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화 (68/167)

6년 전의 절친 (1)

우리 상주 상무의 시즌은, 지난 11월 22일 경찰청과의 경기로 끝났다.

2015 K리그 챌린지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는 순간 승격이 확정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경기가 필요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그 순위 2~4위에 속한 팀들에게는, 정규리그가 끝난 이후에 정말이지 잔인한 한판 승부가 벌어진다.

바로, 3위와 4위가 붙고, 그 승자와 2위가 붙는 단판 플레이오프를 통해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를 최종 2위 자리를 겨루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약 7개월간의 여정이, 단 1경기에 갈리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코칭스태프들이 우리를 안산과의 최종전 전에 굴리고 또 굴려서 어떻게든 이기려고 든 거였다. 통과하더라도 심장에 더럽게 안 좋고, 통과 못 하면 그야말로 악몽이니까.

그리고, 지금 그 걱정이 옳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었다.

[주민구-! 주민구의 득점! 수원과의 경기에서도 역전 골을 터트리더니, 이번에도 역전 골을 터트립니다!]

[이브랜드가! 이브랜드가 창단 첫해에!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합니다!]

***

<2015 K리그 챌린지 플레이오프>

[경기 종료]

대구 FC 1 : 2 서울 이브랜드

[골]

대구 FC : 노병준 40

서울 이브랜드 : 타라바이 43, 주민구 89

***

“···화 씨, 저 새끼 대박이다.”

“그러게요, 시즌 말에 버로우 좀 타서 조나탄한테 득점왕 뺏기고 그러더니, 부활했네요?”

그리고, 저 소리는-

“야, 승강 플옵 때 저거 TV 중계하려나?, 이거 이러면 이브랜드랑 부산이랑 붙는 거니까 전직 국가대표들 겁나 많은 팀끼리 붙는 건데 이거.”

부산 쪽에서 이범영, 주세종.

서울E 쪽에는 김영광, 김재성, 조원희.

승강 플옵에, 전직 국가대표들이 포진해 있는 빅매치가 열렸다는 소리다.

거기에 현직 국가대표 공격수 정현이랑··· 솔직히 내가 보기에 국대 예정인 것 같은, K리그 챌린지 토종 최강 공격수까지. 완전 라인업이 미쳤다.

‘뭔 승강전이 이렇게 빅 매치냐.’

지금 당장 커리어를 끝내더라도 ‘라떼는 말이야~’ 를 외칠 수 있는 사람들이 가득찼네.

“야, 우린 누구 응원해야 하는 거냐?”

“글쎄요, 웬만하면 부산 응원하고 싶긴 하네요, 이브랜드 쪽에는 아는 친구들이 없어서.”

“그라체? 게다가 정현이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우리랑 동료였기도 했고, 협상이도 부산이니까. 그게 맞겠다.”

“······”

-민구야 파이팅이다, 내년 K리그에서 보자.

···핸드폰 숨기자.

그렇게 어수선해진 가운데.

“자, 자, 어차피 우리 일 아니잖아. 그만 열 내. 이제 다들 싸지방 그만 쓰고 생활관으로 돌아가자.”

선임들이 전역하고 나서 주장 완장을 차게 된 이형 선배가 분위기를 정리했다.

“우리 장기간 휴가 나가니까 짐 빠뜨린 거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이나 해.”

““예!””

그 말과 함께 우리는 생활관으로 흩어져서 몇 번이고 싸 온 짐을 다시 싸기 시작했다.

“준혁아, 넌 그거 뭐냐?”

“아, 피지컬 검사표 필요해서 군의관한테서 받아왔어. 넌-?”

잠깐.

“야 임마, 너 그거 뭐야.”

“뭐긴 뭐야, 닌텐도지.”

시발. 저 새끼 저건 또 언제 가져왔어? 게다가 또 왜 힘들게 가져와 놓고는 다시 집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 거냐?

“야, 너 그거 가져가게?”

“그렇지, 한 달 동안이나 닌텐도를 못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데.”

“······”

“음- 역시 포켓몬은 하트골드가 짱이야.”

···그래, 맘대로 해라. 한 달간 룸살롱 가는 것보다야 저게 낫지···.

.

.

.

.

.

.

“그래서, 12월에는 우리 축구단 전체가 거의 부대에 없을 거다. 그러니까 알아서 운동해라.”

그 말을 들은 내 웨이트트레이닝 메이트인 대상이 녀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거 가능해요? 원래 한 달에 휴가 15일 이상 못 쓰지 않나요?”

“꼼수지 뭐”

11월 30일에 15일짜리 휴가 쓰고, 중간에 찍턴하고 나서 다시 15일 휴가를 나가게 되는 방식으로 하는 거다.

뭐, 이거 문제 삼으면 문제 삼을 수 있는 거긴 한데, 그 군인체육대회 한 번 우승했다고, 부대장이 적당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겨주더라.

‘그게 진짜 그렇게 중요했던 거였나? K리그 클래식 승격보다도 더?’

···뭐 여전히 그게 왜 승격보다 중요했던 건지 이해는 안 가지만 말이다.

“아- 아쉽네요. 형님 있어서 그동안 운동이 훨씬 덜 지루했는데. 나름 경쟁하는 재미도 있고.”

···대상아, 너야 재미있었겠지만, 난 니 페이스 따라가려고 진짜 온몸을 비틀며 열심히 했던 거였다. 시즌 말까지 니 웨이트 따라가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뭐, 하긴 이제 저희도 시즌 시작해서 원정 자주 나가니, 차라리 잘됐네요, 형님, 그럼 잘 쉬다 오세요!”

그 말을 듣자,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거렸다.

‘···잠깐, 지금 있으면 저 자식이 고생하는 모습 볼 수 있는 건가?’

그 생각을 하자, 뭔가 무척이나 남아 있고 싶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헥헥거리면서 웨이트를 겨우 따라갔는데 저놈은 여유로웠던 걸 갚아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이제 겨울이라서 우리가 아니라, 저놈들이 고생할 시즌이니까 말이다.

‘···근데, 그건 어려우려나?’

상무 농구단은 일단 D리그, 그러니까 2군 리그만 뛰니까 솔직히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병역 혜택도 우리나라 축구단에 비해선 훨씬 덜 받는 편이라 국대급 선수들이 축구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오는 편이라 저놈이 뛰는 시간도 그리 많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겠네. 한 번 정도는 고생하는 날이 있을-?’

···시발. 이건 뭐야.

‘상무 농구단은, 09년 창단 이후로 아직도 패배가 없다고?’

아, 이러면 나가리잖아. 저 정도면 진짜 그냥 경기할 때마다 상대편을 가지고 논다는 건데 고생할 리가 있나.

“형, 왜 갑자기 핸드폰 봐요, 운동하죠, 운동. 앞으로 당분간 못 보는데 제대로 하자고요.”

“···그래.”

젠장. 부러운 자식. 패배할 걱정이 없다니.

“좋아, 진지하게 하는 김에 오랜만에 내기하면서 해 보자고.”

“오, 좋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치킨값이라도 네놈한테서 뜯어먹고 말겠다.

-*-*-*-

“이준혁! 일어나라!”

으어어억··· 아, 너무 힘들어서 깜빡 졸았네.

“이런 고강도 트레이닝 하고 바로 누워서 잠들면 몸에 안 좋다!”

어어어억. 아, 알긴 아는데···

“사, 살려주세요오··· 이건 너무, 너무 심합니다.”

이건 진짜 너무하잖아.

이대상 녀석한테 신체능력이 달리기 빼고-심지어 그 달리기도 잘못했다간 질 뻔해서-홧김에 트레이닝 훈련 강도를 극한까지 올려달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상무 의료진한테서 받아온 자네 데이터 보니까, 이 정도는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야. 자네 스스로를 믿게.”

“···교수님, 교수님은 분명히 과도한 하드 트레이닝을 경계하시는 분 아니었습니까?”

···1년 전에 너무 과도한 트레이닝은 안 좋으니까 쉬어서 근육을 회복시키시라던 분이랑 동일 인물 맞으시죠?

“그건 내가 자네의 몸을 자세히 모르니 그랬던 거기도 하고, 포지션 훈련에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상황이었으니 그랬던 거지. 지금은 이렇게 자료도 있으니 여기에 근거해서 하는 걸세.”

“······”

제기랄. 저거 가져오라고 하신 이유가 있었구먼.

내 무덤을 내가 스스로 팠네.

“자, 그럼 이제 충분히 쉰 것 같은데, 다음 트레이닝으로 넘어가지.”

“······”

역시 교수란 인간들은, 다 악마임이 틀림없다. 배려하는 마음 따위 없이 사람을 저렇게 자연스럽게 개고생시키는 걸 보면 말이다.

“뭐, 싫으면 그만해도 되네, 그냥 원래 일정대로 편하게 해 줄 테니, 다만 그러면 그 대상이란 친구랑은 신체 능력이 더 벌어져 있겠지.”

···그리고 저렇게 살살 팩트를 때려 박으면서 원하는 대로 사람을 유도하는 것도 정말 악마스럽다. 젠장.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지. 시작하게.”

“···예!”

12월 들어서 시작된 박경운 교수님과의 트레이닝은, 이번에는 수비도 수비지만, 훨씬 더 피지컬에 입각한 운동을 시키기 시작하셨다.

-이 차트를 보면, 자네는 또래보다, 아니 그냥 갓 올라온 대학생 선수들과 비교해도 체내 호르몬 수치가 아주 높은 편일세, 타고난 것도 있고, 건강관리를 잘해온 덕이겠지.

그래서, 지금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것이 바로 피지컬이었다. 호르몬이 수치가 높다는 건 운동할 때 근육이 잘 붙는다는 소리고. 그렇다면 거기에 집중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K리그로 가면, 나보다 더 키 큰 놈들이 훨씬 흔해질 테니까.’

내가 시즌을 치르면서 느낀 건데, 전문 풀백 중에서야 내 키가 작은 편이 아니지만, 풀백과 센터백을 번갈아 가면서 뛰는 선수 중에는 180cm가 넘는 수비수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그런 선수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돌파라는 옵션을 접어야 했다.

‘물론 킥이 있고, 스피드도 있으니 공격 작업에서 아예 버로우를 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무기 중 하나가 막힌다는 건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에서 2개만 낼 수 있도록 제한이 걸린 상태로 상대방이랑 가위바위보를 한다고 생각해 보자.

2개만 가지고 이기는 거? 한 10판만 하는 거라면 가능할 거다. 심리전이라든지, 상대방의 습관 같은 거를 노리면 그런 제한을 두고도 상대방보다 더 높은 승률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100판 정도를 하게 되면 대부분 상대방이 더 승률이 높을 거다. 바보가 아닌 이상, 상대방이 내가 두 종류밖에 못 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축구도 그와 다르지 않다. 내가 상대방 수비수에게, 공격수에게 제한된 플레이만 반복해서 써먹는다면 상대방은 훨씬 편하게 나를 막아 세울 수가 있게 된다.

‘물론 뭐 로벤의 매크로 드리블같이 바위를 이기는 가위 같은 것도 있지만···’

난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연습해야 하는 거다.

“더! 더더더더! 밀쳐! 더 세게!”

나보다 키가 더 큰, 센터백들을 만나도.

“으아아-!”

나에게서 돌파라는 선택지를 완전히 뺏어가지 못하도록.

그리고 수비적인 부분에선, 이제 심화적인 부분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자네는 어떤 유형의 수비수를 만나도 항상 똑같이 수비해 왔지? 이젠 달라져야 할 걸세.

선수가 어떤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는지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수비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시작한 거였다.

-빠른 선수, 힘 좋은 선수, 발밑이 좋은 선수 등등으로 선수의 유형을 나누어서 수비를 다르게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네.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물 흐르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다만- 문제점이 있다면.

“교수님.”

“응?”

“크로스를 막는 방법은, 어떻게 안 됩니까?”

크로스, 크로스를 막는 방법은 별로 연습이 많이 안 됐다는 거였다.

‘내가 저번에 차두리 선수랑 붙었을 때도, 크로스는 거의 못 막다시피 했었지.’

그래서, 나는 크로스 막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흠- 그건 어렵네.”

교수님은 그건 가르쳐주기 어렵다는 태도이셨다.

현대 축구에서 크로스 수비는 지역 수비 개념으로 바라봐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센터백과 맞춰가며 배워야 하기에 까다로운데, 지금 대학 축구 수준의 센터백과 발을 맞추다가는 내가 잘못된 움직임을 배워버릴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최소한 K리그 챌린지 주전급 센터백과는 발을 맞춰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걸세.

그래서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난 아직도 크로스에 대한 대책은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젠장, 2% 아쉽네.”

<이브랜드, 창단 첫 시즌만에 K리그 클래식 진입!>

‘저 놈이 발전하는 만큼, 나도 더 발전하고 싶은데 말이야.’

에휴- 뭐, 그래도 나머지 수비스킬들도 소화만 해 내면 내 수비력이 훨씬 좋아질 테니, 그거나 잘 외워야겠-

“이준혁?”

뭐야, 누구길래 내 뒤통수를 보고 내가 누군지 알아맞춘 거지?

“누구세-”

고개를 반쯤 돌아본 순간, 숨이 막힐 뻔 했다.

“와, 준혁이 맞네, 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잘 지냈냐?”

J리그로 가서 모교에 딱 기부금을 1억씩 투척하고.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군면제까지 받았으며.

현재는 중국 광저우 FC의 소속으로, 올해 광저우가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를 우승하는 데 크게 기여한.

전주대 최고 아웃풋. 국가대표 수비수 김영건.

6년 전의 절친이 내 앞에 서 있었다.

0