가장 영건이의 위치에 가까웠던 태성이조차. 소리소문없이 서서히 잊히는 선수가 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일까.

“······”

“······”

옛날에 앉은 자리에서 기본으로 6인분은 뚝딱하던 우리는, 기껏 고깃집에 와 놓고 한 시간 동안 아직도 3인분도 못 먹고 있었다.

‘후유- 이거, 참. 묘하네.’

사실, 이건 영건이의 잘못은 없다. 그냥, 사는 세계가 달라지면서 고민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면서 생긴 일일 뿐이니까.

그러니까- 이 어색함은.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그때의 추억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 걸로 풀어야겠지.

“야, 영건아. 운동복이랑 축구화는 있지?”

“···있지?”

좋아. 그럼 됐다.

“오랜만에 1대 1이나 해 보자.”

-*-*-*-

“···꼬깔은 어디에서 가져온 거냐? 설마 몰래 가져온-”

“내 꺼야 임마.”

축구선수가 1대 1 미니게임 할 꼬깔도 없을 리가 있냐. 뭐 대규모 훈련도 아니잖아. 꼬깔 네 개 놔서 골인 지점 두 개 만들고, 공격 쪽이 뚫으면 이기고, 수비 쪽이 막으면 이기는 게임인데.

“자, 그럼 시작한다. 10점 내기고, 지는 사람이 커피 사는 거다.”

“···그래.”

처음엔 좀 마지못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긴 시즌 끝나고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몸 굴리는 게 좋을 리가 있나.

그러나.

“야, 시발, 너 팔꿈치 그만 써라. 아주 습관적으로 쓰네.”

“뭔 소리야, 이 정도는 수비수들이면 다들 쓰잖아.”

“······”

“하여튼, 그럼 내가 3대 1이네. 다음은 니가 공격이다?”

점수를 먹혀대자, 열 좀 받았는지

“야, 이건 아니지, 꼬집기 쓰기 있냐? 여기 봐라, 여기, 빨개졌다?”

“···이 정도는 수비수들 사이에선 애교거든?”

“······”

“···어쨌든 이제 2대 3이다.”

저쪽도 리미터를 풀어버렸고, 그 결과.

“아 썅! 야 임마! 팔꿈치 좀 그만 써! 시발 이 새끼 지고 있으니까 반칙 쓰고 있네!”

“아 시발 니는 꼬집고 있잖아 새꺄! 키도 큰 놈이 왜 이렇게 쪼잔해!”

1대 1은 그야말로 개판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태클은 부상할까 봐 서로 안 걸긴 했지만 꼬집기, 할퀴기, 등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사소한 반칙들은 다 걸기 시작한 거였다.

‘시발, 원래 목적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뭔가 스포츠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땀 흘리다가 다시 결합하는 남자의 우정? 같이 공 좀 몰다가 땀 좀 흘리면서 자연스레 서로의 감정이 풀리게 되는 그런 광경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에서인가 이 1대 1은 별의별 비겁한 수 다 써가면서 이기는 데에만 주력하는 게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역시 세상은 만화가 아니구나.

‘젠장, 그렇다고 질 수는 없지.’

그건 내 자존심이 허락 못 한다.

그렇게 살짝 후회하면서도 주체할 수 없는 승부욕에 멈추지 않던 추한 승부는

“야, 내가 이겼다. 커피 니가 사라.”

“···아 존나 비겁한 새끼. 내가 몸 상태 정상이었으면 너 이겼다.”

“응~ 어쩌라고, 꼬우면 시즌 끝나고도 몸 관리 좀 했어야지.”

어쨌든 내가 이겼다. 그래, 이기긴 했다.

‘근데 원래 목적은 이게 아니었는데···’

하아- 이건 시원하게 망해버렸군. 어떻게 해야 어색한 게 풀어질-

“에휴- 그래, 커피 살게, 고맙다. 준혁아.”

응?

“뭐가 고마운 건데?”

“변함이 없어서.”

···그건 또 뭔 소리야?

“일본 때까지만 해도 그래도 다들 바쁘다면서 연락 안 하는 정도였는데. 중국 가서 내가 성공하니까. 대학교 친구들이 전부 날 다르게 대하더라고.”

“뭐 어떻게 했길래 그래?”

그렇게 묻자, 영건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 뭐 나랑 이런저런 사업하자고 하고, 돈이 없는데 돈 좀 빌려달라고 하고, 물건 좀 사달라고 하고···”

아 시발. 살짝만 들었는데도 벌써 어질어질하네.

“넌 그거 다 받아주고 있었냐?”

“···아니, 내가 가난하던 때도 있었고 다들 아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하이고, 답답아. 그럴 땐 단호하게 거절했-

“뭣보다 거절해도 계속 달라붙더라고. 연봉 몇십억씩 받는데 이 정도는 너한텐 껌값 아니냐고 하면서.”

“······”

“그게 요즘 너무 힘들었거든.”

그 말을 하는 순간, 내 앞에 있는 국가대표 센터백은.

“그냥 사는 세계가 달라져서 피하는 것까지는 나도 이해했는데, 이제는, 슬슬 무섭더라. 내가 더 성공하면 저 사람들은 또 어떻게 바뀔지. 그런 게 계속되니까 노이로제 걸리는 줄 알았어.”

친구라 할 이들이 사라지면서 쓸쓸해하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데 넌 안 달라졌네. 그래서 정말 고맙다.”

“···야, 근데 나도 너 살짝 질투나서 연락 피했었는데, 그건 괜찮은 거냐?”

물론 변명거리야 많다. 어머니 일도 터지고, 프로에서 살아남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래도 연락 안 한 근본적인 이유는 내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은데···

“야, 당연히 괜찮지 새끼야, 너 나랑만 연락 안하는 게 아니라 아버지랑 연락도 안 하고 친구들이랑 연락 다 끊고 지냈다면서.”

“······”

“그리고, 뭐, 야, 니 정도 질투면 존나 양반이거든? 내가 일본에서 어떤 일 있었는지 말해줄까? 앞에선 친절하게 굴더니 내가 주전 차지하려고 드니까 훈련 때 공이 아니라 내 발목 노리던 새끼도 있었어.”

내가 그 말을 듣고 눈을 끔뻑이는 사이에. 영건이는 확정짓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조금 지금 차이가 난다고 해서, 우리가 더 이상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준혁아. 우리는 여전히 친구라고.”

“······”

“그니깐, 그냥 원래 그러던 것처럼 뻔뻔하게 굴어 줘라, 방금 전처럼 막 서로 운동하다 반칙도 쓰고, 그러면서. 대학교 졸업하기 전까진 그랬잖아. 너 막 선생님 할 꺼니까 방학 때 나중에 놀러오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그 말에, 나는 간신히 말을 골랐다.

“그래도 이제 우리는 너무 차이나지 않냐?”

사는 세계가 다른 이상, 솔직히 친구와의 관계가 계속되기란 힘든 법인데. 우리가 옛날처럼 지낼 수 있을까?

나의 그 선문답에. 영건이는 단정짓듯이 말했다.

“야, 너 상무에서 올해 FA컵 우승도 먹고 잘 뛰었잖아. 전역하면 최소 K리그에서 잘 뛰게 될 텐데 뭐 우리가 그렇게 차이난다고 하고 있어.”

“······”

“그러니까. 그냥 좀 편하게 대해줘라. 방금처럼.”

그 말까지 듣자, 나도 드디어 웃음이 나왔다.

그랬구나.

푸후.

이 녀석도, 외로웠구나.

짜악-!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주마. 옛날처럼.”

“야! 그렇다고 허리 치지 마라. 차라리 발로 엉덩이 차. 나 신혼이라고.”

잠깐, 저건 뭔 소리지. 내 귀가 잘못됐나?

“뭐라고?”

“신혼이라고.”

“···뭐야, 너 결혼했었다고?”

뭐야, 그럼.

“제수씨가 생겼는데 나한테 초대도 안 한 거였냐?”

“아 임마! 니가 군대 간 거였잖아! 니가 훈련소 가 있을 거라는 걸 뻔히 아는데 청첩장을 어떻게 보내!”

···아, 12월에 했냐?

“그럼 신혼이라고 하기에도 뭐하지 않냐?”

“···아냐, 아직 신혼이야. 신혼이라고.”

“···그래, 그럼 일찍 집에 들어가-”

덥썩.

“음··· 근데 집에 일찍 들어가면 저녁밥 차리느라 와이프가 귀찮아할 것 같은데, 좀만 더 있다가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네.”

···그래, 참 신혼처럼 보이는구나.

“잔소리 심해?”

“···응.”

에휴. 비시즌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으면 잔소리가 쏟아지는 건 운동선수 국룰인가.

“야, 그럼 너 당분간 나랑 같이 훈련할래?”

“응?”

“내가 지금 여기서 비시즌 훈련 중이거든.”

“···벌써? 너 안 쉬냐?”

나도 쉬고는 싶다. 임마. 실력 좀 키우려고 발버둥치는 거지···

“그러니까 여기에서 훈련 좀 같이 하면 어떠냐?”

“음, 그래, 좋아. 재미있어 보이네. 내일부터 바로 나올게.”

···바로 OK라니, 이 때면 보통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을 땐데. 잔소리가 어지간히 심한가 보네.

‘역시, 결혼은 하지 말아야겠다.’

축구나 열심히 하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